칼럼

환경호르몬, 안전 용량이란 없다

[의료와 사회] 환경호르몬과 여성 건강

환경정의와 젠더

글에 앞서 간단한 자가테스트를 해보자. ‘환경호르몬’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2000년대 초반 다이옥신 논란 때 뉴스에서 앞다퉈 보도한 ‘여성생식기를 가진 붕어’? ‘정자 수 감소’?

환경호르몬의 정확한 용어는 ‘외인성 내분비계 교란물질(Endocrine disruptor)’로 산업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화학물질이 생물체 내에 흡수되어 호르몬이 관여하는, 내분비계에 혼란을 일으키는 물질을 말한다. 비만·당뇨·갑상선기능의 교란·생식기능의 이상과 같은 광범위한 내분비 교란 질환군이 있으며, 환경호르몬이 위해를 끼친다고 보고된 건강 영역 역시 굉장히 다양하다. 하지만, 구글 검색이나 뉴스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환경호르몬 관련 연구의 대부분이 생식기능, 그것도 수컷 동물 혹은 남성에 국한되어 진행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sbs스페셜>환경오염 및 유해물질의 피해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지 않다. 생물적 약자, 사회적 약자에 집중된다. 생물적 약자란 아이들(과 태아), 고령자, 호흡기계 환자 등을 말한다. 미세먼지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은 고령자나 아이들이며, ‘옥시 사건’에서 드러난 취약계층은 임산부와 아이들이고, 체르노빌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수십만 명의 사망자 대부분은 아이들이었다. 사회적 약자란 저소득층, 노동자, 영세농어민 등이다. 각종 유해물질에 보다 더 노출되는 노동자는 보호장구를 제대로 지급해 주지 않는 비정규직 저임금노동자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미나마타병은 영세어민이 더 큰 피해를 입었다. 저소득층일수록 식품첨가물이 많이 첨가되어 유통기한이 길고 싼 음식들을 많이 먹는다.

여기에, 최근에는 젠더 관점으로 본 환경정의에 대한 논의가 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30억 명의 인구가 바이오매스 연료(말린 소똥, 나뭇가지와 짚 등 농산물 부자재)를 가정 내 취사 및 난방 연료로 사용하는데, 호흡기계 질환의 5~6%가 이런 바이오매스 연료를 소각할 때 나오는 일산화탄소·포름알데히드·다환방향족탄화수소화합물 등이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가정 내 음식을 조리하는 사람은 여성이 절대다수인 상황을 생각하면, 여성이 취약계층임은 자명하다.

▲ <SBS스페셜>이 2007년 방송한 ‘환경호르몬의 습격’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SBS

기후변화로 인해 모로코는 1984년부터 2000년까지 10년이 넘게 가뭄을 겪었는데 이런 심각한 가뭄은 여성, 특히 어린 소녀들의 안전에 큰 위협이었다. 어린 소녀들이 물을 긷고 관리하는 개발도상국에서, 소녀들은 점점 더 먼 곳까지 물을 길으러 다니게 됐다. 이에 따라 교육받을 기회를 더욱 박탈당했으며 동시에, 강간과 같은 범죄에 노출돼 국제적 인권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성의 건강에 대한 연구나 같은 질병이라도 성차에 따른 차이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다. 환경호르몬을 포함한 독성학 연구도 마찬가지로 1990년대 초반 ‘인간’ 건강에 대한 영향이라는 제목을 단 환경호르몬 연구들은 고환암 빈도증가·정자 수 감소·선천성 성기기형 등만을 다루고 있다. 80년대 후반 이후 성인지적 관점이 도입되면서 여성의 생식기능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늘게 된다. 특히 독성물질이 신체영향을 미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인 ‘노출 시점’ 측면에서 태아기·영유아기에 독성물질이 미치는 영향은 생물학적 발달과정 상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한편, 임산부의 태반이 독성물질을 걸러주는 체 역할을 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신비주의적인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그렇지 않다. 탈리도마이드 케이스가 끔찍한 교훈을 보여줬고, 뇌신경세포를 파괴하는 메틸수은의 경우는 태반에서 오히려 능동수송을 해 모체에 비해 태아의 혈중농도가 더 높다. 이렇게 상대적 취약성 및 생물학적 기전의 차이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환경호르몬이 여성의 생식기능에 미치는 생리적·유전적 영향을 보다 면밀하게 연구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유럽에서 2008년부터 시작하여 2013년까지 진행된 ‘REEF(Reproductive Effects of Environmental chemical in Female) 프로젝트’로, 임신한 암컷 동물을 이용한 연구를 통해 태아에 미치는 환경호르몬의 영향 및 민감성의 성별 차이에 관한 연구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정말 여성 생식건강 문제가 늘어나고 있는가

이 문제의 트렌드를 보여주거나 비교 가능한 자료들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렇지만, 1960~2002년 사이 임신율은 44%나 감소했고, 지난 20년간 불임이 급증하고 있다. 물론 여성의 사회진출이 확대되면서 결혼 연령이 높아지는 것도 있지만, 20~30대 불임도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에서는 지난 20년간 25세 미만 불임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아래에서 다시 나오지만, 여성의 전 생애주기에 걸쳐 생식건강 영역의 질환들(성 조숙증, 근종, 자궁내막증, 다낭성난소, 유방암)이 증가하고 있다. 수명, 영양 등 전반적인 건강 지표가 개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식건강 문제들은 여성의 가임력과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환경호르몬

환경호르몬은 신체의 정상적인 내분비호르몬의 생산·분비·수송·대사·기능·제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교란시키는 물질이다. 체내 호르몬은 수용체와 결합해 작용하는데 환경호르몬이 수용체에 대신 결합하면서 마치 체내 호르몬과 비슷한 작용을 하거나, 자리만 차지하고 기능을 가로막거나,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 중국에서는 2010년 8월 유제품 대기업 ‘성위안(聖元)’사 분유를 먹은 영아에게서 성 조숙증이 나타나 파문이 일었다. 해당 분유에 호르몬이 첨가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으나, 위생 당국은 조사 결과 성 소숙증을 유발할 만한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google.com


어떻게 노출되는가

환경 호르몬에 대한 노출 경로는 매우 다양하다. 다음의 표와 같이 약물, 농약, 담배, 생활용기, 치료재료 등 다양한 경로들이 있다.


환경호르몬의 여성 생식건강에 대한 영향

동물 실험 및 제한적인 인간 대상 연구들(실험이 불가능하므로, 환자군과 대조군에서 환경호르몬 농도를 비교하거나, 노출군과 비노출군에서 유병률을 비교하는 등의 관찰 연구 정도가 대부분)에서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환경호르몬이 기존의 독성물질과 다른 이유

■ 언제 노출되었나

<sbs스페셜>

<sbs스페셜>

▲ 환경호르몬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 위험성이 각별히 높아질 수 있는 발달 과정 중 중요 단계. (Girl, disrupted : Hormone Disruptors and Women’s Reproductive Health Women’s Reproductive Health and the Environment Workshop, January 6-9, 2008 Bolinas, CA)

우리가 기존에 직업환경의 영역에서 다루던 독성물질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에 비해, 환경호르몬의 작용기전 및 역학은 훨씬 더 복잡하다. 일단 노출 시점이 중요하다. 여성 일생의 생식기관은 내인성 호르몬의 주기적인 사이클에 의해 변화하고 발달한다. 발달이 빠르게 일어나는 시점-태아, 사춘기, 임신 중일수록 환경호르몬에 가장 취약한 시기이며, 이때 노출될수록 평생 위험률이 더 증가한다. 한 예로, 자궁근종은 여성호르몬에 의해 생기고 커지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태아시기에 DES에 노출하게 되면 여성호르몬에 대한 민감도를 결정하는 유전자가 변형되어 민감도가 더 높아지는 것이다.

■ 안전 용량(safe dose)은 안전한가

전통적으로, ‘화학물질에 낮은 농도로 노출되는 것은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이 있었다. 전통적인 독성학의 개념은 농도에 따라 독성이 증가한다는 가설이었고, 그래서 기준농도 이하에서는 ‘안전’한 기준을 찾기 위한 실험들이 계속되어 왔다. 하지만 독성물질에 대한 낮은 농도의 노출로 인한 건강 영향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것이 아니다. 집단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취약도와 노출 위험성이 상이하다. 언제 얼마나 노출되었는지 뿐만 아니라 노출 당시 개개인의 건강상태, 다른 위험요인이 동반되어 있는지, 다른 독성물질과 같이 노출되었는지, 그리고 성별과 개인적인 유전자 차이까지 이렇게 개개인의 취약도가 다르기 때문에 미국 국립과학원에서는 유해 가능성이 있는 물질에 대해서 노출 허용 용량 , ‘안전 용량’이란 것은 없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환경호르몬은 대표적인 ‘안전 용량’이 없는 물질 중 하나이다. 아주 저농도의 환경호르몬도 호르몬 수용체와 결합하면 신호전달 체계가 발동하기 때문에, 사춘기가 시작되거나 유즙이 분비되거나, 배란되어야 할 시점에 배란이 안 되는 등의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인체 내의 자연적인 성호르몬은 굉장히 복잡한 회로체계를 가지고 있고, 농도나 분비 주기에 따라 다른 역할을 한다. 뇌에서 분비되어 난소의 여성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호르몬인 성선자극호르몬분비호르몬은 주기적으로 분비가 되는데, 이 분비 주기가 느리면 난포자극호르몬이 분비되고, 분비주기가 빠르면 황체형성호르몬이 분비된다. 여성호르몬은 낮은 농도에서는 양성 되먹임 (positive feedback) 기전을 통해 여성호르몬을 더 많이 분비시키도록 하지만, 높은 농도에서는 음성 되먹임(negative feedback) 기전을 통해 여성호르몬 분비를 억제시킨다. 이처럼, 자연 호르몬을 모방하는 환경호르몬 역시 농도에 따라 다른 역할을 할 뿐이지, 낮은 농도라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니다. 매우 낮은 농도의 비스페놀 A를 투여하더라도 암컷 쥐에서 염색체 비분리를 일으켜 기형 생쥐를 출산하게 되는 등의 실험 결과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 지속성 후향성 문제

환경 호르몬의 건강영향을 지속적으로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하는 이유는, 그 영향이 지속적이고 후향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 시기에 노출이 수년에서 수십 년 후 증상으로 발현될 수 있다. 다음 세대, 또는 그다음 세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70년대에 개발되어 유산 방지제로 쓰였던 DES(diethylstilbestrol)라는 물질의 유해성은 이를 복용한 산모들이 출산한 아이가 성장해 초경할 무렵이 되어서야 밝혀지기 시작한다. 한때 정상 발달과정을 거치는 듯해 안전성이 확실하다고 홍보됐으나, 초경을 하지 않아 확인해 본 결과 자궁 기형이 발견됐고, 불임과 질암 등이 어린 나이에 발병했다. DEX를 복용한 산모의 손녀들에게도 불임과 생리불순이 나타났다. 또한 내분비계는 같은 수용체와 기전을 공유하기 때문에, 한 생식기계 질환이 다른 질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성조숙증은 유방암과 다낭성난소종의 위험도를 높이며, 다낭성난소종은 불임의 확률을 높인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남성과 여성 모두가 환경호르몬에 가장 취약한 시기는 태아기이다. 그래서 모성건강에 대한 보호가 중요한데 이는 태교처럼 개인적 차원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여성의 건강을 보호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임신한 여성의 건강을 특별히 신경 쓰지 않을 것이며, 노동환경과 노동자의 건강을 가볍게 여기는 사회에서는 임신한 노동자, 가임기 노동자의 건강도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낮은 산재 보고율/인정률인 사회에서 더구나 불임이나 유산 같은 생식건강 영역은 더욱 드러나지 않고 있다. 외국에는 반도체 노동자들의 유산 및 조산, 하수처리장(하수 찌꺼기에는 농약과 산업폐기물로 인한 환경호르몬 농도가 높다) 노동자들의 생식기능과 관련된 논문들이 활발하게 발간되고, 이들을 근거로 산재 보상 케이스가 축적되어 가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겨우 최근에야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격무 및 야간노동, 약품 취급으로 인한 집단 유산이 어렵사리 산재인정을 받은 정도다. 독성물질뿐만 아니라 환경호르몬까지, 더 많은 직업환경영역의 연구 축적이 필요하다.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생활습관 개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적(主敵) 키워드 하나만 꼽자면, ‘플라스틱’이다. 각종 플라스틱 제품은 환경호르몬의 발생원이다. 안 타게 하려고 넣은 브로민화난연제에, 타면 다이옥신이 나오고, 부드럽게 하려면 프탈레이트, 단단하고 투명하게 하려면 비스페놀A다. 어딜 가도 피할 수 없다. 특히 재질 표시를 확인해 가능한 PVC, PC, PS는 피하는 것이 좋다. 어린이용 제품이라면, 라벨을 확인해 2016년 6월 1일 이후 제조된 제품 중 어린이용·학습용으로 표기되어 있으면 안전한 제품이다. 손상되고 열이 가해진 플라스틱에서 환경호르몬이 많이 나오므로, 마모된 제품은 피하는 게 좋고, 페트병은 가능한 장기간 재활용하지 말고, 플라스틱 용기는 전자레인지에 돌리지 않는 것이 좋다. 비어캔 치킨은 맥주캔에서 비스페놀A가 녹아나오므로 피하고, 요구르트는 뒤꽁무니 말고 뚜껑을 따서 먹자. 또한 배출을 많이 시키기 위해 운동으로 땀 흘리기, 현미밥과 채식 식습관, 수분 섭취를 하고, 환경호르몬이 주로 지방에 축적며 지방에 녹아들어 간 이후에는 배설되기 어려우므로 과체중을 주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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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방송된 <SBS스페셜> ‘환경호르몬의 습격’ 중. ⓒSBS

환경호르몬 없는 제품을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기업의 정보를 모으고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신자유주의 하의 산업정책은, 어떠한 물질이 위험하다고 밝혀지기 이전까지는 안전하다고 홍보한다. 이미 위험성이 알려진 성분에 대해서는 표시제를, 밝혀지지 않은 성분들에 대해서는 더 많은 임상 시험 이후에 시장 진출을 허용하도록 하는 제도적인 규제가 필요하다.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www.nocancer.kr)’은 홈페이지와 스마트폰 앱 ‘우리동네 위험지도’ 를 통해서 어린이용품 및 생활용품에서 PVC 및 중금속 성분을 분석하여 안심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적어도 어린이용품이나 병원용품에서는 PVC를 제한하도록 하는 입법청원운동도 이 단체가 해 온 작업이다.

생식건강도 ‘마이너(비주류)’인데, 환경호르몬도 ‘레어템(희귀 물건)’이다. 관심이나 연구가 집중되기 어렵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진료실에서 생활습관 교육을 가능한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설명하는 나나, 듣고 있는 환자나,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하고 살기 힘들죠?”라며 쓴웃음을 짓고 끝나게 된다. 소외된 분야에 대한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과 관심, 생산된 정보를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 유해성에 대해 공히 문제의식을 느끼고 제제를 가하기 위한 전문가와 시민의 공조, 이 모든 거버넌스가 필요한 때다.

윤정원(건강과대안 젠더건강팀, 산부인과 전문의) / 의료와사회 2016년 6-8월호

2개의 댓글

  1. 금자

    출처 밝힌 후 여성환경연대 블로그에 퍼갈께요! 혹시 문제가 된다면 연락주세요. 바로 내릴께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 건강과대안 글쓴이

    @금자 예 출처 밝히시면 아무 문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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