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약들이 사라지고 있어요- 이제는 국영제약사가 필요하다

약들이 사라지고 있어요.
- 이제는 국영제약사가 필요하다.


요즘 우리 주변을 보면 옛날에는 아주 흔하게 매일 접했던 추억의 장소들이 하나 둘 소리 소문 없이 동네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을 언뜻언뜻 느낄 때가 많아졌다. 대표적인 것이 동네 이발소다. 어느 순간 미장원으로 가고 00클럽 등이 등장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다. 

마트나 SSM이 동네를 파고들자 골목마다 있던 동네슈퍼들이 이제는 가뭄에 콩 나듯이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그 많던 만화가게도 양복점도 동네 서점도 이젠 찾기가 쉽지 않다. 

한 번은 전자제품 수리 때문에 전파상을 찾을 일이 생겼었는데 동네는 물론 인터넷을 다 뒤져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전파상은 추억의 이름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꼭 남의 문제만은 아닌 듯 의약품 분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요즘 들어 약국에서 적지 않게 접하는 일 중 하나가 품절되는 전문 약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약국 근처에서 쓰는 약만 예로 들더라도 그런 품목이 한 둘이 아니다. 2010년 들어 장기 품절인 대표적인 약으로 안과에서 안압조절에 주로 쓰는 다이아막스정이 있다. 얼마 전부터는 또 포러스 안연고가 품절이다. 

백내장에 쓰는 비교적 저렴한 약인 가리유니도 공급이 불안하다. 싼 가격의 백내장 치료 안약인 카타딘은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카타딘이 단종 된 이유는 아무리 찾아봐도 약 가격이 싸다는 것 말고는 그 이유를 들 수가 없다. 

요즘 들어 의약품의 품절 이유를 몇몇 제약사에 물어보니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 보험약가가 원가에 못 미치기 때문이란다. 밑지면서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근근히 생산하는 이유가 가관이다.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 피해를 감수하면서 생산한다.’는 말을 기대한 것은 애시 당초 무리다. ‘안과선생님들이 꼭 필요하다.’고 하기 때문이란다. 제약회사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국민건강이 아니라 거래처 병의원 관리가 우선 된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싸지만 꼭 필요한 약들이 하나 둘 없어져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생산이 중단된 일부 필수의약품에 대해 의료기관들이 제약사와 복지부 등에 생산 및 정책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 역시 약가 보전 이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 환자진료 차질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제약사들은 일부 품목들이 생산과정에서 원가 자체가 보전되지 않거나 원료수입 자체가 어려워 어쩔 수 없다며 속속 생산 중단 결정을 내리고 있어, 이 약이 필요한 병원 약제부에서는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청, 한국제약협회 등 관계 부처 및 단체를 비롯해 각 제약사에 의약품 공급을 요청하는 공문을 계속 발송하고 있다. 

얼마 전 서울대 병원에서도 환자들의 진료에 반드시 필요한 약물임에도 생산이나 수입이 안돼 공급이 중단된 백혈병 완화 유도, 유지에 쓰이는 ‘암시딜주사’를 비롯해 혈관확장제인 ‘페르산친 당의정’, 약물에 의한 메트헤모글로빈혈증에 쓰이는 ‘메칠렌블루주사’ 등 총 12종의 의약품에 대해 공급이 재개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와 관련, 서울대병원 약제부 관계자는 “생산이나 수입이 어려워 공급되지 않는 의약품에 대해서는 수시로 정부나 해당 제약사 등 관련 단체들에 협조 공문을 보내지만 답변을 받은 일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제약사 입장에서는 생산해도 많이 쓰이지 않는 품목이기 때문에 수지타산을 이유로 생산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아 공급을 요청해도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대부분이며, 이들 제품은 대체 품목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진료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제약사 측에서는 제품공급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어려움이 많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제약사 차원에서는 생산해도 원가조차 보전되지 않고 정부가 정책적인 지원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생산중단이 불가피하다고 항변하고 있고, 복지부 관계자도 “적정한 보험약가를 통해 제약사 측에서 최소한의 원가를 보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제약사들의 공급문제는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다고 밝혔다. 

더군다나 2012년 들어 2조원대 규모 약가인하 정책으로 제약사들이 마진이 낮은 퇴장방지의약품 생산을 중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사라지는 약들이 더 많아질 전망이다. 2011년 말 한국제약협회가 31개 제약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0개사가 보험의약품 3,747개 품목 중 18.3% 687개 품목의 생산중단을 고려하고 있으며 그 안에는 퇴장방지의약품도 112개 품목(16.3%)이나 포함돼 있었다.

이 제약사들은 “약가 인하 시 생산원가 인상으로 수익성이 악화돼 낮은 마진 또는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시장성이 없는 품목에 대해 우선적으로 생산중단을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영국의 경우도 NHS가 “고전적인 약의 품절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제약사들이 이런 중요한 약들의 생산을 중단해 환자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을 병원들이 쓸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이렇게 중단된 약들의 대부분은 병원에서 빈번히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제약사들은 더 이상 그런 약의 제조로부터 돈을 벌 수 없는 경우에 “제약회사들은 어떠한 이익도 얻을 수 없다고 판단되면 사람들의 건강은 그들의 관심사 밖이 된다.”고 NHS의 한 관계자는 제약사들의 이런 행태에 대해 비난했다.

이윤이 없어 생산할 수 없다면 누군가 그 역할을 대신 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 나오고 있는 주장이 의약품에 공공재 개념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공공재로는 버스나 지하철, 기차 같은 대중교통체계나 전력, 수도, 가스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의약품도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다. 이윤 때문에 민간제약사들이 손을 땐다면 그 역할을 누군가 해야 한다. 그 대안으로써 공공제약사는 이제 필요한 싯점이 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뻔히 운영되고 있는 민간제약회사들이 수두룩한데 시대에 뒤떨어지게 뭔 국영제약회사냐.” 이는 국영제약회사의 필요성을 언급하면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소리다. 

한 마디로 우리 사회에서는 제약회사를 정부에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렇지만은 않다는 현상들이 이 곳 저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또 다른 현상으로는 얼마 전의 신종플루 유행 때 의약품 부족 사태나 올해 일본의 쓰나미에 이은 후쿠시마원전 방사능 누출사고 때문에 일어난 방사능 노출 공포다. 

신종플루가 폭발적으로 번지자 유일한 의약품인 타미플루와 예방백신이 한 다국적 제약사의 독점 공급 때문에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자 우리 정부에서도 강제실시를 고려했다. 하지만 그 진행과정에 시스템 자체가 민간에 맡겨져 있는 한계 때문에 국영제약사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최근에는 일본 후쿠시마원전 방사능 누출 때문에 요오드제제에 대한 과열현상이 몰아쳤다. 언제 쓸지도 모를 요오드 제제를 생산할 민간제약사가 어디 있겠나? 두 군데 제약사가 부랴부랴 허가를 내느라고 난리다. 이런 경우 국영제약사가 이를 신속하게 해결하면 된다. 

그리고 약가협상에서도 국영제약사는 유의미할 수 있다. 일부 다국적사들은 약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의약품 공급 자체를 거부하는 사례들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그러면 울며 겨자 먹기로 제약사가 요구하는 대로 들어줄 수 밖에 없다. 

이는 우리나라 의료보험 재정의 주요 적자 요인 중 하나다. 태국에는 국영제약사가 있어서 에이즈치료제로 쓰는 애보트의 칼렉트라에 대해 강제실시를 시행해서 가격을 1/10 이하로 내려 공급할 수 있었다. 

또 얼마 전 우리 정부는 G20을 개최하면서 국격을 높인다면 MDG(밀레니엄개발목표,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2000년 UN에서 채택된 의제로, 2015년까지 빈곤을 반으로 감소시키자는 범 세계인 약속)에 대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해외원조를 위한 MDG 관련 기금은 몇 조를 육박하는데 이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수여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된 우리가 국영제약사를 통해 한 해에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소위 소외열대질환(NTD, Neglected Tropical Disease, 수면병, 장티푸스, 말라리아, 주혈흡충 등의 아프리카 소외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 질환)’을 위한 연구개발을 한다면 이른바 우리의 국격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일은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다. 이를 민간에서 다 할 수 있다면 민간에 맡길 수도 있지만 이미 여러 부분에서 민간의 역할에 균열이 가고 있다. 꼭 필요한 약인데 갑자기 제약회사에서 생산을 중단해 버리니 환자도 의사도 약사들도 아주 곤란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상황이 이렇다면 당연히 정부가 이를 보강해야한다. 그런 면에서 이제는 우리 사회나 정부에서도 국영제약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리병도(건강과대안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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