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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토미 더글라스는 어떻게 자본과 권력을 넘어 무상의료를 이루어냈는가?

[노는날] 즐거운 책읽기 – 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 
토미 더글러스는 어떻게 자본과 권력을 넘어 무상 의료를 이루어 냈는가?

김성아(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 회원) drsakim@daum.net

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 토미 더글러스는 어떻게 자본과 권력을 넘어 무상 의료를 이루어 냈는가? 

데이브 마고쉬 지음. 김주연 옮김. 우석균 해제. 건강과대안 기획. 낮은산. 2012. 2
(Tommy Douglas: Building the new society. Dave Margoshes. 1999)
 
난 책을 볼 때 책 표지와 책날개부터 유심히 본다. 사람으로 치면 얼굴이니 어떤 표정인지 궁금하잖은가. 이 책의 얼굴; 청진기가 있고, 청진기의 한쪽엔 안경 낀 젊은이의 얼굴이 동그란 원안에 있다. 좌우로 벌려지는 가지같은 곳에는 이 책의 원제인 ‘토미 더글러스’, ‘새로운 사회 건설하기’가 영어로 적혀있다.
 
그래, 이 책은 토미 더글러스라는 사람의 이야기, 즉 전기이다. 자본과 권력을 넘어 무상 의료를 이루어 내었던 토미 더글러스의 이야기를 통해 번역자, 해제를 쓴 사람, 이 책의 출판을 기획한 단체는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또 나는 저자와 번역자에도 상당히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다. 책이란 것이 결국 쓴 사람의 생각, 이야기이니 그가 누구인지, 평소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실천하며 살았는지를 까다롭게 살펴본다.
 
이 책의 저자인 데이브 마고쉬는 캐나다 리자이나에 살고 있는 전업 작가이자 시인이다. 미국 출생으로 30대이던 1970년 초반 캐나다로 이주하기 전 미국 내 다양한 신문사에서 일했다. 1986년에 이 책의 주인공의 무대인 서스캐처원으로 이사했다. 서스캐처원에 살면서 서스캐처원이 낳은 최고의 정치인 토미 더글라스의 전기를 쓴 것은 어쩌면 소설가이자 시인으로서의 자연스러운 감성의 발로였을지도 모른다.
 
번역자인 김주연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건강과대안 회원이다. 건강과 의료접근권에 관심을 가진 저자는 몇 년 전 「권력의 병리학」을 번역했다. 직접 만나본 그녀는 심각한(?) 책들을 번역하는 사람이라기엔 너무나 밝은 표정과 예쁜 목소리를 지녔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잘하는 그녀가 올 해 들어 새로이 번역한 이 책이 토미 더글라스에 대한 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흥분하며 기뻤다.
 
지난해 초, 영화배우 키퍼 서덜랜드가 자기 외할아버지가 연설한 것이라며 소개했던 짧은 애니매이션 동영상 ‘마우스랜드’가 아주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괜찮은 정치인이라고만 기억하고 있었던 토미 더글라스가 캐나다 무상의료의 아버지라니 그의 생애가 더더욱 궁금하였다.
 
그러면, 이 책의 주인공인 토미 더글러스(1904-1986)는 어떤 사람일까. 그의 이름은 우리나라에 그다지 알려지 있지 않다. 지난해엔가 애니매이션 동영상 <마우스랜드>나 영화 <식코>정도가 그나마 한국에서 그를 알린 계기였을 것이다. 물론 이마저도 듣거나 본 사람은 다수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딸 셜리 더글러스가 낳은 아들, 즉 토미 더글러스의 외손자가 영화배우 키퍼 서덜랜드(1966-)이다. 어퓨굿맨, 타임투킬, 폰 부스 등의 영화에 출연했고 드라마 <24>에서 주인공 잭 바우어 역으로 유명하다. 토미 더글러스의 연설을 바탕으로 만든 애니매이션 <마우스랜드>의 도입부에서 키퍼 서덜랜드가 자신의 외할아버지를 자랑스레 소개하면서 말했듯이 토미 더글러스는 뛰어난 연설가이기도 했다. 미국의료보험제도의 심각한 문제점을 폭로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를 보면 많은 미국인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가는 장면이 나온다.
 
왜 미국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가는지 설명해주고 있다. 또 마이클 무어가 캐나다 사람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냥 아주 평범한 할아버지조차 토미 더글러스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토미 더글러스는 2004년 캐나다 CBC TV 공모 ‘가장 위대한 캐나다인’ 1위를 차지했다. 2006년 CBC TV 2부작「초원의 거인: 토미 더글러스 이야기(Prairie Giant: The Tommy Douglas Story) 」가 있다.
 
이 책은 토미 더글라스의 전기문에 더해 두 개의 자료와 해제로 구성되어 있다. 데이브 마고쉬가 각종 자료를 수집하여 쓴 총 11개의 장, 에필로그, 감사의 말, 그리고 옮긴이를 포함한 건강과대안에서 쓴 것으로 보이는 자료1 서스캐처원 주와 캐나다의 메디케어 도입과정, 자료2 토미 더글러스의 생애와 캐나다와 세계의 역사, 마지막으로 해제 토미 더글러스와 캐나다 메디케어는 지금 한국 사회에 무엇을 말하는가이다. 해제에 있듯이, ‘토미 더글라스라는 인물은 삶의 이력 자체가 극적이고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삶이 캐나다 무상 의료의 도입과 나아가 캐나다의 진보적 사회운동과 진보 정치의 역사라는 점에서 지금 여기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이것이 이 책을 한국 사회에 소개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토미 더글러스라는 인물의 개인사는 캐나다의 역사라는 배경 위에서 볼 때, 특히 이민자들의 역사, 캐나다 진보 정치의 역사와 함께 볼 때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이것은 마치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지금은 고인이 된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삶과 닮아있다. 최근에 출간된 책 <삶을 바꾼 만남>의 정약용도 그러하다. 결국 ‘인간과 삶’에 대한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고 피하지 않았던 많은 훌륭한 사람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11개의 장, 그 제목들만 봐도 그의 일대기가 눈앞에 그려진다. 두 나라를 오간 어린 시절, 권투 경기장과 무대 위의 젊은 날, 교회에의 헌신, 황량한 건조 지대의 열정적 목사, 목사에서 정치인으로, 의회의원이 되다, 서스캐처원에서의 승리, 주지사 토미 더글러스, 휼륭한 지도자, 무상 의료를 위한 싸움, 새로운 도전, 그리고 내려놓음. 각 11개의 장 앞에는 대여섯줄로 그 장을 요약해 놓은 것이 있고, 각 장의 끝에는 중요한 사회적 배경이나 사건에 대한 설명이 있다.
 
토미 더글러스는 1904년 스코틀랜드의 폴커크(Falkirk)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스코틀랜드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노동 계급 가족 속에서 자라났다. 1910년 그의 가족들은 캐나다로 이민하여 매니토바 주의 위니펙에 정착하였다.
 
“위니펙에는 더글라스 가족 같은 이민자들이 유럽 각지로부터 몰려들고 있었고, 이들은 수많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기에 이들이 주로 정착하는 노스 엔드 지역은 마치 바벨탑 같았다. … 그 구역에 영국으로부터 이민 온 가정은 더글라스 일가 말고는 한 집밖에 없었지만, 그런 사실이 골목에서 어울려 노는 아이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톰 더글라스는 그 사실에 고무되었다. 그는 토미에게 말하고는 했다.
 
“너는 크라브첸코 아이와 놀잖니. 그건 참 멋진 일이란다. 원래 세상이 그래야 하는 거야. 나는 옆집 사는 가족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하지만 너희들은 함께 자라고, 함께 힘을 합해 일하게 될 것이고, 함께 세상을 만들어 나갈 거야.”
 
일찍부터 나와 몹시 다른 타인일지라도 그를 나의 친구로, 나의 동역자로 보는 마음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부모의 자연스러운 역할이 아닐까. 결코 머리와 이론으로 강요하지 않고, 아들이 말도 통하지 않는 이민자들과 어울려 놀 때 멋진 일이라며 칭찬하면서도 ‘네 참 대단하다’는 식의 과장섞인 칭찬따위를 남발하지 않으면서 ‘원래 세상이 그래야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부모. 우리는 그래야 하지 않을까.
 
어렸을 때 그는 다리를 다쳤고 골수염에 걸렸지만 그의 병을 연구과제로 삼고 싶어하는 의사 덕분에 치료받을 수 있었다. 이 사건은 더글러스가 누구나 치료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공공의료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자신을 구해 준 의사에게 늘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졌으나, “운좋게 그 의사가 무상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지 않았다면 저는 다리를 잃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 어떤 소년의 다리나 생명도 일류 외과 의사를 모셔 올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당시에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의료 서비스에는 가격표가 붙어서는 안 되며, 누구나 개인의 경제력에 관계없이 필요한 의료 서비스는 무엇이든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6-17쪽)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 어린 시절 심하게 앓은 병, 자유롭게 토론하는 가족 분위기 등이 토미 더글러스로 하여금 더 나은 사회를 꿈꾸게 하는 토양이 되었으리라. 청소년기에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 인쇄소에서 일하면서 아마추어 권투 선수로, 일인극과 시의 낭독자로, 연극배우로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가 몇 백편의 시를 암송하고 멋지게 낭송하는 환경에서 자란 토미의 이런 재능은 목사로서의 설교나 정치인으로서의 연설을 매력적이게 만들었다. 이시기에 그는 위니펙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을 목격했는데, 1919년 6월 21일 경찰들이 파업투쟁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몽둥이와 총으로 진압하고, 심지어는 경찰이 2명을 죽이는 국가폭력을 목격하였다. 훗날 ‘피의 토요일’이라 불린 그 사건의 현장을 토미가 한 친구와 함께 지붕에서 내려다보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가정에서 자란 토미 더글라스는 J.S.워즈워드의 영향을 받아 진보적인 종교관을 가지게 되고 사회정의와 복음의 실현을 꿈꾸며 목사가 되었다. 이 시기 대공황으로 고통받는 농민과 실직자들을 돕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지만, 성직자로서의 무력감과 교회의 한계를 느끼고 정치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저는 목사들이 보통 나랏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게 나랏일에 적극 참여하였기에 민중들이 그 말을 기쁘게 따랐던 한 분을 저는 기억합니다. 따라서 제가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자들과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칼을 빼어 들지 않는다면, 저는 그 분의 이름을 내세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 저는 이 선거구 주민들을 섬기는 데 저 자신을 바치고자 합니다.”
- 토미 더글러스, 1933년 11월 4일 첫 후보 지명 연설에서
 
의회의원으로, 서스캐처원의 주지사로 활동하면서 농업, 노동, 외교 정책, 복지, 건강보험 등 다양한 사안에 관심을 보이며 진보적인 주장을 펼쳤던 그는 반대자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경제 체제를 뒤엎는 개혁 대신에 토론하고 설득하고 아우르는 정치 행보를 보였다. 그는 의사들의 격렬한 반대를 물리치고 1962년 7월에 전면 무상 의료 제도를 도입하지만, 그 이전 집권 초기부터 서스캐처원 주의 보건의료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를 실행해왔다. 어느날 갑자기 그가 뜬금없이 밀어붙인 게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그가 늘 말해 왔듯이 다리수술을 받으면서 경험했던 어린 시절부터 키운 꿈이었으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역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늘 자신의 권력보다는 소수당을 벗어나지 않으며 진보 정치의 길을 걸었다. 왜 그는 항상 신분 상승과 권력의 중심에 있을 기회가 있었는데도, 평생을 낮은자리에 임하려 했으며, 진보 정치의 길을 버리지 않고, 소수당에서 벗어나지 않았을까. 아마 그 스스로 즐겨 들려주었던 비유 <마우스랜드>의 그 작은 쥐 한 마리의 고단한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음이 아닐까.
 
국민의 경제 조건을 개선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입니다. ……. 저는 배가 고픈 자가 영혼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으며, 또한 치통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미美나 선善같은 것을 생각할 여유가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토미 더글러스, 1982년의 대화 중에서
 
김성아(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 회원) drsakim@daum.net

*이 글은 대구경북민중언론 뉴스민에 지난 2012년 6월 9일 실린 글로, 
원본출처는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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