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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무상의료, 토미 더글라스에게서 배우다

무상의료, 토미 더글라스에게서 배우다

리병도(건강과대안 운영위원)

나와 함께 <권력의 병리학>을 번역했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김주연선생의 번역으로 캐나다의 토미 더글러스가 어떻게 (제약과 병원)자본과 (보수)권력의 반대를 넘어 캐나다에 무상 의료를 이루어 냈는가 하는 과정을 그린 책 <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낮은산 출판사, 13,000원)>를 출판하였다.

토미 더글라스는 젊은 시절 “이제 대공황에 비견되는 세계 경제 위기가 우리들 목전에 다가와 있다. 과연 진정으로 이웃을 돕는 일이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흉작과 경제공황이 휩쓴 비참한 현실 속에서 자신에게 묻는다. 이는 오늘날 진보 정치를 자처하는 모든 이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늘 병약했으며, 골수염으로 다리를 잘라 내기 직전까지 가야 했던 토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미는 한 의사의 도움으로 다리를 살릴 수 있었고, 그 이후로 자신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그러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무상 의료에 대한 꿈을 키워 가기 시작했다. 

1935년 하원의원이 되어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토미는 목회 활동을 했는데, 그때 대공황과 에스테반 항쟁, 리자이나 항쟁을 겪으면서 배고프고 굶주린 사람들,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 참지 못하고 파업을 하였지만 폭력적 진압 앞에 무너져 버린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 비참한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던 토미는 자연스럽게 정치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1944년 선거에서 토미가 속해 있던 사회주의 정당인 CCF(Co-operative Commonwealth Federation)가 집권을 하면서 토미는 서스캐처원 주지사가 되었고, 이때부터 다양한 공영 기업들을 만들어 서스캐처원의 경제 자립도를 높이고,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 수 있게 하였으며, 많은 주민이 무상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결국 1962년, 의사들의 대대적인 파업 공세에도 불구하고 서스캐처원 주에서 전면적인 무상 의료를 이루어 냈으며, 이에 영향을 받아 1972년에는 캐나다 모든 주에 무상 의료가 도입되었다. 토미 더글러스는 2004년 캐나다 방송협회 CBC가 전국의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장 위대한 캐나다 사람’으로 뽑힌, 캐나다 사람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정치인이다. 

토미 더글러스라는 인물과 그의 삶은 한국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나마 한국에서 그의 이름이 대중적으로 조금이나마 알려지게 된 계기는 영화 《식코》였다. 그 영화에서 캐나다 사람들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이스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나 팝 가수 셀린 디온보다 더 존경하는 인물로 토미 더글러스를 꼽았던 것이다.

그리고 고양이가 쥐들을 다스리는 나라에서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등 다양한 정치인을 대표로 뽑았지만 늘 핍박받으며 살았던 쥐들이, 쥐가 직접 대표가 되는 건 어떤지 묻는 정치 우화이자 《마우스랜드》라는 애니메이션으로도 잘 알려진 이야기는, 토미 더글러스가 자주 쓰던 연설 내용이었다.

흔히 ‘캐나다 무상 의료의 아버지’ ‘캐나다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위대한 캐나다 사람’이라고 일컬어지는 토미 더글러스를 이야기할 때 무상 복지를 빼 놓을 수는 없다.

《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는 토미 더글러스라는 한 위대한 정치인의 전기인 동시에, 캐나다 진보 정치의 역사를 보여 주는 책이기도 하다. 토미 더글러스와 CCF는 말뿐인 정치, 정책 없는 정치, 실패한 뒤에는 변명만 하는 정치가 아니라 한마디로, 준비된 정치, 실현하는 정치, 장기 계획을 갖고 있는 정치를 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가 지금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인 것이다.

그는 요행을 바라거나 선동하기보다는 직접 실천하는 것을 중요하게 이야기했다.

“어느 날 단추를 한번 누르면 다음 날 아침 일곱 시에 낡은 사회가 사라지고 새로운 세계가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는 유기적으로 변해 갑니다. 낡은 것을 벗겨 내면 새로운 것이 그 자리에 생겨납니다. 당신이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변화를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토미 더글러스와 CCF가 힘들게 무상 의료 제도를 캐나다에 안착시켰지만, 1992년 NAFTA 체결 이후 캐나다의 경제와 복지, 정치 상황은 급속하게 보수화되고 신자유주의 급류 속에 휘말려 점점 후퇴의 길을 거듭해 왔다.

그런데 최근 한줄기 희망의 빛을 보여 주는 일이 캐나다에서 일어났다. 2011년 총선에서, 신민당(NDP, CCF 이후 토미 더글러스가 이끌었던 정당)이 만년 제3당에서 최초로 제2당으로 올라서서 제1야당이 된 것이다. 즉, 토미 더글러스가 최초로 서스캐처원에서 집권했던 것이 1930년대 공황기였다면 그의 정당인 신민당이 이제 80년이 지난 후 캐나다 전체에서 집권의 꿈을 이루어 가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토미 더글러스와 CCF의 정치 역정이 무상 의료와 무상 복지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가능한지를 잘 보여 준다면, 지금의 캐나다와 북아메리카 대륙의 정치, 경제 상황은 한미 FTA를 목전에 둔 한국 사회가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진지하게 되묻게 만든다.

<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의 번역 출판을 기획한 ‘건강과 대안’의 우석균 부대표는 이 책의 뒤에 실린 해제〈토미 더글러스와 캐나다 메디케어는 지금 한국 사회에 무엇을 말하는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가 지도부로 있던 CCF 그리고 신민당은 2011년이 되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소수당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토미는 진보 정치의 길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게 전후 사회적 분위기의 급진화라는 기회가 왔을 때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캐나다의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말 그대로 기적을 창조해 냈다.”

“법이 그냥 통과되어 무상 의료 제도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토미 더글러스는 이야기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토론하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과 싸움일 것이다. 한창 복지와 무상의료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 책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역자인 김주연선생은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가정의학과 전문의이며, 노숙자 진료소 ‘희망진료센터’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건강권과 의료 접근권에 관심을 가지고 《권력의 병리학》 《대학주식회사》 《NGO를 위한 건강권 매뉴얼》 등을 번역하였다.

해제를 쓴 우석균선생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보건의료정책학과 경제학을 공부하였다. 서울에서 의원을 운영하며,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과 ‘건강과 대안’ 부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정책자문위원, 2008년 촛불항쟁 당시 광우병 전문가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 책을 기획안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www.chsc.or.kr)’은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정치·경제·사회적 요소에 대한 연구를 지향하고 여러 학문 영역 간의 소통과 상호 변화를 통해 생산되는 연구를 중시하는 연구자들의 공간으로 2008년 10월에 창립되었다.

모든 이들이 건강할 권리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현재의 담론 구조, 권력 구조, 자원 배분 구조 등이 바뀌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의료, 식품, 의약품, 생명윤리, 환경, 노동, 젠더, 인권, 법률, 사회 정책 등의 분야에 대한 대안을 탐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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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1. 목토

    읽고있는데 찡합니다… 한 사람의 아주 사소한 경험이 의미를 찾아 다른 사람에게로 퍼지는 경험… 그리고 캐나다사람들로부터 듣는 토미 더글라스, 이 분에 대한 존경… 힘이 나는 책임니다 . 김주연샘께 새삼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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