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 박선욱·서지윤 간호사를 기리며

지난달 16일 낮 서울 광화문 일대 및 청계천 거리는 ‘태극기 집회’로 소란스러웠다. 마치 3.1절을 기념하는 듯 수많은 태극기가 휘날렸다. 같은 날 청계천 한쪽에서는 이러한 소음을 등지고 작은 집회가 열렸다. 그것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두 명의 간호사(박선욱, 서지윤)를 추모하는 자리였다. 두 젊은 간호사는 과다한 업무의 중압감,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죽기보다 무서운 출근’으로부터 탈출해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를 선택했다.

박선욱 간호사는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 신규 간호사로 병원 근무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인 지난해 2월15일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서지윤 간호사는 서울의료원에서 5년간 병동에서 근무하다 간호행정부서로 이동한 지 12일 만인 올해 1월5일 자택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직장 내 괴롭힘과 간호 노동 환경의 참혹함(예를 들면, 턱없이 부족한 실무교육 기간, 고질적인 간호인력 부족 문제, 과도한 업무량과 중압감, 환자 생명 위험으로 직결되는 실수에 대한 두려움 등)이 이들이 아픈 선택을 하게 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누구 하나 사죄를 구하는 이가 없었다. 박선욱 간호사 사망 이후 경찰은 ‘가혹행위는 없었다’며 내사를 종결했고, 서울아산병원 쪽은 잘못을 시인하기보다 개인적인 문제로 돌리려 했다.

이런 현실에 맞서 지난 해 4월 17일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출범했고, 같은 해 7월 10일 고용노동부에 서울아산병원을 고발했다. 서울의료원에서 근무해온 서지윤 간호사의 경우 서울시가 자체 감사위원회를 구성해 진상조사를 하려 했지만, 유가족과 노조 및 시민단체가 반발해 지난달 27일에야 서울시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 6일 근로복지공단이 박선욱 간호사 사망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공단은 보도자료를 통해 여전히 개인의 ‘성격’을 운운하고 있으며, 직장 내 괴롭힘은 충분한 자료가 확보되지 않아 객관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유족에게 일말의 보상이 있을지언정, 결국 두명의 죽음 이후 두개의 위원회가 설립된 것 외에는 병원의 현실이 아직 어떤 것도 변한 것이 없다.

추모식에선 두 간호사가 얼마나 소중한 딸이었는지, 왜 이 추운 곳에서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모여야 하는지 가족들의 젖은 목소리가 흩날렸다. 문득 시민들은 ‘두 간호사의 죽음에 몇 미터나 멀어져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망각마저도 수고스러워 외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박 간호사의 산재 신청을 담당하는 노무사는 추모식에서 고인의 에스엔에스(SNS) 메시지 중 다음이 가장 뇌리에 박힌다 했다. “두렵다. 세상이 진짜 미친 것 같다.” 한국 사회는 고인에게 도대체 어떤 신호들을 쏘아주었기에 ‘미쳐’ 돌아가는 듯 두렵기만 했을까. 청계천 집회 무대에서 한 발짝 떨어져 주변을 들여다보니 공감과 협력보다는 모멸과 증오로 점철된 소음들로 가득했다. 두 간호사가 몸담았던 두 병원 속 소음들은 얼마나 달랐을까. 행여 개인의 문제로 병원 이미지를 실추시켰다고 비아냥거리며, “어디 신규 간호사 무서워서…”라며 비수가 되는 말들을 속삭이고 있지는 않을까 두렵다.

박선욱 간호사가 죽음에 이르기 직전에 작성된 메모에는 “눈초리”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우린 ‘눈초리’를 신고할 수도 처벌할 수도 없다. 불합리한 현실이더라도 당장 거기에 순응하지 못한 자를 ‘낙오자’로 눈총을 주는 폭력은 여전히 고발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병원 업무의 불합리한 구조를 바꾸더라도 혹은 ‘눈초리’의 직접적인 피해자·가해자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 ‘눈초리’만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문화적 폭력이 구조적 폭력, 직접적 폭력과 삼각형의 선순환 구조(일명 ‘폭력 삼각형’)를 이룬다고 요한 갈퉁(노르웨이 사회학자)은 말한다.

따라서 만일 ‘눈초리’가 살아 있다면, 언제든 불합리한 구조는 태생할 수 있다. 우린 도대체 얼마나 더 ‘눈초리’에 무감각한 성격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평소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박 간호사에 대한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판정서에 담긴 내용 인용)으로는 부족한 사회란 말인가. 두 간호사의 유가족과 대책위원회는 진상규명과 함께 또 다른 간호사의 죽음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김관욱(의료인류학자·가정의학전문의/건강과대안 운영위원) 한겨레신문 2019년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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