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잘못된 동업자 문화에서 벗어날 때

경북대에서 10년 전 여성 대학원생을 성추행한 교수를 당시 몇몇 교수가 임의로 ‘자율징계’하고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한 것이 드러났다. 가해 교수는 이후 해당 대학의 성폭력상담소장까지 맡았다고 한다. 필자의 소속 학과에서 일어난, 교수에 의한 성희롱·인권침해 사건에서도 몇몇 타과·타교 교수들이 해당 교수를 옹호하며 문제제기한 피해자와 학과 구성원들을 질책한 것을 알고 있다. 조은 명예교수가 “교수 성폭력은 왜 ‘올바른 해결’이 어려운가?”라 묻고 그 이유를 한국의 교수사회가 누리는 상징권력과 그 권력을 철저히 지키려는 ‘동업자 문화’에서 찾았던 때가 2003년이다. 15년이 흘렀지만 바뀐 것이 별로 없다.

대학의 교육·연구·행정 업무에서 주된 결정권을 발휘해 온 교수사회의 이 잘못된 동업자 문화는 뿌리 깊다. 교수직에 얽힌 많은 이해관계는 교수뿐 아니라 거기에 종속적으로 연루된 대학원생들도 이 동업자문화에 가담시킨다. 2008년 대학 내 교수성희롱의 성차별적 특징을 연구한 조주현 교수의 논문에는, 대학원생들이 피해자 학생을 오히려 비난하는 분위기를 형성한 사례가 제시된다. 피해 문제제기가 학과·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가해 교수가 책임자로 배분하던 여러 자원 제공과 업무를 중단시킬 것이라는 두려움은 교수에 의한 성폭력· 인권침해 공론화를 막는 핵심 요인이다. 교수의 연구인건비 횡령 과정의 ‘공범’이 될 것을 강요받고, 그것을 신고하자 학업 진행, 장학금 지원이 중단된 대학원생들의 사례는 이 두려움이 허황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런 현실에서 많은 대학원생들은 자신의 고충을 참거나 피하거나 자신이 더 나아지면 해결될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대응하려 노력한다. 아니면 졸업하거나 학계를 떠나고 나서야 문제제기한다. 교수사회는 가해 교수가 징계 받으면 얻을 미래의 불이익은 세심하게 걱정하지만, 피해 학생들이 이미 받은 과거의 불이익, 자신들의 동업자적 반응이 야기시킬 미래의 불이익은 잘 보지 못한다. 가해 교수는 징계를 받든 안 받든 대개 남지만, 많은 피해자들은 이런 과정 속에서 이미 떠났거나 떠난다. 이를 지켜보는 대학(원) 사회의 구성원들은 문제제기해봤자 나아질 것이 별로 없다는 잘못된 교훈을 얻는다. 성별이나 학벌, 지위 등의 권력관계에서 소수자인 이들에게 이것이 차별적으로 작동함은 물론이다.

잘못된 현실을 이제는 변화시켜야 한다. 현재 폭발하고 있는 각계의 미투 운동은 성평등하고 민주적인 조직을 만들지 못하는 직업집단은 도태될 것임을 시사한다. 학계의 일상에 만연한 성차별적 위계 문화와 권한 남용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교수사회는 전문직으로서 자율성과 특권을 더 이상 주장할 명분이 없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기존의 남성 중심적 교수사회가 성폭력·인권침해 문제의 전문가나 유일한 판단자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 내 성폭력예방교육·인권교육이 실시된 지는 꽤 됐다. 하지만 교수들의 교육 이수율은 학내 다른 구성원들에 비해, 다른 공공기관 종사자들에 비해서도 현저히 떨어진다. 이수율보다 더 문제는 예방교육이나 성평등 문제에 대해 교수들이 가지는 어떤 태도이다. 필자는 학내 성희롱성폭력상담소에 학생운영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고,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상근연구자로 근무한 적이 있다. 이런 경험들에서 직간접적으로 목격한 바, 많은 남성 교수들은 교육 요구를 자신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거나 ‘감히’ 교수인 자신을 가르치려 드는 무례한 행동으로 여겼다. 성숙하지도, 성찰적이지도 않은 행태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보직교수가 남성이고 이들이 징계위나 성폭력·인권침해 문제의 판단자이자 해결자로 주로 참여하고 있다.

특정 학문의 전문가라고 해서 성폭력 문제의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폭력과 젠더 문제는 그 개념과 인식, 대응까지 복합적인 층을 지닌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끊임없이 배우고 갱신해야 할 이슈이다. 교수와 학생 모두 배워야 하고, 특히 교수에게는 학생, 여성이란 소수자의 입장에 서보는 젠더 감수성, 인권 감수성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학생, 여성이 당사자이자 소수자로서 문제해결과정에 더 많은 발언권, 판단 권한을 부여받도록 협조해야 한다.

이는 교수라는 직업집단이 교육자로서의 책임을 좀 더 다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기도 한다.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피해자와 가해자만이 연루된 문제로 보고, 학생들이 교수를 가해자의 위치에만 두는 것이라 여기는 인식, 다시 말해 약자들의 ‘복수의 정치’라는 생각은 오해이다. 교수의 성희롱에 관한 법적 분쟁을 조사한 김엘림 교수의 논문(2016)은 소송이 피해자가 아니라 대부분 가해 남성 교수에 의해 제기됨을 실증했다. 그들은 법적 분쟁을 추진할 시간, 경제력, 전문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목격자로서, 학과의 운영자로서 다른 교수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건 발생 시 교육자의 위치에서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피해자를 비난하는 2차 피해를 막고 피해자와 조력자들이 향후 교육권·노동권·진로를 침해받지 않도록 교수사회가 할 수 있는 역할들을 세밀하게 고안하고 행해야 한다. 교수와 대학원생은 더 나은 교육·연구공동체를 만드는 동업자가 될 수 있다고, 나는 아직 믿는다.

유현미(건강과대안 운영위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 교수신문(http://www.kyosu.net) 2018년 4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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