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메르스 대응, 왜 실패했나

‘방역(防疫)’은 근대국가의 핵심적 기능 중 하나다. 1849년 존 스노우(John Snow)가 콜레라 예방을 위한 방법론을 개발하여 적용한 이후, 근대권력은 깨끗한 식수의 공급, 하수시설 개편 등 위생개혁과 항생제, 백신 등 의학혁신으로 ‘역병(疫病)’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대중에게 입증해 보였다. 이를 통해 주기적이고 상시적이었던 대중의 전염병 ‘공포’를 관리할 수 있었고, 근대권력은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방역은 전통적으로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권력이 우월성을 보이는 분야였다. 방역을 위해서 중앙집권적 권력 행사, 방역기관에 의한 정보독점, 일사불란한 지휘·집행체계의 운용,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제약 등의 수단이 사용되었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권력은 방역대책에 능했다. 또한 방역은 ‘국민국가’ 개념, ‘국가안보’ 이념과 조응한다. 미국은 전통적 자유주의 국가이면서도 그 어느 나라보다 강한 권력과 자원을 가진 방역 시스템을 운영한다. 생물학적 테러 등의 위험에 대비하여 국가 안보·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유다.

국가의 기본인 방역조차 실패한 정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관리대책에서 현 정부는 실패했다. 대중의 공포를 해결하지 못했고, 질병의 확산을 막지 못했으며, 국가의 위신과 안전을 지켜내지도 못했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정권이 자신의 주특기인 방역 영역에서도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이른바 보수언론이 연일 메르스 관련 소식을 전하며 우려를 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염병 예방관리는 기본적으로 ‘정치’의 영역이다. ‘의료’나 ‘의학’의 영역이기보다 자원배분 및 권력행사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감염병의 전파와 확산은 불확실성이 크고, 개인의 행동으로 이를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객관적 문제의 크기 및 심각성과 상관없이 대중적 공포를 동반한다. 그러므로 효과적 예방관리를 위해서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신속하고 책임 있는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대중의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개인의 권리를 제약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수도 있으며, 적극적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공포를 관리해야 한다. 원칙에 따르되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취합·분석·종합함으로써 경우에 따라 예방관리대응의 큰 줄기를 바꿀 수 있는 실용주의도 필요하다. 정해진 매뉴얼이 있지만 매뉴얼에 빈 공간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채워나갈 판단력과 결단, 그리고 그로 인한 책임은 자신이 지겠다는 결의가 필요한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메르스 예방관리와 관련하여 이러한 정치의 영역을 ‘기술적 합리성’을 내세운 ‘관료주의’와 ‘전문가’에게 내맡겼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이번에도 아무런 ‘정치적 행위를 하지 않는 것’으로 정치를 하려 했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그만의 태도로 일관한 것이다. 정치가 있어야 할 곳에 정치가 사라졌고, 그 틈을 타 메르스는 기술적 합리성과 전문주의에 근거한 예측을 보기 좋게 뒤집으며 세를 넓혔다. 물론 메르스 확산의 1차적 원인은 국내에 처음 들어온 메르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방역 당국과 의료진들, 전반적으로 허술했던 병원 감염관리체계, 민간의료에 내맡겨져 무정부성이 극에 달한 국내 보건의료제도 등이다. 하지만 정치의 문제가 면책될 수는 없다.

어떤 대응이 필요했나

메르스는 불확실성이 매우 큰 바이러스다. 초기에 방역 당국은 기존 문헌자료에 근거해 예방관리대책을 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치명률은 높지만 사망자는 주로 다른 질병 등으로 면역이 저하된 이들로 한정되며, ‘공기 감염’은 없고 감염력은 낮으므로 밀접 접촉자에 한해 격리·관찰하면 된다는 것이 기존 데이터에 근거한 예방관리대책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 원칙은 기존 데이터와 맞지 않는 현실상황이 발생했을 때 빨리 수정되어야 했다. 기존 데이터상 확률이 적었던, 2m 이내 근접 접촉하지 않은 이들의 감염이 확인되었다. 병원이 주된 감염경로로 추측되었고, ‘수퍼(super) 전파자’를 비롯한 감염 의심자들이 방문한 병원이 여러 곳임이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정부의 감염관리대책에 빠른 변화가 필요했다. 재빨리 병원 명단을 공개하고, 병원 등 밀폐공간에서는 공기 감염에 준하는 감염예방관리대책을 펴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변화는 속도, 넓이, 강도 면에서 신속하게, 광범위한 대상에 대해, 강도 높은 예방관리대책의 변화로 이어져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방역 당국은 여러 차례 시기를 놓쳤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책임질 수 있는 이의 정치적 결단이 있어야 했는데 박근혜정부는 이를 미뤘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박원순 서울시장이 중앙정부의 정치공백 상태를 메우려는 시도를 했다. 선제적으로 행동하며 지자체와의 정보 공유 및 공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는 감염인의 개인행적을 공개하며 낙인효과를 낳았다는 논란과, 메르스 방역에 있어 지자체의 책임과 권한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병원 명단 공개 등 감염예방에 필요한 정보의 공유 및 공개는 중앙정부가 먼저 했어야 했다. 논란이 되더라도 그 필요성을 설득하고 논란에 대응하는 것도 정부의 일이었다. 정부는 박원순 시장의 대응으로 병원 정보공개에 따른 책임 부담은 덜었을지 모르나, 추가 감염예방의 시기를 놓쳤고 정치적으로도 이니셔티브를 상실했다. 그 이후 서울시가 행한 대책이 메르스 방역에 실효성이 있는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지만, 적절한 시기에 정부 대책의 미비점을 드러내 정부가 다른 방식의 의사결정을 하도록 이끌어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 평가가 가능하다.

평택성모병원에서 1번 환자와 같은 병동에 있었을 뿐 같은 병실에 있지 않았는데도 메르스 감염으로 확진된 6번 환자 발생시, 즉시 평택성모병원의 이름을 공개하고 해당 시기 이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 전원에 대한 추적에 나섰어야 했다. 그게 5월 27일 즈음으로 추정되니 그랬더라면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집단 감염되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최소한 5월 27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방문하고 5월 30일 확진된 14번 환자의 존재가 인지된 후에는 바로 삼성서울병원 이름을 공개하고 응급실을 방문한 이들에 대한 추적조사가 이루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실행되지 못했고, 그에 따라 병원과 국민들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감염된 이들에 의한 추가 감염 가능성을 염려하게 되었다.

이대로 위기는 봉합되지 않는다

오해하지 말자. 메르스 관리를 위해 관료제나 전문주의가 아니라 ‘카리스마적 권력’이 필요했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초반부터 병원 정보를 다 공개하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도 무시한 대책이 필요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전문적 지식을 원용하고 활용하되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 소통적 권력, 민주주의적 권력, 인권을 존중하는 권력이었다. 국민을 믿고 정보를 공개하되 이로 인한 부작용 발생 가능성을 언급하며, 그러한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하는 결단이 필요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인권을 고려한, 보다 소통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감염관리체계가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가장 잘해야 하고 잘할 수 있는 방역조차 책임지지 못한 보수정권이라. 아마도 현 정권은 보수세력 안으로부터의 내파(內破)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기근과 역병은 종종 민란을 불렀다.

이상윤 /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연구위원

창비주간논평 2015.6.10

http://weekly.changbi.com/?p=6226&cat=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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