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래서 진주의료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전염력이 높지 않다.”

정부가 초기 메르스 감염 환자 발생 때 했던 말이다. 맞는 말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으로 알려진 메르스가 그토록 위험하지 않은 건 41%의 높은 치사율에도 불구하고 감염력이 낮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메르스 공포에 떨고 있다. 첫 감염 환자 발생 뒤 열흘 만에 발생 국가인 중동 국가 외 가장 많은 감염자가 발생했고, 2주 만에 세계 3위의 메르스 감염 국가로 등극했다. 왜 감염력이 낮은 메르스가 국내에서는 이렇게 공포스럽게 확산되는 것일까. 메르스 감염 방어선은 언제 붕괴된 것일까. 정답은 첫 환자가 발생했던 그 시점부터다.

박근혜의 각별한 ‘중동 사랑’ 때문에?

중동을 방문한 적이 있는 1차 감염자는 메르스로 확진을 받기까지 증상이 심해진 상태로 네 곳의 병원을 돌아다녀야 했다. 원인 불명의 고열과 통증에 시달리면서 환자가 병원을 전전하는 사이 메르스 바이러스는 29명에게 옮겨졌고 2차 감염으로 확산됐다. 이 최초의 환자가 확진을 받은 건 네 번째 종합병원 의사를 만난 뒤다. 종합병원 의사는 질병관리본부에 메르스 검사를 의뢰했지만 당국은 이유 없이 수차례 거절했다.

왜 질병관리본부는 의사의 메르스 검사 의뢰를 거절했을까. 돈이 많이 들어서? 그건 아닌 것 같다. 메르스 검사에는 큰돈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귀찮아서? 그것도 아니다. 의사가 의뢰한 것은 메르스였는데 엉뚱하게 다른 12가지 검사를 해 결과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보건 당국이 그토록 ‘중동호흡기증후군’ 검사를 꺼린 것은 아무래도 지난해부터 불붙은 대통령의 각별한 ‘중동 사랑’ 때문이 아닐까.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사랑은 의료민영화를 위한 패키지법이라 불리는 ‘6차 투자활성화 대책’에서부터 도드라졌다. 2014년 메르스가 중동을 뜨겁게 감염시키고 사망자를 내고 있을 때 국내를 뜨겁게 달군 의료민영화의 주요 이슈는 ‘중동 의료수출론’이었다. 정부는 서울대병원 등 국내 대형 병원과 SK텔레콤을 비롯한 정보기술(IT) 재벌들의 중동 의료 산업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국내 공공의료제도에 대한 규제 완화를 시작했다. 박 대통령의 중동 사랑은 특히 두 나라의 환자 유치로 집중된다. 우연하게도 지난해 가장 많은 메르스 감염 환자와 사망 환자를 낸 1·2위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다.

박 대통령이 자랑한 중동 순방 업적은 아랍에미리트에서 연간 800명의 환자가 국내에 와서 진료를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또 국내 의사들이 국내 면허로 중동에서 환자들을 진료할 수 있다고 했다. 이후 여당은 중동 환자 유치를 위한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을 국회에 제출했고, 당정은 메르스 정국 속에서도 6월 국회 안에 반드시 통과돼야 할 ‘민생법’으로 꼽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최초의 메르스 감염 검사를 그토록 꺼린 것은 대통령과 ‘고위 관계자’들이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중동 해외 환자 유치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눈에 띄는 위험이 조금이라도 생기는 걸 원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메르스라고 의심하고 싶지 않은 관료 조직의 관성이 작동했으리라 짐작해본다.

병원 평가마저 민영화한 현실

환자 한 사람 입원시키고 퇴원시켜 버는 돈이 얼마인데 사전 예방의 원칙에 따르는 국가적 재난 전염병에 쓸 빈 공간을 남겨두겠는가. 돈 많이 못 번다고 정부가 폐쇄한 진주의료원에는 메르스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음압시설을 갖춘 격리병동이 있었다.

그렇다 해도 3차 감염까지 일어나며 병원에서 메르스가 확산되는 이유를 해명할 수는 없다. 한국 병원 대부분이 보건복지부가 승인하는 병원 감염 관리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고 있음에도 당최 멈출 생각을 않는 병원 내 감염은 무엇 때문일까.

우선 병원들이 3년에 한 번씩 받는다는 감염 관리 능력이 포함된 ‘의료기관 인증 평가’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기 때문이다. 평가란 부지불식간에 이뤄져야 객관적이다. 그러나 의료기관 인증 평가는 어느 날짜에 가서 무엇을 볼 것이라고 병원에 미리 다 알려주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병원 서비스 질에 대한 조사도 병원에서 미리 지정한 환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결국 병원들은 예고된 맞춤형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직원들을 밤샘 동원해 평가 서류를 만든다. 평가 기간에만 입원 환자를 조기 퇴원시키고, 외래 환자 예약은 줄인다. 간호사들은 이 시기만 되면 온갖 서류를 만드느라 하루 종일 불려다닌다. 학교에 장학사가 방문하는 날과 비슷하다. 400개의 서류 심사를 통과하면 병원의 감염 관리 대처 능력은 우수한 성적인 ‘별표 다섯’으로 기록된다.

그나마 보건복지부가 책임지던 병원 평가가 2010년 이명박 정부 때 민영화됐다. 병원으로부터 운영비를 지원받는 ‘의료기관 평가인증원’이라는 사설 업체가 맡고 있다. 평가받아야 할 대상이 평가자의 돈줄이 되는 구조다. ‘눈 가리고 아웅’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국가가 감염 환자를 보낼 병원이 마땅히 없다는 점이다. 감염 환자를 받을 정도로 제대로 된 시설은 ‘서류상’에만 존재할 뿐 돈 안 되는 음압 격리 병상(병실 안 기압이 외부보다 낮은 병실)을 제대로 갖춘 민간병원은 거의 없다. 환자 한 사람 입원시키고 퇴원시켜 버는 돈이 얼마인데 사전 예방 원칙에 따르는 국가적 재난 전염병에 쓸 빈 공간을 남겨두겠는가. 돈 많이 못 번다고 정부가 폐쇄한 진주의료원에는 메르스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음압시설을 갖춘 격리병동이 있었다. 돈이 아니라 사람을 구하는 게 목적인 병원, 지역사회에 감염병이 돌 때 사용할 수 있는 병실이 있는 병원, 그것이 공공병원이다.

누군가 아프고 죽어갈 때마다 나오는 수치지만, 슬프게도 한국 공공병원은 전체 병원 수의 6%, 전체 병상 수의 10%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다. 국가가 재난 상황시 긴급하게 관리·통제해 운영할 수 있는 공공병상의 부족이 다른 나라에서 3~4명의 감염에서 관리된 메르스를 낙타를 타고 다니지도 않고 낙타 고기를 즐겨 먹지도 않는 한국을 메르스 창궐 국가로 만든 근본은 아닐까.

부족한 의료 인력이 또 다른 이유

최근 외신은 가족 감염이 중동보다도 많은 점을 의아해하면서 ‘가족이 아플 때 또 다른 가족이 간병하는 한국적 문화’가 메르스 감염을 키웠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가족애 때문에 간병을 가족이 떠맡는 건 아닐 것이다. 다른 나라처럼 국가가 간병을 책임져주지 않고 병원 간호 인력이 OECD 국가의 3분의 1에 못 미쳐 가족이 환자와 함께 병원살이를 해야 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부족한 의료 인력이 병원 내 감염을 더욱 확산시킨 또 다른 원인이라는 얘기다.

의료를 수출 가능한 상품으로 여기고 돈 적게 번다고 감염시설을 제대로 갖춘 진주의료원 같은 공공병원을 폐쇄하는 한, 감염병으로부터 안전한 나라가 되기는 불가능하다. 안전에는 돈이 든다. 지금도 정부가 믿을 곳은 그토록 하찮게 여기던 공공병원밖에 없지 않은가. 그 공공병원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들이 ‘국가지정 격리병원’이란 이름으로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메르스와 싸우고 있다. 병원을 목숨을 구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일, 메르스와 싸우고 난 뒤에도 정부가 잊지 말고 해야 할 일이다.

변혜진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실장 / 건강과대안 연구위원) / 한겨레21 2015년 6월 9일자

원문 링크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96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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