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총선, 누구를 찍을까…’가짜 친구’를 경계하라

총선, 누구를 찍을까…’가짜 친구’를 경계하라
[우석균 칼럼] “촛불들아 모이자. 투표소로 모이자”

“1%의 탐욕에 대한 99%의 저항”이라는 구호와 점령시위로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오큐파이 운동 중에 세계적인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주코티 공원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지금 가야할 길이 멀다. 우리 앞에는 진짜 어려운 문제들이 남아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는 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원한단 말인가? 어떤 사회 조직이 자본주의를 대체할 것인가? 우리는 어떤 유형의 새로운 지도자들을 원하는가?”

총선을 눈앞에 두고 지젝의 연설이 다시 떠오르는 것은 지금 우리가 놓인 상황이 그가 지적한 상황과 달라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상태의 한국사회를 더 이상 원치 않는다. 또 누가 우리의 지도자로 뽑히지 말아야할지는 대체로 안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원치 않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미 4년 전 촛불항쟁부터 분명히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당시의 요구가 무엇이었던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전면개방으로 촉발된 시위였지만, 수백만의 사람들이 거리에서 외쳤던 요구들은 그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조중동반대, 언론장악 반대” “대운하 반대” “의료민영화 반대” “입시지옥 교육 반대” “전기, 철도, 가스 등 공기업 민영화 반대” 등의 6개 요구가 당시 시위대들의 요구였다.

그리고 이 촛불항쟁을 폭력으로 진압한 이명박 정부는 국민들이 바로 정권 초기부터 반대했던 그 정책들을 남김없이 추진했다. 굳이 따져 볼일도 없겠지만 지금 언론 노동자들이 언론자유를 위해 파업에 들어가 있다. 대운하는 이름만 바꾸어서 진행했다. 교육시스템은 더 악화되었고 KTX, 인천공항 민영화가 지금도 추진중이다. 정권이 들어선 2008년부터 우리는 이미 이 정권이 우리가 무엇을 할지를 그리고 이 정부가 우리가 원하는 정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선언했다.

물론 이명박 정권의 죄상이 여기에 그칠 리가 없다, 자본에게 주권을 넘겨주어, 민영화를 밀어붙일 한미FTA를 국회에서 날치기 비준을 했고,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에도 핵발전소를 더 짓겠다고 부지선정까지 강행했으며, 국민들의 반대를 억누르기 위해 민주주의 제도를 파괴하고 부패가 극에 달했으니 이 정권이 우리가 원하는 정권이 아니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지젝이 말했듯이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다. 2008년 이후 한국사회는 이 문제에 지속적으로 부딪쳐 왔다. 이명박정권과 새누리당(구 한나라당)은 아닌데 그러면 어떤 체제이고 어떤 지도자를 우리는 원하는가, 하는 문제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에 대한 대답을 이름만 바꾼 새누리당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 이야긴 여기서 하지 않겠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박근혜는 이명박과 정권을 같이 맡아온 당사자라는 것을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주당 또는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을 수혈한 민주통합당인가? 이들이 18대 국회시기에 새누리당보다 조금 더 개혁적인 모습을 띠었던 것처럼 보이는 것은 맞다. 그러나 얼마나 개혁적인가에 대해서는 극히 회의적이다. 의료민영화의 대표적인 영리병원 허용은 노무현 정권부터 시작되었다. 한미 FTA도 이들이 시작했다. 또 민주당뿐만 아니라 민주통합당이 된 뒤에도 원내대표를 지내고 이번에 공천까지 받은 김진표 씨가 낙선대상자로 지목될만큼 이들은 몇몇 의원들을 빼 놓고는 한미FTA 저지에 미온적이었다.

또한 핵발전에 대해 이들은 아직도 원점재검토라는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제주기지 건설도 이명박 정권이 아니라 전 정권에서 시작한 것이 맞다. 박근혜 대표의 민주당에 대한 ‘말바꾸기’ 공세가 어느정도 먹힌 것은 바로 민주통합당 자신의 잘못이 크다. 또 공천실패에서도 드러났듯이 이들은 여전히 그 보수야당으로 그 한계가 뚜렷하다. 투표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민주통합당이 다수당이 되어도 나아질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회의가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진보정당일 것이다. 그런데 이 진보정당마저도 분열했다. 통합진보당은 성격이 다른 국민참여당과 합당하더니 이후에는 야권연대 추진을 통해, 자신의 원칙을 상당히 후퇴시켰고 일부지역에서는 도저히 개혁적이라고 보기힘든 후보들과 경선을 벌이거나 또는 경선없이 사퇴했다. 그 외 여러 일들 때문에 통합진보당에 표를 주기 싫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 정당의 후보자들을 보면 여전히 다수가 민중운동에 헌신했던 사람들이며 통합진보당은 분명 진보정당인 것이 맞다.

그리고 진보신당과 녹색당이 있다. 여성 청소노동자를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보내려는 진보신당의 노력이 성공한다면 아마도 이번 선거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의 하나가 될 것이다. 또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드디어 한국에서도 녹색당이 등장했다. 탈핵에 가장 적극적일 이 당의 존재만으로도 탈핵문제는 항상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의원을 배출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이 두 정당이 얼마나 표를 얻을지에 대한 걱정, 이른바 ‘사표론’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다 보니 주위에는 ‘누구를 찍지 않을지는 알겠는데 누구를 찍을지가 고민’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2008년 시작된 촛불운동은 용산참사에 대한 항의, 쌍용자동차 노조탄압 항의, 희망버스, 강정 해군기지 반대, 그리고 한미 FTA 반대운동으로 계속 이어져왔고 이 운동들은 지금의 체제를 다른 체제로 바꾸려는 운동들이며 체제가 바뀌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운동이다. 그리고 선거는 이러한 사회적 운동의 흐름의 하나의 계기일 뿐이다.

선거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바보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선거로만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는 삼성의 회장 이건희를 투표로 뽑지 않는다. 이 자본이라는 ‘선출되지 않는 권력’이라는 괴물을 선거로 바꾸기는 힘들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래서 선거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이렇게 선거를 중요치 않게 여기도록 만들려는 것이야말로 바로 ‘이명박근혜’가 노리는 것이다. 이들이 마구 흙탕물을 튀기며 노리는 것은 ‘이런 흙탕물 선거는 중요치 않으니 관심 끄시라’ 것이고 따라서 선거에 불참하는 것이야 말로 바로 ‘그들’이 원하는 바다.

선거는 이 사회를 바꾸는 길고 먼 여정의 한 계기다. 앞에서 인용한 지젝의 연설 뒷 부분은 다음과 같다, “기억하라. 문제는 부패나 탐욕이 아니다. 문제는 바로 체제다… 그리고 적뿐만 아니라 이 [운동의] 흐름에 물타기를 하려는 가짜 친구들도 주의해야만 한다.”

적뿐만 아니라 ‘가짜 친구’도 주의하자. 그러나 설사 그가 ‘가짜 친구’라 하더라도 당장 뽑아줄 친구가 내 지역구에 없으면, 적이 당선되도록 놓아두기 보다는 우선은 친구인척 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대안과 지도자를 찾아나갈 먼 길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선거에서 지역대표는 우리 지역구에 나온 후보 중 가장 진보적인 후보, 진보적인 후보가 없으면 내가 평소에 지지할 수는 없더라도 가장 개혁적인 후보를 지지할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구에서는 진보정당 후보가 지역구 후보로는 아예 나오지 않았다). 또 그리고 정당비례투표는 진보정당들 중 하나에게 던질 것이다. 이들에게 던지는 비례투표는 그 정당 득표율이 2%가 넘지 않으면 이른바 ‘사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투표와 선거는 사회를 바꾸는 우리의 노력의 하나이지 그 전부가 아니다. 2012년 지금 세계경제 위기시기에 우리가 갈 길은 아직 멀었다. 이른바 ‘사표론’을 믿고 또 그것이 맞았다면 전세계의 진보정당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당장 한국의 통합진보당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2008년 촛불로부터 이 글을 시작했다. 이번 선거는 여러 의미에서 2008년 촛불항쟁의 계승이고 촛불과 이명박 정권의 리턴매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때의 구호로 이 글을 마무리지으려 한다. 당시 경찰과 정권의 탄압으로 모이기가 힘들게 되면서 마지막까지 남은 촛불대오들이 외쳤던 구호는 이것이었다. “촛불들아 모이자. 될 때까지 모이자.” 그렇다. 나는 오늘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촛불들아 모이자. 그리고 ‘이번에는’ 투표장으로 모이자.” 그리고 이번 선거는 결코 끝이 아니다. “될 때 까지” 모이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 2008년 촛불시위. ⓒ프레시안
 



우석균(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건강과대안 부대표)

*이 글은 프레시안에 4월 9일자로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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