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쇠고기는 FTA와 별개’라는 거짓말은 이제 그만

한·미 FTA 추가협상이 결렬되면서 마침내 판도라 상자가 열리고야 말았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완전 수입개방 문제는 FTA와 별개의 이슈”라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대국민 눈속임용에 불과했다. 지난 8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통상장관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현재까지 쇠고기 문제는 논의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바로 그날 밤 9시 청와대에서는 임태희 대통령실장 주재로 한·미 FTA 긴급 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엔 농림수산식품부·기획재정부·지식경제부·환경부 장관과 통상교섭본부장 등이 참석했다. 쇠고기 검역을 책임지고 있는 유정복 농식품부 장관이 이 회의에 참석한 이유는 나흘 후에야 밝혀졌다. 토머스 도나휴 미국 상공회의소 회장이 조찬간담회에서 천기를 누설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는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만나 “이번 협상에서 쇠고기 문제는 부차적인 논의사항으로 4분의 3 정도 진행됐고 소소한 조정만 남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다시 말해 이명박 정부가 한·미 FTA 추가협상을 하면서 비밀리에 쇠고기 협상을 벌여온 사실이 미국 상공회의소 회장의 입을 통해 폭로된 것이다.


한편 다르시 베터 미 농무부 부차관보는 지난 9월 미국축산육우협회 대표단과의 면담에서 한·미 FTA 추가협상에서 두 가지를 관철시킬 것이라고 장담했다. 첫째는 30개월 이상 쇠고기와 30개월 미만의 뇌·두개골·안구·척수 등을 모두 수입하라고 요구하는 것, 둘째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40%의 관세를 철폐시키겠다는 것이다. 첫 번째 요구는 촛불시위의 성과를 송두리째 허물어버리겠다는 의미이고, 두 번째 요구는 한·미 FTA 협정문을 뜯어고쳐야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소소한 조정만 남고 4분의 3 정도가 관철되었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일각에서는 제2의 촛불시위를 두려워한 한국 정부가 미국 측의 쇠고기 개방 요구에 대해 구두로 약속하고 형식상으로는 한·미 FTA와 별개로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미국 측에서 완강하게 문서로 약속할 것을 강요해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확한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정부가 밀실협상으로 일관하며 관련 내용을 전혀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유명환 전 장관 딸의 외교부 특채 파문으로 실체가 드러난 ‘외교가족부’가 국익을 위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2008년 5월 촛불시위 당시 주미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최석영 공사는 웬디 커틀러 미 무역대표부 대표보와 접촉해 “한국 내의 비판여론을 감안해 미국 측이 일본과 대만 등 주요 미 쇠고기 수입국들이 우리와 같은 기준을 수용토록 조속히 협상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그렇다면 2년이 지난 현재의 상황은 어떨까? 중국과 호주는 광우병이 발생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일본은 2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을 수입하고 있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멕시코는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지만, 뼈와 내장은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대만은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다. 하지만 연령에 관계없이 내장·뇌·분쇄육·척수·눈·머리뼈 등 6개 위험부위의 수입을 금지했다. 역사의 비극은 되풀이되는지 2010년 11월 최석영은 외교통상부 FTA교섭대표가 되어 웬디 커틀러와 극비리에 한·미 FTA 실무협의를 진행했다. 이쯤 되면 대단한 ‘외교가족부’에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맡기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두렵지 않은가?


박상표(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건강과대안 운영위원) / 경향신문 1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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