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G20 정상회의, 무능하거나 나쁘거나

안토니오 그람시는 옥중 수고에서 “위기는 바로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못한 시기”라고 말한 바 있다. 주요 7개국(G7) 혹은 주요 8개국(G8)이 주도하는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는 1929년 대공황에 비견되는 2008년 경제위기로 사망선고를 받았다. G8이 주요 20개국(G20)으로 대체됐다고는 하지만 새로운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람시가 말하는 위기다.

G20 재무장관(및 중앙은행 총재)회의가 동아시아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졌듯이,(1) G20 정상회의도 2008년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1997년의 위기와 2008년의 위기는 그 규모가 다르다. 2008년 경제위기를 맞아 G7 국가는 중국·인도·브라질 등 이른바 브릭스(BRICs)와 신흥공업국 등의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G20 재무장관회의는 ‘G7 주도권을 세계로 확장시키는 세계의 G7화(G7-ization)의 도구’(2)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G20은 일단 G8을 대체하는 회의로 자리매김됐다. 이번 위기가 기존 체제로는 해결하기 힘든 세계적 위기라는 것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물론 G20도 미국의 영향력이 여전히 관철됐다. 유럽은 G13이나 G14 등을 선호했으나 미국이 선호한 G20이 관철됐다.(3) 그 결과 중동에서는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참여했고, 동남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만 참여했다. 동유럽은 배제됐고 한국과 호주가 참여했다. 모두 미국의 영향력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나라다. 이란·베네수엘라·대만 등이 배제됐다는 것은 G20이 경제력 순서대로 모인 것도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G20이 세계를 대표하라고 선출 절차를 거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미국, 왜 동유럽 빼고 한국 선택했나


우여곡절 끝에 모인 G20 정상회의는 2008년 11월 워싱턴에서 첫 회의를 열었고 5개 원칙과 47개 행동 원칙을 합의했다. 그들은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세계경제 위기에 대해 ‘원칙’을 이야기는 했다. 5개 원칙은 투명성 및 책임성 강화, 금융감독 규제 개선, 금융시장 신뢰성 제고, 국제 협력 강화, 국제 금융기구 개혁이었다. 하지만 구체적 실행 계획은 단 하나도 결정되지 못했다. 단 하나 결정된 것은 G20 회원국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에 의해 금융 부문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IMF에 결정권을 다시 한번 부여한 것이다.

2009년 4월 런던에서 열린 2차 G20 정상회의야말로 가장 많은 논의가 이뤄졌고, 동시에 가장 많은 갈등이 노출된 회의였다. 오바마는 이 회의를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불렀다. 2010년 말까지 5조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이 결정되기는 했다. 그러나 재원 마련을 위한 구체적 계획은 지금까지 없다. 금융규제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그러나 프랑스와 독일이 지지한 토빈세와 같은 금융거래 과세제도 도입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고, 조세피난처 문제조차 미국과 영국은 이번 위기가 자국의 상업은행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중국도 홍콩·마카오에 대한 규제에 반대하면서 명목상 합의에 그쳤다. 결국 금융규제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만 합의됐다.

미국과 영국은 독일이 수입을 늘리고 중국이 통화를 절상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유럽과 중국은 미국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고 했다. 달러 기축통화(4)를 둘러싼 싸움도 벌어졌다. 진흙탕 싸움 끝에 이들이 합의한 것은 단 하나였다. 경기 부양을 위해 IMF의 재정을 늘리자는 것이었다.(5) 개도국을 위한 재정 지원도 IMF 재정을 늘리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IMF와 세계은행 강화로 회귀


그러나 IMF의 재정 지원이 어떤 것인가? IMF가 빌려주는 돈에는 1달러마다 조건이 붙어 있음을 한국 사회는 이미 겪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시기에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대량 해고와 비정규직 양산, 공기업 민영화와 재정 삭감이 그것이다.

IMF 재정 지원 ‘혜택’을 받은 멕시코·타이·한국·러시아·아르헨티나·터키·브라질 등 이전 나라들은 물론 최근의 헝가리·우크라이나에서 사람들이 IMF에 의해 겪은 고통은 굳이 스티글리츠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문제가 각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IMF 체제 자체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IMF와 세계은행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1970년대 이후 빈국을 더 굶주리게 했고, 오늘날의 세계는 과거보다 더 불평등해졌다.(6)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런던회의 직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의가 연이어 열렸다는 것이다. 이 NATO 회의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지속한다는 결의가 채택됐는데, 이는 새로운 세계질서가 여전히 미국-유럽의 군사적 질서를 기초로 함을 보여준다.

지난해 9월 피츠버그 정상회의에서도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 방침이 나오지 않은 것은 여전히 마찬가지다. 위완화 문제에 대한 미국-중국 갈등은 지속됐고, 출구전략 공조도 원론에만 머물렀다. 기후변화 대응 재정 문제는 ‘논의’만 되었고, 개발·고용·에너지안보 등에 대한 립서비스만 난무했다. 금융규제 또한 여전히 마련되지 못했다.(7)

G20 정상들이 피츠버그에서 합의한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을 다시 궤도에 올리겠다는 것이다. DDA 협정은 자유무역을 더 강화하는 협정이다. 지적재산권협정(TRIPS) 강화를 통한 의약품 특허의 연장, 교육·의료 등 서비스의 완전 개방, 투자자-국가 제소권 도입, 공기업 민영화, 개발도상국의 농업보조금 철폐 등 다국적기업에는 온갖 특혜를, 빈국은 물론 부국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권리 박탈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 협정은 1999년 시애틀 시위에서 시작해 2003년 이경해씨가 자신의 심장을 찔러 항의한 칸쿤 시위 등으로 사실상 좌초됐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연합(EU)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중-미 FTA처럼 ‘각개격파’식으로 FTA를 체결했던 것이다.


재정 삭감 요구, 한국이 타깃 되나


결국 G20이 한 일은 다음과 같다. 금융규제책이나 경제위기 해결책은 실효가 없고 오히려 ‘IMF와 세계은행, WTO’라는 신자유주의의 ‘사악한 삼총사’(8) 체제를 더욱 강화한 것뿐이다. 간단히 말해 G20은 무능한 기구이며 동시에 G7 체제를 확장한 새로운 괴물이다.

미국발 경제위기는 각국 정부가 천문학적 재정을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회사와 그 밖의 부동산·자동차기업 등에 쏟아붓고 나서야 일단 진정됐다. 모두 국민의 세금이다. 하나만 예를 들자면 미국 정부가 골드만삭스에 준 구제금융은 100억 달러였다. 올해 아이티를 구제하기 위해 전세계 정부가 보낸 구제금액은 20억 달러였다. 게다가 골드만삭스 임원들은 연말 보너스로 48억 달러를 챙겼다. 런던의 시위대가 G20에 항의하면서 “부자와 은행이 아니라 우리를 구제하라”고 외친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금융기업을 구제하느라 정부 재정이 너무 들어가 이제는 재정 적자가 문제란다. 그렇게 살아난 은행이 각국 정부가 ‘재정 건전화’, 즉 재정 삭감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재정 적자 문제는 그리스는 물론 남유럽 전체로 번지고 있다. 그런데 재정 적자폭이 가장 빠르게 늘고 있는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독일과 영국도 재정 삭감 계획을 발표했다.(9) 재정 감축은 임금 인하(은행 임원 봉급은 제외다), 연금 삭감, 복지재정 축소를 뜻한다. 전세계의 노동자와 서민이 ‘왜 지금까지 이익은 부자들이 다 보고 그 손실의 책임은 우리에게 지라고 하는가’라고 묻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진짜 해결책 요구하는 시위 기다린다


오는 6월 캐나다 토론토를 거쳐 11월에는 서울에 오바마를 비롯한 G20 정상이 모인다. “국격을 높이는 계기”라는 서울 정상회의다. 벌써부터 이명박 정부는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하고 군대를 동원한다는 ‘G20 정상회의 경호안전 특별법’이라는 이름의 ‘계엄령’을 발동한 상태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앞선 회의의 의제와 더불어 특별히 재정균형 문제, 즉 재정지출 삭감이 주요 의제다. 앞서 말했듯이 이는 임금 및 복지재정과 공공지출 삭감 문제가 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여기에 모범을 보이려는 듯이 하반기에 공공요금 인상, 복지재정 삭감을 시행하겠다고 호언한다.

이명박 정부는 빈부 격차 감소와 개발원조 확대, 기후변화 대책 등을 의제에 포함시킨다고 한다. 그러나 개발원조는 IMF 강화로 귀착될 것이며, 온실가스의 4분의 3 이상을 배출하는 G20 국가가 기후변화를 해결할 리 만무하다. 이번 정상회의에는 특별히 B20, 즉 각 나라의 상위 20개 기업이 모인다. 하지만 다국적기업이야말로 기업 세계화로 인한 양극화의 주역이 아니던가? 결국 우리는 휘황찬란한 행사와 현란한 언사 속에서, 세계경제 체제를 지배한 낡은 시스템과 현재의 위기 상태를 연장시키고 더욱 악화시키는 각국 정상의 ‘쇼’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 ‘쇼’가 우리 삶과 아무런 상관이 없으면 그냥 구경만 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할 일은 IMF, 세계은행, WTO를 더 강화시키고 경제위기의 부담을 서민에게 넘기는 것이다. 또 이명박 정부는 정상회의를 핑계로 민주주의를 억압할 구실을 찾고 반서민적 역주행 정책을 합리화하려 한다. 이미 민주노총은 20개국의 노동조합이 개최하는 L20을 준비 중이고, 전세계 시민사회단체가 모이는 민중정상회의(People Summit)도 논의되고 있다. 지금까지 G8과 G20 정상회의가 그랬듯이 각국 정상은 위기의 진정한 해결책을 원하는 항의시위와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각주>
(1) 1998년 4월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의 제안으로 G22가 열렸고, 그해 10월 G26, 199년 3월 G33으로 확대됐다가 1999년 9월 IMF 연차총회에서 ‘G7+러시아+11개 신흥국+EU’로 G20이 창설됐다.
(2) John Kirton, Director, G20 Research Group November 30, 1999 ‘What is G20?’. Paper presented at an International Think Tank Forum on ‘China in the Twenty-First Century’, China Development Institute, November 10~12, 1999.
(3)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4) 중국은 새로운 기축통화를 주장했는데, 달러 가치 하락으로 앉아서 손해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프랑스·러시아·브라질 등이 동의했으나 미국은 중국 위안화 절상을 요구했고, 일본도 이를 지지했다.
(5) 여기에서도 중국 지분을 늘려주기는 하되, 미국 지분을 줄일 것인가 유럽 지분을 줄일 것인가를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6) 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부키, p31, p57, 2007.
(7) 파생상품 규제 방안은 “모든 표준화된 파생금융상품을 중앙청산소를 통해 청산”한다는 합의를 보았지만, 이것은 표준화되지 않고 중앙청산소를 거치지 않는 파생상품에는 해당 사항이 없어 ‘부도난 파생상품 대행처리’ 역할을 하겠다는 것 이상이 아니다.
(8) 장하준, 위 책, p31, p57.
(9) 독일이 2016년까지 매년 100억 유로의 재정 적자 감축안을 발표했고, 영국 신보수당 정부는 올해 60억 파운드의 재정 삭감을 발표했다.


우석균(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건강과대안 부대표)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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