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종플루 유행의 시기,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신종인플루엔자가 유행하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됐기에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현재는 아이들이 가장 많이 감염되고 있다. 초·중·고교 학생들의 감염자가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집단 휴교 얘기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노동현장의 신종플루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다. 현재까지 30-40대 성인 감염환자가 적은 까닭인 듯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성인이 감염되더라도 완쾌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듯도 하다. 하지만 인구의 반수 이상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노동현장의 신종플루 대책은 매우 중요하다. 학교 대책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영역이 직장 내 대책이다. 노동현장 내 대책이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고 실행되지 않을 때 그 감염의 확산을 막기 힘든 까닭이다.


노동현장의 신종플루 예방관리 대책이 지역사회 대책과 특별히 다를 것은 없다. 다만 직장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노동 현장의 신종플루 예방관리 대책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병가’ 대책이다. 직장 내에 신종플루 환자나 의심환자가 생겼을 경우 유급으로 1주일 이상 쉴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는 직장 내 신종플루 확산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더불어 동거 가족 중 환자가 발생한 노동자도 환자 돌봄과 본인 감염의 가능성을 고려해 유급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반적인 제조업·건설업 사업장 등은 병가 대책과 더불어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할 수 있는 시설을 보완한다면 더 이상 할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정규직 신종플루 예방, 원청이 책임져야


두 번째로는 대면업무가 많은 병원·사회서비스업·민간서비스업·공공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이들은 직업의 특성상 감염되기 쉽고, 질환을 다른 이들에게 옮기기도 쉽기 때문에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 그 대책은 대면 업무시 직접적으로 얼굴을 맞대고 하는 업무를 최소화하고 주변 환경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이다. 마스크 등 보호구 지급도 필요하다.


세 번째로 언급할 것은 노동현장에서 신종플루 예방을 위한 대책이 특정 노동자 계층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불평등하게 적용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신종플루에 걸렸다고 해서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신종플루 예방대책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에게 차별 없이 적용돼야 한다. 회사 내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에게 차별적으로 예방관리 대책이 적용될 경우 그 피해는 정규직과 회사 전체에 미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종플루 예방관리 대책만큼은 원청 사업주가 비정규직까지 책임지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 모든 대책 수립과 적용이 노조의 참여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운영대상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그렇지 않은 사업장은 노사협의회 등의 틀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고, 대책 집행을 함께 점검해야 한다.


비용 부담 노동자 전가 안 돼


마지막으로 신종플루로 인한 각종 검사·치료 그리고 예방접종 대상 노동자의 경우 예방접종 비용 등 모든 종류의 비용 부담이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비용이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될 경우 비정규직·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가 신종플루 감염에 취약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노동현장에서 신종플루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원칙들이 잘 지켜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 걱정스럽다. 병가 대책의 경우 대기업이나 공무원 등은 그나마 환자가 발생할 경우 유급휴가를 받고 있으나,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신종플루에 걸리거나 의심증상이 있어도 출근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특히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과 비정규 노동자는 임금 손실, 고용상의 위험 때문에 신종플루에 걸려도 쉬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사업장에서 순식간에 신종플루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병원과 사회서비스업·민간서비스업·공공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특별 대책 역시 아직까지 부실하다. 병원 노동자와 가사간병 노동자·보육 노동자 등에 대한 대책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해 신종플루 감염사례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노동권 침해사례도 잇따라


감염으로 인해 노동권이 침해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신종플루에 걸렸다고 해서 해고된 간병 노동자 사례, 신종플루 예방이라는 미명 아래 대면 업무 자체를 구조조정한 사례 등이 보고되고 있다. 이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한편 정부의 개입 없이 사업주 자율에 맡겨 시행되고 있는 현재 대책의 한계로, 능력이 있는 사업장과 그렇지 못한 사업장 간에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다. 대기업 노동자들은 유급병가를 자유로이 쓰고 신종플루로 인한 비용도 회사에서 지원받는 반면에,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이나 비정규 노동자는 아픈 것을 무릅쓰고 출근했다가 다른 이에게까지 병을 옮기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


대책이 노동자의 참여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회사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대책은 반쪽짜리가 되기 십상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해결하고 다가오는 ‘대유행’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특단적 대책이 필요하다. 먼저, 신종플루 감염 노동자 또는 감염 의심 노동자는 최소한 행정안전부 ‘공무원 관리지침’을 준용하도록 전 사업장에 강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무원들은 현재 신종플루 감염이 확진된 경우 완치시까지 ‘병가’조치를 하고 있고, 신종플루 증상이 보이는 등 감염이 의심되는 경우 일주일간 출근하지 않도록 하고 ‘공가’처리하고 있다. 가족 중 신종플루 감염자가 있어 감염될 가능성이 높은 경우 그 가족이 완치될 때까지 출근하지 않도록 하고 공가로 처리하고 있다.


둘째, 이와 같은 휴가제도를 운영할 경우 소규모 사업장에는 부담이 될 수 있으므로, 고용보험 재원 등을 이용한 ‘신종플루 수당’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그래서 일정 규모 이하의 사업장 노동자가 신종플루로 휴가를 사용할 경우 그 휴가 비용을 사회적 재원에서 부담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취약계층 노동자도 병가를 쓸 수 있다.


‘신종플루 수당’ 도입 검토해야


셋째, 신종플루로 인한 노동권 침해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감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신종플루 예방관리 대책을 빌미로 한 부당해고, 인사상 불이익 등에 대해서는 일벌백계 차원에서 엄벌이 필요하다. 더불어 신종플루 예방·관리 대책이 차별적으로 적용되지는 않는지에 대해서도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감염위험이 큰 업종 종사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을 사업장 자체적으로 수립하도록 해당 사업장을 독려하고, 그에 적절한 지침을 내릴 필요가 있다. 병원과 사회서비스업·민간서비스업·공공서비스업종 사업장을 대상으로 교육과 가이드라인 배포·지도·감독 강화 등의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 더불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이뤄지지 않도록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대책의 책임을 원청이 지도록 지도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안일한 대책으로는 노동현장에서 신종플루 ‘대유행’의 씨앗이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해서, 그리고 전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노동현장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상윤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원,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 매일노동뉴스 10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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