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서평]산부인과 의사 믿으면 좋은 엄마 못 된다?

산부인과 의사 믿으면 좋은 엄마 못 된다?

[프레시안 books] 에밀리 오스터 <산부인과 의사에게 속지 않는 25가지 방법>

산부인과 의사인 필자가 <산부인과 의사에게 속지 않는 25가지 방법>(부키, 2014년 9월 펴냄)이라는 이 책 제목을 보았을 때 떠오른 생각은, ‘뭐야? 산부인과 의사가 속인다는 얘기야? 이건 아닌데…’라는 거부감이었다. 그래서 영문 원제목을 찾아보았다. ‘Expecting Better’였다. 그러니까 산부인과 전문의가 아니라 일반인인 경제학자가 자신의 임신과 관련하여 의학 논문과 자료를 찾아 정리한, 임신·출산에 관한 의학 지식과 정보의 모음이다. 출판사가 한글 제목을 이렇게 정한 것은, 독자의 눈길을 확 끌면서 숫자가 들어간 책 제목들이 잘 팔린다는 마케팅 전략의 일환인가 보다.

저자는 서문에서 책을 쓴 이유를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데이터를 알고 근거를 알아야 안심이 되는 성격이다. 그래야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있구나, 확신이 서고 마음이 편해진다. (…) 정보를 주고 산부인과 의사와 대등한 입장에서 상의하는 법을 알려주며 만족스러운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있었다.”

반가운 책

이 책은 반갑다. 산모들이 산부인과 의사에게 물어보는 많은 질문들에 대신 대답해주기 때문이다. 때때로 산부인과 의사들은 산모들의 깨알 같은 질문이 버거울 때가 있다. 어떤 산모들은 진료실 의자에 앉자마자 대뜸 궁금한 것을 번호를 붙여 적은 쪽지를 들고 와서 물어보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수도권 산부인과 개인 의원에서 일하는 나는, 이 산모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할까를 고려하면서, 동시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대기 환자의 수를 고려해가면서 답변한다. 만약 그 산모가 못 알아들어 이미 한 얘기를 또다시 두세 번 설명하게 되면, 솔직히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매우 이기적이지만), 이 책이 그러한 시간 단축에 기여를 하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에 반갑다.

ⓒ부키 ⓒ부키

이런 산부인과 의사의 이기적인 생각 말고도 반가운 이유는 또 있다. 이 책은 의료 전문주의(medical professionalism)의 아성에 안주하여 환자의 궁금증을 제대로 풀어주지 않고 골탕 먹이는 의사들과 환자들 사이의 격차(정보의 비대칭성)로 인한 장벽을 낮추어주는 좋은 책이다. 산부인과 의사가 시시콜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산과 교과서와 관련 최신 의학 논문을 정리하여 일반인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주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속으로, 어떤 논문에는 이렇게 나와 있고 최근에 그에 대한 반박 논문이 나왔으므로 환자에게 명확히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냥 지금까지 관습대로 이렇게 해라’ 하고 무책임하게 설명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똑똑한 소비자’의 정보 무장과 정보 나눔이다.

보통 의사들이 환자에게 어떤 처치나 시술, 검사에 대해 설명을 할 때 꼭 필요한 절차가, 정보가 충분히 제공된 상태에서 이뤄지는 동의(informed consent)이다. 어떤 시술이나 검사를 하기 전 의사가 그 검사나 시술로 인한 부작용이나 합병증에 대한 설명 의무를 다하고, 환자는 정보를 잘 이해하고 동의했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부작용이나 합병증이라도 의사가 설명 의무를 다 했는지 여부가 판단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그 설명을 할 때, 환자와 보호자가 설명 내용을 잘 이해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것을 의료사회학 용어로 “의학 이해력(medical literacy)”이라 한다. 이 책은 일반인과 전문 의료인 사이의 정보 격차를 줄이고 일반인들의 의학 문맹률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산모들이 임신을 준비하거나 임신 중일 때 그리고 출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나 고민들을 소상히 알려준다. 산모들이 느끼는 고충을 의사들이 무시하거나 귀찮게 여기거나 때로는 그것에 무지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산모들의 솔직하고도 구체적인 고민은, 의사들이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해준다. 그렇게 산모의 고충에 대해 더 잘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앞에서 말한 의료 정보 격차를 줄이는 것에 더해 의사 쪽에서는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혀주는 역할도 한다.

불편한 책

이 책은 불편하다. 이 책에는 미국 대도시의 훌륭한 최신 의료 기관을 이용할 수 있고 비싼 의료비가 그다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 즉 의료 이용 장벽을 느끼지 않는 중산층 지식인 여성이 선택하고 고려할 수 있는 환경과 경제적 요건에 맞는 방법만이 제시될 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선택하거나 고려해야 할 여러 검사법에 대한 정보를 주고 있지만, 그 검사 비용(매우 비싼)에 대한 고려를 거의 하지 않는 듯하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3세 아이 가벼운 타박상 진료비 2000만 원 내라니”라는 제목의 기사를 봤다. 미국의 비싼 의료비를 꼬집는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진 아이를 응급실에 데려가 몇 가지 검사를 받게 하고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은 후 집으로 돌아왔는데, 나중에 2000만 원을 내라는 청구서가 날아왔다는 것이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화나는 청구서’에 대응하는 10계명을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했는데, 첫 번째 계명이 “(억울하면) 의사나 간호사가 돼라”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면, 역설적으로 이 책은 어쩌면 의료 격차가 크고, 돈이 충분하지 않으면 의사나 간호사 수준의 의료 지식으로 무장해야만 하는 미국, 의료비가 매우 비싼 나라 미국이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실제로 건강 불평등 문제는 의학 정보의 부족 이전에 의료 제도, 경제적 수준과 관계가 깊다. 의료 접근성이 높아야, 즉 의료 기관이 가까이 있고 비용 장벽이 낮아 적은 비용으로 의료 기관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전 국민의 경제적 수준이 반영되는 영양 상태 및 개인위생 개선, 깨끗한 식수 공급, 예방접종, 적절한 식생활, 스트레스 감소 등 건강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필요조건들이 있다.

또 하나 불편한 이유는, 지금까지 최신 의학 정보는 백인 중심의 의학 체계에서 주로 정리돼 왔다는 것과 관련 있다. 다른 유색인종이나 동양인 또는 한국인의 인종적 차이나 유전적 차이, 심지어 성별 차이에 대한 연구는 사실 많이 부족하다. 거기에 각 나라별 경제 수준과 위생 상태와 의료 수준까지 가미하면 개별적인 사람들의 정상 수치나 위험 수치를 결정하는 요인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때때로 의사가 통계적으로 추정하거나 임상적 경험으로 예상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하는 것은 현대 의학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들과 더불어, 이 책에서 이런 점을 얼마나 고려했는지 의문이 든다.

불친절한 책

이 책은 불친절하다. 친절하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만, 결정은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불친절하다. 그러니까 네가 알아서 하라, 이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많은 통계 숫자들 앞에서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선택할 때, 각자의 선호도와 의지가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염려나 선호도, 그리고 의지를 어떻게 수치화할 수 있단 말인가?

“여러분의 나이가 서른한 살이라고 가정해보자. 비침습 검사 결과가 양호하다면 아기가 다운증후군일 위험은 약 7000분의 1이다. 융모막 생검 검사에서 유산할 위험은 약 800분의 1이다. 여러분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것은 예상치 못하게 다운증후군이 있는 아기를 낳는 것이 유산하는 것보다 8배 이상 싫은가, 그렇지 않은가다. 8배 이상 싫다면 융모막 생검을 받고 그렇지 않다면 비침습 선별 검사만 받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이 질문에 대답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여러분 대신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63쪽)

만약 이러한 문장을 보았을 때 당신은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만약 진료실에서 당신을 진료한 의사가 위와 같은 얘기를 하였을 때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충분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받고 그에 따라 결정을 내릴 때 그 결과는 자신이 오롯이 책임을 져야 한다면, 과연 그 결정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이 책의 저자는 경제학자로서 통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단순히 통계를 자신의 선택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수치화된 통계(평균값이나 중간값이 통계치로 대표된다. 그러나 그 이외에 분포하는 수많은 수치의 스펙트럼을 감안해야 한다)를 개별적인 사람의 신체에 바로 적용한다는 것은 때로는 매우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경험 많은 산부인과 의사의 조언을 따르는 것이 더 현명할 수도 있다.

꼼꼼하게 최신 지식 정리, 그러나 거기까지

이 책은 꼼꼼하게 최신 지식을 잘 정리하였으나 거기까지이다. 이 책의 강점은 산부인과 교과서 못지않게 관련 정보에 대한 참고 문헌을 정성스럽게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최신 의학 정보들을 저자의 능력 범위 내에서 잘 정리해놓았다. 그러나 문제는 최신 산부인과 지식을 발 빠르게 업데이트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매년 학회에 발표되는 새로운 논문과 지식들, 그리고 3∼5년마다 개정판이 나오는 산과학 교과서의 내용을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나마, 지금까지 알려진, 나름대로 인정할 만한 지식들을 정리한 것이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논쟁적인 부분은 피해가고 있다(물론 비전문가로서 그 부분을 다루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몇 십 년째 학회에 나가지도 않고 연수도 받지 않아 최신 의학 지식에 어두운 게으른 산부인과 의사의 충고를 듣는 것보다는 이 책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의도한 대로, 산모들이 산부인과 의사와 “대등한” 입장에서 토론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 담긴 정보와 지식은 지금까지 나온 경험적·의학적 지식의 산물이지만, 언젠가 그것을 반박하는 새로운 경험들이 쌓여 다른 논문들이 나오거나 전혀 새로운 지식이 대두될 때에는 이 책의 절반 이상을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의학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인체를 대상으로 한 경험적 지식의 체계적인 모음들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정리하자면, 이 책이 의사와 환자 간의 의학 정보 격차를 줄이고 공감과 이해의 도를 넓히는 데 기여한다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더 중요한 것은 의사와 환자의 신뢰 회복이다. 똑똑한 환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정보를 불충분하게 주는 의사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의료 서비스를 받으며 선택의 폭을 넓히고자 하는 환자의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믿을 만한 의학 교육과 전문의 양성 프로그램, 의료 접근성을 보장하는 의료 제도와 같은 좋은 제도가 의료인에 대한 신뢰를 보강해주는 요소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똑똑한 환자의 정보 무장이나 의사의 개인적인 부지런함 혹은 윤리에 의존하는 것 이상의, 그 나라의 의료 제도 차원의 필요조건들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이글은 지난 9월 19일 고경심 회원이 프레시안 서평코너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0237&fb_action_ids=763596003703280&fb_action_types=og.li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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