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없다”던 FTA서한 공개
[한겨레] 정은주 기자
미 비자쿼터 관련 2개
“쿼터 취득 협조” 내용
김현종 전 통상본부장
정보공개 소송서 제출
출처 : 한겨레 등록 : 20110928 20:57 | 수정 : 20110928 23:01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498467.html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가 4년간 존재를 부인했던 미국 전문직 비자 쿼터 관련 외교서한 2개를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28일 법정에서 공개했다. 국익과 관련한 핵심 외교서한에 대해 통상교섭본부가 몰랐거나 거짓말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통상교섭본부는 두 나라가 주고받은 서한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혀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오석준)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외교통상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 청구소송과 관련해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현 삼성전자 해외 법무담당 사장)이 한국과 미국이 교환한 두 개의 외교서한을 재판부에 제출했다고 28일 밝혔다.
첫 번째 외교서한은 토니 에드슨 당시 미국 국무부 비자담당 부차관보가 김종훈 현 통상교섭본부장(당시 협상 수석대표)에게 보낸 것으로, ‘한국이 전문직 비자 쿼터를 취득하도록 협조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에 통상교섭본부는 발신자 명의를 크리스토퍼 힐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로 격상하고 한국에 더 유리한 내용으로 바꿔 달라고 미국 쪽에 수정서한을 요청하며 초안을 보냈다. 이것이 김현종 전 본부장이 공개한 두 번째 외교서한이다.
앞서 미국은 2007년 6월 ‘신통상정책’을 내세워 두 달 전에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요청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미국의 일곱가지 요구안을 모두 받아들여 협정문을 고치는 대신 전문직 비자 쿼터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협조 약속을 요구했다.
전문직 비자란 건축사·엔지니어·회계사 등 전문직 외국인에게 발급하는 미국 비자다. 캐나다, 멕시코, 칠레, 싱가포르 등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서 전문직 비자 쿼터를 5000개 이상 따로 배정받았다. 그러나 미국 행정부는 우리와의 협상에서는 의회가 권한을 행사하는 이민법 분야라며, 협상 권한이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우리 정부는 재협상에서 전문직 비자 쿼터 확보 협조에 대한 약속을 다시 서한으로 요구했고,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서명식 불참’이라는 강수를 띄웠다. 서명식을 하루 앞둔 6월29일 에드슨 국무부 부차관보가 서한을 김종훈 협상 수석대표 앞으로 보내왔다. 김현종 당시 본부장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 판단했지만 힐 차관보 명의의 수정서한을 보내달라며 우리가 원하는 내용의 문안을 작성해 미국 쪽에 보냈다. 그러나 미국이 수정안대로 다시 서한을 보내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통상교섭본부는 외교서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전문직 비자 쿼터와 관련해 양측의 합의가 도출되지 않아 외교서한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날 법정에서 공개된 서한은 그 진위를 확인중”이라고 말했다.
김현종 전 본부장은 “당시 서한을 ‘(외교)전문’ 형태로 교환하지 않아서 통상교섭본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변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에드슨 서한 원본을 보관하고 있다”며 “원본은 한국에서 사용하는 용지가 아니라 미국 정부가 사용하는 용지이기 때문에 주한 미국대사관이 직접 전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이 맞는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한 핵심 외교서한 원본을 퇴임한 통상관료가 갖고 있고, 통상교섭본부는 그 존재에 대해서 모르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재판부는 “외교서한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라”고 외교통상부에 요청하고 다음달 12일 공판을 열기로 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