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다버린 돼지들 땅위 나뒹굴어…바이러스 확산 방치
[한겨레] 매몰가축 뜯어먹은 짐승들이 ‘제2전파’ 가능성
출처 : 한겨레 | 입력 2011.02.11 08:20 | 수정 2011.02.11 08:40 |
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0011&newsid=20110211082012038&p=hani
쓰레기·분뇨 소각 매뉴얼 어긴 ‘엉터리 방역’
도로에 바싹 붙은 곳서 매몰작업 이뤄지기도
어처구니없는 ‘부실 처리’ 현장 구제역에 뚫릴 때도 그랬지만, 구제역 사후처리 현장에서 바라본 ‘방역 사후 무방비’ 실태는 상상도 못 할 만큼 도를 넘고 있었다.
10일 최대 피해를 입은 경기 남부의 한 돼지농장. 부실 매몰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농장을 에둘러 산기슭을 오르던 중 ‘악’ 비명이 터져나왔다. 머리와 꼬리 일부만 남긴 채 붉은빛이 선연한 돼지의 척추뼈가 발 아래 놓여 있었다. 몇 걸음을 옮기자, 잔설에 코를 드러낸 채 동사한 새끼돼지가 나왔고, 앞뒤로 네마리의 폐사체가 더 모습을 드러냈다. 근처 풀숲에서는 제법 큰 덩치의 들짐승 두마리가 인기척을 느낀 듯, 화들짝 달아나는 소리가 들렸다.
지난달 중순 구제역에 걸려 2천여마리 돼지를 매몰한 농장의 지척에서 목격한, ‘방역 불감증’ 현장의 모습이었다. 구제역으로 오염된 채 버려진 돼지 살점을 뜯어먹은 들짐승과 날짐승들은 그동안 사방 도처로 자유롭게 바이러스를 퍼뜨렸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끔찍한 일이다.
이 농장 입구에는 매몰 당시 쓰다 버린 신발과 비닐 등의 쓰레기더미가 한달 가까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또 근처의 한 주민은, 돼지를 매몰한 바로 이튿날부터 이동통제가 풀려 차량과 인력이 자유롭게 드나들었다고 전했다. 방역 매뉴얼은 매몰 현장의 모든 물건들을 완전 소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구제역 가축 매몰에만 급급해, 오염된 매몰지의 사후관리는 뻥 뚫려 있었던 것이다.
이번주 초에는 이날 찾은 농장과 10㎞ 남짓 떨어진 또다른 돼지농장에 새끼돼지 네댓마리가 폐사체로 버려져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구제역 발생 확인 전에 죽은 것을 우선 급하게 분뇨 더미에 버려두었다는 것인데, 그 뒤 지자체에서 매몰작업을 하면서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방치했다는 것이다. 당시 제보와 함께 입수한 사진에는 까치 몇 마리가 새끼돼지 근처로 날아드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날짐승들이 구제역의 전파자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중요한 ‘증거’를 포착한 장면이었다.
이날 다시 찾은 농장에서는, 새끼돼지가 죽어 있던 그 장소에 사료 더미가 일부 덮여 있었다. 도청의 점검을 앞두고 바로 전날 지자체 직원들이 지나간 뒤의 ‘흔적’이었다. 한 방역 전문가는 “구제역 발생농장에서는 분뇨를 비닐로 덮은 채 발효시키거나 땅에 묻어야 하고, 사료도 오염됐기 때문에 소각하거나 땅에 묻어야 한다”고 말했다. 매몰을 마친 이들 농장에서 방역 매뉴얼은 있으나 마나였고, 방역당국 또한 관리감독을 완전히 손 놓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지방도 변에서는 마침 매몰 작업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포클레인 두대가 동원돼, 200여마리의 돼지를 묻을 땅을 파고 있었다. 매몰지는 도로에서 한 치도 떨어지지 않은 채 바싹 붙어 있었다. 구제역 매뉴얼(긴급행동지침)의 ‘매몰요령’은 ‘집단가옥·수원지·하천 및 도로에 인접하지 아니하고 사람 또는 가축의 접근을 제한할 수 있는 장소’에 매몰하도록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과 동원된 인력이 작업을 하는 동안, 자동차와 행인들이 수시로 지나다니고 있었다. 가장 지독하게 오염된 매몰지 현장과, 가장 뚜렷한 구제역 매개체라는 인력·차량과의 거리는 숨소리를 서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들 사이에는 바이러스를 차단할 소독약도 시설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