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기감] 유전자조작에 의한 생태적 혼란

봄이면 극성이던 황사가 요즘 가을과 겨울에도 날아온다. 인천시는 범시민운동으로 몽골에 나무심기에 나서고 있고 한 환경단체는 중국 내몽고에 풀을 심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모두 의미 있는 일인데, 풀 뿌리가 잘 잡아주면 강력하게 이는 바람에 흙이 쉽게 날아오르지 않겠지만 햇볕 아래 뜨거워진 초원에서 풀뿌리를 헤치며 종과 횡으로 퍼져나가는 사막화는 풀만으로 막기 어렵다. 나무 그늘이 풀과 더불어 습기를 어느 정도 보전하면서 진전되는 사막화를 가로막을 필요가 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노릇이지만 최근 유전자를 조작한 풀로 황사를 예방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황사를 일으키는 사막이라고 해서 아무런 식물이 없는 모래언덕만은 아니다. 오히려 모래만 쌓인 사막은 미세먼지가 멀리 날아가는 황사를 일으키지 않는다. 황사가 이는 대부분의 사막은 아직 흙이 상당히 남아 있고 그 사이로 크고 작은 풀이 군데군데에서 흙을 잡고 있다. 그에 착안, 뜨겁고 바람이 거센 지역에서 뿌리내리고 잘 사는 식물의 유전자를 조작해 넣어 황사도 막고 초원도 일궈 지역주민의 소득에 기여하는 제안이 일거양득이라며 거론되는 건 유전자조작에 대한 대중의 경각심이 무뎌졌기 때문이리라.


 


1990년대 말, 식목일을 며칠 남기고 주요 신문과 방송은 세칭 ‘공해 잡아먹는 나무’를 일제히 보도했다. 출처를 공개하지 않은 어떤 개구리의 올챙이 유전자를 조작해 넣었다는 현사시나무를 가로수로 심으면 도시의 공기가 맑아진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난 요즘,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유전자조작 현사시나무를 활용한 가로수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 성과에 대한 지나친 기대로 성급하게 발표된 연구는 종종 무위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유전자조작 현사시나무가 그랬고 이어 발표된 같은 목적의 유전자조작 포플러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실험 결과를 차분하게 검증하기 전에 효과부터 일방적으로 홍보한 점이 동일했기 때문이다.


 


유전자조작 현사시나무 가로수로 대도시의 대기가 산림 지역처럼 깨끗해질 것으로 크게 보도될 때, 한 신문은 연구자가 밝힌 주의사항까지 친절하게 덧붙였다. 그 나무의 꽃가루가 다른 나무에 같은 효과를 번지게 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꽃가루를 날리기 전에 잘라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꽃가루는 가로수의 역할이 충분하지 못한 어린 나무에서도 날릴 텐데 도대체 어떤 공해 잡아먹는 나무를 심으라는 거였는지 잠시 궁금했는데, 유전자조작 현사시나무 꽃가루로 다른 나무들까지 합심해 대기를 정화시킨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왜 조심하라고 했는지, 당시 언론들이 숨가쁘게 전한 발표내용에 미더움이 생기지 않았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유전자조작 농산물 속의 조작된 유전자가 경작지의 잡초에 옮겨가는 일이 발생해 농부들을 곤경에 몰아넣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른바 유전자의 ‘수평이동’이다. 제초제 ‘라운드업’에 저항성을 갖도록 유전자가 조작된 콩(라운드업 레디 소이빈)에서 조작된 유전자가 나와 주변의 잡초로 옮겨갔고, 잡초들이 라운드업에 끄떡없게 되었다는 게 아닌가. 내성을 가진 유전자가 유전되면서 해마다 잡초가 증가해 농장 운영비가 증가한다는 것인데, 그런 현상은 제초제 저항성 농작물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유전자조작 면화처럼 해충을 죽이는 유전자가 애벌레를 잡아먹은 새로 전달되고, 그 새를 잡아먹는 더 큰 새에 이동된다면 생태계는 혼란을 빚을 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조작된 유전자가 땅속 미생물로 옮겨가더라도 심각한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런 상황을 인식하고도 황사를 막는 풀을 유전자조작으로 개발해 심을 경우, 우리는 어떤 걱정을 추가해야 할까. 지금은 황사에 실리는 무기물질이 우리 농토의 영양분을 보충해주던 산업화 이전이 아니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황사에 공업단지에서 함께 날아오는 중금속과 대기오염물질이 포함되니 걱정인데, 이제 조작된 풀의 유전자까지 덮친 격으로 염려해야 옳을까.


 


10여 년 전, 유기농업으로 옥수수를 재배하는 영국의 한 농부는 유전자조작 옥수수의 시험재배를 금지해달라는 소송을 냈지만 거부되었다. 조작된 유전자가 옮겨갈 확률이 4만분의1로 낮다는 이유를 들었는데, 판결을 내린 법관은 생태계의 유전자 이동에 대한 상식이 부족했을 테지만 생태적으로 4만분의1은 안전한 확률이 아니다. 세대마다 4만분의1의 확률로 늘어나는 유전자는 생태계의 저변을 충분히 위협할 수 있다. 일반 송사리 6만 마리가 사는 어항에 덩치가 큰 유전자조작 송사리 60마리를 넣자 불과 40세대 만에 송사리 집단 전체가 멸종했다는 미국 퍼듀대학교 리처드 하워드 교수의 연구결과는 무엇을 웅변할까. 생식 능력이 없는 유전자조작 생물이 생태계에 퍼졌을 때 발생하는 위험성은 통계학적으로 낮은 확률도 매우 치명적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캐나다 서부밴쿠버해양연구소는 일반 연어에 비해 최고 36배 이상 성장하는 연어를 유전자조작으로 개발했지만 치어나 알이 생태계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배수구에 3중 안전장치를 설치해야 했다. 1년에 15배 이상 성장하는 유전자조작 연어는 헤엄도 제대로 못할 뿐 아니라 성적으로 기형으로 변형되는 까닭에 그 유전자가 자연계에 퍼지는 현상을 막으려 한 것이다. 촘촘한 그물망으로 이루어진 안전장치가 배설물 속의 유전자까지 걸러주는 건 아닌데, 만일 그 연어가 양식장의 뚫어진 그물로 어류들이 빠져나가듯 태평양에 방출된다면 장차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인간의 속 좁은 욕심이 빚을 재앙을 상상할 때, 내일이 두렵기 짝이 없다. 일반 세균으로 정화처리하기 어려운 공장폐수를 위해 미생물의 유전자를 조작하자는 목소리가 들리는데, 안전을 장담할 수 있을까.


 


이미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진 유전자조작 농산물은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현저히 좁아 환경변화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데, 그 농산물의 조작된 유전자가 경작지를 중심으로 생태계를 오염시키지만 일부 전문가를 제외하고 소비자들마저 조용하기만 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문제가 없다고 믿기 때문일까. 하지만 없다기보다 문제를 모르고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아직은 눈에 띌 정도로 드러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유전자는 살아있다. 개체가 죽어도 유전자는 한동안 살아남는다. 공산품과 달리 리콜이 불가능하다.


 


한번 퍼진 조작된 유전자는 상품화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여간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수평이동이나 먹이사슬로 옮겨갔어도 환경이 형질을 발현시킬 조건이 되지 않는다면 에이즈처럼 잠자코 있다 나중에 발현될 수 있고 걷잡을 수 없어 퍼진 뒤 발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변형된 모습으로 느닷없이 출현해 무섭게 창궐하는 독감 바이러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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