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한미FTA] 3월15일로 한-미 FTA 발효 1년, 미국과 TPP 협상 시작한 일본 다녀온 송기호 변호사 기고








일본의 조건 ‘ISD는 하지 않는다’

 [한겨레21 2013.03.18 제952호]
http://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4092.html
[기획] 3월15일로 한-미 FTA 발효 1년, 미국과 TPP 협상 시작한 일본 다녀온 송기호 변호사 기고… 노무현 정부식의 허위의식 없이 고유의 제도를 유지할 수 있느냐 놓고 논쟁 중














3월15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1년이 된다. 성적은 보잘것없다. 정부가 자신했던 장밋빛 경제 효과는 미미한 반면, 우려했던 대로 공공정책이 발목을 잡히는 부작용은 속속 나타나고 있다. FTA 발효 뒤 3개월 안에 미국 쪽에 요구하기로 했던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재협상은 감감무소식이다. 정부가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 철저히 놀아난 결과다. 이제 막 미국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을 시작하기로 한 일본은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 신중하고 주도적이다. 완전 관세 철폐는 반대하고 주권을 침해하는 ISD도 제외하기로 했다. 건강의료보험·정부조달·금융서비스 따위 주요 부문은 개방하지 않거나 개방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송기호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가 일본의 생활협동조합인 ‘생활클럽’의 초청으로 지난 2월26일~3월4일 일본에 건너가 ‘TPP를 신중하게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에서 실패한 한-미 FTA의 지난 1년을 설명하고, 일본 정부·의회가 TPP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을 살펴보고 돌아왔다. 한-미 FTA는 일본이 피하려는 반면교사지만, 일본의 TPP는 한국이 주목해야 할 선례가 된 것이다. _편집자























» 송기호 변호사(맨 앞줄 왼쪽)가 지난 3월1일 일본 중의원 회관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신중하게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보좌관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1년 평가’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송기호 제공
일본 도쿄 시내 일본예술원 현관에서는 세 여인을 조각한 입상이 사람을 맞이한다. 일본 조각가 하시모토의 대표작 <화엄>이다. 부처님같이 온화한 얼굴, 부드러운 눈매, 그리고 풍만한 젖이 드러난 몸매를 살포시 감싼 옷을 입고 세 여성이 어깨를 맞대며 나란히 서 있다. 막 깨달음에 이른 듯, 기쁜 미소로 환대한다.

 

중국을 겨냥한 제2의 탈아론

나는 3명의 동양적 여성상을 보며 이들이 각기 한국·일본·중국 세 나라의 여성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성의 눈빛과 몸에서 세 나라의 평화의 냄새를 맡고 싶었다. ‘화엄’이란 온갖 꽃으로 장엄하게 꾸민다는 뜻으로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깨달음의 비유라고 한다. 그러니 이 작품에 한국이니 일본이니 하는 국적을 갖다붙이려는 내 생각은 부질없는 짓이리라. 하지만 서로 어깨와 몸을 맞대고 평화롭게 나란히 서 있는 여성상에라도 동양 삼국의 평화를 투영하며 위로를 얻고 싶었다. 그만큼 지금 동아시아의 삶은 위태롭다.

오랜 기간 남한에는 미국의 핵무기가 있었다. 아마 일본에도 그랬을 것이다. 벚꽃처럼 짧았던 일본 민주당 정권에서 밝혀졌듯이 미군 핵무기 반입 밀약이 있었다. 오랫동안 북한 사람들은 핵전쟁의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그 결과가 북한의 핵 개발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제 핵으로 남한을 위협한다. 북한은 지난 2월19일, 유엔 회의에서 남한의 잘못된 행동이 ‘최종적 파괴’의 전조가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지난 3월6일에는 최고사령부 성명에서 미국이 핵을 내세운다면 서울과 워싱턴이 핵 공격으로 불바다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다른 나라의 핵 위협을 이유로 핵 개발을 정당화했던 나라가 이제는 다른 나라를 핵으로 위협하고 있다. 또 다른 핵보유국 중국은 일본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 동아시아의 모습은 화엄의 세 여성이 품고 있는 아름답고 장엄한 땅과 거리가 먼 곳이 되었다.


어떻게 해야 평화롭게 살까? 도쿄 우에노공원에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불’이라는 조형물이 있다. 마치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의 올림픽 성화처럼 이 불은 꺼지지 않고 타고 있다. 아시아에서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서구 문명에 도달한 일본, 그리고 오늘 한국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많은 낱말을 번역해서 동아시아에 도입한 일본은 왜 핵전쟁의 피해국이 되었을까?

일본의 서구 문명 수용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회의’ ‘연설’ ‘경쟁’과 같은 일상 용어를 만든 후쿠자와 유키치를 보자. 일본의 가장 고액권인 1만엔에는 그의 초상화가 있다. 그는 세계를 ‘야만, 반개(半開), 문명’의 세 가지로 구분했다. 그는 1875년에 쓴 <문명론의 개략>에서 “단지 진퇴(進退)라는 두 글자가 있을 뿐이며 일본은 앞으로 나아가 문명을 좇을 것인가, 뒤로 물러서 야만으로 되돌아 갈 것인가”라고 썼다. 그리고 1885년 발표한 사설 ‘탈아론’에서 서구 사회를 문명으로 규정하고 한국과 중국을 스스로는 문명화될 수 없는 비문명으로 규정했다.

일본은 서구 문명을 도입하며, 사회진화론과 서구 근대화론을 극복하지 못했다. 문명화가 되지 못한 조선과 중국을 문명국 일본이 지배하는 것을 적자생존의 사회진화론으로 정당화했다. 그리고 식민주의로 맘껏 달려갔다. 바로 여기에서 일본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먹고사는 문제”라고 한 한국보다 정직

동양 삼국, 좀더 국제법적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유엔 가입국인 북한을 포함한 네 나라 중 어느 나라도 다른 나라를 비문명적이거나 후진적인 사회로 규정해서는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네 나라 중 어느 나라도 자국을 서구 문명이나 근대화의 선진사회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일본예술원 현관에서 사람을 맞이한 세 여인이 어깨와 몸을 맞대고 평화를 나누며 서로 나란히 서있듯, 네 나라는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TPP의 문제도 동양 평화의 문제다.

나의 일본 일정 중, 일본 언론은 아베 신조 총리의 TPP 참가를 기정사실화했다. 도대체 왜 일본은 TPP를 하려는 것일까? 그것은 동아시아 평화에 이로운가? 아베 총리는 지난 3월6일 일본 참의원 본회의에서, 자유무역 체제를 강화하고 환태평양 지역의 활력을 확보하려면 일본이 적극적으로 국제적룰을 만드는 데 참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발언했다. 이것은 중국을 겨냥한 제2의 탈아론이라 할 수 있다.

아베의 발언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한-미 FTA를 하며 한-미 FTA는 먹고사는 문제이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고한 것보다 정직하다. 한-미 FTA는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 미국과의 FTA 1년에서 겪었듯 미국과의 FTA는 한국에 경제적 효과가 없다. 2013년 2월20일까지의 정부 통계를 보면 FTA 발효 뒤 1년간 오히려 미국 수출은 줄었다. 한-미 FTA는 한-미동맹 유지를 위해 미국이 요구한 대로 한국사회 제도를 변경하는 것이다. 박주선 의원(무소속)이 지난 2월 정부에 요구해 받은 자료인 ‘한-미 FTA 이행법령 목록 및 주요 내용’을 보면 한국은 법률 23개를 포함해 모두 66개 법령을 바꾸었다.

TPP는 한-미 FTA와 마찬가지로 미국-오스트레일리아의 미국적 사회 질서에 일본이라는 소농적 사회 질서가 편입되는 중대한 사건이다. 성균관대 교수로 한국사 연구의 권위자인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가 지난 1월에 낸 <나의 한국사 공부>라는 책에서 입론했듯,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통해 서구 문명을 받아들인 변화는 17세기 소농 사회의 성립을 전후로 하는 동아시아 사회 구조의 대변동에 비한다면 오히려 더 작은 것이다.

즉, TPP가 가져올 일본 사회의 변화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19세기 후반에 직면한 서구 문명의 도입 문제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본질적이다.

 

농업계·의사회·우정회, 완강하게 반대

일본 체류 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일본은 적어도 이런 본질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TPP 논의는 한국의 참여정부와 같은 거짓이 없었다. TPP를 하면 미국으로 수출을 더 늘릴 수 있다든지, 미국이 일본의 경제 영토가 된다든지, 일본이 미국을 선점한다든지 하는 노무현 정부식의 허위의식은 없다. 대신 TPP를 하더라도 일본 고유의 제도, 일본 특질의 사회제도를 유지할 수 있느냐를 놓고 논쟁 중이다. 이것은 자민당이 공식화한 일본의 TPP 참가 6대 조건에서도 알 수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정부가 ‘성역 없는 관세 철폐’를 전제로하는 한 교섭 참가에 반대한다.
2. 자유무역의 이념에 반하는 자동차 등 공업제품의 수치 목표는 수용할 수 없다.
3. 국민 개(皆)보험제도를 방어한다.
4. 먹을거리의 안전·안심 기준을 수호한다.
5. 국가의 주권을 손상시키는 ISD 조항은 합의하지 않는다.
6. 정부조달·금융서비스 등은 일본의 특성을 살린다.

 

이런 인식은 일본의 제18대 의사회 회장인 하라나카 가즈유키 회장을 일본 의회에서 만나 의견을 나눌 때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일본 의사회의 ‘일본 의료를 지키는 국민운동’을 이끌고 있다. 일본 의사들은 TPP가 일본의 의료 격차로 이어질 것을 염려해 대대적인 TPP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하라나카 회장은 의회 간담회에서 건강보험제도의 지속성이 일본 사회 유지에 사활이 걸린 문제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일본 사회의 고령화로 2050년이면 노동 가능 인구와 65살 이상 인구의 비율이 1:1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의료비 지출은 65살 이상 인구가 노동 가능 인구보다 5.5배 많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건강의료보험제도 유지는 일본 사회 유지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TPP를 하면 미국 제약회사의 이익 추구 앞에 일본의 건강의료보험은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일본 대장성 국제금융국장을 지냈고, ‘미스터 엔’으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사카기바라 에이스케 교수와의 만남에서도 “TPP는 일본에 필요하지 않다. 일본의 사회제도가 미국화되지 않도록 일본 고유의 제도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을 들었다. 일본 외무성 국제정보국 국장 출신의 마고사키 우케루 또한 “TPP는 단순한 자유무역이 아니라 일본 사회를 변경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스스로의 힘으로 서구 문명에 도달하고 사회를 운영한 저력이 있었다.

 

협상 참가 선언이 오히려 거대한 논쟁의 신호탄

한-미 FTA처럼 일본에서 TPP가 제도화될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아베의 TPP협상 참가 선언은 오히려 거대한 논쟁의 신호탄일 것이다. 자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농업계·의사회·우정회는 TPP를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지금 일본은 한국에서 한-미 FTA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관찰하고 있다. 일본 국회의원들은 박주선 의원이 제공 받은 한국 법령 개폐 목록에 큰 관심을 보이고 이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을 읽고 있었다.

일본의 TPP 결정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만일 일본이 TPP를 수용하는 날, 한국에는 그 수용 여부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자동 편입되는 날, 동아시아는 중국·북한 경제블록과 한국·일본·미국 경제블록으로 나뉠 것이다. 이 틀에서 가장 큰 패자가 누구인지는 명약관화하다. 일본의 TPP 협상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송기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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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탓에 담뱃값 인상 어렵다 [2013.03.18 제952호]
[기획] 협정 체결 뒤 바뀐 법령 한국 66개·미국 8개, 미국식 제도 한국에 그대로 이식하는 경제헌법… 공공정책 가로막히지만 정부는 경제 효과만 따져

http://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4093.html

2011년 11월29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을 위한 개정법률 공포안에 서명했다. 일주일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단독으로 한-미 FTA 비준안과 함께 날치기 처리한 법안들이었다. 법안 개정은 FTA 비준안 처리만큼이나 정부가 오랫동안 목매온 절차였다. 미국은 FTA가 발효된 뒤 1년 안에만 여유 있게 협정문에 맞게 관련 법령을 수정하면 됐지만, 한국은 발효 전까지 관련 국내법을 다 뜯어고쳐야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00여 일 동안 미국이 손질된 한국의 국내법을 꼼꼼히 따져본 뒤에야 한-미 FTA는 공식 발효됐다.


김현종 “미국의 선진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

이렇게 오로지 한-미 FTA를 위해 바뀐 국내 법률은 23개에 이른다. 당시 법률이 1200여 개이던 것을 고려하면 국내 법체계의 대수술이라 할 만한 변화다. 여기에 시행령 16건, 시행규칙 18건, 고시·예규 9건을 더하면 한-미 FTA로 개정된 법령은 총 66개로 늘어난다. 정부가 한-미 FTA가 처음 타결된 2007년부터 발효 직전인 2011년 말까지 법령을 하나둘 손본 결과다. 개정된 법령 분야도 세제부터 지적재산권, 보건·의료, 방송통신, 독점 규제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반면 미국은 한-미 FTA로 바꾼 법령·규정이 8개뿐이다. 분야도 한국산상품 수입 절차 등을 바꾸려고 관세법이나 무역협정법을 고친 정도다. 양자 간 FTA를 체결했는데도 미국은 상품 교역 등에 관한 국내법만 일부 손질한 반면, 한국은 경제·사회 시스템을 대수술한 셈이다. 게다가 한국은 아직도 바꿔야 할 법령이 여럿 남아 있다. 단계적으로 개방 범위가 확대될 때마다 추가로 방송법, 약사법, 세무사법, 외국법자문사법 등을 개정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이 FTA를 국내법 체계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간단하다. 한-미 FTA 자체가 미국 제도를 한국에 이식하는 절차인 탓이다. 당연히 시스템을 통째로 이식받는 한국 처지에선 여러 준비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실제 한국 쪽 협상 대표이던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한-미 FTA를 가리켜 “미국의 선진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은 법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개정된 법령 개수만으로 협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주장대로 한국과 미국이 법체계가 다른 건 맞다. 성문법을 채택한 한국에서 FTA 협정은 기존 국내법에 우선한다. 한-미 FTA와 배치되는 모든 법률과 하위 규범은 별도의 개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무효가 된다는 의미다. 반면 불문법인 미국은 FTA가 그 자체로 법이 되지 않는다. 이에 미국은 자국법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에서 FTA 이행법을 별도로 만들어 협정 내용을 이행한다. 연방법이나 주법에 배치되는 FTA 조항이 있다면 자동 무효가 된다. 그러나 이런 법체계의 차이는 협상을 통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 법 건드리지 않는 범위에서 이행법 제정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바뀐 법률
박균성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원장의 설명이다. “양자 간 협정을 체결할 때는 ‘상호주의 원칙’이 기본이다. 미국은 이행법률을 제정하며 한-미 FTA의 국내법적 효력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었지만 우리는 무조건 비준 동의했다. 법체계와 상관없이 미국이 그렇게 국내법적 효력을 제한했다면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게 맞았다.” 결국 한국 정부가 앞뒤 재지 않고 한-미 FTA를 발효시키려다 국가의 고유 권한인 입법권 침해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법 개정으로 미국식 제도는 한국에 그대로 옮겨졌다. 대표적인 게 의약품 시판을 허가하는 절차와 특허권을 연계하는 제도의 도입이다. 국내 제약사가 미국의 다국적 제약사가 특허권을 가진 의약품 복제약을 국내에서 판매하는 허가를 얻으려면,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이 특허권자에게 통지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나마 2015년 3월부터는 특허권자가 특허 침해를 주장하면 일정 기간 허가가 정지돼 복제약 시판이 늦어질 수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는 기업이 소비자 피해 구제·예방 방안을 제출하면 위법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과징금 등을 면제해주는 ‘동의의결제’도 미국식 제도다.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손질된 법령도 많다. 정부는 법 개정을 통해 2천cc 이상 중·대형 차량에 부과하던 개별소비세 부담을 줄여주고, 승용차의 세율도 낮춰줬다. 미국의 자동차 수출업체에 혜택이 돌아가는 구조다. 지적재산권 분야도 변화폭이 크다. 상표법 개정으로 상표의 범위에 소리와 냄새까지 포함됐다. 지금껏 소리·냄새 상표 등록을 제대로 해오지 않은 한국에 불리한 상황이다. 저작권과 저작권 보호 기간이 50년에서 70년으로 늘어나 한국의 추가 로열티 부담도 가중됐다.

공공 영역은 축소됐다. 특히 ‘우체국 민영화’ 우려가 나올 정도로 정부의 우편 분야 서비스 영역이 쪼그라들었다. 국가가 독점해온 우편사업 범위가 축소된 것이다. 우체국 예금·보험에 관한 법률이 바뀐 탓에 새로운 우체국보험 출시는 불가능해졌다.

이처럼 한국의 시스템을 뒤흔드는 법령들이 시행된 지 1년 정도가 지났지만 효과나 부작용을 따져보기는 어렵다. 일단 변화된 제도의 영향을 측정하기엔 시행 기간이 아직 짧다. 그러나 이는 시간이 충분히 흐른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캐나다 등은 조약 체결 뒤 인권영향평가

남희섭 변리사는 이렇게 비판했다. “상품이 오고 가는 문제는 한-미 FTA에서 극히 일부분이다. 중요한 건 미국이 한국의 공공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교역량 같은 경제적 효과만 따진다. 시스템 변화로 초래되는 사회·문화·경제적 분야에서의 문제를 수집하고 종합적으로 검토할 준비는 전혀 안 돼 있다. 반면 캐나다 등은 다른 국가와 FTA를 체결한 뒤 인권영향평가를 시행해 사회 전반에 대한 종합 평가를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한-미 FTA로 정부의 행정권에도 벌써부터 상당한 제약이 생기고 있다. 공공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정부의 권한과 기능이 서서히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애초 올해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던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의 연기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소비자가 탄소 배출이 적은 차량을 구입할 때 최대 300만원의 보조금을 주되 탄소 배출이 많은 차량을 살 때는 최대 300만원의 부담금을 매겨 온실가스를 줄이는 정책을 펼 계획이었다. 1515억원의 예산까지 책정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갑자기 제도 시행을 2015년으로 늦췄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가 지난해 8월 환경부 장관에게 “이 제도안은 한-미 FTA협정을 위반하는 금지된 무역 기술장벽이 될 수 있으며, 이런 관점에 대해 미 당국도 공감하고 있다”는 의견을 보내 압력을 넣은 게 주된 원인이었다. 한국과 미국이 2011년 재협상 때 “양국은 자동차 연비 또는 온실가스 배출에 관한 강제적 새 기술 규정을 마련할때 비효과적이거나 부적절한 경우 도입할 수 없다”고 합의한 내용이 발목을 잡았다. 한국의 환경정책이 미국 자동차 업계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주장에 밀린 셈이다.

 

필사적으로 발효시킨 협정이 부메랑으로

제2의 저탄소 협력금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박근혜 정부가 국민보건 정책으로 내건 금연정책도 그중 하나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3월6일 “담뱃값을 인상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고,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아예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송기호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한 토론회에서 한-미 FTA 협정 때문에 금연정책 시행이 어렵거나 시행하더라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미 FTA로 한국의 담배 관세율이 40%에서 2027년까지 0%로 내려가면 수입 담배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소비자가 비싼 국산 담배 대신 값싼 수입 담배로 갈아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담배의 포장·라벨 등에 담배의 실상을 알리는 조처를 하고 담배 광고를 금지하는 등의 노력을 하면 미국 투자자(담배기업)의 문제제기로 손해배상을 해줘야 할 위험도 높다고 지적했다.

“한-미 FTA는 지금까지 한국이 체결한 FTA 중에서 (구속력이) 가장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다. 한국에는 경제헌법과도 같다는 의미다. 환경정책이나 금연정책 등 공공정책이 가로막히고, 전기·철도 같은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우려가 계속 제기되는 건 이러한 한-미 FTA의 속성과 연관돼 있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의 지적이다. 정부가 필사적으로 발효시킨 한-미 FTA가 곧 부메랑으로 돌아와 정부의 손발을 자를 수 있다는 얘기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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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률 오히려 떨어져 [2013.03.18 제952호]
[기획] 막대한 경제효과, 과연?

http://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4094.html

한국 정부는 광신도 같았다. 국민적 저항에도 온갖 무리수를 둬가며 끝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시켰다. 정부가 한결같이 내세운 이유는 막대한 경제 효과였다.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인 수출이 꺼져가는 비상시국인 만큼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으로 경제 영토를 넓혀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렇게 정부가 맹신해온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고 있긴 한 걸까. 기획재정부가 2011년 8월 발표한 ‘한-미 FTA 경제적 효과 재분석’ 보고서를 보면, 정부는 한-미 FTA가 발효되면 그 효과만으로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단기적으로는 0.02%, 장기적으로 5.66% 높아지는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한-미 FTA가 발효된 첫해인 지난해 실질 GDP는 전년 대비 2.0% 성장하는 데 그쳤다. 전년(3.6%)보다 성장률이 더 떨어진 것이다. 세계적인 경기 둔화로 수출과 내수가 함께 얼어붙은 탓이었다. ‘2.0%’ 성적표에 한-미 FTA가 어느 정도나 기여했는지를 정확히 따져보기란 불가능하지만, 경기가 구조적으로 위축될 때는 정부의 기대와 달리 한-미 FTA도 만병통치약이 돼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결과다.


가장 기대를 걸었던 교역 분야도 영 신통치 않다. 한-미 FTA가 발효된 이후인 지난해 4월부터 지난 1월까지 10개월 동안 한국은 미국에 478억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전년 동기 대비 0.2% 정도 늘어난 규모다. 같은 기간 한국의 총수출량이 1.4%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선방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부 목표치에는 크게 못 미친다. 정부는 FTA 발효 이후 15년 동안 대미 수출이 연평균 12억9천만달러씩 불어나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지난 10개월 동안 전년 동기 대비 증가한 수출액은 1억1천만달러에 불과했다. FTA가 발효 초기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전망치와의 격차가 너무 크다. 다만 우려와 달리 수입액도 줄었다. 지난 10개월 동안 한국의 수입액은 전년 동기 대비 31억7천만달러 감소했다. 역시 수입액이 연평균 11억5천만달러씩 증가할 것이란 전망치에 크게 어긋난다.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정부 전망치에 근접했다. 지난해 4월부터 12월 말까지 9개월 동안 외국인직접투자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22억달러 늘었다. 9개월간의 실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가 기대한 범위(연평균 추가 유입액·22억~32억달러)에 들어간다.

그나마 상품교역이나 외국인투자 부문은 정부가 효과를 자신해온 분야다. 아직 통계가 집계되지 않은 서비스 등 취약 부문에선 오히려 수지가 악화됐으리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그런 경제적 효과는 거의 없었다. 반면 서비스 수지 등은 악화됐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정부가 (한-미FTA를 발효하려고) 과도한 장밋빛 전망으로 국민 여론을 호도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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