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줄기세포] 서울대병원으로 돌아온 ‘잊지말자 황우석’ 저자 이형기 교수




“우리나라 임상시험에 글로벌한 지표 제시하겠다”

서울대병원으로 돌아온 ‘잊지말자 황우석’ 저자 이형기 교수









이형기 교수가 지난 9월 1일자로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에 부임했다. 글로벌전략기획실장이자 임상약리학교실 겸임 교수 자격이다. 이형기 교수의 귀국은 어떤 의미로든 한국사회에 긴장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이형기 교수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위촉으로 임상시험 및 의약품 허가 관련 규정을 개정하는 작업에 참여했던 경험(1998년~1999년)과 2000년 1월 미국으로 건너가 미 FDA에서 의학자료심의요원으로 다국적제약회사의 신약신청자료를 심의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2005년 을 출간, 식약청의 개혁을 촉구했으며 2005년 대한민국을 휩쓴 황우석 사태에서는 황 교수의 연구윤리를 정면으로 거론하며 ‘정상적인 해결’에 한축을 담당했고 2년 후 <잊지말자 황우석>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다시 한 번 사건을 말끔하게 정리하기도 했다. 그 후에도 인터넷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제약회사(옮긴이 주 : 종근당, 한국MSD)와 미국의대 약리학교실에서 일하며 임상약리학, 의약품개발과학, 규제과학, 약물 역학, 수리약리학 등을 연구해온 그가 서울대 임상시험센터에 자리를 잡음으로 해서 서울대는 임상시험연구에 한층 박차를 가하게 됐다. 또한 그는 지난 5년간 감춰뒀던 펜을 다시 꺼낼 예정이다. 본지에 한 달에 한 번 기명 칼럼을 게재하기로 한 것. 13년 동안의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를 만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었다.


Q. 13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일하게 됐다. 한 달쯤 됐는데 어떤가.


- 그 동안 한국이 너무 빠르게 변해서 마치 어린아이가 된 느낌이다. 한국에서 산 세월이 더 긴데 무슨 걱정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더라. 얼마 전 연구회에 강의를 갔는데 강의 들은 친구가 슬라이드를 영어로 다 만들지 말고, ‘컴퓨러’말고 ‘컴퓨터’라고 발음하라고 조언해준 게 약간은 상징적인 예인 것 같다. 앞으로 한국 정서에 맞게 많은 부분 순응하며 살아야한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버겁기도 하다. 귀국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 정체성도 유지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잘 스며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할 것 같다. 시간은 좀 걸릴 것 같다.


Q. 모교로 발령을 받았는데 감회가 어떤지.


- 나는 서울대에 교수로 올 정도로 아카데미즘이 강한 사람이 아니다. 나 스스로도 내 아이덴티티가 뭘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임상의사이기도 하고 기초연구도 했고 기업에도 있었고, 미국에 가서야 학교에서 13년 쯤 있었지만 거기서 엄청난 학문적 업적을 쌓아서 오게 된 것도 아니니까.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미국에서 경험했던 의약품 개발, 임상연구, 신약개발 이런 분야에 대한 국내적 관심이 그동안 엄청나게 늘었다. 예전에는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많은 에너지를 써야했는데 이젠 내가 해온 분야를 인정하고 심지어는 IT 이후 한국 미래를 책임져야하는 사업이라고까지 말한다. 미국에 갈 때만 해도 우리는 언제쯤 이런 것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젠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투자도 한다고 하고 인프라도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반갑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임상 연구 관련해서 국가에서 5~6년간 집중 투자를 해왔고 앞으로 더 많이 한다고 하는데 매우 적절한 시기에 돌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Q. 글로벌전략기획실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데 서울대 측에서 대단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 임상시험센터의 글로벌전략기획실장이다. 내가 떠났던 1990년대 말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인 인프라가 많이 개선됐다. <식약청 vs. FDA> 같은 책에서는 한국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많이 보였는데, 현재 한국 식약청은 동북아 지역에서 가장 성공적인 규제기관으로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대병원에서도 이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Q. 병원이나 학교 측에서 기대하는 바가 있을 것 같다.


- 내가 경험했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글로벌한 관점을 제공해주기를 원하는 것 같다. 임상약리학 팀에서는 기업과 함께 스터디나 회의, 컨퍼런스 등도 많이 하는데 그런 자리에서 나만의 관점을 전하고 있다.


제약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이나 외부적 시선을 견지할 수 있으니까 다른 입장을 알 수 있고 외연이 확장된다는 장점이 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르게 보는 법을 체득한 것 같다. 그것을 이번에 알고 나 스스로도 놀랐다. 학교에만 있던 사람은 경험하지 못한 국외자의 입장을 알 수 있을 테니 그런 부분에서 내가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이 동북아 지역 임상시험의 허브로 떠오르고 있지만 물량 등의 부분에서 중국, 인도 등에 뒤진다. 새로운 틈새를 찾아야 하는데 중개연구에서 그 가능성을 본다. 서울대 연구진들은 연구에는 뛰어나지만 다음 단계, 즉 의약품 개발로 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 경험, 역량이 필요하다. 준비가 잘 돼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잘 조정하고 필요한 자원을 연결하는 등 매개 역할을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예전에는 학문적 수준이 높은 서울대에서는 나 같은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은 발붙이기 힘들었다. 내가 여기 온 것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Q. 한국에 돌아와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나.


- 한계라는 생각이 들더라. 30대 중반에 처음 미국에 갔을 때는 열심히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고, 대학에서 교수로 일할 기회도 잡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일이 별로 재미없어졌다. 같은 노력을 하면 미국에는 임팩트가 없지만 한국에서는 그 이상의 파장이 오지 않을까 싶다. 미국은 이미 모든 것이 잘 짜인 상태니까. 좀 지치기도 했고.


세 번째 이유가 가장 중요한데, 한국에서 내 분야를 바라보는 시각이 학계에서도 호의적으로 바뀌고 정부의 변화 속도도 빨라서 뭔가 방향과 시점만 잘 잡아주면 폭발할 ‘티핑 포인트’를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


Q. 이런 결정에 영향을 받은 요소가 있다면.


- 세계은행 김용 총재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평생 무엇이 되겠다가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면 타이틀은 저절로 따라왔다”는 얘기를 하더라.


일반적으로 타이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을 할 것인지를 먼저 고민하고 관심을 가지면 다른 것이 따라온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또 피터 드러커는 “지식을 생산하고 활용해서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지식근로자들은 직업 선택에서 무엇을 하면 세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아야한다”고 말했다. 그 말의 의미가 점점 크게 다가온다.


내가 지금까지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이용해서 사회를 위해 ‘save(기여)’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다는 생각이 든다.


35살 때, ‘좋은 의약품을 개발하고 그것을 적절히 활용하는 필요한 네트워크, 경험, 지식 등을 국내 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쌓고 그것을 재창조하고 종합하고 나누면서 인류 복지에 기여하고 싶다’는 인생목표를 세운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오글거리지만 그렇게 생각을 글로 쓰면서 조금씩 형체를 갖추지 않았나 싶다. 그런 방향으로 조금씩 다가온것 같다.


Q.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은.


- 네이처에 논문을 쓰는 훌륭한 학자가 되는 것은 1차적 관심이 아니다. 물론 학교에 남기 위해서는 논문도 써야겠지만, 하하. IT 산업이나 생명과학을 두고 국부 창출이니 먹거리니 하는 즉물적인 표현을 쓰지만 그것이 화두이기도 하니까 기여하고 싶다. 한국에서 남은 10년 동안 하고 싶은 일이다. 지금 가진 타이틀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방향을 갖고 리더십을 발휘하고 싶다.


Q. 황우석 사태를 비롯해 사회적 모순을 지적하는 일에 거침없던 때가 있었다. 2007년 쯤 갑자기 칼럼 쓰는 것을 그만뒀는데.


- 지상논쟁을 하곤 했었다. 당시에는 별로 쓴 소리라 생각하지 않은데 반응들이 컸다. 그런 걸 보면 싸움꾼 기질이 좀 있나보다. 논쟁이 붙으면 이 논쟁에서 절대 밀릴 수 없다고 발끈하는 성향이 있기도 하다. 지금은 안 그럴 것 같은데. 2008년 이후 글을 그만 쓰기로 했다. 글이 충분히 숙성돼서 쌓여야하는데 내가 쓰는 글에 그런 생명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바에는 그만 두고 침잠해야겠다고 마음 먹었고 그러다보니 오랫동안 수면 아래 있게 됐다.


Q. 본지에 기명 칼럼을 연재하게 됐는데.


- 예전에는 밖에 있어서 휙 질러 놓고 도망가면 됐지만(하하) 이젠 몸을 좀 사려야할 것 같다. 고정 칼럼을 써 달라는 의뢰를 받고 제목을 고민하는데 ‘좌충우돌’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근무한 지 3~4주차일 때였는데 “이제 좌충우돌하면서 살아야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가보다. 그만큼 서툴고 하나하나 배워나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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