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의사는 의료산업 도구였을 뿐”(한겨레 이코노미인사이트 10월1일자)

한겨레 이코노미인사이트 2011년 10월 1일자. 

출처: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930

“의사는 의료산업 도구였을 뿐”
[Issue]의료 오·남용에 맞서는 의사들- ① 오·남용 폐해에 눈뜨다
[18호] 2011년 10월 01일 (토) 요르크 블레히  economyinsight@hani.co.kr

요르크 블레히 Jorg Blech <슈피겔> 기자
 

   
지난 7월15일 페루의 수도 리마 인근 푸쿠사나에서 한 인부가 2008년 이후 압수된 약 22t의 가짜 약품과 유통기한이 지난 의약품을 폐기처분하기 위해 옮기고 있다. 유럽을 비롯해 많은 나라들에서 약물 오·남용 문제가 심각하다.

뮌헨에 사는 에른스트 쾨니크(88)는 의사를 만나러 갈 때마다 약을 더 많이 처방받았다. 알로퓨리놀, 에제티미브, 몰시도민, 레파글리니드…. 마지막에는 매일 12개나 되는 알약을 삼켜야 했다.
“나는 의사의 처방을 들으면 금세 의사가 왜 나한테 이 약을 먹으라고 했는지 기억할 수 없었소.”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에 검버섯이 뒤덮인 얼굴의 쾨니크는 힘겹게 말을 마친 뒤 침대 옆 좁은 탁자의 서랍 속에서 쪽지 한 장을 꺼냈다. 쪽지에는 그의 단정한 글씨로 몇 시에 어떤 약을 먹어야 하는지 순서대로 써 있었다.
하지만 쾨니크는 이 목록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됐다. 얼마 전 그가 뮌헨을 떠나 딸이 사는 오버팔츠로 이사해 주치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환자가 복용 중인 약의 목록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쾨니크의 새 주치의인 니텐도르프 지역의 보건의 프레데리크 마더(40)가 폴로 셔츠에 운동화를 신은 모습으로 나타나 진료가방을 내려놓으며 한 말이다. “약 중에 절반은 쾨니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건강을 해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쾨니크의 약 목록에서 노인성 당뇨 치료제, 통풍 치료약으로 쓰이는 혈액 희석제, 항동맥경화제, 콜레스테롤 억제제, 전립선암 호르몬 주사 처방을 삭제했다. 이 약들을 줄여 쾨니히가 겪을 수 있는 메스꺼움, 어지러움, 두통, 설사, 간 손상, 위궤양 등의 부작용을 없앴다.
 
의약품 오·남용이 각종 질병 만들어내
슈바벤 지역의 모싱겐에 사는 에벨린 흘루히(59) 부인이 정형외과를 방문했다. 의사는 그녀의 왼쪽 무릎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내시경을 관절에 삽입하고, 연골을 깎아내고, 생리식염수로 세척했다. 
하지만 흘루히 부인에게 이런 수술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됐다. “통증은 여전했어요.” 그러자 의사는 2차 수술을 권유했다. 무릎을 절개하고, 보형물을 삽입하는 수술이었다. 
인공관절치환수술을 하는 대신 흘루히 부인은 다른 의사를 찾아갔다. 그 의사는 “연골이 많이 남아 있고, 인대도 아직 멀쩡하다”고 말했다. 흘루히 부인의 새 주치의인 하이델베르크에 거주하는 외과의 한스 패슬러(71)는 수술하지 않는 치료법으로 부인의 무릎 통증을 성공적으로 완치시켰다. 그는 “나이 많은 부인의 무릎을 수술하는 것은 아주 바보 같은 짓”이라고 했다.
에벨린 흘루히 부인과 에른스트 쾨니크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의학과 산업의 복잡한 구조 안에서 지금까지 치료를 축소하는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환자들은 약품 처방을 줄이거나 수술을 권하지 않는 의사를 만나는 일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과잉 치료와의 전쟁’을 선포한 사람들은 동종요법, 자연요법 등 대안의학의 추종자가 아니다. 전쟁 선포자들 중에는 현대의 의학기술과 약물치료가 인류의 생명을 연장하고 더 건강하게 살도록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다만, 그들은 이 ‘선한 도구’를 과잉 사용하면서 나타나는 폐해를 지적할 뿐이다.
 
“치료가 사람을 병들게 한다” 느껴
니텐도르프의 프레데리크 마더는 한 치도 벗어남이 없는 주류 의학 신봉자이자 제3세대 의사다. “내가 처음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의대생들의 목표는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최저로 낮추는 데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의료 진료소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경험이 쌓일수록 마더는 치료가 오히려 사람을 병들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이델베르크의 한스 패슬러는 정형의학의 기득권층에 속하는 의학교수인데, 절대 수술 반대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유명한 스포츠 스타인 테니스 선수 슈테피 그라프를 진료하고, 축구 선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수술을 집도했을 뿐 아니라, 러시아의 백만장자들부터 독일 전역의 각종 의료보험 피보험자까지 수많은 사람을 치료했다.
하지만 그는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의미 없는 수술의 희생자가 된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외과의가 통증의 원인도 아닌 반월판(포유류의 심장에 있는 혈액 역류 방지용 판의 하나)을 절제하거나, 그의 견해에 따르면 병리학적 의의가 전혀 없는 플라이카(Plicae·무릎 내 점막 주름)를 떼어낸 경우도 있었다.
패슬러는 자신이 과잉 진료에 반대하는 활동에 나선 데 대해 “환자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직 의사에게만 이득이 되는 수술이 행해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다른 전문의학 분야의 동료들에게 이야기하자 동료들도 비슷한 내용의 무시무시한 사례를 말해주었다. 전문의들은 무릎·어깨·손·허리·척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과잉 치료가 빈번하게 벌어진다고 했다. 패슬러는 “의사들이 이 문제에 대해 동료 의사를 훈육하기는 힘든다”며 특별한 캠페인을 통해 환자들과 직접 접하고 있다. 그는 지난 8월15일 월요일, 주임의사 11명과 함께 불필요한 수술을 방지하기 위한 새로운 조기 경보 시스템 ‘수술 조심!’을 열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는 수술 권유를 받은 환자들이 인터넷 포털을 통해 다른 의사의 소견을 받아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화면에 나타나는 질문에 답한 뒤 X레이 사진,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사진, 진료보고서와 다른 정보들을 디지털 데이터 형식으로 전송하면 패슬러와 그의 동료들이 기록을 검토해 2주 안에 예정된 수술을 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의학 분야 전반에 걸쳐 의사들은 새로운 예방, 즉 ‘과잉 치료에 대한 예방’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의학 전문 잡지 <아카이브스 오브 인터널 메디신>은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Less is more)라는 제목으로 고정란을 신설했다. 여기에는 암 유발 가능성이 있는 CT 촬영, 노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위장관 삽입 등에 관한 기사가 20여 회 실렸다. 
쾰른 보건품질경제성 연구소 연구소장인 위르겐 빈델러(54) 의학박사는 이런 움직임이 아직 새롭겠지만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할 수는 없어요. 진짜 중요한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의사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쿠데타나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의사와 의약품 생산자들은 의학의 영향력을 계속 확장하기만 했다. 제약업체 직원들은 질병과 위험성을 창조해 건강한 사람들을 그들 제품의 소비자로 변화시켰다. 알약과 다른 의약기구로 올리는 수익은 그대로 공공의료보험의 부담이 되었고, 20년 새 2배가 넘는 증가율을 보여 수익액이 약 300억유로에 이르게 됐다.
 
보건 비용, 해마다 기록 경신

   
 

오늘날 독일 의사들은 어떤 시대보다 더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 통계에 집계된 ‘수술과 치료 과정’ 횟수는 2005년 3600만 번에서 2009년 4500만 번으로 증가했다. 2009년 2780억유로에 달한 보건 비용이 매해 새로운 최고 수치를 기록한다.
“너 자신에게 시행할 생각이 있는 수술만 하라!” 위대한 외과의 테오도르 빌로트(1829∼94)의 이 유명한 말을 기억하는 의사는 오늘날 많지 않은 듯하다. 병원의 경영자나 소유주가 판단하는 수익성에 따라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외상 외과의이자 뮌헨기술대학 이자르강 우측 병원의 의료원장인 라이너 그라딩거는 “진찰 혹은 치료 과정이 치료비를 기반으로 결정되는 일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독일 공공의료보험공단(AOK) 가입자 중 디스크 수술을 한 사람이 3년 만에 28% 늘었다.
인공 고관절과 무릎 관절 시술에서도 독일 의사들은 매번 새로운 기록을 달성한다. 고관절 수술은 2003∼2009년 18% 증가했고, 무릎 수술은 52% 증가했다. 사회의 고령화 현상만으로는 이런 증가율을 설명할 수 없다.
의학적 견해에 의하면, 뼈와 살에 톱질을 하고 절단하는 조치는 그 효과에 대한 이의 제기가 많다. 외과 시술 중 단 15%만 그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즉, 7번 중 6번은 그 시술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아직 증명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좋은 소식은 많은 외과의들이 더 이상 이런 상황을 감수하지 않고 의심스러운 수술 방법을 검증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척추체 성형술 연구조사에서 밝혀진 것처럼 매우 냉정하다. 척추체 성형술에서 의사는 뼈 시멘트를 척추의 연골에 주사해 척추를 굳힌다. 상당히 그럴싸한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척추체 성형술을 플라세보 수술과 비교한 2개의 독립적인 연구조사에서 의사들은 결과적으로 아무런 차이도 확인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의미 없는 치료로 판명된 것은 앞에서 흘루히 부인에게 시술된 일명 ‘무릎관절 세척’ 치료다. 내시경 기구로 연골을 펴고 무릎을 세척한다. 역시 그럴듯한 이야기다. 하지만 비교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무릎 세척 역시 그냥 수술하는 척만 한 플라세보 치료보다 만성 통증 치료에 더 나은 효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전세계의 의사들은 첫 번째 결과를 고집스럽게 무시했다. 두 번째 비교연구에서 마찬가지 결과가 나온 뒤에야 비로소 움직임이 있었다. 예를 들어 미국 정형외과 학회의 의사들은 그들의 가이드라인을 수정해 최근 논쟁되는 무릎 세척 치료를 만류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무릎 치료 방법에 대해 논의가 있었지만, 그 논쟁을 무시하고 독일 정형외과의들은 매년 50만 회 시술을 한다. 그중 많은 수가 쓸모없는 짓에 불과하다고 패슬러 박사는 걱정한다. 그는 “많은 의사들이 과학적 증거를 그냥 무시해버린다”고 비판하면서, 그래서 “이 의미 없는 수술에 위협받는 환자와 직접적으로 소통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했다. 
ⓒ Der Spiegel·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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