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구제역] 매뉴얼만 따르라는 과학적 거짓말

매뉴얼만 따르라는 과학적 거짓말  
[특집] 매몰지 2753곳 중 지침 따른 현황 카드는 단 12개…
정부는 현실 외면한 채 “매뉴얼대로 하면 침출수 오염 없다” 공염불만

출처 : 한겨레21 [2011.03.18 제852호] 
http://h21.hani.co.kr/arti/spe cial/spe cial_general/29202.html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로 전 국토가 ‘가축 공동묘지’로 변해버렸다. 구제역으로 농장 6200곳에서 346만 마리가 넘는 우제류가 매몰됐다. AI로 농장 264곳에서 600만 수가 넘는 조류가 매몰됐다. 2004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구제역과 AI로 조성된 매몰지는 1200곳에 이른다.


“침출수 오염, 20년 이상 나타날 수도”



정부는 환경부 토양지하수 정보시스템과 국토부 국가지하수종합정보시스템을 연계적으로 활용해 매몰지 환경영향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미 전국 지형도 위에 136만 개 지하수 관정 위치, 관련 시설 정보, 이용 현황 등의 자료를 구축해놓았는데, 이 자료에다 위성항법장치(GPS)를 활용한 매몰지 위치 정보와 주변 지하수 수질 정보 등을 통합해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세부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다. 이에 반발한 네티즌은 인터넷에 자발적으로 ‘전국 구제역 매몰지 협업지도’를 만들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도 ‘구제역·조류인플루엔자(AI) 오염가축 매몰지 정보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해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구제역 매몰지 정보 공개 논란을 해결하려면 국민의 알 권리와 환경보호라는 공익, 매몰 지역 지가 하락과 주민들의 신원 노출 피해 등 사익을 어떻게 적절하게 조화시킬 것인가라는 복잡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동안 정부의 매몰지 관리 실태를 평가해봤을 때, 정부가 매몰지 정보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방침은 대중적 설득력을 잃어 정부에 대한 불신만 높일 것이다.


구제역·AI 같은 가축전염병으로 사체를 매몰한 지역은 3년 동안 발굴을 금지하고 있으며, 그 기간에 매몰지 사용도 금지돼 있다. 그러나 2008년 서울시립대의 환경부 용역보고서는 매몰지 사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충격적인 실태를 전한다. 대부분의 매몰지에서 발굴 금지 표지판이 쓰러져 있었고, 매몰지 상부에 성토를 하게 돼 있는 규정을 무시해 매몰지를 다른 지역과 구분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매몰지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는 경우도 있었다.
매몰지의 환경오염 피해는 장기간에 걸쳐 나타난다. 영국 보건부가 2001년 발표한 ‘가축 매몰이 대중 건강에 미치는 위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침출수가 지하수로 유입되는 일은 20년 이상 나타날 수 있다”.


한국환경공단이 환경부에 제출한 ‘AI 발생 주변지역 환경영향 조사 최종 보고서’를 보더라도 침출수 문제는 심각하다. 2004년∼2010년 5월에 조성된 가축 매몰지 23곳을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했는데, 매몰지 8곳(34.8%)에서 침출수가 유출돼 인근의 지하수와 토양을 오염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침출수가 새어나온 곳은 오래된 매몰지일수록 더 심했다. 2010년 매몰지는 8곳 중 1곳(13%), 2008년 매몰지는 10곳 중 3곳(30%), 2007년 매몰지는 3곳 중 2곳(67%), 2004년 매몰지는 2곳 중 2곳(100%)에서 침출수가 유출됐다. 환경부는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이 용역 보고서를 아직까지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자료 보완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국회에조차 제출하지 않고 있다.



매몰지 10곳 중 3곳에서 침출수 유출



2001년 영국에서는 구제역이 발생해 가축 400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130만 두가 매몰됐고, 나머지는 노천 소각, 이동식 소각로 등의 방식으로 처리했다.


영국의 각 지역 정부는 구제역 방역 조처의 일환으로 관광객의 진입을 차단했다. 또 언론을 통해 소각이나 매몰 등 살처분 장면, 살처분을 기다리는 가축 모습이 보도되면서 자국민과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영국 관광업 수입은 농업 수입의 4배 규모였는데, 구제역 피해가 심했던 캄브리아·데본 지역은 관광 수입이 80%나 감소했다.


 


2004년∼2010년 5월에 조성된 가축 매몰지 23곳을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했는데, 매몰지 8곳(34.8%)에서 침출수가 유출돼 인근의 지하수와 토양을 오염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환경부는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이 용역 보고서를 아직까지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구제역과 AI가 발생하지 않은 지역이 제주도를 제외하고 거의 없는 상황이다. 구제역 방역 대책으로 도로에서 무차별적인 차량 분무 소독이 이뤄졌고 지역축제가 잇달아 취소됐다. 살처분 지침을 지키지 않고 가축을 생매장하는 끔찍한 장면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앞으로 구제역이 종식되더라도 농촌 경관을 해치는 매몰지의 흉물스러운 모습은 관광객에게 혐오감을 줄 것이다. 관광객과 소비자는 매몰지 주변에서 생산된 곡물, 채소, 과일, 육류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기피 현상을 보일 것이다. 그 결과 내·외국인 관광객의 농촌체험과 향토축제 참여가 줄어들게 돼 농촌은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대규모 살처분에 따른 대량 매몰 방식은 필연적으로 환경재앙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의 현실 인식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이만의 환경부 장관은 수많은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새나오는 현실을 외면하고 “매뉴얼대로 매몰하면 침출수는 지하수를 오염시킬 수 없다”는 생뚱맞은 주장을 했다. 또한 매몰지 인근 주민들의 침출수 유출 우려에 대해 “현장 주민들은 과학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지 않고, 꺼림칙한 정서로 말한다”며 폄훼했다.


국회에 보고된 자료에 따르면, 2753곳 중에서 환경부 환경관리지침 7개 항목에 따라 제대로 기입한 매몰지 현황 카드는 단 12개에 불과했다. 그뿐 아니다. 침출수가 새나가지 않도록 둘러치는 비닐이 아예 없거나 찢어져버린 곳, 돼지를 안락사도 시키지 않고 생매장해버린 사례가 한두 건이 아니다. 환경부 용역 보고서에서도 지난 6년간 조성된 매몰지 10곳 중 3곳 이상에서 침출수가 유출됐다고 밝혔다.


환경부 매뉴얼에 따르면 매몰한 날부터 최소 15일 이상 주 2~3회, 이후 6개월간 월 1회, 이후 3년까지 연 2회씩 매몰지를 점검해야 하며, 매몰지의 침출수 수질 조사를 3년 이내 연 2~3회, 3년 초과 연 1회씩 실시해야 한다. 환경부 장관은 반드시 매몰지를 점검 기록하고 그 기록을 국회와 국민에게 공개해야 마땅하다.


국내외 학계에서는 전염병으로 살처분된 가축 사체 처리 방법으로 매몰, 소각, 렌더링, 혐기성 분해, 퇴비화, 알칼리 가수분해, 젖산발효 등 여러 가지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방법들은 사후약방문일 뿐이다. 환경오염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축이 전염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국내 발생 바이러스 이용한 백신 개발 시급



앞으로 최소한 2~3년 이상은 전국적인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백신은 이번에 국내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를 이용해 동종 예방백신 균주를 만들어 백신을 제조하는 것이다. 이 방식으로 백신을 제조하려면 최소한 3~4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국내에서 백신을 생산하는 것은 기술력과 생산시설의 한계 때문에 향후 1~2년 내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비상 상황에서는 바이러스 염기서열이 가장 유사한 상업용 이종 백신주를 골라서 긴급 예방접종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이종 백신주는 국내 발생 바이러스와 유전자 염기서열이 639개 중에서 105개나 일치하지 않는다. 미래를 내다보는 준비성 높은 정부라면 전국 백신 접종을 결정할 시점에 국내 발생주를 이용한 동종 백신을 주문해 6개월 뒤의 추가 접종에 대비했어야 마땅하다. 전염병은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하며, 환경오염도 사후 치유보다는 사전 예방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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