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구제역] ‘농업 포퓰리즘’ 앞에 정부도 국민도 약해졌다(중앙일보)

‘농업 포퓰리즘’ 앞에 정부도 국민도 약해졌다
구제역 100일의 반성 <상> 구제역 대재앙, 국가의 실패다

[중앙일보] 입력 2011.03.09 00:18 / 수정 2011.03.09 05:37

제도의 실패


◆이원화된 방역 체계=“왜 검역원에 연락 안 했느냐고요? 연락했다가 음성이면요.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합니까.”


 매뉴얼대로 수의과학검역원에 검사를 요청하지 않은 경북 가축위생시험소 방역 직원의 항변이다. 구제역 검사 요청은 간단치 않다. ▶농식품부 보고 ▶이동제한 조치 ▶언론 공표의 절차가 곧바로 이어진다. 검사 요청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해 1월 포천 구제역도 신고→자체 검사→뒤늦은 검사 요청 및 확진으로 안동과 닮은 꼴이다. 전문가들이 “이 정도면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하는 이유다. 중앙(국립수의과학검역원)과 지역(지방 가축위생시험소)으로 이원화된 방역 체계가 문제라는 얘기다. 서울대 수의학과 박용호 교수는 “검역원은 농식품부 산하이고, 시험소는 지자체 소속이어서 보고 체계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김옥경 교수는 “ 효과적인 방역을 위해서는 방역의 중앙 집권화와 지자체의 협조가 모두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현장 없는 매뉴얼=양돈 수의사 모임의 한 수의사는 “구제역 매뉴얼은 초기 상황만 기록했다”고 지적했다. 발생 가능한 돌발상황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소독기가 얼어붙어 작동하지 않았는데도 공무원들은 매뉴얼만 고집했다. 다른 수의사는 “매뉴얼 기준(수원지로부터 최소 30m 이상 이격)을 맞추는 매몰지를 찾기가 너무 어렵다”며 “매몰지 찾느라 사나흘을 허비했다”고 전했다. 그는 “분뇨를 쌓아놓은 채로 손을 놓고 있는 농가도 많았다”고 말했다.




관리의 실패


◆방역 시계는 거꾸로 간다=2216마리 vs 347만3583마리. 2000년 3월과 최근 발생한 구제역으로 매몰된 가축 수다. 10년 전엔 지금의 6.3%에 불과한 가축만 희생시키고 구제역을 잡았다. 방역 시계가 거꾸로 흐른 셈이다. 과거 성공엔 어떤 비결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검사 체계 숙지 ▶신속한 인력 투입 ▶전국적 긴장감을 원인으로 꼽았다. 두 번 모두 구제역 의심 신고가 접수된 뒤 지역 가축위생시험소가 시료를 채취해 즉시 국립수의과학검역원으로 보냈다. 신고부터 확진까지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


 살처분 및 방역도 달랐다. 군 병력을 동원해 신속하게 움직였다. 2000년 역학조사위원장을 맡았던 건국대 김순재(78) 명예교수는 “당시 농림부 장관이 지휘하면 군 병력이 즉각 동원됐다”며 “이번엔 방역 공무원만으로 막아보려다 사태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구제역 백서』가 2003년 발간됐지만 실천은 전무했다. 충북대 수의과대 김옥경(66) 외래교수는 “2000년엔 온 나라가 긴장하고 방역에 나섰다”며 “지난 1년 사이 구제역이 세 차례나 터지며 긴장감이 떨어진 것 같다”고 진단했다.


◆농업 포퓰리즘은 안 된다=농림수산식품부의 한 전직 관리는 “2008년 촛불시위 직후 사료구입자금으로 2년간 2조5000억원을 연리 1%로 지원했다. 대출자금 조성금리는 4~5% 정도다. 이자 차이가 얼추 1000억원은 된다. 당시 축산농가는 자금사정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농업 포퓰리즘에 세금만 낭비된 셈”이라고 비판했다.


◆방역 인력 태부족=‘한우 3만, 돼지 6만, 닭 196만 마리’. 경북 가축위생시험소의 수의사 1명이 책임지고 있는 가축 규모다. 관할 6개 시·군의 축산 규모는 2000년 582만여 마리에서 지난해 1025만여 마리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반면 수의사는 5명으로 한 명 늘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주이석 질병방역부장은 “인력 부족 탓에 검사 기술이나 대응 매뉴얼이 개선돼도 이를 숙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농업 포퓰리즘=농민과 농업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태도를 취하는 현상. ‘농민의 자식’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오랜 정서가 깔려 있다. 농민에 대한 ‘과도하거나 비합리적인 특혜 조치’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발병 숨기고 매몰 가축 수 부풀리고



농민·국민의 실패


일부 농민들 도덕적 해이 심각


언론의 온정주의 보도도 문제

“살처분한 뒤 ‘몇 마리 묻었다’고 신고하고 이장이 서명하면 그 자체로 보상 근거가 된다. 상당수 축산농가가 매몰 가축 수를 부풀려 신고했다.”


 한 지방의회 의원의 귀띔이다. 일부 축산농가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증거다. 특히 기업형 축산농가에서 이런 일이 많았다고 의원은 전했다. 공무원이 일일이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명백한 세금 낭비다.


 농수산식품부의 한 관리는 "감염 농가의 농장주가 공동방역단을 구성했다고 자랑하더라”고 전했다. 격리돼야 할 농장주가 돌아다니는 게 말이 되느냐는 얘기다. 이 관리는 “구제역 농장주들이 시내에 모여 보상금 문제를 협의하기도 한다. 방역의 기본조차 안 돼 있다”고 개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수의학자는 “몇몇 기업형 축산농이 문제다. 전업농은 가족 전체가 자식처럼 가축을 돌보지만 기업농은 대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다. 위생이 형편없다”고 지적했다. 일부 축산농가의 도덕적 해이와 관리 부실이 구제역을 낳고 키운 요인의 하나라는 지적이다.


 농가 피해만 부각시킨 일부 언론도 문제다. 이는 일부 농가의 살처분 반발과 보상비 상향 지급 요구를 낳는 요인이 됐다. 매몰을 담당했던 한 공무원은 “‘무슨 죄가 있다고 우리 소를 죽이느냐’며 낫을 들고 달려들거나 ‘보상금을 더 달라’고 떼를 쓰는 경우를 여럿 봤다”고 전했다. 출하를 앞둔 경우 발병 사실을 얼마간 숨기기도 했다고 이 공무원은 귀띔했다.


구제역 얼씬도 못한 동네들 … 비결은


포천 자작동 … 온 주민 똘똘 뭉쳐 방역초소 지켜
예산 고덕면 … 감염 경로 짚어가며 과학적 방역

구제역 대재앙도 비켜간 곳이 있다. 동네 주민이 똘똘 뭉쳐 철저하게 방역한 동네다.

 24가구에서 소 1250마리를 기르는 경기도 포천시 자작동. 이 마을은 살처분 농가가 수두룩한 포천시에 있다. 마을 앞 도로는 교통량 많은 43번 국도와 연결돼 있다. 방역초소 통과 차량만 하루 4000대다. 구제역 전파지로선 ‘이상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구제역 바이러스는 들어오지 못했다.

 방역단을 이끈 농장주 송충석(47)씨는 “추위, 바이러스, 밀려드는 차량과의 끝없는 싸움이었다”고 지난 전쟁을 회고했다. 지난해 12월 20일 구제역 확산 추세가 심상치 않자 곧바로 초소를 꾸렸다. 차량 감지 센서를 단 소독 시설과 초소, 방역복 등을 준비하고 오가는 차량마다 예외 없이 소독했다. 문제는 추위였다. 주민 양현태(58)씨는 “강추위 때는 돌아서면 살얼음이 차오르는 게 보일 정도였다”며 “잠시도 쉬지 않고 삽으로 살얼음을 퍼냈고, 얼음이 두꺼워지면 포클레인으로 깨 가면서도 소독을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충남 예산군 고덕면은 과학적인 방역으로 성공한 사례다. 돼지 2000여 마리를 키우는 수의사 출신 농장주 한병우(53)씨는 “무작정 소독약만 뿌려서는 안 된다. 감염 경로를 잘 짚어 차단 방역을 하는 게 핵심이다”고 소개했다. 제주도 서귀포 봉영농장의 고봉석 대표도 “꼼꼼하게 방역했다. 외부인의 출입은 물론 농가끼리의 모임도 차단했다”고 전했다.
구제역 대재앙도 비켜간 곳이 있다. 동네 주민이 똘똘 뭉쳐 철저하게 방역한 동네다.

 24가구에서 소 1250마리를 기르는 경기도 포천시 자작동. 이 마을은 살처분 농가가 수두룩한 포천시에 있다. 마을 앞 도로는 교통량 많은 43번 국도와 연결돼 있다. 방역초소 통과 차량만 하루 4000대다. 구제역 전파지로선 ‘이상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구제역 바이러스는 들어오지 못했다.

 방역단을 이끈 농장주 송충석(47)씨는 “추위, 바이러스, 밀려드는 차량과의 끝없는 싸움이었다”고 지난 전쟁을 회고했다. 지난해 12월 20일 구제역 확산 추세가 심상치 않자 곧바로 초소를 꾸렸다. 차량 감지 센서를 단 소독 시설과 초소, 방역복 등을 준비하고 오가는 차량마다 예외 없이 소독했다. 문제는 추위였다. 주민 양현태(58)씨는 “강추위 때는 돌아서면 살얼음이 차오르는 게 보일 정도였다”며 “잠시도 쉬지 않고 삽으로 살얼음을 퍼냈고, 얼음이 두꺼워지면 포클레인으로 깨 가면서도 소독을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충남 예산군 고덕면은 과학적인 방역으로 성공한 사례다. 돼지 2000여 마리를 키우는 수의사 출신 농장주 한병우(53)씨는 “무작정 소독약만 뿌려서는 안 된다. 감염 경로를 잘 짚어 차단 방역을 하는 게 핵심이다”고 소개했다. 제주도 서귀포 봉영농장의 고봉석 대표도 “꼼꼼하게 방역했다. 외부인의 출입은 물론 농가끼리의 모임도 차단했다”고 전했다.

◆특별취재팀 = 진세근·이승녕·임미진·허진·채윤경 기자, 박종권 선임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