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구제역] 살처분 일지(윤후덕 민주당 파주지역위원장)

“돼지 수천마리가 발광…개울 옆에도 그냥 묻었어요”
[살처분 일지] “침출수는 지하수로 들어간다. 여름에 어쩔지…”

프레시안 기사입력 2011-02-11 오전 8:48:28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10210183757&section=03

“비닐은 찢어지지 않을 수가 없지요. 100kg이 훨씬 넘는 산 돼지 수백, 수천 마리가 안 죽으려고 좁은 구덩이에서 발광을 하는데 비닐이 무슨 수로 남아나겠습니까? 찢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전면이 벗겨지고 말지요. 그냥 전후좌우로 침출수가 땅으로 지하수로 빨려 들어가겠지요.…무덤을 파다보면 물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지요. 그냥 묻었지요. 개울 옆인 경우도 있었어요. 여름에 어쩔지 걱정입니다.”


한 포클레인 기사가 윤후덕 민주당 파주지역위원장에게 한 말이다. 구제역 확산 속도가 주춤해졌지만 매몰지에서의 2차 오염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매몰 가축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돼지의 경우 생매장을 해 매몰과정에서의 매몰지 훼손이 심각한 상태다. 매몰지도 충분한 검토 없이 결정된 곳이 많다.


파주 지역에서 방역·살처분 자원봉사에 나섰던 윤후덕 위원장이 작성한 일지에 적힌 구제역 발생부터 매몰지 선정, 매몰 작업 과정을 보면 이와 같은 우려가 그대로 드러난다.


군에서도 땅을 내주지 않았고, 주민들은 혐오시설이라는 이유로 기피했다고 한다. 매몰지 선정이 늦어져 돼지들은 더 심하게 감염이 됐고, 매몰 과정에도 “그냥 떨어지는 돼지는 없었”고 “방수 비닐은 잠깐 만에 볼품없이 찢겨졌다”고 한다. “비닐이 찢겨진 쪽 모퉁이에서부터 돼지들을 찍어내어 가운데로 몇 번이고 퍼내 살점이 찢기고 뼈가 부서진 돼지들의 비명소리가 웅덩이에서 공명이 돼 산 속으로 찢어져 나간” 처참한 풍경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윤 위원장의 일지 중 살처분·매몰에 관한 부분을 발췌했다. <편집자>

12월 8일 살처분 작업에 들어가다.


농업기술센터로 오전 10시까지 오라는 연락이 왔다. 힘든 작업이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언론보도를 생각났다. 아침을 먹지 않은 빈 속이었다. 하루 종일 힘든 일을 하여야 한다는 생각에 점심식사 전까지 버티려면 뭔가를 먹어두어야 한다. 가는 길에 교하단지 떡집에 들렀다. 먹기 쉬운 종류로 3가지를 급히 샀다. 차에서 꾸역꾸역 배가 든든하도록 떡을 집어넣었다.


농업기술센터에 도착하니 정 사무국장이 먼저 와있었다. 1층의 이 방 저 방을 들러보았다. 누군가를 만나야 살처분 장으로 이동을 받을 테니까. 농협의 여 지부장이 눈에 띄었다. 마침 나를 기다리던 기술센터소장과 함께 뭔가를 심각히 의논하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었다. 상황은 더 심각해져 가고 있었다. 오늘 묻어야 할 곳이 8곳이고 필요한 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들이었다. 소장은 파주읍으로 가서 읍장을 만나 배치를 받으라고 했다. 일일 살처분 계획서 한 장을 복사해 주었다. ‘파주읍 봉서리 돼지농가 1200마리 민주당 4명, 시설관리공단 15명.’ 나는 소장이 복사해준 일일살처분 현황표를 받아 들고 일어섰다. 파주읍 사무소는 최근에 새로 지은 멋들어진 건물이다. 주민 문화공간이 함께 배치된 신형이다. 2층 읍장실로 바로 올라갔다. 늘 듬직하게 주민들을 살피시는 정 읍장은 읍내 살처분 현황과 어려운 점을 내게 설명했다.


“이번 구제역 극복에 군이 너무 도와주지 않는다. 보유한 훈련장 자투리땅도 내놓지 않아 매몰지 구하는데 어려움이 너무 많다.”


“며칠 전에는 매몰지를 구하지 못해 난리가 났는데 기업인 한 분이 선뜻 자기 땅에 묻으라고 땅을 내놓았다. 천신만고 끝에 땅을 확보했는데 인접 주민들이 혐오시설이라는 이유로 반대를 했다. 결국 땅을 내놓은 기업인이 서로 조금씩 도와주지 않으면 이 일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며 설득을 했다. 그래서 간신히 묻을 수 있었다.”


현장으로 가자고 읍장이 일어섰다. 봉서리에 있는 돼지 농가였다. 마을에서는 조금 떨어진 외진 곳에 축사가 있었다. 차를 근방에 세워놓고 눈이 제법 쌓인 좁은 길을 걸어서 농장에 도착했다. 관리공단 직원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파주읍 총무팀장이 작업지시를 하면서 나를 인사를 시키고 인사말을 하게 배려를 해주었다. 정치하는 사람이 어느 모임에서건 소개받고 인사말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왜 그게 정치의 시작이기 때문에….


“오늘 하는 일이 살리는 일이 아니고, 죽이는 일이라 즐거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국가적 재난이고 파주시의 재난이니 봉사하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합시다. 해지기 전에 끝내고 소주라도 한 잔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방역복을 입었다. 신발 위에 조금은 두꺼운 비닐 신발주머니를 신었다.
방역관이 몇가지 설명을 했다.


“작업이 완전히 종료되어 밖에 있는 소독차가 들어와서 여러분들을 소독해주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이곳에서 나갈 수 없습니다. 가능하면 해지기 전에 큰 돼지를 다 처분하고 이어서 작은 돼지를 하겠습니다.”


인원이 부족하다고 읍장에게 팀장이 건의를 했다. 읍장은 읍 직원을 더 보내겠다고 했다.

작업은 오전 10시 반에 시작되었다.


현장의 작업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시간제약이라는 조건을 넣고 살처분에서 발생되는 문제들을 바라보면 대체로 머리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된다.


종돈과 모돈을 먼저 꺼냈다. 말 그대로 새끼를 낳고 젖을 먹이고 어린 새끼돼지를 돌보는 어미돼지들이다. 큰 놈은 송아지보다 더 크다. 200kg, 300kg 하는 것들이다. 돈사는 우아한 말이고 돼지사육공장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어미돼지들과 새끼돼지들이 함께 생활하는 사육장은 한 세트가 한 평 반 정도 크기의 철근으로 만든 구조물이다. 한 평 반짜리 사육장이 수백 개 연이어 좌우 전후로 이어져 있는 곳이 돈사다.


어미돼지를 우리에서 꺼내어 좁은 통로를 통해 돈사 밖으로 몰이를 해 냈다. 근 50m를 더 몰아야 트럭에 싣게 되는 작업이었다. 어미돼지는 젖 먹이던 어린 새끼들을 두고 내쫒기는 이 돌발적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꿱꿱 꿱꿱 꿱꿱 꿱꿱 꿱꿱…..”


온 돈사가 어미돼지들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참 듣는 것조차 괴로운 어미돼지들의 거친 항의가 나의 온몸을 때렸다. 새끼들과 강제로 떼어져 내몰리는 어미돼지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나와 작업반원들은 저항하는 돼지들을 내모느라고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한 물리력을 행사했다. 해가 저물기 전에는 마쳐야 하는 작업일정 때문에 정말 어쩔 수 없이…. 가느다란 막대기에서 시작된 몰이도구가 작대기로 몽둥이로 삽자루로 바뀌어 갔고 드디어 전기충격기가 도착했다.


“때리지 마!, 때리지 마!”


돼지 주인의 외마디가 작업장을 뒤덮었다. 때리지 말라는 외침의 뒷마디로 “우리 돼지 왜 때려!”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농장주인과 그의 아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두 사람만이 돼지를 다룰 줄 알았다. 때리면 때릴수록 성질이 나서 더 버텨댄다는 것이었다.


현장은 시간 싸움의 연속이었다. 나는 이번 구제역 방역실패의 핵심은 시간싸움에서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은 소와 돼지의 학살에 대한 휴머니즘적 연민과 2차 오염이 관심거리다.


시간이 지체되어 갔다. 구제역에 감염된 돼지는 다리를 심하게 떨고 잘 걷지를 못했다. 고열 때문에 추위를 심하게 타고 움직임이 크게 떨어졌다. 감염이 제법 진행된 돼지들은 걷지도 못하고 돈사에 누워서 꼼짝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널부러져 있었다. 입과 코에 걸어서 큰 고통을 주며 돼지를 끌고 나오는 쇠줄로 된 작업도구가 있었다. 죽어가는 돼지에 이 도구를 씌어서 한 마리씩 겨우 겨우 끌고 나왔다. 좁은 통로로 인해 한 사람이 한 마리씩 작업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되고 많은 시간이 걸렸다.


주인 말로는 매몰 장소 선정 때문에 하루가 지연되었고 그로 인해 돼지들이 더 많이 더 심하게 감염되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제대로 걷지 못하는 돼지가 하루가 다르게 많아졌다. 주인 말로는 여기서 하루가 더 지체된다면 모든 돼지를 한 마리씩 한 마리씩 묶어서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작업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단 하루 만(사실은 약 10시간 만에)에 돈사에서 꺼내어 트럭에 싣고나가 매몰을 완료해야 한다. 투입된 인원은 작업을 완전히 마쳐야만 현장에서 이탈할 수가 있다. 시작된 일은 새벽 1시가 되든 새벽 4시가 되든 완전히 마무리되어야 해산할 수 있다. 마무리 되는 것을 확인하고 방역관이 소독차량을 불러서 그 소독차가 들어와서 신발부터 온몸을 소독해주어야 그 장소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한 건의 살처분에 대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작업에 투입된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견디어낼 수 있는 시간 만큼이고 그리고 감염된 돼지를 끌어내는 데 투입되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결국 전기충격기가 가장 긴요한 도구가 되었다. 전기충격기는 쓰러져 있는 돼지를 일으켜 세우는 유일한 도구였다. 걷지 못하는 돼지를 걷게 만드는 도구였다. 트럭의 반대방향으로만 가려고 하는 저항돼지를 트럭 쪽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강력한 도구였다.


한 트럭에 15마리 정도를 한 차에 실어내었다. 종돈과 모돈은 워낙 커서 10마리 쯤 실으니 꽉 찼다. 비육돈은 20여 마리 정도를 실을 수 있었다. 끝물에는 아기돼지를 실어내었다. 점심시간 전후로 어미돼지를 끌어냈고 오후 6시 쯤부터 아기돼지들을 실어 냈다. 좁은 축사 안으로 들어가 참 귀엽기 그지없는 새끼돼지들을 한 손에 한 마리씩 잡아서 리어카에 던져 넣었다. 대여섯 마리를 한 부대에 집어넣고 리어카에 실었다. 그냥 리어카에 한 마리씩 던져 넣기도 했다. 이 작업은 큰 돼지를 일으켜 세워서 끌고 나가는 일보다는 훨씬 쉬었다.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를 머리 속으로 떠올리면서 “참말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죄책감이 내 가슴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리어카를 끌고 나와 트럭에 댔다. 새끼를 갓 넘은 조금 큰 것들은 몰이를 당해 이미 트럭에 실려 있었다. 아기돼지들은 마대자루 째 그대로 트럭에 던져 넣었다. 마대자루가 찢어져 집어던져지는 공중에서 아기돼지 한마리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꽥!” 하며, 비명을 지른다. 얼마나 아픈지 벌떡 일어나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야단법석이다. 겨우 다시 잡아 트럭으로 내던져 넣었다.

매몰장으로 가는 트럭에 올라탔다.


축산농가를 빠져나와 좁은 길을 돌아서 대로로 나왔다. 터널을 지나자마자 우측 편으로 매몰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구제역이 발생한 돈사에서 직선거리로 400m 쯤 떨어진 곳에 매립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7m 깊이로 좌우가 3m, 5m 정도가 되는 직사각형의 웅덩이였다. 밤새 포크레인이 동원되어 작업을 해냈다. 발생신고 당시 마련했던 돈사 옆 축산농가 자신의 땅은 파나가다가 물이 나와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매몰지를 다시 구하느라고 읍장께서 갖은 고생을 다했다. 읍에만 소와 돼지를 살처분한 곳이 30여 곳이다. 살처분하여야 한다는 것을 방역관이 결정한 순간부터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매립해야 한다.


특히 돼지의 경우 감염속도가 너무 빠르다. 확인된 시점에서는 이미 그 농장은 건질 게 없다. 매몰시킬 장소를 찾는 것이 가장 신속해야 한다. 발생지점에 묻어버리는 것이 현재의 원칙이다. 이동으로 인한 바이러스의 확산을 차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자기 집 앞마당에 수백 수천 마리의 소 돼지를 묻으려 하겠는가? 다행히 축산농가가 자기 땅이거나 자기 땅을 가지고 있으면 그 땅에 묻는다. 이런 일이 부락 안에서 이루어지면 아주 강한 민원이 제기된다. 동네 한 복판에 ‘혐오시설’이 생기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국공유지 그리고 국방부 땅을 찾아 나섰다. 해당 축산농가 주변이어야 하고, 민원이 제기되지 않을만한 한적한 곳이어야 한다. 이번에는 특히 부처간의 협조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겨우겨우 수소문 끝에 민가가 없는 시유지를 찾아내어 그 곳으로 결정하고 포클레인을 투입했다.

웅덩이 안에는 먼저 도착한 어미돼지들과 비육돈들이 수북이, 수북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트럭 적재함의 뒷문을 열었다. 적재함이 자동으로 들리는 트럭이 아니었다. 그냥 떨어지는 돼지는 없었다. 포클레인이 적재함에서 돼지들을 웅덩이로 밀어냈다. 7m 깊이의 매몰지로 돼지들이 떨어졌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운전석 쪽으로 돼지들이 몰렸다. 다시 포클레인이 이들을 밀쳐냈다. 채 떨어지지 않은 아기돼지 한 마리와 비육돈 한 마리가 난간 모서리에 걸려서 바둥바둥댔다. 다시 포클레인이 이들을 처냈다. 단호하게 처내는 수밖에 없었다. 웅덩이에는 큰 돼지 작은 돼지가 서로 엉켜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쳤다. 이미 좁아진 웅덩이에서 바닥에 깔리지 않고 위로 올라서려고 밀고 밀리고 기어오르다 떨어지는 발버둥질을 계속해 댔다. 아기돼지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깔려서 보이지도 않았다. 생지옥, 아비규환이란 말이 아마도 이런 지경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방수를 위해 설치한 비닐은 잠깐 만에 볼품없이 찢겨졌다. 트럭에서 떠밀리던 돼지 한 마리가 웅덩이 밖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통증은 잠깐이고 중간 크기의 그 돼지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감염된 한 사람이 전 세계를 바이러스로 떨게 했다는 식의 삼류영화에 찌들은 나는 ‘어 저 감염된 돼지를 놓치면 큰 일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잠시 추격이 시작됐다. 세 사람이 쫒아가 겨우 잡았다. 두 사람이 앞다리 뒷다리를 들어 웅덩이로 내던졌다.


바닥이 채워질수록 밑의 돼지들에 얹혀있는 큰 돼지들은 가라안지 안으려고 더 거칠게 몸부림을 쳤다. 방수비닐의 한 쪽 면이 통째로 찢겨져 나갔다. 마침내 포클레인의 바가지가 웅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비닐이 찢겨진 쪽 모퉁이에서부터 돼지들을 찍어내어 가운데로 몇 번이고 퍼냈다. 살점이 찢기고 뼈가 부서진 돼지들의 비명소리가 웅덩이에서 공명이 되어 산속으로 찢어져 나갔다.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어서 돌아섰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살리자고 한 일이 왜 이렇게 모두 죽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뒷작업은 흙과 석회를 켜켜이 뿌려서 덮어버린다는 것이다. 그것까지는 보질 못했다. 그것은 그 일을 맡은 업체의 사람들이 해나갔다. 침출수 문제로 언론에 부각된 정화조는 매몰 당일에는 설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 했다. 이틀 후에나 설치가 된다고 한다. 지속적으로 탈취제도 뿌리고 시간이 지나 서서히 정화조에 물이 차면 전문업체를 통해 수거해서 정화시설에 보내어 정화한다고 한다. 관련 공무원이 직접 3년을 관리한다고 한다.


그날 나와 우리들은 감염된 돼지와 감염되지도 않은 죄 없는 아기돼지 수 백 마리와 큰 돼지 1000여 마리를 이렇게 생매장을 시켰다.


인간이 이제는 짐승에게까지 죄를 짓고 사는구나…. 이 죄를 어떻게 속죄할 것인가? 반이라도 건졌어야지 다 죽이고 무슨 방역을 했다고 하냐는 국민들의 꾸지람이 나의 뒤통수를 때린다. 그래도 지방정부와 자원봉사에 나서신 분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하고 싶다.

2011년 1월 28일.


살처분 매몰지에서 작업한 포클레인 기사를 만났다. 한 면의 소 돼지 무덤을 거의 다 파고 묻었다고 한다. 50대 후반의 건실해 보이는 정 사장은 짐승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말을 연신 내뱉는다.


“눈 뜨고 못 봐요. 참 아깝지요. 이왕 죽일거면, 백신이라도 일찍 접종했어야지요. 뭐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백신이 너무 늦은데다가 처음에는 백신 맞은 소들 중에서 발병을 하면 그 축사의 소는 다 살처분했는데, 지금은 발병한 소만 묻어요.”


“돼지 8000마리를 묻는 작업이 제일 컸어요. 무덤을 두 개 팠어요. 40m, 5m짜리를 두 개 팠어요. 1만 두가 넘는 어느 집은 200m짜리가 있었다고 하네요. 5~7m 깊이로 팝니다. 비닐을 깔고 50cm 정도 흙을 깔고 석회를 뿌립니다. 덮을 때는 흙으로 덮다가 석회를 뿌리고 또 흙을 뿌리다가 석회를 뿌립니다. 그렇게 묻지요. 흙을 덮다보면 빠져 나오는 돼지들이 생깁니다. 할 수 없이 바가지로 찍어요.”


“정화조요? 정화조는 묻지 않았는데. 글쎄요 정화조 작업은 다른 사람들이 하나보죠?”


“비닐은 찢어지지 않을 수가 없지요. 100kg이 훨씬 넘는 산 돼지 수백 수천 마리가 안 죽으려고 좁은 구덩이에서 발광을 하는데 비닐이 무슨 수로 남아나겠습니까? 찢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전면이 벗겨지고 말지요. 안락사 시켜서 묻는 소의 경우는 비교적 비닐이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지요. 하지만 돼지의 경우에 비닐은 있으나 마나입니다. 그냥 전후좌우로 침출수가 땅으로 지하수로 빨려 들어가겠지요. 여름 되면 큰 문제가 생길 겁니다. 걱정이에요.”


“무덤을 파다보면 물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지요. 그냥 묻었지요. 개울 옆인 경우도 있었어요. 여름에 어쩔지 걱정입니다.”

정화조에 분해된 물이 차면 수거해서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일을 3년 동안 하게된다. 읍면동장 책임하에 관리된다고 한다.[끝]
 


/윤후덕 민주당 파주지역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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