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기업감시] 미국 ‘패밀리’로 나뉜 국내 수입업체

계란으로 미국 ‘고기권력’ 치기



미국 축산 기업에 사정해야 물량 확보하는 ‘셀러스 마켓’, 수입허가제·자율규제로 뭘 하려나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 2002년께 미국육류수출협회(USMEF)가 국내 육류 수입업자를 대상으로 연 세미나에 참석한 일이 있었습니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에서 거래되는 미국 생우의 선물거래와 관련한 발제자로 나선 것이었는데, 세미나가 끝나고 나서 수입업자들로부터 많은 면담 요청을 받았습니다. 선물거래의 경우 모르는 사람은 시도하기 쉽지 않은데 수입업자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의외였죠. 그 이유를 알아보니 미국산 쇠고기 시장이 어이없게도 셀러스 마켓(seller’s market)이더군요.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려는 수요가 너무 많다 보니 (국내 수입업자가) 고객임에도 대접을 제대로 못 받는 것은 물론, 수출업자들에게 고기 좀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더라고요.”


6월10일 <한겨레21>로 전달된 전자우편 내용의 일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허용됐던 2002년, 국내 수입업자들이 미국산 쇠고기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선물시장까지 기웃거렸다는 것이다. 전자우편을 보내온 국내 한 증권사 해외영업부 소속 남아무개씨는 “당시 수입업자들은 IBP와 엑셀, 스위프트 등 미국의 이른바 3대 메이저 쇠고기 브랜드를 확보하기 위해 직접 미국까지 찾아가 사정할 정도였다”며 “수입업자에 따라 자신들이 먼저 월령 높은 걸 처리하는 조건을 걸고라도 물량 확보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월령 높은 소 처리 조건 걸고라도…”



남씨가 수입 쇠고기 시장 전문가는 아니지만, 많은 축산업계 관계자들도 그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적어도 쇠고기 시장의 작동원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3대 메이저 패커(쇠고기 생산업체)로 꼽히는 타이슨푸드와 카길, JBS스위프트 등은 시장점유율을 더욱 확고히 다져왔다. IBP와 엑셀은 각각 타이슨푸드와 카길의 축산제품 브랜드다.

실제로 이들 3대 메이저와 내셔널비프패킹(NBP)을 포함한 상위 4개 업체는 미국 쇠고기 도축량의 80%를 넘게 차지한다는 조사 결과도 제시되고 있다(〈The Food Institute Report〉 2001). 엄청난 물량을 기반으로 육류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일종의 ‘고기권력’인 셈이다.

문제는 이들 초국적 농축산 복합기업의 영향력 아래에서 국내 육류 수입업자들이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최근 한국수입육협의회라는 단체를 조직한 박창규 에이미트 사장이 자율규제를 주장하며 “물건(미국산 쇠고기) 사는 사람이 해달라고 하면 파는 쪽에서는 당연히 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마디로 시장의 속성을 전혀 모르거나,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식의 반응이 지배적이다.

윤병선 건국대 교수(경제학)는 “미국 농무부(USDA)조차도 이미 오래전부터 이들 메이저 패커의 입김에 좌지우지되고 있다”며 “일례로 크릭스톤팜스라는 축산기업이 자체 광우병 연구실을 설립하려 하자 미 농무부에서 ‘이는 다른 축산기업의 고기는 안전하지 않다는 오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막았다”고 밝혔다.


지금 당장은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어쨌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다시 시작된다면 시장의 사정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수입조건이 최종 확정되지도 않았지만 수입업계에서는 이미 IBP와 엑셀, 스위프트 등 상위 3개 브랜드와의 계약을 따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상위 10위권에 속하는 수입업체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미국 ‘패밀리’로 나뉜 국내 수입업체


“(상위 3개 업체는) 진입장벽이 엄청 높아요. 우리도 한국에서는 큰 업체라고 하지만 미국 쪽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거래처 되기가 어렵죠. 그리고 국내 업체의 경우 규모만 크다고 다이렉트 거래가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유대’가 좋아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파는 사람이 우위에 있는 셀러스 마켓이라 한마디로 무조건 잘 보여야 된다는 거죠.”


이 업체는 최근 상위 3개 브랜드 수입을 단념한 채,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은 내셔널비프패킹 쪽으로 눈을 돌렸다.

이처럼 미국산 쇠고기 거래 구조가 폐쇄적이다 보니 업계에서는 ‘패밀리’라는 표현도 심심찮게 나온다. 예컨대 카길과 거의 고정적으로 거래하는 업체들은 ‘카길 패밀리’, 타이슨으로부터 고기를 공급받는 업체들은 ‘타이슨 패밀리’로 분류되는 식이다. 각각의 패밀리 안에서는 위계질서가 생길 수밖에 없고, 다른 업체에 대해서는 배타적이 된다. 이런 구조를 띠고 있는 시장에서 상대적 약자인 수입업자가 자율규제를 운운하는 것은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복수의 수입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내 쇠고기 시장에도 이미 미국의 축산기업을 정점으로 하는 일종의 ‘패밀리’가 형성돼 있다고 한다. 예컨대 카길은 국내 수입업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이네트나 한중푸드 등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반면, 타이슨푸드는 대한제당과 한화, 하이푸드, CJ프레시웨이 등과 주로 거래해왔거나 가까운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유통과 신성 등은 스위프트와 함께 묶인다.

익명을 요구한 축산단체 관계자는 “예컨대 프랑스의 양돈 수출업자들은 무조건 높은 가격을 부르는 수입업자에게 물건을 준다”며 “상식적으로 보면 이런 방식이 맞지만 영업 방식이라는 것은 나라마다 다르고 기업마다 또 다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 수입업자들이 단합이 되지 않았던 것도 각각의 패밀리마다 이해관계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쇠고기 수입허가제도 정작 시행된다면 소비자에게 피해가 돌아갈 전망이다. 축산단체 관계자는 “쇠고기 수입이 자유화되기 이전에 쿼터제로 수입량을 조절했을 때 수입업자들은 쇠고기 kg당 최고 1천원까지 이득을 봤다”며 “그게 자유화되면서 경쟁이 붙으니까 마진폭이 500원, 심한 경우 100원까지 떨어졌다”고 말했다.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도 포기하는 셈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궁지에 몰리자 정부와 확실한 거래처를 확보하고 있는 몇몇 수입업자들을 중심으로 자율규제가 거론됐다. 그 수단으로 내세웠던 것이 수입허가제다. 하지만 만약 수입허가제와 자율규제가 실시된다면, 그때는 이미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의 꿈도 사라지는 셈이다. 물론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자율규제가 이뤄진다는 사실을 전제로 했을 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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