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방사선조사] 방사선 – ‘비열처리살균’의 음모 (윌리엄 레이몽)

방사선 – ‘비열처리살균’의 음모

출처 : 독소 – 죽음을 부르는 만찬 (윌리엄 레이몽 지음, 이희정 옮김, 랜덤 하우스, 2008)
 pp 247~253


곡물사료를 먹이는 축산업자들은 이제 대장균 O157:H7이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여론을 조작하려 한다. 축산업자들이 내놓은 자료를 소비자들은 믿을 수 밖에 없다. ‘식품비방법’의 막강한 지원을 받는 축산업자들은 그저 살모넬라균 사태가 날 때 써먹은 전략을 재탕하기만 하면 된다. 그 결과는?

미국에서 매년 발생하는 식중독 환자 수는 100만 명에 달한다. 유럽에서 맨 처음 대량 축산의 위험을 방지하는 법을 제정한 여러 나라 중 하나인 스웨덴에서는 그 수가 800명에 지나지 않는다.(참고 : 미국 인구 약 3억명, 스웨덴 인구 934만명 / 통계를 비교해보면, 미국 인구는 스웨덴에 비해 31.13배 많으나, 식중독 환자 수는 1250배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남)

축산업자들이 구사하는 ‘회피하기 수법’은 무척 간단하다. 책임을 다른 쪽으로 돌리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도축장에서 소 내장에 남아 있는 균이 사페의 다른 부분과 접촉하여 고기가 오염된다. 그러나 축산업자들은 이런 사실을 은폐하고 무조건 소비자 탓만 한다. 소비자들이 식중독에 걸리는 건 음식을 제대로 익히지 않아서 그렇고, 더러운 칼로 날고기를 자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적방하장도 유분수다!

여기서 잠깐 과거로 돌아가보자.

1970년대 초, 미국 원자력 산업계는 국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려고 안간힘을 썼다. 목표는 원자력이 일상생황을 편하게 해주는 안전하고, 깨끗하며, 저렴한 에너지라는 이미지를 심는 것이었다. 그 즈음, 에너지부에서는 방사선 식품 조사법에 특허를 내주고 보건당국의 허가를 받았다.

방사선 조사법이란 다양한 식품에 전리방사선(이온화방사선, 물질을 통과할 때 이온화를 일으키는 엑스선, 알파선, 감마 입자, 양성자, 중성자 따위의 방사선 -옮긴디)을 쪼여 미생물을 죽이는 방식이다. 농식품업계에서는 이 방식을 가리켜 ‘이온화하다’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며, ‘비열처리살균’이란 용어도 쓴다. 사람들에게 유연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다. ‘방사선조사’라고 하면 아무래도 음식이 방사선에 노출되어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일부 회사들에서 하듯 분자가속기나 세슘 137, 코발트 60 같은 방사성 동위원소를 쓰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다른 용어를 쓰면서 주의를 돌린 건 효과적이었다.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방사선 조사법을 정착시킬 수 있었다.

처음에는 주로 향신료나 곡물 속에 사는 조그만 벌레들을 죽이는데 방사선 조사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1980년 초부터는 제품의 부패를 늦춘다는, 좀더 상업적인 목적이 추가되었다. 과일과 채소에 방사선을 쬐면 부패 시기가 늦춰져서 저장 기간을 늘릴 수 있다. 생산업자들은 이 점에 열광했다.

육류에 방사선을 조사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 슈어빔이 처음 시도하면서부터다. 오늘날 육류업계는 방사선조사법을 살모넬라와 대장균  O157:H7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여겨 즐겨 사용한다.

여기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의문이 든다. 방사선이 장ㆍ단기적으로 식품 품질에 어떤 영향를 미칠까? 우리 건강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까?

물론 방사선을 쬐었다고 음식이 방사성물질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20년 동안 주로 방사선 처리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사고에 비판이 집중됭ㅆ다. 1988년 조지아주에 있는 방사선센터에서 방사성물질이 함유된 냉각수가 유출된 사건이 좋은 예다. 당시 인근 지역에 방사선 물질의 흔적을 없애고 피해를 복구하는데 5,000만 달러의 비용이 들었다.

프랑스에서는 방사성물질을 사용하는 방사선센터를 원자로와 같은 급인 ‘기초핵시설’로 분류ㆍ관리한다.

그런데 육류에 방사능을 쬐는 것은 문제가 다르다. 제품의 성질 자체가 변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방사능에 관한 독립정보연구위원회(CRIRAD : Commission de redherche de d’ information independante) 롤랑 데르보르 연구원은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음식은 이미 죽은 것이다. 조직은 산산조각 나고, DNA는 ;파괴된다.”고 밝혔다. 방사선을 쬔 식품은 아미노산, 엽산, 비타민 AㆍB1ㆍB6ㆍB12ㆍCㆍFㆍKㆍPP가 보통 식품보다 부족하다. 이는 방사선을 쬐는 시간과 강도에 따라 달라지며, 어떤 식품은 최대 80%까지 영양소가 파괴되기도 한다.

이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방사선을 많이 쬐는 식품 중 하나인 닭을 방사선에 통과시키면 화학적 재결합이 일어나 새로운 분자가 생겨난다. 비계 같은 지방질에 방사선을 쬐면 여러 연구에서 인체에 해로운 것으로 판명된 시클로부탄(cyclobutane)이 발생한다. 

2002년 독일과 프랑스 공동 연구 결과 일부 시클로부타논(2-알킬시클로부타논)은 유독하며 쥐에게 결장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장 뛰어난 전문가들이 모인 팀에서 내놓은 이 연구결과는 과학계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02년 7월 3일, 유럽연합 내 식품안전담당기관인 식품기술자문위원회(SCF)는 연구결과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혔다. SCF는 방사능을 쬔 고기에서 독성물질이 생긴다는 연구원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엉뚱한 부분에서 꼬투리를 잡았다.

“이번에 밝혀진 나쁜 효과는 모두 실험실에서 나온 결과다. 따라서 이 결과만으로는 인체에 위험이 있다고 보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아무리 뛰어난 과학자들이 증명했어도, 실험실에서 한 연구이니 그 물질들이 건강에 위협이 된다고 볼 수 없다는 얘기다.

SCF의 이러한 반응에 대해 연구원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했고 CRIRAS도 우려 섞인 반응을 보였다.

“쥐 실험을 통해 나타난 반응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 우려할 만한 사항이 드러난다. 인간과 쥐는 물론 다르지만 유전자가 99% 동일하기에 방사선 조사법이 인간에게 완전히 무해하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SCF의 입장을 이해하려면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EU 국가 중 방사선조사법을 허용하는 나라는 프랑스ㆍ벨기에ㆍ네덜란드ㆍ폴란드ㆍ이탈리아ㆍ영국ㆍ헝가리ㆍ체코슬로바키아 이렇게 8개국 밖에 없다. 유럽 밖에서는 32개국에서 이를 허용한다. 심지어 WTO는 EU에 방사선조사법을 확대하라고 권고하기까지 한다. 방사선조사법을 금지하면 방사선을 쬔 식품의 수입제한조치가 뒤따를 텐데, 수입제한조치는 WTO가 표방하는 자유무역체제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건 논란이 된 2002년 연구결과 말고는 방사선 조사법의 영향에 대한 국제적인 연구가 없었다는 것이다. 텍사스A&M대학교의 연구를 비롯해 방사선조사법이 안전하다는 내용은 많았다. 그런데 이 연구를 실시한 전자광선식품연구소(Electronic Beam Food Research Facility)는 슈어빕에서 기부한 1,000만 달러를 기반으로 설립되었다. 전자광선식품연구소가 대학기관 본연의 역할을 넘어 육류를 비롯한 상업적인 방사선조사법을 연구주제로 삼은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1987년중국에서 이 주제에 대해 15주에 걸쳐 실시한 연구가 있다. 영유아들이 방사능을 쬔 식품을 먹으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에 대한 연구가 변변치 않아, 이 연구보고서에서 미국ㆍ브라질을 비롯한 20여 개국에서 영유아용 유제품에 들어가는 발아곡물과 플레이크에 방사능을 쬔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만도 큰 수확이었다.

프랑스에 수입된 방사능조사식품은 냉동 향신 풀, 말린 과일, 가금류 고기, 계란, 새우, 생우유 치즈, 개구리 뒷다리 등이다.

현재 WTO가 방사능조사식품을 전 세계에 자유롭게 유통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건 미국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방사능조사식품이 미국시장에서 유통된 과정은 저혀 본보기로 삼을 만한 것이 못 된다. 1982년 FDA가 방사능조사법을 승인할 때, 미리 제출된 동물실험 결과 보고서 441건을 일일이 참조할 시간이 없어서 겨우 7건만 채택해 읽어보았다. 그 보고서에는 과일과 채소에 한 실험 결과만 있었는데, 방사능조사량이 현실에 비해 지나치게 낮았다.

1993년 방사능조사법에 관한 FDA 심사위원회 책임을 맡았던 독물학자 마르샤 반 거머트는 방사능조사법이 허가된 상황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밝혔다.

“1982년 FDA가 참조했던 연구보고서들은 그 시절의 보건 기준으로 봐도 적절치 못했으며, 1993년 기준으로 보면 더욱더 그렇다. 그 보고서들 때문에 아무 식품이나, 특히 방사능조사식품을 안전하다고 판정했다.”

소비자들에게 방사능을 쬔 고기를 먹이고 싶어 안달이 난 농식품업계는 또 다른 골칫거리에 부딪쳤다. 현재 허가된 방사능조사량으로는 일바 박테리아나 광우병의 원인인 프리온을 완전히 박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식품업계에서는 매번 사태가 터질 때마다 조사 허용량을 높여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고기를 완전히 익혀 먹지 않는 소비자들의 태도를 탓하며, 그러한 태도를 개선하는 것이 식품산업계의 의무라는 주장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농식품업계는 의무라는 주장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농식품업계는 다시 한 번 박테리아 감염의 진정한 원인에 대한 논란을 피해가는 것이다.

하지만 농식품업계의 가장 커다란 장애물은 따로 있다. 바로 소비자들의 입맛이다. 방사능을 많이 쬐면 식품 안전은 지켜질지 몰라도 맛이 변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기 일쑤다. 그래도 농식품업계의 끈질긴 요구에 우리가 오래 버텨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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