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권력감시] ‘청부수사’ 무죄 판결, 소장판사들의 ‘진짜 법치’







‘청부수사’ 무죄 판결, 소장판사들의 ‘진짜 법치’

정희상 기자 minju518@sisain.co.kr

출처 : 시사인 [124호] 2010년 01월 29일 (금) 10:51:12

대법원장이 탄 출근 차량에 달걀을 던진다. 판사들 집 앞에서는 극우 보수 단체 회원들의 집단 협박 시위가 잇따른다. 판사들은 신변 경호를 받으며 이동한다. 1950년대 백골단·땃벌떼로 불리던 극우 정치깡패들이 이승만 정권에 불리한 판결을 한 판사들 집 앞에 찾아가 죽이겠다고 난동을 부리는 장면을 연상하는 행위가 50년 만에 되살아났다. 극우 보수 단체들만이 아니다. 최근 시국 관련 사건의 잇따른 무죄 판결에 불만을 품은 검찰 수뇌부도 기세가 등등하게 사법부를 겨냥한다. 판결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검찰 성명이 나오는가 하면 김준규 총장은 전국 검사의 단결을 주문한다.









   
[PD 수첩] 제작진에 대한 무죄판결 직후 담당 재판장인 문성관 판사와 이용훈 대법원장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는 극우 보수단체 인사들.


‘사법부 드잡이’에는 집권 여당 지도부도 빠지지 않는다. 정몽준 대표는 공식 회의장에서 “판사가 주목받고 싶으면 법복을 벗고 시민운동이나 하라”고 힐난한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연일 “(일련의 무죄판결에) 대법원장이 책임지고 물러나라”고 몰아세우는 바람잡이 노릇을 도맡는다. 여당은 앞으로 정권 입맛에 안 맞는 판사들에 대한 물갈이도 추진하겠다고 예고한다. 이쯤 되면 더 이상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 민주주의의 기초라고 나오는 ‘삼권분립’은 없다. 이것이 2010년 초 법치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사법부를 상대로 한, 위험수위를 넘어선 ‘마녀사냥’은 법원의 1월13일 용산참사 재판기록 공개 결정에서 촉발됐다. 불을 지핀 쪽은 몇몇 보수 언론이었다. 이들은 용산참사 항소심 재판부가 피고인 측 변호인단에게 검찰 수사기록을 열람하도록 허용해준 데 반발하는 검찰을 두둔하는 논조를 펴면서 판사의 개인 정보까지 공개하고 마치 수사기록 공개 뒤에 ‘이념 서클’이 자리한 양 몰아 대며 공격의 불을 지폈다.

여권·보수 언론, 사실관계 날조해 공격

이튿날 서울 남부지법이 지난해 초 국회 사무처장실에서 벌어진 민노당 강기갑 대표의 ‘공무집행방해’ 혐의 사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리자 보수 세력의 반발은 극에 달했다. 이어 1월16일 전북지방법원의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무죄판결과 1월20일 서울중앙지법의 제작진에 대한 무죄판결이 잇따르면서 사법부를 상대로 한 보수 세력의 히스테리적 총공세는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그 정점에는 ‘이용훈 대법원장 찍어내기’를 통한 MB 정권의 사법부 길들이기가 자리하고 있다(딸린 기사 참조).

새해 시작된 보수 언론과 한나라당의 ‘사법 공세’는 겉으로 우리법연구회라는 법원 내 학술연구 모임에 초점이 맞춰졌다. 120여 명에 이르는 법원 내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좌편향이고, 최근 일련의 무죄판결도 그들이 주도해 나온 것이므로 이 연구회를 해체하라고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한나라당은 강기갑 대표에 대한 무죄판결 직후 법원행정처장을 국회로 부른 자리에서 대놓고 “진보 성향 판사들로 구성된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이념 편향적 판결을 주도하고 있다”라고 몰아세웠다.









   
시국 관련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잇따른 무죄판결에 반발해온 검찰은 1월21일 김준규 총장 주재로 전국 1700여 검사의 화상회의를 갖고 ‘단합’을 강조했다.


하지만 시국 관련 사건 무죄판결에는 과거 386 운동권 출신이 주축이 된 우리법연구회가 자리하고 있다는 보수 언론과 여권의 공격은 기본 사실관계부터 날조한 주장이다. 보수세력은 강기갑 민노당 대표에 무죄를 선고한 이동연 서울남부지법 판사를 덮어놓고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로 몰아댔지만, 그는 우리법연구회 근처에도 간 적이 없다. 검찰에 용산참사 기록공개를 명한 1심 재판장도 우리법연구회와는 무관하며, 2심 재판장은 5년 전 탈퇴했다. 그러나 여당과 보수 언론은 싸잡아서 이들이 우리법연구회 성향이라고 몰아댔다.

반면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적이 있는 김흥준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최근 정부가 시위로 파손된 경찰버스 수리비, 전의경 치료비 등을 배상하라며 민노총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4억7000만원을 지급할 책임이 있다는 조정안을 제시해 민노총을 당혹스럽게 했다. 이 보도에서 조·중·동은 김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판사라는 사실은 애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다.

법원 주변에서는 최근 30~40대 중견 판사들이 이념에 따라 판결하는 것처럼 몰아붙이는 검찰과 보수 세력의 공격에 대해 “너무나  야만적이다”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법원 분위기에 밝은 한 인사는 “1980~1990년대에 대학을 다닌 30~40대 판사들은 독립적인 판결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다. 지금은 권위주의 세대가 아닌 데다 다들 국제화 감각도 갖춰 최소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수준의 사법 독립성은 지향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고, 교육도 그렇게 받았다. 따라서 검찰의 과잉 기소나 불법 수사 문제는 당연히 사법부가 제어해야 한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보수법학자도 무죄 판결 당연

하지만 검찰과 여권, 보수 세력은 이 기회에 사법부를 ‘좌파 이념이 득세하는 소굴’로 몰아 정권 입맛에 맛는 사법부로 판을 뒤집을 호기로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다수 법학자와 법조인들은 이들이 사태의 본질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검찰과 여권이 수모스럽게 받아들이며 극렬히 반발하는 최근의 잇단 무죄판결 원인이 ‘좌파 법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검찰의 정치 시녀화와 ‘공소권 남용’에 있다는 진단이다. 따라서 이들 판결로 최근 2년여 동안의 직무 수행에 대한 검찰의 자기반성이 절실한 시점인데도 거꾸로 사법부에 색깔론을 씌워 흔들어대는 적반하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과 여권이 문제 삼는 최근 법원의 결정과 무죄판결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애초 잘못된 검찰권 행사가 낳은 필연적 귀결이라는 점이 잘 드러난다.  우선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는 지난해 봄 1심 재판부가 검찰에 수사기록 등사 명령을 내렸지만 검찰이 따르지 않았던 사안이다. 검찰은 이번에 용산참사 항소심 재판부가 재정신청 사건 심리를 위해 확보한 수사기록 2000여 쪽을 공개한 데 대해 형사소송법 규정을 어겼다고 주장하며 반발했다. 하지만 법학계에서는 항소심 재판부의 수사기록 공개는 1심 재판부 결정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1심 재판부의 수사기록 열람등사 결정을 무시하고 따르지 않았던 당초 검찰의 버티기가 헌법이 검찰에 부여한 직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사기록 공개에 대한 검찰의 반발은 공정한 재판과 피고인 방어권 보장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수사기록 공개 여부를 검찰이 좌지우지하겠다는 데만 관심이 있음을 보여주는 태도일 뿐이다.









   
1월20일 무죄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하는 조능희 책임PD(왼쪽)와 제작진.


더구나 이번에 공개된 수사기록 내용을 보면 그동안 검찰이 공개 거부 이유로 주장했던 ‘경찰관의 사생활’이나 ‘국가안보’ 따위는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결국 공익의 대변자로서 객관적으로 임무를 수행해야 할 검찰이 거짓 사유로 법원의 지시조차 거부하며 피고인에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유리한 증거를 은폐한 셈이다. 김준규 검찰총장도 지난해 여름 취임 후 수사기록 공개 여부를 묻는 질의에 “검토한 결과 법원의 명령을 따를 수 없다”라고 말했다는 점에서 이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다.

강기갑 민노당 대표에 대한 서울남부지법의 무죄판결도 따지고 보면 문제는 검찰의 ‘공소장 변경 거부’에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월 초 강기갑 대표는 국회 박계동 사무총장실에 들어가 흥분한 상태에서 회의 탁자를 밀어뜨리고 탁자 위에 올라가 몸을 날리며 거칠게 항의했다. 또 민노당이 부착한 현수막을 강제 철거한 국회 경비 관계자의 멱살을 잡기도 했다.

이 사건 수사를 맡은 검찰은 국회 사무총장과 경비 관계자들의 정당한 직무를 방해한 행위로 보고 공무집행방해죄와 방실침입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공무집행방해가 성립하려면 박계동 사무처장이 당시 직무를 집행하고 있었다는 범죄 구성 요건이 충족돼야 하지만 신문을 보고 있었기에 공무집행을 방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신 법리상 단순 폭행죄로 공소 내용을 바꾸면 유죄가 가능하다며 검찰에 공소 변경을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은 상대적으로 처벌 수위가 가벼운 이 죄목을 수용하지 않았다.

이는 곧 강기갑 의원의 금배지를 뗄 수 있을 정도로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한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고집했고, 그런 검찰의 공소 유지가 애당초 잘못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법리적으로 부적절한 공소 사실을 재판부가 지적하고 유죄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공소 변경을 요구했으나 검찰은 스스로 거부해 무죄를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보수 언론은 판결문을 충분히 읽기도 전에 마치 사법부가 강기갑 대표의 폭력 혐의에 면죄부를 주고 두둔했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검찰도 똑같은 논리로 감정적 반발을 하면서 스스로의 기소 잘못은 슬그머니 덮었다.

제작진에 내려진 1심 무죄판결 역시 검찰의 기소권 남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월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 13단독 문성관 판사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의도적으로 왜곡 보도해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민동석 정책관의 명예를 훼손하고 쇠고기 수입업자의 업무를 방해했다’며 검찰이 불구속 기소한 제작진 5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의 경우 당초 검찰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중앙지검 임수빈 전 형사2부장이 ‘ 제작진을 명예훼손으로 형사 기소할 수 없다’라고 결론 낸 바 있다.

하지만 검찰 지휘부의 압박 속에 임수빈 부장이 견디지 못하고 검찰 조직을 떠나면서 후임 수사는 전현준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장(현 금융조세조사1부장)으로 배당됐다. 이렇게 검찰 내부에서조차 애당초 무리수가 빤히 들여다보인 사건 수사는 검찰이 김은희 작가의 이메일까지 공개하는 등 사생활 침해 등 불법도 가리지 않으며 억지 기소를 위해 무리수를 뒀다.1심 재판부가 제작진을 무죄판결한 데 대해 법조계에서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당연한 귀결’이라는 반응이다. 설령 정부 정책을 감시하는 언론 보도에 과장된 내용이 들어 있더라도 선진 법치국가에서는 그것이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보수적 법학자로 분류되는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이와 관련해 “도대체 보도에 좀 오버된 내용이 있다고 해서 언론중재위원회나 민사소송 정도도 아닌 형사법정으로 가져가는 나라가 OECD 국가에서 어딨나. 나치 정권에서나 가능한, 언급할 가치가 없는 기소를 했으니 무죄가 나온 건 당연하다”라고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비판했다. 

이렇게 검찰이 정권의 시녀가 됐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정권의 입맛에 따라 무리한 기소를 강행하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정권 수뇌부의 정치적 의중을 좇는 검찰 수뇌부의 처신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중견 검사는 “현 정부 들어 청와대와 정권이 원하는 사건 수사를 맡았던 사람들이 그 뒤 어떤 길을 걸었는지 잘 살펴보라”고 말했다. 모두 승승장구했다는 것이다.

‘청부 수사’ 맡은 검사 승승장구

권력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청부 수사’는 설령 무죄가 나올지라도 수사 착수와 기소 자체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기소 단계에서 당사자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함으로써 권력이 노리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해준 ‘청부 수사’의 예는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정연주 전 KBS 사장에 대한 배임죄 기소였다. 검찰이 정 전 사장을 억지로 기소한 뒤 청와대는 MB 측근 선거특보들을 연달아 후임 KBS 사장으로 투입해 손쉽게 방송을 장악했다. 지난해 가을 법원은 정연주 사장의 배임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지만 이미 KBS 는 여권에 장악된 뒤였다.

2008년 말 세계 금융위기 국면에서 인터넷을 통해 일련의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한 박대성씨(필명 미네르바)를 ‘허위사실 유포죄’로 구속한 이는 김수남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었다. 당시 박씨에 대한 수사는 정권 핵심의 뜻에 따라 김경한 법무부 장관이 검찰에 지휘권을 발동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해 초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해 석방함으로써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공소권 남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그대로 드러냈다.

제작진에 대한 수사와 기소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6월 검찰이 제작진을 기소하면서 대규모 기자회견까지 열어 수사 결과를 발표하자 청와대는 공개적으로 맞장구쳤다. 이동관 당시 대변인이 “ 보도가 총체적으로 왜곡 조작됐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를 통해 낱낱이 드러났다”라며 환영 논평을 낸 것이다. 이쯤 되면 누가 봐도 정치 목적을 지닌, 짜고 친 수사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제작진 수사를 지휘한 정병두 지검장(맨 왼쪽), 정연주 전 KBS 사장을 배임죄로 기소한 최교일 법무부 검찰국장(가운데), ‘미네르바’ 박대성씨를 구속기소한 김수남 지검장(왼쪽).

이처럼 정권의 하명성 수사를 맡아 기소한 검찰 수사 책임자들은 무죄가 나와도 부끄러워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어김없이 영전과 승진이 보상으로 주어졌다. 정연주 전 사장에게 무리한 검찰권을 행사해 구속한 수사 책임자는 최교일 전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다. 그는 제작진에 대한 수사 지휘 라인이기도 했다. 두 사건을 기소한 뒤 최교일 1차장은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승진했다. 검찰 예산을 주무르는 검찰국장은 대검중수부장·대검공안부장·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검찰 내 ‘빅4’로 꼽히는 요직이다. 그가 권력의 복심에 따라 무리하게 기소한 정연주 전 사장은 지난해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그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이번 제작진 무죄판결이 나온 뒤에도 모든 책임을 사법부 탓으로 돌리고 있다. 

박대성씨 구속 기소를 지휘한 김수남 3차장도 박씨가 무죄로 석방됐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검사장급인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으로 승진했다가 연거푸 청주지검장으로 영전해 나갔다. 후임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에는 이명박 후보의 BBK 사건 수사를 맡아 무혐의 처리하고, 이어서 대통령 사돈 기업인 효성그룹 오너 일가 비자금 사건도 무혐의 처리해준 최재경 전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들어갔다.

사건 수사 및 기소 과정의 지휘 라인은 서울 중앙지검 1차장이었던 최교일 현 법무부 검찰국장 외에도 2009년 서울중앙지검장을 맡았던 천성관 검사를 꼽을 수 있다. 천성관 전 지검장은 을 기소한 뒤 지난해 파격적으로 검찰총장에 발탁됐다가 국회 검증과정에서 우여곡절 끝에 낙마했다. 또 정병두 전 서울중앙지검 1차장도 제작진 기소와 용산참사 수사를 맡아 정권의 ‘복심’에 맞는 결론을 낸 뒤 지난해 8월 검사장으로 승진해 현재 춘천지검장을 맡고 있다.

바로 이 같은 사정 때문에 법조계 안팎에서는 최근 사법부의 몇몇 무죄판결을 덮어놓고 ‘좌편향 판사 탓’으로 몰아가는 보수 언론과 여권의 분위기를 심각하게 우려한다. 현 정권 들어 권위주의적 공안몰이가 되살아난 풍조에서 검찰권이 남용되고, 사법부가 공판 과정에서 감시·견제해야 할 몫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서울대 법학대학원 조국 교수는 “검찰이 노무현 정권과는 코드가 안 맞았지만, 코드를 맞춘 MB 정권 들어 과잉 기소로 인한 형사사건이 급증했다.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된 만큼 과잉 기소가 횡행했기에, OECD 국가 수준에 걸맞은 사법 독립을 지향하는 판사들은 과잉 기소된 사건을 꼼꼼하게 따져 판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라고 말했다. 

이는 곧 검찰이 스스로 무죄판결의 원인인 공소권 남용과 무리한 기소에 눈을 돌리지 않는 한 사법부와 판결을 둘러싼 마찰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또 이런 과잉 기소와 무죄 판결의 증가는 검찰이 정권의 시녀라는 이미지를 고착시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나온 일련의 무죄판결을 놓고 검찰 내부에서 자성을 찾아보자는 목소리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1월21일 전국 검사 1700여 명이 함께한 화상회의를 주재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판결 직후 ‘국민’을 거론하며 무죄판결에 반발하던 데 비해 톤은 낮췄지만, 여전히 반성보다는 ‘검찰의 단합’을 당부했다. 내부 힘을 축적해 사법부에 장기전으로 맞서겠다는 것인지, 더 이상 반발의 명분이 약하니 꼬리를 내리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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