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돼지독감] 신종플루 백신 접종순위 틀렸다(우석균)

신종플루 백신 접종순위 틀렸다
치사율 높은 만성질환자·영유아가 후순위 이해 못할 일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의사

출처 : 주간동아 2009.11.17  711호(p60~61)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서 시민들이 신종플루 검진을 위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정부가 전염병 재난단계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하고 중앙대책본부를 출범시켰다. 신종인플루엔자(이하 신종플루)를 ‘심각’한 국가재난이라고 선포한 것이다. 그렇다면 신종플루를 국가재난이라고 선포한 현 상황에서 정작 정부는 국민에게 무엇을 해주고 있을까.

정부는 신종플루의 위험성이 계절독감과 유사하므로 안심하라고 했으면서도, 막상 대응은 평상시의 의료체계대로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보건소, 다음에는 거점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이제는 동네의원에서도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

신 종플루가 감기와 비슷하다면서 국민에게 불안과 동요를 자제하라던 정부가 정작 치료는 감기와 다르게 하라고 하니 국민이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거점병원에 가면 진단에만 10만~ 20만원이 드는데, 이에 대한 정부 지침은 이제 와서야 ‘특별한 진단 없이도 치료받을 수 있다’로 바뀌었다.

간이검사는 불필요하며 확진검사는 안 해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전혀 필요 없는 간이검사는 지금도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고, 많은 거점병원에서 확진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가재난을 선포했음에도 의료현장에서는 정부 지침이 통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행정 마비와 다를 바 없으며, 그 비용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이런 검사비용에 대해 정부는 기존의 건강보험 외에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았고, 국가재난이 선포된 지금도 지원계획이 전혀 없다.

입원까지 하면 여러 비용이 추가로 들어간다. 이 비용도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정부가 국가재난 상황에서 국민에게 해주는 일이라곤 타미플루 무상공급 정도다. 그러나 타미플루 무상공급은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10알에 1만원 정도다. 정부가 환자 한 사람당 대주는 돈이 1만원짜리 1장이라는 얘기다. 이쯤 되면 국민이 불안해하거나 동요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11월 말 유행 정점기 지나서 접종

백신도 그렇다. 정부가 연내까지 백신접종을 책임지겠다고 한 사람은 1000만명이 안 된다. 구체적으로 보면 초·중·고교생과 일부 의료인이 11월에 접종을 받게 되고 임산부는 12월, 초등학교 3학년 이하와 6세 미만 영·유아 및 고위험군(만성질환자, 65세 이상 노인)은 12월 또는 내년에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신종플루의 정점기는 11월 말로 예상되는데, 정작 가장 위험하고 환자도 많이 발생하는 6세 미만의 영·유아들이 이 정점기를 넘겨 예방접종을 받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2006년 ‘인플루엔자 대유행 대응대비계획’이라는 문서에서 확정한 계획에 따르면, 정부가 확보했어야 할 백신은 최소 1300만명 분량이다. 그런데 1300만명 분량은 2회 접종을 예상한 것이므로 정부가 계획대로 준비했다면 연내에 확보하고 있어야 할 백신은 2600만명 분량이 돼야 한다. 정부가 준비를 제대로 못한 탓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이렇게 후순위로 밀린 사람 중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가장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6세 미만 영·유아와 지금까지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만성질환자, 즉 고위험군이 포함돼 있다. 백신 분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는 만성질환자와 어린이 중 어린이를 선택했다. 그 결과, 피할 수 있는 만성질환자의 사망을 우리는 내년까지 목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또 어린이 중 가장 위험한 영·유아가 가장 후순위로 밀렸다. 도대체 정부는 무엇을 해줬단 말인가.

2005년부터 준비 기간이 4년 있었고, 지난 6월에도 백신을 더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부는 4년간 별 준비를 하지 않았고, 6월에도 안이하게 대처해 기회를 놓쳤다. 많은 유럽 국가들은 준비를 마쳤으며 고위험군부터 순조롭게 백신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돈은 있지만 준비 부족으로, 백신을 연내에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몇 안 되는 국가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정부는 전염병 재난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하면서 국민 행동지침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본인이 아프면 알아서 집에서 쉬고, 가족이 아프면 가택 격리 조치를 취하라고 했다. 하지만 제도적 뒷받침은 전혀 없다.

정부는 신종플루 사태를 맞아 ‘본인이 아프면 일주일간의 병가, 가족이 아프면 일주일간의 휴가를 보장한다’는 공무원지침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전체 직장인에게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노동부와 보건복지가족부의 답변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 국민 행동지침을 따를 방도가 없는 것이다.

‘재난’만 선포하면 끝? 국민 불안 조장

휴교나 휴원도 더 광범위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휴교나 휴원을 하면 누군가는 집에서 아이를 돌봐야 한다.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아이 키우기가 힘든 이 나라에서 아이가 학교를 쉬면 부모 중 한 사람도 직장을 쉬어야 한다. 쉴 권리가 없는 직장인에게 휴교는 신종플루보다 더 무섭다.국가재난이라면 당연히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신종플루 사태에서 국가가 한 일이라곤 재난을 선포한 것 말고는 없다. 모든 일을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 국민에게 불안과 동요를 자제하라고 당부하지만 국민이 안심할 구석이 전혀 없다. 질병과 관련해 의료제도와 정부가 국민의 불안을 덜어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으니, 과연 국민은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까. 재난에 국민 각자가 알아서 대비해야 하는 사회를 ‘야만사회’라고 부른다면 신종플루 사태는 오늘의 한국 사회가 어디쯤 와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셈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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