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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이 싸워야 할 대상 ‘신자유주의냐, 이명박정부냐’

진보진영이 싸워야 할 대상 ‘신자유주의냐, 이명박정부냐’

 손제민기자 jeje17@kyunghyang.com




위로부터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2006년 미국 재계회 대표단에 한·미 FTA에 대해 설명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당시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 경향신문 자료사진

진보진영 일각에서 이른바 ‘체제 논쟁’이 뜨겁다. 1980년대의 사회구성체 논쟁이 박정희, 전두환 정부 시대의 한국사회의 성격에 대한 논쟁이었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체제 논쟁은 87년 민주화 이후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 정부 시대의 한국사회의 성격에 대한 논쟁 형식을 취한다.

발단은 노무현 정부 때였다. 민주화 20주년을 앞둔 2006년 당시 경향신문이 ‘진보·개혁의 위기’ 시리즈로 노 정부와 진보적인 시민사회의 성찰을 촉구했다. 또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노 정부에 대해 민주화를 후퇴시킨 신자유주의 정부로 비판하자, 진보진영 내에 논란이 일었다.

당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가 ‘참여정부가 실패했다는 지적은 옳지만, 정권교체를 수용할 수도 있다는 진단에는 반대한다’며 최 교수를 비판했다. 이에 손호철 서강대 교수가 ‘한나라당 집권이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데 오히려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다’며 논쟁에 뛰어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직접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합니다’라는 글을 국정브리핑에 게재하면서 가세했다.

당시 논쟁에는 ‘87년 체제’라는 키워드가 있었다. 창비그룹 지식인들이 쓰기 시작한 이 용어는 직선제 개헌으로 상징되는, 20년 해묵은 이 체제를 어떤 식으로 개혁할지가 화두였다. 즉 한나라당으로 상징되는 보수세력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고, 민주화의 성과가 후퇴하고 있음에도 진보진영의 대응은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슷한 형식의 논쟁이 부활했다. 체제 논쟁은 손호철 교수와 조희연 교수가 논의를 주고받는 과정에 만들어진 논쟁 공간에 젊은 지식인들이 다양한 논의를 더하는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인터넷매체 ‘레디앙’과 학술지 <마르크스주의 연구> 등을 통해 전개된 논쟁의 중심에는 ‘97년 체제’와 ‘08년 체제’가 있다.

97년 체제에 대한 강조는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은 한국사회가 김대중 정부 출범으로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질적 변화를 겪었다는 판단을 담고 있다. 반면 08년 체제를 강조하는 쪽은 87년 체제 때 다져진 민주화의 성과가 보수세력의 집권으로 후퇴했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신보수주의 정권 이명박 정부가 과거 10년간의 정부와 질적으로 다르다는 인식이다.

▷ 손호철교수의 ‘97년 체제론’
“김대중·노무현정부도 신자유주의 이명박정부와 질적인 차이 없다”




97년 체제를 강조하는 손 교수는 97년 외환위기로 61년 5·16 쿠데타로 수립된 발전국가 모델이 신자유주의 모델로 대체된 것에 주목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집권으로 신자유주의적 성격이 더 심화됐을 뿐 이전 정권과 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말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역시 신자유주의 정부였고 그러한 정책이 유권자들의 욕망에 기름을 부음으로써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킨 만큼, 진보진영이 싸워야 할 대상은 신자유주의이지 이명박 정부가 아니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지금의 정치적 대립선을 ‘신자유주의 대(對) 반(反)신자유주의’ 구도로 설정할 때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치적 계기에 대한 헤게모니적 개입의 여지가 축소된다”고 비판한다. 슬로건을 신자유주의 반대로 설정하면 이명박 정부 반대로 설정할 때보다 응집력이 약화된다는 뜻이다.

▷ 조희연교수의 ‘08년 체제론’
“신보수주의 집권 민주화 후퇴 과거 10년과 질적으로 다르다”




조 교수 편에서 논쟁에 참가하고 있는 서영표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진보진영이 대화해야 할 상대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채 굳어진 운동진영의 논리가 아니라 지배적 논리에 순응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저항의 계기가 주어지면 폭발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대중”이라고 말한다. “촛불시위에 참여하고 이명박 정부를 욕하지만 부동산 가격과 주식시장에 민감한 사람들, 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민감하지만 용산참사에 대해서는 둔감한 사람들을 상대로 한 담론을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 지식인들은 체제 논쟁이 결국 과거의 ‘비판적 지지론 대 독자후보론’으로 흐를지도 모른다고도 우려한다. 이승원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체제 논쟁이 선거전술 논쟁으로 축소돼 결국 어느 당 후보로 단일화할 것인가 여부로 귀결되는 것은 구래의 악습을 반복하는 것”이라며 “이번 체제 논쟁이 새로운 공동체 구성을 위한 다양한 학적, 실천적 논쟁으로 폭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상과 온라인상에서 이뤄져온 체제 논쟁은 오프라인으로 옮겨가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소장 유석진)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오는 13일 오후 2시 개최하는 ‘한국사회체제론을 다시 생각한다 : 이론과 실천전략’ 학술대회에서다. 이 자리에는 손호철, 조희연 교수 외에도 서영표 연구교수, 이승원 연구교수, 정진영 경희대 교수, 김윤철 서강대 교수,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하승우 한양대 연구교수 등이 참석한다.

<손제민기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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