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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건강과 대안 &#187; 코로나19</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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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디지털헬스, ‘낡은 질서’의 새로운 귀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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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6 Apr 2022 02:08:07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과학기술 · 생의학]]></category>
		<category><![CDATA[디지털헬스]]></category>
		<category><![CDATA[코로나19]]></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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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코로나19 출구에서 힘 받는 원격의료 등의 밑바탕은 차별과 배제 강화하는 ‘올드노멀’ 2022년 4월18일 ‘사회적 거리 두기’가 전면 해제됐다. 2020년 1월8일 한국에서 최초의 코로나19 환자가 확인되고, 2020년 2월23일 한국의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코로나19 출구에서 힘 받는 원격의료 등의 밑바탕은 차별과 배제 강화하는 ‘올드노멀’</strong></p>
<p>2022년 4월18일 ‘사회적 거리 두기’가 전면 해제됐다. 2020년 1월8일 한국에서 최초의 코로나19 환자가 확인되고, 2020년 2월23일 한국의 감염병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된 지 2년여 만이다. 코로나19의 법정 감염병 등급을 기존 1급에서 2급으로 낮추는 것을 논의하면서 ‘일상 회복’ 기대도 늘고 있다.</p>
<p><strong>대안적 질서 없는 ‘다시 제자리’</strong><br />
코로나19 유행 초기, 우리의 일상과 사회 운영을 더는 기존 방식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과거와 같은 일상 회복이 불가능하리라는 예측에 기반했지만 코로나19 발생의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기존 정치경제, 사회 운영 방식과 결별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기존 체제가 감염병 확산을 증폭하는 사회 불평등에 기반하고 이런 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코로나19보다 더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그러한 초기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회복’은 없는 ‘다시 제자리’ 복귀는 아닐까.</p>
<p>수많은 사람의 생계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막막해졌고, 빈곤선 이하 인구집단이 큰 폭으로 늘었으며, 공급사슬 중단으로 제조업 생산라인에 문제가 생겼음에도 빅테크 기업들은 승승장구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알파벳(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의 수익이 증가했다. 재난을 기회로 삼은 비대면에 기초한 ‘디지털자본주의’의 성장은 정치적 포퓰리즘을 강화했고, 권위주의에 기댄 차별과 배제를 합리화하는 동력으로 토론과 합의라는 민주주의의 최소 조건을 흔들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민주주의의 반대 방향에서 ‘확증편향’과 ‘거짓선동’ 도구가 돼 ‘탈진실의 시대’로 명명되는 라이프스타일의 하나가 됐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헤게모니를 상실할 것 같았던 ‘신자유주의’는 감염병의 세계화 충격에도 여전히 ‘괜찮은 상식’으로 통용된다.</p>
<p>코로나19 유행 이전에 등장한 4차 산업혁명은 ‘산 노동’으로 공공적 가치를 생산하던 영역, 즉 먹거리(농업)·의료·교육·돌봄을 인공지능(AI), 데이터, 정보통신기술(ICT) 등 ‘죽은 노동’으로 바꿔 새로운 이윤 창출 영역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방향은 한때 ‘창조경제’라고도 불렸다.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재난은 이들에게 ‘비대면 서비스 시장’이라는 제대로 뛰어놀 수 있는 발판을 합법적으로 제공해준 셈이다.</p>
<p>코로나19 유행을 겪으며 여러 나라에서 원격의료를 비롯한 ‘디지털헬스 솔루션’의 급격한 활용이 늘었다. 특히 원격의료는 광범위한 사용에도 우려했던 부작용이나 단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아, 코로나19 유행 이후에도 기존 대면의료를 보완하는 형태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디지털헬스 주창자들은 더 광범위한 규제완화로 기술혁신이 일어날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하지만 각국 정부가 유례없이 많은 규제를 완화했음에도 더 명확해진 한계가 드러났다.</p>
<p><strong>인프라·리더십 등 디지털헬스 한계 뚜렷</strong><br />
첫째, 디지털헬스의 가능성과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적절하고 접근 가능한 데이터베이스 인프라 구축에 달려 있다. 현재는 그런 인프라가 구축된 나라가 없다. 의료 데이터는 표준화돼 있지 않아, 무질서하고 빈 공간이 너무 많다. 둘째, 기술 발전뿐 아니라 데이터 인프라, 거버넌스(협치), 인력 등을 총괄적인 비전 내에 통합하고 이끌어가는 리더십이 구축되지 않았다. 셋째, 비즈니스 솔루션이 없다. 원격의료조차 코로나19 이후 과연 경제적 성과 모델을 창출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넷째, 사이버보안 문제가 심각하다. 해킹 등 사이버보안에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대중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다섯째, 소득·인종·연령·젠더에 따른 디지털 격차의 형평성 문제가 심각하다.</p>
<p>이런 한계에 직면하자 디지털헬스 주창자들은 의료와 건강관리에 사용되는 ‘도구’일 뿐이라고 강조하지만, 사실 디지털헬스는 그 기술의 특성과 그것을 위해 요구되는 규제완화 때문에 더 광범위한 사회구조 변화의 계기로 작동한다. 디지털헬스에 새로 뛰어든 행위자들의 역할 증대를 보라. 전통적 의료 영역에서 주된 행위자는 의료인, 의료기관, 제약회사, 의료기기 회사, 보험회사 등이다. 세계적 규모에서 디지털헬스의 효용을 강조하며 뛰어든 새로운 행위자는 바로 거대 규모의 테크노, 데이터 기업들이다.</p>
<p>새로운 행위자의 등장은 전통적 의료 영역에 새로운 ‘가치’를 주입하며 새로운 ‘실행’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확대된다. 의료인과 환자의 인간적 접촉으로 의료가 이뤄지고 그 공급은 사회가 책임진다는 공공적 모델을 넘어, 데이터에 근거해 데이터 전문가와 기계가 의료를 제공하고 그 공급은 기업과 시장이 책임진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디지털헬스 실행은 기존 공공의료 체계를 민영화하고 시장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p>
<p>또 다른 측면은 ‘생활세계의 의료화’ 경향의 확대다. 질병이 아닌 것을 질병화하고 문제화해 관리 대상으로 삼는 현상이다. 수면, 체중, 식단, 운동 등을 ‘건강관리’ 명목으로 문제화하고 해결책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의료정보뿐 아니라 다양한 건강정보와 개인의 생활습관 데이터를 수집해 관리한다. 의료정보와 건강정보의 상업적·경제적 가치화가 이뤄지고 개인의 프라이버시·정보인권이 침해될 가능성도 커진다.</p>
<p><strong>의료 민영화, 불평등 악화로 가는 길</strong><br />
마지막으로, 의료·사회 영역에서 개인을 새로운 범주로 ‘구별 짓기’ 하는 경향이 확대된다. 광범위한 개인정보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인을 다양한 방식으로 범주화하고 구분한다. 이런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금융기관의 대출 신용 평가, 보험회사의 위험 평가 등이 이뤄진다. 디지털헬스 도구가 차별과 배제를 증가시키고, 사회·건강 불평등을 악화하는 방향으로 기능하게 된다.</p>
<p>코로나19 유행으로 우리는 세계의 불평등과 기존 체제의 모순을 ‘대면’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신기술’로 무장하고 새로움을 표방하지만 사실은 ‘올드노멀’인 정치·경제·사회적 질서의 귀환을 목격하는 것일까? 슬라보이 지제크는 전환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주체가 실재와의 트라우마적 만남을 겪어야 하고 대안적인 상징적 질서를 얻기 위해 이데올로기의 ‘환상을 횡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알랭 바디우는 변화의 주체는 ‘사건’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p>
<p>코로나19가 우리에게 특별한 ‘사건’도 ‘실재와의 트라우마적 만남’도 아니었던 걸까? 그러나 코로나19를 큰 전환의 ‘사건’으로 경험한 이들은 분명 있다. 감염병 위기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기후위기는 대안적인 정치경제적 구성을 낳는 ‘전 지구적 사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건들과의 만남으로 형성된 실재하는 주체들의 의지적 실천이 세상을 바꿔나갈 것이다.</p>
<p>이상윤 의사·건강과대안 책임연구위원<br />
한겨레21 제1410호(2022년 5월 2일자)</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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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겨레21]‘새로운 길’을 내는 공공병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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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0 Mar 2022 03:04:51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의료자원(보험,인력등)]]></category>
		<category><![CDATA[공공병원]]></category>
		<category><![CDATA[코로나19]]></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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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코로나19 유행 속 재발견된 공공병원, 일제강점기 설립 운동 역사를 돌아보다 바야흐로 ‘위드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는 듯하다. 부유한 국가 대다수가 사회를 격리하는 방역정책보다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 중이다.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코로나19 유행 속 재발견된 공공병원, 일제강점기 설립 운동 역사를 돌아보다</strong></p>
<p>바야흐로 ‘위드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는 듯하다. 부유한 국가 대다수가 사회를 격리하는 방역정책보다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 중이다. 하지만 백신 불평등 문제는 그대로이고 전쟁마저 시작됐다. 갓난아기를 안은 여성과 어린아이들,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밀폐된 지하도에 옹기종기 붙어 앉아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쪽잠을 자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소식은 감염병 속 전쟁이라는 자본주의의 야만적 속성을 그대로 재현 중이다.</p>
<p>아이티에서 전쟁의 야만성과 감염병의 불평등을 고민했던 의사 폴 파머는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는가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세계가 경험했다는 그 고통이 누구의 고통이었는지, 고통의 원인은 무엇이었으며, 누가 여전히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정의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전쟁도 할 수 있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외에 얻는 게 없을 수도 있다.</p>
<p><strong>노동자 일당 1원인데, 진료비가 최소 1원75전</strong><br />
코로나19로 한국 사회에서 재발견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병원의 역할이다. 우리나라는 전체 병원 가운데 고작 10% 남짓한 공공병원을 가졌다. 그럼에도 그 10%의 공공병원 종사자가 코로나19 환자의 80%를 도맡아 치료했다. 그로 인해 평소 공공병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던 수많은 사회적 약자가 하루아침에 병원에서 쫓겨났고 ‘의료 공백’을 겪었다. 이제 80% 넘는 국민이 더 많은 공공병원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참고할 만한 역사 속 공공병원 설립 운동 사례를 소개해볼까 한다.</p>
<p>한국 사회 전체 이목이 집중된 공공병원 설립 운동을 찾으려면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사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공공병원은 당시 인구수 대비 지금보다 적지 않았다. 1930년대 공공병원은 30여 곳으로 도마다 3곳가량 존재했다. 문제는 조선인의 의료접근성이 낮다는 것이었다. 공공병원에서 진료하는 대다수가 일본인 의사였던데다 진료비가 비싸 가난한 조선인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민간 병·의원이 몰려 있는 경성이라고 해서 조선인의 의료접근성이 나았던 것은 아니다. 1931년 조선인 노동자 하루 일당이 1원 안팎인데, 개업의를 찾아가 진찰받고 3일치 약을 받으면 최소 1원75전을 내야 했다. 일본에서 1927년 시작된 건강보험도 조선엔 적용되지 않았다.</p>
<p>1920년대 말 불어닥친 경제공황의 여파는 민중의 생존을 위협했다. 1930년부터 자살자가 크게 늘었는데, 그중에서도 ‘생활곤란’과 ‘병고’(病苦)로 인한 자살자가 가장 많았다. 1930년 초 유석창(경성의학전문학교 출신 의사) 등 실력양성운동계열 지식인을 중심으로 실비진료운동(實費診療運動)이 일어났다. 가난한 사람도 치료받을 수 있도록 말 그대로 ‘실비’만 받겠다는 것이었다.</p>
<p>이 운동의 결과물로 1931년 ‘사회영(社會營, 사회운영) 중앙실비진료원’이 세워졌다. 담합으로 의료비를 높게 유지하던 경성의 개원가 의사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인으로 구성된 경성의사회뿐 아니라 한국인으로 구성된 한성의사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제 관료들도 편치 않았다. 당시 일제경찰은 실비진료운동을 발단으로 사회운동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하며 사회영 중앙실비진료원을 지속해서 감시했다.</p>
<p><strong>조선 민중, 의료를 권리로 인식하다</strong><br />
이러한 질시와 우려 때문이었을까? 1932년 7월14일 ‘격증하는 환자’로 시설 확장과 분원 설립을 고민하던 중앙실비진료원에 대규모 화재가 일어났다.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거의 모든 시설이 불타 정상적인 운영을 할 수 없었다. 어렵게 임시진료소를 열어 사업을 이어나갔지만 상승하던 실비진료운동의 기세는 한풀 꺾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즈음 조선인 사회에서는 이미 “민중의료기관의 시설은 민중의 일방적 책무”가 아니므로 “개인의 물자 제공과 기술자의 희생적 봉사로써 성립되는” 실비진료소 같은 형태를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제 당국이 나서서 가난한 조선인도 진료받을 수 있는 공공병원을 설립하라는 주장이었다.</p>
<p>조선 사회의 요구는 1932년 말 경성부립경비진료소 설립 운동으로 구체화된다. 지금의 서울시에 해당하는 경성부(京城府)에서 실비진료소와 유사한 경비진료소를 세우라는 것이었다. 이 운동엔 조선인 사회만 나서지 않았다. 경제불황으로 평범한 일본인도 고통받은 만큼 적잖은 일본인 단체가 가담했다. 이런 요구가 빠르게 구체화될 수 있었던 것은 때마침 경성의 전기·전차·가스를 독점 운영하던 (주)경성전기가 거세게 일어난 반독점, 공영화 운동을 무마하기 위해 경성부에 내놓은 기부금 100만원이 있었기 때문이다.</p>
<p>1932년 말 경성부가 제시한 경비진료소 설치안이 경성부회에 상정됐다. 경비진료소 설치안에 대한 조선 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듯 회의에는 300명 가까운 방청객이 몰려들었다. 여론은 찬성이 월등히 우세했지만 의사회를 의식해 반대하는 부회 의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 2차 부회의까지 열고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는 의사회에 오히려 악수로 작용했다. 반대파를 향한 비난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의사회는 수가와 약가규정을 폐기해 더 이상 담합하지 않고 앞장서 경비진료를 실시하겠다는 결의사항을 공표해야 했다. 의사회가 백기를 들자 반대 의견을 내던 부회 의원들도 수그러져 11월29일 마침내 경성부립경비진료소 설치안이 통과됐다.</p>
<p>물론 경성부립경비진료소라는 공공병원 설립을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승리한 것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경성부가 앞장서 경성부립경비진료소 설치안 통과에 힘쓴 것을 보면 일제가 더 큰 사회운동을 막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여긴 듯하다. 하지만 중일전쟁의 서막이라 할 수 있는 만주사변으로 군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인데도 일제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점을 생각한다면 결코 얕잡아볼 운동은 아니다. 특히 조선 민중이 의료를 권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의미가 있다.</p>
<p><strong>역사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strong><br />
안타깝게도 경성부립경비진료소 설립 운동이 일어난 지 꼭 90년 만인 2022년 현재, 한국의 공공병원 상황은 그때와 그리 다를 것이 없다. 여전히 공공병원 설립을 가로막는 역사적, 경제적, 정치적 장애물이 많다. 하지만 제국주의 탄압에도 공공병원을 설립했던 과거 경험을 돌아보면, 새로운 길 내기의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어려울 때 희망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낭만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잔인한 역사 속에도 열정과 희생, 용기와 친절의 역사라는 사실을 믿는 태도 때문’이라고 했다.</p>
<p>우리는 역병과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과 맞서 싸우면서 인간으로 올바른 삶을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되물어야 하는, 코로나19와 함께하는 전환의 시기를 살고 있다.</p>
<p>최규진 의사학 연구자·‘건강과대안’ 운영위원<br />
한겨레21 제1402호(2022년 3월 14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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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겨레21]모두가 건강하게 누구나 위대하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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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2 Mar 2022 03:48:36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건강불평등]]></category>
		<category><![CDATA[의료서비스]]></category>
		<category><![CDATA[코로나19]]></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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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오미크론 속에서도 반복되는 의료자원 부족, 상품·성장 신기루를 걷고 평등-연대 원리로 의료체계 재조직해야 “선생님, 어제 오셨던 환자분 있잖아요. 입원 병실 없어서 집에 돌아가신 그분이요. 어제 집에 돌아가셔서 극단적 선택을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오미크론 속에서도 반복되는 의료자원 부족, 상품·성장 신기루를 걷고 평등-연대 원리로 의료체계 재조직해야</strong></p>
<p>“선생님, 어제 오셨던 환자분 있잖아요. 입원 병실 없어서 집에 돌아가신 그분이요. 어제 집에 돌아가셔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셨대요.”</p>
<p>내가 진료하는 환자들은 직업병을 앓고 있다. 그도 일터에서 얻은 직업병으로 늘 호흡곤란을 호소하던 환자였다. 코로나19에 감염됐고 중증으로 이행할 확률이 높았지만 다행히 잘 치료돼 입원 10일째 병원에서 퇴원할 수 있었다. 그랬던 환자가 퇴원 하루가 지나 다시 찾아왔다. “선생님, 숨이 너무 차요. 다시 입원하고 싶어요.” 확인해봤지만 빈 병실이 없었다. 평소 입원 병실 일부를 코로나19 환자 전담 병실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호흡곤란 상태를 확인해보니 당장 응급처치가 필요해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병실이 없어 입원하기 힘들어요. 입원 예약을 하고 가시면 병실이 나는 대로 연락드릴게요.” 다른 환자들을 내쫓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었다. 환자와 보호자는 집에 돌아가 병실을 기다리겠다고 했다.</p>
<p><strong>한국 의료가 기출문제 해답을 못 찾는 이유</strong><br />
그가 앓는 질병의 특성상 다른 병원에 가면 진료비 부담이 몇 배가 많을 환자였다. 다행히 지금은 회복돼 우리 병원에서 잘 치료받고 있지만 환자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이유는 아마 두려움과 고립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미크론 변이 대유행 속에 지금 한국 의료시스템은 선택지가 별로 없는 이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p>
<p>코로나19 유행 내내 한국 의료는 입원 병상 부족, 치료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2년간 사회 전체가 경험한 기출문제인데도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p>
<p>코로나19 이전에 한국 의료와 관련한 공적 담론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4차 산업혁명’ ‘신성장 동력’ ‘효율성’ ‘비용 절감’ ‘생산성’ 등이다. ‘가난’ ‘빈곤’ ‘노동환경’ ‘질 낮은 일자리’ ‘불평등’ ‘인권’ 등의 단어가 ‘의료’와 함께 거론된 경우는 극히 적다. 이런 담론이 전제하는 이데올로기적 질서는 명확하다. ‘의료는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고, 상품의 질 향상을 통한 소비자 효용 증가는 시장경쟁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관념이다. 의료에서도 비용 절감과 생산성 증가가 필요하고 이는 공공보다 민간이 더 잘할 수 있다는 결론.</p>
<p>이런 관념은 사실 현실과 맞지 않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우선 건강은 존재적 가치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건강이 인간 존재의 총체성과 관련됐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안다. 그래서 “아픈데도 돈이 없어 치료를 제대로 못 받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져야 하고 지켜지기를 바란다. 둘째, 질병은 누구에게나 던져진 공통의 위험요인이다. 우리는 언제, 어떤 질병에 걸릴지 예측하기 힘들고 대부분 자기 선택이 아니다. 질병은 개인 역량의 한도를 넘어선다. 건강과 질병이 개인의 책임이기보다 사회적 책임인 이유다.</p>
<p>셋째, 상품과 달리 의료적 필요나 수요는 애초부터 구체적이지 않고 개인이 결정하기 힘들다. 의료는 전문지식과 기술에 따라 그 필요나 수요가 구체화하고 결정된다. 본인이 결정하기 힘든 필요나 수요를 ‘현명한 소비자’가 시장을 통해 ‘구매’하기는 힘들다. 의료 전문 지식과 기술,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p>
<p>넷째, 환자는 ‘취약한’(vulnerable) 조건에 있는 이들이다. 권력·경제력·학식 등이 있더라도 환자는 불확실성과 무력감으로 의료진에게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고, 때로 두려움과 수치심을 느끼더라도 의료진 도움을 갈구한다.</p>
<p><strong>미덥지 않은 ‘공공병원 확충’ 공약</strong><br />
마지막으로, 의료를 가장 필요로 하는 이는 권력이 없거나 경제적·사회적 자원이 없는 사람들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억압받는 사람, 차별받는 사람이 병에 더 잘 걸리고 의료를 필요로 한다. 건강과 질병의 다섯 가지 본질 중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가장 필요한 이들이 가장 적게 의료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p>
<p>이렇게 본질적 조건 때문에 의료는 시장이 해결할 수 없다. 의료의 수요와 공급은 시장에 맡겨 조절하기 힘들고 사회적·공공적인 제도와 장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국가가 나서서 의료의 필요, 수요, 공급을 책임져야 최소한의 정의가 달성된다. 한국은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운용함으로써 기본적인 보편성과 공공성을 갖췄다. 하지만 의료제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의료기관 병상과 인력 측면에선 국가가 책임을 다한다고 보기 힘들다.</p>
<p>한국의 병상 중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병원의 병상은 전체 병상의 9.7%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7분의 1에 불과하다(2020년 기준). 노무현 정부는 공공병상 30%를 약속했지만 임기 내 공공병원 확충은 없었다. 문재인 정부 역시 공공의료기관 확충을 약속했으나 실행하지 않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전국 70곳에 공공병원을 확충하겠다고 공약했으나 미덥지 않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공공병원 확충은커녕 의료를 민간과 시장에 맡기겠다고 대놓고 얘기한다.</p>
<p>정치인들이 어떤 신념으로 의료를 주장하든 우리는 코로나19 대유행이 가르쳐준 가장 중요한 교훈에 직면했다. 의료는 연대(Solidarity)와 우애(Fraternity)에 기초해 있으며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의료진이 감염되면서도 환자 곁에 있는 이유다. 사람의 건강을 돌보는 일은 상호 연대 없이 가능하지 않다. 연대는 시장에서 행동하는 이기적 개인이 아닌, 인류가 공동으로 내재화하며 발전해온 무언가에 기반한다. 연대와 우애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집단적인 것이다. 가장 강력한 연대는 아래로부터 강력한 참여를 기반으로 조직된 형태다.</p>
<p><strong>억압받고 불행한 이를 걱정할 때</strong><br />
코로나19 유행은 건강은 상품이 아니며 모두가 건강해질 때까지 누구도 홀로 건강해질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해줬다. 코로나19 이후 의료는 평등과 연대의 원리에 기초해 재조직돼야 한다. 개인의 건강이 모두의 건강의 조건이 되는 공동체를 향한 비전 속에서 구체화해야 한다.</p>
<p>의사이자 인류학자로서 가난한 이들의 건강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폴 파머가 2022년 2월21일 타계했다. &lt;감염과 불평등&gt;의 저자인 그는 2009년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마틴 루서 킹의 날을 기념하는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억압받거나 불행한 사람들을 걱정해야 할 때입니다. 깊은 공감과 연대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세상을 더 안전하고, 더 정의롭고, 더 인간적으로 만들기 위한 운동에 참여할 때입니다. 누구나 연대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위대해질 수 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p>
<p>이상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건강과대안’ 책임연구위원<br />
한겨레21 제1402호(2022년 3월 7일자)</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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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겨레21]‘방호복 화투’ 미담이 당연해지려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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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4 Feb 2022 01:38:56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여성노동자]]></category>
		<category><![CDATA[의료자원(보험,인력등)]]></category>
		<category><![CDATA[간호사]]></category>
		<category><![CDATA[코로나19]]></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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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전인적 돌봄 가치’ 깨닫게 한 코로나19… 지치고 떠나지 않게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로 이어져야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은 우리 사회가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간호와 돌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전인적 돌봄 가치’ 깨닫게 한 코로나19…</strong><br />
<strong> 지치고 떠나지 않게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로 이어져야</strong></p>
<p>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은 우리 사회가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간호와 돌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시켜줬다. 2020년 1월20일 국내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확인된 이후 다섯 차례 대유행을 경험했다. 2020년 2월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1차 대유행이 있을 당시 전대미문의 팬데믹으로 모두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코로나19 확진자 곁에 간호사들이 있었다. 간호사들은 숨 막히고 무거운 방호복을 입고 사회로부터 격리된 공간에서 환자의 일상적 요구부터 질병의 회복까지 감당했다.</p>
<p>대한민국은 간호사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언론은 우리의 ‘코로나 전사’ ‘코로나 영웅’으로 칭송했고, 연일 가슴을 울리는 사례들을 보도했다. 시민들은 ‘덕분에 챌린지’로 화답했다. 우리 사회에서 간호사가 이처럼 뜨거운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지난 2년간 우리 사회는 새삼 간호노동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한 듯 보였고 ‘덕분에’ 간호사들은 다소 위로받는 것처럼 보였다. 그 덕분에 아마도 팬데믹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그 오롯한 격리의 공간에서, 간호사는 지금까지도 누군가를 돌보며 견딜 수 있을 것이다.</p>
<p><strong>간호사의 소명은 병원 이윤에 묻혀</strong><br />
팬데믹이 한창인 2021년 가을, 카페에서 며칠 뒤 미국으로 떠날 예정인 한 간호사를 만났다. 그는 병원을 그만둔 지 꽤 됐고 몇 달 동안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일했다. 미국 병원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그는 “우리나라 병원에서 일하는 거 너무 힘들어서요.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라고 말했다. 미국 간호사의 노동환경이 한국보다 좋고 임금도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가 떠나기 직전까지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일한 이유는 간호사로서 이 위기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p>
<p>현재 간호대학에서는 4년의 교육과정을 통해 ‘간호 대상자(환자, 지역사회 주민)의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도록 돕는 것이 간호사의 소명’이라고 교육한다. 현실에서 부닥치는 간호사 자신의 인간으로서 존엄성은 강조되지 않는다. 나는 교육자로서 교육이 아니라 ‘종교적 세례’를 주는 사람이 된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p>
<p>간호사들은 간호사 면허를 취득하고 의료기관에 취업한 뒤 학교에서 배운 간호의 실천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병원이 의료 현장은 존엄한 돌봄 가치를 실현하는 공간이 아니며 경쟁과 이윤의 발판이 되는 ‘생산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요하기 때문이다. 전인적 간호를 하고 싶은 간호사는 철저하게 임금노동자가 된다.</p>
<p>2021년 여름, ‘방호복 화투’라는 제목을 단 사진 한 장이 언론에서 미담으로 소개됐다. 사진에는 93살 할머니와 방호복을 입은 29살 간호사가 격리병실 바닥에 깐 매트리스 위에서 화투 그림 맞추기를 하고 있었다. 사진 속 간호 현장에서 고령의 치매 증상이 있는 환자는 교과서에 나온 그대로의 전인적 돌봄을 만났을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우리 사회가 간호사에게 기대하는 간호일 것이며 간호사도 실천하고 싶은 간호일 것이다. 왜 우리 사회는 모두가 바라는 이 돌봄을 일상의 간호 현장에서 만들어낼 수 없는 걸까?</p>
<p><strong>간호사 1명당 환자 수 25~30명도</strong><br />
2019년 우리나라 병원 간호사의 평균 이직률은 15.4%, 신규 간호사 이직률은 45.5%였다. 이것은 평균 수치이니 개별 의료기관으로 보면 상황이 더 심각한 경우도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간호사 이직률이 42.9%인 의료기관도 있었다. 간호사의 높은 이직률은 긴 노동시간, 높은 노동강도, 상대적으로 낮은 보상, 야간 교대근무 등 특수한 근무형태 그리고 위계적이고 폐쇄적인 조직문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p>
<p>해마다 많은 수의 간호사가 간호 현장을 떠나고, 그 자리를 신규 간호사가 채운다. 남겨진 간호사들은 신규 간호사 교육과 함께 도저히 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의 환자를 간호하며 지쳐갈 수밖에 없다. 이 열악한 노동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한 누군가는 내일 또 이 간호 현장을 떠날 것이다.</p>
<p>간호사는 현장에서 지속적인 간호노동을 경험하며 숙련되고 역량이 축적된다. 이러한 역량 축적은 단순하게 개인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집합적 노동을 해야 하는 간호의 특성상 의료기관 차원의 간호 역량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명의식이 있고 숙련된 간호사가 간호 현장에 많이 남아 있으려면 ‘덕분에 팬데믹 상황을 버티고 있습니다’라는 달래기 인사말이 아니라 열악한 간호노동 환경 구조와 정책에 현실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고단함에 지친 간호사들이 거리에서, 토론장에서 “‘덕분에 챌린지’보다 함께 일할 동료 간호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의료기관이 간호인력을 적정 수준으로 확보해 현장에 배치함으로써, 노동강도를 낮추고 전인적 간호가 가능한 의료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p>
<p>현재 의료법 시행규칙의 간호사 배치 기준을 지킨다면 입원병동 간호사 1명이 하루 근무시간 동안 대략 12명의 환자를 담당해야 한다. 간호사는 근무시간 중 환자를 직접 만나 간호를 제공하는 하는 것 외에 간호처치 전후 업무, 간호기록, 관련 부서들과 의사소통 등을 해야 한다. 12명의 환자를 담당하는 간호사가 환자 1명당 직접간호를 수행하는 시간은 12~16분에 그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근무하는 동안 응급환자라도 발생한다면 다른 환자를 만나는 시간이 줄어든다. 그런데 대한간호협회(2021년)에 따르면 중소병원의 일반병동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가 평균 25~30명이라고 한다. 해당 법규를 위반해도 의료기관을 통제할 벌칙 조항이 없다.</p>
<p>간호사는 식사도 거르고 화장실도 가지 못하며 일하지만, 입원환자가 애타게 간호사를 찾아도 만나기 어렵다. 사정이 이러하니 간호 현장에서는 종종 환자와 간호사가 언성을 높이는 상황이 일어난다. 결국 유명무실한 현재 관련 법령으로는 환자의 필요에 따라 적정 간호사를 배치시킬 수 없을뿐더러 최소한의 간호인력 확보도 보장되지 않는다.</p>
<p>코로나19 팬데믹은 건강과 돌봄이 사회의 필수 가치임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어쩌면 모두가 연결돼 있고 모두가 함께 돌보지 않는다면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에 이르기 위해 이 고통 속에 우리가 함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거창한 기술과 기계, 건물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다. 누군가를 돌보는 그 사람이다.</p>
<p><strong>거창한 기술보다 ‘돌보는 사람’이 사회 안전 지속</strong><br />
언제까지 숙련된 간호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신규 간호사를 부품처럼 끼워 넣으며 이 상황을 버텨나갈 것인가. 돌보는 자가 아프지 않고 돌봄을 멈추지 않을 수 있어야 사회가 안전하고 지속가능하다. 숙련된 간호사 그리고 축적된 간호 역량이 환자의 안전을 지킨다는 사실을 결코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간호노동 환경 개선의 출발점은 환자와 간호사 모두가 존중되는 돌봄관계의 기본조건인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가 돼야 할 것이다.</p>
<p>강경화 간호사·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운영위원<br />
한겨레21 제1401호(2022년 2월 28일자)</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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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겨레21]코로나19 사망자 숫자에 불과한 존재는 없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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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8 Feb 2022 03:24:09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젠더 · 인권]]></category>
		<category><![CDATA[코로나19]]></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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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체감하기 어려운 ‘코로나19 사망자 수치’가 말하지 않는 것 2022년 2월10일 코로나19 확진자가 일일 5만 명을 돌파했다. 과거 100명, 1천 명을 넘을 때마다 온 나라가 걱정과 긴장 속에 미래를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체감하기 어려운 ‘코로나19 사망자 수치’가 말하지 않는 것</strong></p>
<p>2022년 2월10일 코로나19 확진자가 일일 5만 명을 돌파했다. 과거 100명, 1천 명을 넘을 때마다 온 나라가 걱정과 긴장 속에 미래를 염려하던 때를 뒤돌아보면 5만 명이라는 ‘거대한’ 수치에 대한 시민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침착해 보이기까지 한다. 어찌 보면 확진자 수치에 대한 면역력이 형성된 셈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체감하기 어려운 수치가 있다. 바로 사망자 수치다. 현재 누적 사망자 수는 6963명(2022년 2월10일 기준)에 이른다. 우리에게 사망자 수치는 코로나19 대유행의 확산과 방역의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일 뿐일지 모른다. 팬데믹 시대에 타인의 죽음마다 슬픔을 같이한다면 그 삶 또한 견뎌내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p>
<p><strong>고 정유엽군 아버지가 375.4㎞를 걸은 이유</strong><br />
그러나 사망자의 가족과 지인들에게는 쉽사리 잊힐 수 없는 삶일 것이다. 2020년 5월24일치 &lt; 뉴욕타임스&gt;는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 수치가 10만 명을 돌파했을 때, 희생된 이들의 이름과 연령, 거주지와 그만의 특징을 한 사람 한 사람 소개하는 섹션을 마련했다. 예를 들어 ‘Kyra Swartz, 33, 뉴욕, 반려동물 구조단체에서 자원봉사함’. ‘이곳에 언급된 1천 명은 오직 사망자의 1%에 불과하다. 그 누구도 단지 숫자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었다(None were mere numbers).’ &lt; 뉴욕타임스&gt; 기사는 단 몇 문장이었지만 숫자로 묻혀가던 이들의 삶을 사회로 호명해냈다.</p>
<p>최근 코로나19 시기 또 다른 사망자를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한 책이 발간됐다. &lt;2146, 529: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gt;은 수치의 익명성과 무관심의 잔혹함을 민낯 그대로 보여준다. 2146과 529는 코로나19 사망자에 가려진 또 다른 희생자의 수치로, 2021년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 2146명 중 사고사와 과로사에 해당하는 노동자 529명을 뜻한다. 책은 뉴스 단신으로만 소개된 죽음을 일기처럼 기록해 소개하고 있다. 기사마다 보이는 ‘깔려 사망’이라는 표현은 죽음의 원인에 대해 분통하게 만들고 깔려 사망하던 그 찰나의 순간 사라져버린 소중한 삶을 고통스럽게 직면하게 한다. 하지만 대다수 시민에게 제목 속 수치는 코로나19 사례처럼 그저 누군가의 죽음을 표시하는 ‘익명’의 수치로 여겨질 뿐이다.</p>
<p>이런 시기에 재난 속 죽음을 잊지 않고 애도하려던 의례가 있었다. 2020년 3월18일 폐렴 진단 엿새 만에 숨진 정유엽(당시 만 17살)군의 아버지 정성재씨의 청와대를 향한 행진이었다. 정씨는 아들의 사망 1주기인 2021년 3월, 24일 동안 경북 경산시에서 청와대 사랑채까지 375.4㎞를 걸었다. 그는 줄곧 코로나19 확진자 수치 억제에 매달리던 시스템이 아들과 같은 발열 환자들이 죽음에 이른 원인이라고 호소했다. 그렇지만 1년간 어떠한 반성과 변화도 목격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직장암 투병 중임에도 절박한 심정과 애도하는 마음을 담아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인 걷기를 택했다.</p>
<p><strong>익명의 죽음에 대한 익명의 돌봄</strong><br />
정유엽군은 고열이 발생한 뒤 죽기 직전까지 코로나19 검사만 총 14회 받았다.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의 최종 검체 결과는 음성이었다. 그사이 병원 밖에서, 병원 안 격리실에서 반복된 음성 결과에도 코로나19 감염 의심환자로 분류돼 허망하게도 폐렴 진단 엿새 만에 숨졌다. 아버지와의 수차례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당시 유가족이 지역 시의원을 욕하고 다닌다는 소문부터 부모가 식당과 학원을 운영하기 위해 아들의 코로나19 검사를 막았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까지 퍼지기도 했다. 위로든 비난이든 결국 아들의 죽음은 교통사고와도 같은 ‘불행한’ 사건처럼 여겨졌다.</p>
<p>정씨의 도보행진 보도자료에는 아들의 ‘억울한 죽음’ ‘온전히 유족의 몫’으로 넘겨진 사후조사, 유족에 대한 ‘비난과 무관심’이 적혀 있었다. 특히 그가 아들이 숨지기 약 2시간 전 담당의에게서 들었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당시 의사는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판정됐다며 격앙된 목소리로 “세계질병학회에 보고해야 할 변종 바이러스”라고 통보했다. 의료진은 ‘파악할 수 없는’ 죽음을 의학적 사례로 보고하는 것이 중요했을지 모르지만, 가족에게는 그 죽음이 갖는 ‘의미’가 중요했다. 팬데믹 시기에 의료진이 돌봤던 대상은 삶이 있던 인간이 아니라 시간성이 배제된 ‘생물학적인 몸’이었다. 유가족이 의료진의 ‘과학적’ 돌봄을 경험하면서도 공감하기 어려웠던 것은 이런 ‘익명의 관계성’ 때문일 것이다.</p>
<p>인류학자 리사 스티븐슨은 캐나다 북부의 이누이트족 자살 문제에 대한 당국의 보건정책을 조사한 뒤 ‘익명의 죽음’에 대한 ‘익명의 돌봄’ 방식이라 비판했다. 의료진과 보건정책가들은 이누이트족의 높은 자살률을 낮추려 했지만 이들은 개선돼야 할 보건통계 속 예비 수치에 불과했다. 그의 지적은 마치 코로나19 재난 속 정성재씨가 마주했던 한국의 현실을 겨냥한 듯 읽힌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lt; 자살론&gt;에서 각 사회는 ‘일정한 몫의 자발적 죽음’을 발생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이를 이른바 ‘통계적 숙명론’이라 했다. 일정 수준의 자살 행위를 사회집단의 숙명으로 간주하는 주장에는 분명 논박의 여지가 있지만, 자살을 포함해 팬데믹 시기 개인의 죽음을 어쩔 수 없는 개인의 ‘숙명’으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지배적이 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p>
<p>정성재씨의 ‘24일 도보행진’은 아들 죽음의 의미를 묻는 걷기 의례였다. 궁극적으로는 아들의 ‘삶의 의미’가 기억되길 바라는 걸음이었다. 실제로 그가 걸었던 375.4㎞는 죽은 자의 삶의 의미를 되묻는 살아 있는 시민들이 참여한 열린 애도의 공간이자 함께 기억하는 살아 있는 시간이었다.</p>
<p><strong>애도하는 인간성이 사라진 일상</strong><br />
코로나19 사망자가 6963명을 넘어서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팬데믹 사망자를 위한 기억과 애도의 시공간은 어디에 있는가? 모두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 일상이란 우리에게 어떤 시공간인지 물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고대하던 그 일상이란 것이 또 하나의 익명의 기계 부품을 위한 거대한 톱니바퀴일 뿐이라면, 과연 재난을 벗어난 일상이라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우리에게 던진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을 노동 ‘기계’, 생물 ‘기계’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애도하는 인간성’의 회복이지는 않을까.</p>
<p>김관욱 의료인류학자·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운영위원<br />
한겨레21 제1400호(2022년 2월 21일자)</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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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겨레21]코로나와 함께 하는 ‘다시 일상’은 어떤 일상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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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9 Feb 2022 03:43:58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과학기술 · 생의학]]></category>
		<category><![CDATA[젠더 · 인권]]></category>
		<category><![CDATA[백신]]></category>
		<category><![CDATA[코로나19]]></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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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백신 접종에 대한 입장은 다양한 스펙트럼이지만 방역패스 등은 이분법, 정책으로 민주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보장해야 정부의 ‘방역패스’ 의무적용 집행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법원이 내리는 등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대한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백신 접종에 대한 입장은 다양한 스펙트럼이지만 방역패스 등은 이분법,<br />
정책으로 민주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보장해야</p>
<p>정부의 ‘방역패스’ 의무적용 집행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법원이 내리는 등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대한 갈등이 소송전으로까지 비화했다. 백신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피해 최소화와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다. 하지만 백신 접종률이라는 정량적인 지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방역패스가 가장 유효한 접근이었는지는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백신 미접종자에 대한 이해가 매우 피상적이라는 점이다. 어떤 요인 때문에 백신 접종을 주저하거나 거부하는지, 이런 선택이 어떻게 전파되는지를 잘 이해하는 것은 효과적인 정책 개발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현재 우리는 ‘무식해서’ ‘잘 몰라서’ ‘비이성적이어서’ 같은 모호한 단어들로 이를 묘사한다. 비난과 낙인은 쉽지만,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은 훨씬 지난하다.</p>
<p><strong>백신의 확률에 주목한 ‘고학력 중산층’</strong></p>
<p>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집단으로 균질하지 않다. 백신을 접종한 사람 중에도 추가 접종에는 불안해하거나 접종을 최대한 늦추려는 집단도 존재한다. 미등록 이주민이나 노숙인처럼 접종 이후 적절한 휴식 조건이 주어지지 않는 등 여러 사회적 요인으로 백신 접종을 주저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19 혹은 이전의 다른 백신 접종에서 크고 작은 부작용을 경험한 사람들도 있다. 이런 백신 접종에 대한 접근성 문제나 사회적 요인은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통해 완화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신념과 선택에 따라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접근할까.</p>
<p>최근 연구들은 백신 접종을 주저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이 단지 정보가 부족하거나 접근성이 낮아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에서 이뤄진 연구에 따르면 백신을 거부하는 많은 부모가 고학력 중산층 전문직이었다. 2013년 한국에서도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를 조사(차혜경 연구팀)한 결과, 커뮤니티 가입자의 3분의 2 이상이 월 소득 300만원 이상 대졸 학력자였다. 2017년 질병관리본부가 보건소에서 백신 미접종자를 추적 조사하는 담당 직원들을 인터뷰한 결과에서는 접종을 거부한 사람 중 상당수가 의사나 한의사였다.</p>
<p>이들은 질병이 완전히 박멸되지는 않았지만 매우 낮은 수준으로 유행하기 때문에 감염에 따른 위험보다는 백신 접종에 따른 부작용 위험이 확률적으로 더 큰 것으로 받아들인다. 혹은 백신 접종에 따른 이득이 개인 차원이라기보다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백신 접종은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약속 같은 것이며, 이를 위해 접종 부작용이라는 낮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사실이다.</p>
<p>이는 현대사회에서 공동체적 가치가 점점 희미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개인의 이익과 위험은 개인이 감수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높은 정보 습득력과 해석력을 가진 개인이라면 냉정한 위험이득 계산을 통해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선택을 내릴 수 있다.</p>
<p><strong>접종 정책을 결정하는 전문가들</strong></p>
<p>백신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태도나 입장은 다양한 스펙트럼에 걸쳐 있다. 백신 접종을 일종의 절대선으로 간주하고 접종자와 미접종자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접근 방식은 그에 따른 낙인과 차별을 다양한 형태의 미접종자에게 불평등하게 가중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접종 뒤 부작용 경험 등 불가피한 이유가 있는 경우 예외조항을 두었지만, 방역패스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백신 접종자와 미접종자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미접종자에게는 마땅한 페널티가 가해져도 된다는 것을 공인한다.</p>
<p>이런 맥락에서 방역패스가 현재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집단에 대한 접종률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적절한 전략인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2021년 성인 1차 백신 접종률은 95%를 넘어섰고, 청소년 백신 접종 역시 1차는 80%를 넘어선 상황이다. 현재 백신을 접종받지 않은 성인은 불가피한 사유 또는 사회적 요인으로 백신을 접종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거나 개인적 신념으로 접종을 강력하게 거부하는 사람일 것으로 보인다. 강제성과 페널티를 부여하는 전략은 오히려 백신 위험성에 대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박해로 받아들여져 이들의 신념을 더 공고화할 수 있다.</p>
<p>해법 중 하나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더욱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반복해 지적되는 것은 지나치게 전문가 중심으로 정책이 만들어지고 결정된다는 점이다. 백신의 효과나 안전성에 대한 부분은 전문가 의견으로 될지 몰라도 누가 먼저 백신을 맞을지 결정하고 백신을 어떤 방법으로 권장하며 백신을 맞기 어려운 사람은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한 논의에는 가능한 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해 민주적인 과정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p>
<p>정부는 방역패스 같은 접종증명 제도를 시행함에 “미접종자 차별이 없도록 면밀히 설계”할 필요가 있으며 국민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2021년 시민건강연구소에서 펴낸 ‘코로나19 백신 보고서’에서는 이런 의사결정 과정에서 시민 참여는 명목상에 불과하거나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p>
<p><strong>과거로의 온전한 회귀가 불가능한 미래</strong></p>
<p>우리가 궁극적으로 물어야 할 질문은 방역패스와 백신 접종으로 얻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방역패스의 적용과 범위 확대는 단계적 일상회복 정책의 일환이다. ‘다시 일상으로’라는 문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반복해서 사용됐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 상대적으로 낮은 규모의 확진자와 사망자로 유행을 통제해온 한국의 대응은 이러한 일상으로의 복귀가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보이게 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각각의 이해관계자가 어떠한 ‘일상’을 목표로 하는지가 합의됐는지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p>
<p>과연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일상에서 과거로의 온전한 회귀가 가능할까.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계가 마주한 다양한 위기 중 하나일 뿐이다. 심화하는 불평등, 기후위기 같은 전 지구적 변화는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유행할 환경을 제공한다. 감염병이라는 위기는 반복해서 닥쳐올 가능성이 크며, 지금 같은 팬데믹 수준의 위험은 상존할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일상을 상상해야 하는가. 백신, 방역패스 같은 기술적 해법은 이를 도와주는 다양한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 위험이 상존하는 미래의 일상을 살아가는 해법은, 그 위험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다. 이러한 기술적 도구들을 통해 우리가 목표해야 할 것은 위험과 낙인, 차별이 불평등하게 배분되는 오래된 일상이 아님은 분명하다.</p>
<p>정준호 의료인문학자·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연구위원<br />
한겨레21 1399호 2022년 2월 14일자</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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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겨레21]백신 불평등, 12살에 죽은 은코시 존슨을 기억하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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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6 Jan 2022 08:18:49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건강불평등]]></category>
		<category><![CDATA[세계화 · 자유무역]]></category>
		<category><![CDATA[지적재산권·특허]]></category>
		<category><![CDATA[백신]]></category>
		<category><![CDATA[코로나19]]></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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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제약회사의 이윤 우선이 아니라 팬데믹에 준하는 인류애를 우선했다면 이미 전 인류는 백신 접종을 마쳤을 것 케냐 나이로비는 동아프리카 지역의 관문 도시라고 일컫는다. 그만큼 아프리카의 발전된 도시 중 하나다.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제약회사의 이윤 우선이 아니라 팬데믹에 준하는 인류애를 우선했다면</strong><br />
<strong> 이미 전 인류는 백신 접종을 마쳤을 것</strong></p>
<p>케냐 나이로비는 동아프리카 지역의 관문 도시라고 일컫는다. 그만큼 아프리카의 발전된 도시 중 하나다. 반면 세계 최대 슬럼가 중 하나인 키베라가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키베라 한 지역에만 100만 명 넘는 가난한 이가 모여 산다.</p>
<p>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왜 아프리카에서 발생했는지 이해하려면 세계 정치와 경제에서 종종 사라지는 대륙의 문제를 봐야 한다. 아프리카는 잘 알려졌다시피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다.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학교에 보낼 수 없고 기아와 질병, 열악한 주거와 일상적 영양실조가 만연한 곳이다. 아프리카 인구의 40%인 4억 명이 유엔이 정한 하루 1.9달러(약 2천원)라는 극빈선 이하로 살아간다. 100만 명이 사는 키베라 지역에 공립학교는 한 곳도 없고 의료기관은 슬럼 입구에 작은 보건소 한 곳이 있을 뿐이다. 쓰레기는 아무도 치우지 않고 물이 나오는 수도는 슬럼 입구에서만 구경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코로나19 변이는 바로 이러한 곳에서 태어났다.</p>
<p><strong>오미크론, 에이즈 환자 몸에 숨어있다가 나왔다?</strong></p>
<p>베타, 감마, 델타, 오미크론. 세계보건기구(WHO)가 주요 변이로 꼽은 코로나19 변이가 발생한 곳은 대부분 대규모 슬럼이 있는 지역이다.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남부 아프리카 모두가 그러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RNA바이러스이고, DNA바이러스와 달리 자기복제를 할수록 변이가 더 발생한다. 수백만 명이 밀집해 사는 곳에서 제대로 된 영양 공급도 없고 위생이 엉망이면 코로나19의 ‘격렬한 유행’, 즉 바이러스의 격렬한 자기복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변이가 많이 발생할수록 이 중 전파력이 높거나 독성이 뛰어난 변이종이 발생할 확률이 커진다. 바로 이렇게 우리가 마주한 코로나19 변이들이 발생했다.</p>
<p>오미크론은 코로나19 유행 첫해인 2020년 중반 시기의 코로나바이러스 특징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우세종이 되기에 앞서 중간에 1년 넘게 공백이 있는 셈이다. 따라서 그 공백을 설명하는, 오미크론의 기원에 대한 가설도 여러 가지다. △다른 동물에 감염됐다가 다시 인간에게 옮겨왔다 △고립된 인구집단에서 유행하다가 다시 등장했다 △면역이 저하된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 몸에 감염됐다가 다시 나와 사회적 감염을 일으켰다. 이 중 현재까지는 마지막 가설이 가장 유력하다.</p>
<p>아프리카에는 지금도 HIV/에이즈 감염인 2500만 명이 있고 해마다 50만 명이 사망한다. 인수공통감염병 중 하나인 에이즈는 이제 치료제 개발로 관리 가능한 만성 질병이다. 그럼에도 아프리카에 여전히 수천만 명의 환자가 있고 수백만 명이 숨지는 것은 치료제 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거대 제약회사들의 의약품 특허가 비싼 약값의 원인이다.</p>
<p><a href="http://www.chsc.or.kr/wp-content/uploads/2022/01/img_col0126.jpg"><img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90875" alt="img_col0126" src="http://www.chsc.or.kr/wp-content/uploads/2022/01/img_col0126.jpg" width="768" height="562" /></a></p>
<p><strong>매년 아프리카 아이 100만 명 이상 사망 계속</strong></p>
<p>“저는 정부가 의약품 AZT(에이즈 치료제)를 임신한 엄마들에게 주길 바라요. 그러면 에이즈 바이러스가 엄마에게서 아기한테로 넘어가는 걸 막을 수 있어요. 아기들이 너무 빨리 죽어가는데 저는 동생들이 죽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꼭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2000년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유엔 에이즈계획 총회 개막 연설은 11살 소년 은코시 존슨이 맡았다. 에이즈로 여윈 몸을 커다란 검은 양복에 감싼 채 호소한 존슨의 개막 연설은 세계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존슨의 호소가 끝날 무렵, 회의장 안팎 어딘가에서 “이윤보다 생명”(Life not Profit)이라는 구호가 터져나왔다.</p>
<p>이 유엔 총회는 결국 제약회사들이 ‘프리토리아 소송’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이 2010년까지 자국의 어린이 100만 명을 살려야 한다며 에이즈 치료제 ‘특허권 강제시행 법’을 입법한 것에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 40곳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 소송을 걸었고, 프리토리아에서 벌어진 이 소송은 결국 국제 여론의 압력에 굴복해 2001년 다국적 제약사의 소송 포기로 이어졌다.</p>
<p>은코시 존슨은 12살인 2001년 세상을 떠났다. 이후에도 의약품 특허를 주장하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방해는 집요하게 계속됐고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매년 100만 명 이상 사망하는 야만적 사태도 이어지고 있다.</p>
<p>2020년 10월 코로나19 팬데믹 백신 및 의약품에 대해 특허 등 지식재산권을 유예하자는 제안을 남아공과 브라질 정부가 제출했다. 만약 이때부터 백신이나 의약품의 특허가 유예됐다면 세계 최빈국 국민 중 1회 이상 백신 접종자가 10%도 안 되는 지금같은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그림 참조). 그러나 이 지재권 유예안은 거대 제약사들의 나라가 몰려 있는 유럽연합(EU)의 강력한 반대로 WTO에서 아직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p>
<p><strong>떼부자 된 화이자·모더나 경영진</strong></p>
<p>오미크론 변이는 이런 정치사회적 배경에서 등장했다. 지금까지 아프리카 에이즈 감염인들은 단 3%만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했다고 한다. WTO 지재권 협정(TRIPS)을 근거로 제약회사들이 에이즈 치료제에 월 수천달러의 가격을 받지만 않았다면, 아니 그 이후라도 제약회사들이 코로나19 백신에 걸린 특허권을 포기했다면, 코로나19에 감염된 에이즈 환자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p>
<p>오늘날 인류는 세계 모든 사람에게 백신을 공급할 충분한 역량이 있다. 백신과 의약품, 의료기기에 걸린 특허와 독점권을 없애면 각 대륙에서 접근 가능한 백신과 의약품을 만드는 체계와 시설을 갖출 수 있다. 남아공과 브라질이 그러하고 ‘세계의 의약품 공장’으로 알려진 인도가 그러하다. 제약회사의 이윤 우선이 아니라 팬데믹에 준하는 인류애를 우선했다면 전 인류는 이미 백신 접종을 마쳤을 것이다. 그러나 각국 정상들은 세계적으로 체계적이고 조율된 백신 생산과 분배를 계획하지도 집행하지도 못했다. 이런 식으로는 코로나19의 끝이 언제일지 알 수 없다.</p>
<p>2021년 새롭게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한 화이자와 모더나 경영진 9명이 번 돈을 합치면 최빈국 10억 명에게 백신을 접종할 수 있고, 이미 억만장자이던 제약회사 대주주 8명과 그 가족이 번 돈이면 인도의 모든 사람에게 백신 접종을 할 수 있다(2021년 5월 ‘옥스팜’ 보고서).</p>
<p>20년 전 11살 소년의 호소에 응답한 국제사회의 구호는 ‘이윤보다 생명’이었다. 오늘날 제약회사의 의약품 특허와 지재권을 20년으로 늘린 WTO 지재권 협정 때문에 인류 전체가 코로나19 변이 발생을 두 눈 뜨고 멀뚱히 바라보아야만 하는 지금, 우리가 다시 외치고 또 들어야 할 말이다. 이윤보다 생명이다.</p>
<p>우석균 (의사·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운영위원)<br />
한겨레21 제1398호(2022년 2월 7일자)</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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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코로나19 위기  현장  증언 기자간담회 자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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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9 Dec 2021 07:45:19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코로나19]]></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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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부: 현장 증언 증언 1 : 사업장 내 집단거주 시설과 재택치료 문제 : 이주노조 위원장 우다야 라이 증언 2 : 증증 장애인 및 활동지원이 필요한 장애인과 재택치료 문제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www.chsc.or.kr/wp-content/uploads/2021/12/photo_2021-12-09_1.jpg"><img src="http://www.chsc.or.kr/wp-content/uploads/2021/12/photo_2021-12-09_1-1024x576.jpg" alt="photo_2021-12-09_1" width="625" height="351" class="alignnone size-large wp-image-90857" /></a></p>
<p><a href="http://www.chsc.or.kr/wp-content/uploads/2021/12/photo_2021-12-09_2.jpg"><img src="http://www.chsc.or.kr/wp-content/uploads/2021/12/photo_2021-12-09_2-1024x576.jpg" alt="photo_2021-12-09_2" width="625" height="351" class="alignnone size-large wp-image-90856" /></a></p>
<p>1부: 현장 증언 </p>
<p>증언 1 : 사업장 내 집단거주 시설과 재택치료 문제 : 이주노조 위원장 우다야 라이<br />
증언 2 : 증증 장애인 및 활동지원이 필요한 장애인과 재택치료 문제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기획실장 김필순<br />
증언 3 : 집이 없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재택치료의 상황 : 아랫마을홈리스야학 학생회장  로즈마리<br />
증언 4 : 서울시내 요양시설 코호트 격리 상황 증언 : 의료연대본부 요양시설 담당 조직국장 방은숙<br />
증언 5 : 공공병원 치료 포화, 병상부족으로 인한 대기환자 상태와 의료붕괴의 위험  :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공의료위원장 정형준<br />
증언 6 : 코로나19 중환자병상 부족과 중환자 간호인력 부족 상황 : 행동하는간호사회 서울대병원 중환자간호사 최은영 </p>
<p>2부 : 우리의 요구<br />
- 정부가 내놓은 ‘재택치료 기본 방침’과 ‘백신패스 강화’  해결책은 인권에 부합하게 전환돼야 :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 서채완<br />
- 의료위기 해결을 시장에 맡겨두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잃게 만들 것. 정부가 의료대응체계 전환에 주요 역할을 해야  :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우석균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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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성명]정부는 준비되지 않은 ‘위드코로나’ 실패를 인정하고 멈춰야 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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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3 Dec 2021 06:14:47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코로나19]]></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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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정부가 발표한 ‘특별방역대책’은 생명을 살릴 수 없는 조치 정부가 어제(29일) ‘코로나19 단계적 일상회복에 따른 의료 및 방역 후속 대응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현재 위기의 수준에 비춰 턱없이 부족한 조치이다.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정부가 발표한 ‘특별방역대책’은 생명을 살릴 수 없는 조치</p>
<p>정부가 어제(29일) ‘코로나19 단계적 일상회복에 따른 의료 및 방역 후속 대응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현재 위기의 수준에 비춰 턱없이 부족한 조치이다. 시민들의 생명을 포기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p>
<p>우선 백신 접종률을 높이겠다고 했으나 이는 당장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지금부터 접종률을 높여도 그것이 효과를 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병상 포화로 사망자가 증가하는 당면한 위급한 현실에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정부 대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광범한 사회적 거리두기 없이는 확산세 억제가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하면서도, 막상 거리두기 조처는 전혀 발표하지 않았다.</p>
<p>재택치료를 기본방침으로 하겠다는 것은 현재 병상이 없어 자택 대기자가 수없이 많은 현 상황을 합리화하려는 것이며, 치료포기 선언에 다름 아니다. 지금도 70세 미만 확진자를 본인이 원하면 재택치료를 하도록 허용해,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지 인지하지 못하는 재택 확진자 중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보다 더 재택치료를 확대 적용하면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정부가 병상을 마련하지 못해 입원시키지 못하는 현실을 정당화하려는 것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p>
<p>우리 보건의료인들은 의료대응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위드코로나는 위험하다는 점을 경고해왔다. 지난 2년간 민간의료자원 동원을 제대로 하고, 의료인력을 확충하고,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사람들의 삶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해왔으나 정부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무책임하게 방역완화를 선택했고 그 결과 한 달도 되지 않은 지금 의료현장은 한계에 도달했다. 요양병원 환자들은 ‘코호트격리’되어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으며, 의료진들은 극한 상황에 내몰려 사직자가 속출하고 있다. 위중증 환자와 일일 사망자 모두 최다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대부분의 인구가 백신을 접종한 이후에 의료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는 사실상 유일한 OECD 국가이다.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의 결과이다. 더 이상 감염병 확산을 방치한다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p>
<p>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것을 첫 번째 가치로 삼는 보건의료인들로서 현재의 준비되지 않은 ‘위드코로나’ 방역완화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본다. 실패를 인정하고 사람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에 사과를 하기는커녕 지금의 위험천만한 상황을 유지·방치하겠다는 것은 극히 우려스러운 결정이다. 게다가 오미크론 변이 유입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더욱 위험하다.</p>
<p>정부는 방역을 강화해 생명을 살리고, 의료대응 역량을 강화할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아래와 같은 준비들을 요구한다.</p>
<p>첫째, 정부는 민간 의료자원을 대폭 징발해 생명을 보호하라. 한국은 OECD 평균보다 인구당 병상이 2.6배나 많은 나라임에도 외국보다 훨씬 적은 확진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민간병원을 동원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병원 동원에 실패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사태판단의 안이함과 무능력 탓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대형사립병원의 비협조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이는 민간병원이 국가비상사태에도 불구하고 공적 책임을 회피하면서 평소 진료행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비응급·비중증 환자 진료의 수익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코로나19 사태로 민간병원을 일시 국유화했다. 이런 수준까지 고려하는 강력한 조치가 없으면 이 나라의 사익추구 의료체계에서 감염병 대응은 계속해서 어려울 것이다.</p>
<p>둘째, 병원에 즉시 간호인력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정부는 코로나 초기부터 지금까지 코로나 전담병원에 부족한 간호사인력 부족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은 없이 계속해서 매우 부족한 숫자의 파견 간호사를 보내는 땜질식 대응 뿐이였다. 그 결과 전담병원에서는 사직하는 간호사들이 더 늘어나서 지금은 병상은 있는데 인력이 없어 환자를 보지 못하는 20% 가량의 허수병상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 허수병상이 지금 수도권에 남았다는 병상들의 실체다. 정부의 지금까지의 간호인력 대응은 파견 간호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파견간호사 인력마져도 미숙련 인력으로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현장의 한결같은 평가다. 지금 당장 병원에 정식 고용된 간호사를 대폭 늘려야 한다. 평소에도 간호사가 부족했기에 이는 필요하고 절박하다. 공공병원부터라도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크게 줄여야 하고, 민간병원도 간호사 수를 법제화해 이를 지키지 못하는 병원을 퇴출시키는 강력한 정책을 즉시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중환자 간호사도 지속적 교육훈련으로 적극 확보해야 한다. 현 수준의 중환자 인력 양성 대책으로는 매우 부족하다.</p>
<p>셋째, 방역을 강화하고 돈을 지원하라. 정부는 성급하게 위드코로나로 진입하면서 자영업자들과 취약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이유로 삼았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적은 손실보상 수준, 즉 코로나19 대응으로 GDP 대비 4.5%로 주요 선진국 평균 17.3%에 크게 못 미치는 정부 재정지출(국제통화기금 IMF 2021.6월 기준)이 진정한 문제였다. 정부가 돈을 쓰지 않고 사실상 재정긴축을 하면서 별다른 사회정책을 내놓지 않은 결과 서민들의 어려움을 초래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재인 정부의 재정 긴축은 ‘자영업자와 노동자 서민들의 경제적 생존이냐, 아니면 건강 취약계층의 대량 사망이냐’라는 어처구니 없는 선택을 시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경제지원책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아프면 쉴 수 있는 유급병가와 상병수당, 유급돌봄휴가, 해고금지와 퇴거금지, 임대료지원 및 상한제 등의 코로나위기 시기에 꼭 필요한 사회정책도 지난 2년의 기간 동안 시행되지 않았거나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우리는 불평등하고 개인에게 온전히 책임을 떠넘기는 과거 방역조치로 회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생명을 지키면서도 거리두기 고통은 사회가 책임지는 정부의 당연한 역할을 촉구한다. 정부는 코로나와 진정 함께 살 수 있도록 이런 재정정책과 사회정책을 즉시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p>
<p>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한 나라의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더 이상 ‘코로나19 환자의 생명이냐, 자영업자의 생계냐’를 두고 시민들을 우롱하지 말라. 우리에겐 다른 선택지가 있으며, 모두와 함께 생명을 지키며 살아나갈 마땅한 권리가 있다. 정부는 지금 그 일을 하라.</p>
<p>2021. 11. 30.</p>
<p>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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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성명]오미크론 변이 출현의 원인은 백신 불평등이다. 더 늦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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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3 Dec 2021 06:10:14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과학기술 · 생의학]]></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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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한국정부는 백신 특허 면제 방관하지 말고, 백신 독점을 반대하는 한시적 면제안에 동참하라. 지난 26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변이바이러스 오미크론을 우려변이로 분류하였다. 오미크론 변이는 가난과 질병으로 이미 고통 받고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한국정부는 백신 특허 면제 방관하지 말고, 백신 독점을 반대하는 한시적 면제안에 동참하라.</p>
<p>지난 26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변이바이러스 오미크론을 우려변이로 분류하였다. 오미크론 변이는 가난과 질병으로 이미 고통 받고 있는 남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전파속도도 빠르고 무엇보다 돌연변이 구조가 많아 현재 백신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는 오미크론 변이는 백신 불평등이 초래한 사실상 예견된 문제다.</p>
<p>우리는 이미 수차례 백신 접근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가난한 나라들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새로운 변이바이러스 출현 위험에 대해 우려 목소리를 내 왔고, 부와 권력에 상관없이 모든 나라에 공평한 백신 접종을 위한 각 국의 조치들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완전히 무시하였고, 모두를 위한 백신 접종에 대해 사실상 기권 입장을 유지해 왔다. 한국정부가 ‘백신은 공공재’라고 말로는 내세우면서도 국제회의에서는 지재권 면제 반대진영에 서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 동안 가난하고 백신이 없는 나라들에서 코로나가 창궐했고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야 했다. 브라질, 인도, 중미, 남아프리카 등 코로나19 변이가 발생했고 또 지금 발생하고 있는 나라들은 이미 영양결핍과 질병, 그리고 열악한 보건의료에 놓여 있는 나라들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남아프리카는 세계 불평등의 거울이며, 이윤을 위해 가장 많은 자원이 약탈된 곳이다. 이런 약탈들이 초래한 분쟁과 기근으로 이미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코로나19 백신 불평등은 재앙의 진원지가 되도록 만드는데 충분한 조건이었다.</p>
<p>이 와중에도 백신 독점 이윤을 한 치의 양보 없이 가져가느라 새로운 변이 발생을 초래한 거대 제약기업들은 새로운 백신 개발을 자신하며 고용량의 백신, 더 잦은 부스터 샷 등으로 벌써 이윤의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백신구매를 선점했던 고소득 국가들은 아프리카 지역을 전면 고립시키는 잔인한 전략으로 가난한 나라의 국제 연대와 협력 요청을 저버리고 있다.</p>
<p>세계가 이윤보다 생명이라는 우선 가치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오미크론과 같은 새로운 변이 출현은 처음도 아니지만 결코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지금처럼 백신 불평등이 지속되면 또 다른 변이는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공평한 백신 접종을 위한 노력을 지금 당장 취해야 한다. 한국정부는 백신 특허 면제안 논의를 방관하지 말고 백신 독점을 막는 일시 면제안에 적극 찬성하라! 또한 생색내기용 백신 기부가 아니라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 국회에서 지난 4월과 5월에 백신 특허 일시 면제 촉구 결의안이 발의되었지만 진척이 없었다. 국회는 촉구 결의안을 하루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그리고 국내에 비축하고 있는 백신을 저소득 국가들에 공급하기 위한 방안을 요구하라! 국제적 백신 불평등 해소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하는 일인 것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유일하고도 시급한 방법임을 더 늦기 전에 깨달아야 한다.</p>
<p>2021. 12. 01</p>
<p>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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