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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건강과 대안 &#187; 한국전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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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반전/평화] 한반도 핵전쟁 나면 국민의 0.02%만 &#8216;안전지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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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3 Apr 2013 13:30:31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반전·평화·민주주의]]></category>
		<category><![CDATA[1등급 대피시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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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핵전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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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한반도 핵전쟁 나면 국민의 0.02%만 &#8216;안전지대’한겨레 등록 : 2013.04.12 20:30 수정 : 2013.04.13 10:40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582617.html [토요판] 뉴스분석 왜? 최악의 시나리오-전쟁과 나▷ 남과 북이 서로를 향해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내고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FONT size=4>한반도 핵전쟁 나면 국민의 0.02%만 &#8216;안전지대’</FONT></STRONG><BR><BR><SPAN>한겨레 등록 : 2013.04.12 20:30</SPAN> <SPAN>수정 : 2013.04.13 10:40<BR></SPAN><A h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582617.html">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582617.html</A><BR><BR><br />
<H4><FONT color=#c21a1a>[토요판] 뉴스분석 왜? </FONT>최악의 시나리오-전쟁과 나</H4><FONT color=#006699>▷ 남과 북이 서로를 향해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마치 전쟁이라도 치를 것처럼 말입니다. 전쟁이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닌 현실이 됐을 때, 우리에게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요. 남북의 정치 지도자는 유사시 7000만 겨레의 안전을 충분히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전쟁의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 떠올리기 싫은 우울한 시나리오 ‘전쟁과 나’를 떠올려봤습니다.</FONT><br />
<P align=justify></P><br />
<P align=justify></P><B>장사정포·단거리 미사일<BR>북한이 쏟아부으면<BR>수도권 2500만명 절반이 위험<BR>을지연습, 민방공훈련에<BR>참여해본 사람 몇이나 될까<BR>가장 먼저 대피하는 사람은<BR>주한미군 가족과 외교관들<br />
<P align=justify></P>1~4등급 대피시설 여럿 있지만<BR>핵 피할 수 있는 건 1등급<BR>전국에 15개, 서울엔 1개뿐<BR>3~4등급은 우리 집 지하실 수준</B><br />
<P align=justify></P><br />
<P align=justify></P>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북한은 연일 위협의 수위를 높여가며 전세계를 상대로 전쟁 발발의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이해당사국의 움직임은 분주해질 수밖에 없다. 일본은 또다시 보유하고 있는 모든 군 자산을 펼쳐놓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고, 상대적으로 조용해 보이는 미국도 물 밑에서 각종 정보자산을 총동원하여 북한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우리 국민은 ‘설마 전쟁이 나기야 하겠냐’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다들 일말의 불안감을 안고 있다.<br />
<P align=justify></P>전면전은 남북한 모두가 바라지 않는 상황이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불신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데다 이를 가라앉히고 서로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대화마저 단절된 상태가 현재 남북관계의 현주소이다. 북한은 “전쟁은 시간문제”라거나 “단추만 누르면 발사… 원수들의 아성이 온통 불바다가 될 판”이라는 등 끔찍한 발언을 계속 하고 있다. 지난 정부 때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을 겪은 우리 군 수뇌부가 독기를 단단히 머금고 있다는 전언도 들려 온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누구도 원하지 않았음에도 작은 불씨 하나가 대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br />
<P align=justify></P>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진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 이제 남북 갈등, 그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그에 따라 우리 국민에게 어떠한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점검해보자.<br />
<P align=justify></P><br />
<P align=justify></P><B>제2롯데월드와 항공기의 충돌 대비해야</B><br />
<P align=justify></P>언제나 시작은 작은 불씨에서 비롯한다. 지난 3월말 일반 전초(GOP)에서 이상 물체가 발견되어,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고 수류탄 투척과 함께 크레모아(대인 지뢰의 한 종류)를 터뜨리는 사건이 있었다.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며 북한군 침투 가능성을 어느 때보다 높다고 판단한 탓이었다. 소동 직후 군 당국은 북한군의 침투 흔적을 찾지 못해 ‘이상 물체의 정체는 야생동물’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때 만약 남북간 소규모 접전이라도 펼쳐졌다면 당연히 인명 살상이 발생할 수 있다. 북방한계선(NLL)에서 북한이 의도적으로 도발해올 가능성도 있다. 이상의 상황에서 남쪽이 되었든 북쪽이 되었든 상대에게 좀더 강한 대응으로 응수할 경우 확전은 불가피해질 것이다.<br />
<P align=justify></P>북한이 최근 단기속결전, 이른바 ‘3일 전쟁’ 동영상을 공개한 일이 있었다. 해당 동영상은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시나리오는 우선 대량의 장사정포와 단거리 미사일을 한국에 쏟아부어 국군과 주한미군의 초기 대응 능력을 마비시킬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장사정포와 단거리 미사일은 북한이 ‘서울 불바다’를 호언할 수 있게 한 주요 전력이자, 확전이 일어날 경우 가장 먼저 사용할 전력이다. 발사 지점이 어딘지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둘 가운데 어느 것이든 대체로 서울 남부나 경기도 안양 지역까지도 닿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 거주하고 있는 약 2500만 명 중 절반 가량이 장사정포 등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고 할 수 있다.<br />
<P align=justify></P>물론 미리 경보를 받고 지하로 대피하면 인명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지하철역이나 건물의 지하주차장은 장사정포에 의한 공격을 충분히 방호할 수 있다. 북한이 최전방에 배치한 자주포와 방사포를 통틀어 장사정포라고 이르는데 갱도에 숨어있는 240mm 방사포의 경우, 이동에서 발사까지 8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적 수준의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서울에서 8분 내에 안전하게 대피처에 숨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br />
<P align=justify></P>장사정포의 위협은 무기 자체의 성능보다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전선과 가까운 곳에 수도가 위치해 있는 대한민국 전장 환경의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다. 적절한 정보자산의 운용으로 공격 징후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면 상당 부분 인명 피해를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정작 문제는 장사정포의 공격 이후에 있다.<br />
<P align=justify></P>장사정포 발사로 확전이 기정사실화 하면 대한민국에서는 일대 혼란이 벌어진다. 지난 10일 발표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대상의 96%가 전쟁에 대비하여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다. ‘서울 불바다’ 파문이 일자 사재기로 상점들이 초토화되었던 1994년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만큼 공황도 클 수밖에 없다.<br />
<P align=justify></P>가장 먼저 대피를 하게 되는 사람들은 주한미군 가족과 외교관 등이 될 것이다. 주한미군은 북한의 도발 징후가 명백해질 경우, 군인 가족 등을 보호하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서울공항과 오산 기지 등으로 이들을 모은 뒤 군용기로 수송하는 계획을 세우놓고 있다. 매년 훈련도 이뤄지고 있는데, 가장 최근의 훈련은 작년 5월에 실시했다.<br />
<P align=justify></P>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전시나 각종 재난·재해 상황을 상정한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전시와 관련된 훈련만 해도 전시대비훈련, 통합방위 및 향토예비군훈련·민방위훈련·화랑훈련 등으로 다양하다. 그런데 너무 다양한 것이 오히려 문제다. 각 훈련별로 주무기관도 안전행정부부터 국방부·소방방재청까지 다양하고, 전시에 대비한 자원관리를 담당하는 주체도 분산되어 있다. 실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br />
<P align=justify></P>게다가 과연 을지연습이나 충무훈련, 하다못해 민방공훈련 때 제대로 참여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을지연습과 충무훈련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두 훈련 모두 전시, 사변 등을 대비한 비상대비훈련의 일환이다. 을지연습은 서류 조치 위주의 정부 내부적인 훈련인 반면, 충무훈련은 지역별로 실제로 물적·인적 자원을 동원한다. 어쩌면 우리 국민은 극심한 혼란 속에서 미군 가족들이 서울공항 등지에서 군용기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봐야 할지도 모른다.<br />
<P align=justify></P>아, 변수는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공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공항 인근에 제2롯데월드 신축을 허가한 탓에 서울의 미군 가족도 대피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항공기가 이착륙하는 항로 근처에 이런 초고층 건물이 들어선 전례가 없다. 전시와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항공기가 건물과 충돌하는 최악의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어쩌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이 발생할 경우 미국이 자동으로 참전하게끔 하는 ‘인계철선’ 개념을 보다 강화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br />
<P align=justify></P><br />
<P align=justify></P><B>장사정포에 장착할 수 있는 화학물질</B><br />
<P align=justify></P>각종 포격과 단거리 미사일 등이 쏟아지면 물론 공격을 받은 곳에서 1차 피해가 발생한다. 만일 유류고나 가스저장소 또는 각종 위험물질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 공격을 받으면 이로 인한 2차 피해가 발생한다.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근래에 누출사고가 많았던 불산이나 염소가 보관된 곳의 경우이다. 불산은 반도체 공정 등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물질이며, 염소는 산화제와 표백, 살균용으로 널리 사용된다.<br />
<P align=justify></P>불산과 염소는 그 성질이 상반되기 때문에 약간의 지식만 있어도 상당 부분의 피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불산은 공기보다 가볍기 때문에 누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지하로 대피하는 것이 유리하다. 반면에 염소는 공기보다 무겁기 때문에 누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지하로 대피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br />
<P align=justify></P>문제는 대부분의 국민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어떠한 위험물질이 보관되어 있는지, 그리고 사고가 발생할 경우 개인 차원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서울 시내에만 염소가 ○개소(정확한 개수는 보안사항)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인근 주민들은 그 사실조차 잘 모르고 있으며, 사고가 발생할 경우 상식대로 지하에 대피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br />
<P align=justify></P>최근의 북핵 이슈에 가려져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생화학 무기도 핵무기 못지않은 위협이다. 미국의 저명한 안보 관련 씽크탱크인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박사는 북한의 생화학 무기 능력을 두고 다음과 같이 평했다.<br />
<P align=justify></P>“맑은 밤 서울 30㎢ 지역에 탄저균 10kg 살포했을 경우 최고 90만 명이, 사린가스 1톤을 7.8㎢ 지역에 뿌릴 경우 23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다. 북한은 5000톤에 달하는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전시에는 1만2000톤까지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br />
<P align=justify></P>생물학 무기는 고열 등에 약한 특성이 있어 다연장로켓이나 스커드 미사일에 장착할 수가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북한의 경우 야간에 특수부대를 투입하는 방식이 아니고서는 투발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는 실정이다. 반면 화학 무기는 장사정포나 스커드 미사일에 장착하여 투발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br />
<P align=justify></P>생화학 무기가 지상에 투발될 경우 가장 안전한 대피소는 지하 2층 이하의 지하철역이다. 넓은 공간과 안전한 구조, 도시 지역 곳곳에 위치해 있다는 접근 용이성 등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화학 무기 대피소로서 지하철역이 가지는 문제점은 많다.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밀폐가 가능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승객들이 드나드는 출입구를 막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문제는 지하철 선로를 밀폐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데 있다. 또한 장기간 대피소로 사용할 경우 송풍 및 공기 여과 시설이 필수적이다. 화장실이나 급수 시설도 문제가 된다. 대부분의 화장실 및 급수 시설은 역의 지하 1층에 위치하는데 제대로 된 방호를 위해서는 지하 2층에서 밀폐를 실시해야 하기 때문이다.<br />
<P align=justify></P><br />
<P align=justify></P><B>핵 전쟁 뒤 서울에는 공무원만 생존 가능?</B><br />
<P align=justify></P>이제 가장 꺼내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아직까지 북한이 온전하게 핵무기를 운용할 수 있으려면 많은 기술적 과제들이 남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러나 이르면 5년 내에 북한이 그런 기술을 획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만약 모든 ‘설마’를 무시하고 북한이 우리나라에 핵무기를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br />
<P align=justify></P>우리나라의 대피시설은 화생방 방호도에 따라 1등급에서부터 4등급까지 나누어진다. 3~4등급은 실상 ‘우리집 지하실’ 수준에 지나지 않고, 핵전쟁 상황에서 유효한 것은 1등급 뿐이다. 그런데 1등급 대피시설은 전국에 총 15개소에 불과하다. 총 수용가능 인원은 1만2000명에 지나지 않는다. 가까운 곳에 1등급 대피시설이 있다면 그는 ‘5천분의 1의 행운아’인 셈이다.<br />
<P align=justify></P>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군사 시설을 제외하면 서울에는 1등급 대피시설이 단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유일한 1등급 대피시설인 서울시 신청사도 비상 상황시 행정업무 및 지휘통제를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실제 상황에서 민간인이 사용할 수는 없다.<br />
<P align=justify></P>이를 단순화 해서 말하면, 핵전쟁 이후의 서울에는 청와대 공무원과 서울시 공무원만 남게 된다는 뜻이다. 나를 비롯한 평범한 시민은 다음 생에서는 핵 위협 없는 나라나 적어도 대피시설은 잘 마련해 둔 나라에서 태어날 수 있길 바라야 한다.<br />
<P align=justify></P>“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의 첫 번째 책무입니다.” 지난해 10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국민안전관련 정책 공약을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는 바로 전쟁이다. 전쟁은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이롭지만, 발생하게 되면 국가로서는 최대한 국민을 지켜내야 한다. 국가안보에 만약이란 있을 수 없다. 평화를 지향하되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고려한 대책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국방비에 한 해 국가 예산의 14% 이상을 쏟아붓는 것은 그러한 연유에서다.<br />
<P align=justify></P>그러나 우리나라의 국가안보는 여전히 취약한 상태이다. 국방비 규모가 세계 12위에 달하는 대한민국이 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국가안보를 너무나 협소하게 생각하여 왔기 때문이다. 정치인부터 군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안보 담당자들은 국가안보를 군사력과 동일시해왔다. 그러나 실상 국가안보에 있어서 군사력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제아무리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쥐고 있다 하더라도 위기에서 제 국민을 지키지 못하면 그 국가는 존립의 근거를 상실한다.<br />
<P align=justify></P>국가위기관리 측면에서 무엇보다도 분야마다 각기 다른 주무부서들과 수십 개가 넘는 관련 법령을 통합하고 일원화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다행스럽게도 박근혜 정부는 국가안보실을 신설하여 참여정부 이후로 맥이 끊겼던 일원화 추세를 다시 이어나갔다. ‘군대’가 아닌 ‘국민’의 안보를 위해, 앞으로도 꾸준한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br />
<P align=justify></P>김수빈 <디펜스21플러스> 기자 <A href="mailto:subin.kim@outlook.com">subin.kim@outlook.co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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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반전/평화] 미군 세균전 보도한 알-자리라 방송 영문자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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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9 Mar 2010 11:04:18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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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기밀해제]]></category>
		<category><![CDATA[미 국립문서보관서]]></category>
		<category><![CDATA[미군 세균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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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rty little secrets &#160;By Diarmuid Jeffreys 출처 : 알-자지라 Wednesday, March 10, 2010 http://english.aljazeera.net/programmes/peopleandpower/2010/03/201031761541794128.html This summer marks the 60th anniversary of the start of the Korean War, a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P><br />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 border=0><br />
<TBODY><br />
<TR><br />
<TD class=DetaildTitleGolden vAlign=top><SPAN id=DetailedTitle>Dirty little secrets </SPAN></TD></TR><br />
<TR><br />
<TD height=5><!----></TD></TR><br />
<TR class=dixerit_ignore id=ctl00_cphBody_trAuthor><br />
<TD class=Byline style="WIDTH: 553px">&nbsp;<B>By Diarmuid Jeffreys </B><br />
<P>출처 : 알-자지라 <STRONG>Wednesday, March 10, 2010 </STRONG><BR><A href="http://english.aljazeera.net/programmes/peopleandpower/2010/03/201031761541794128.html">http://english.aljazeera.net/programmes/peopleandpower/2010/03/201031761541794128.html</A></P></TD></TR></TBODY></TABLE><BR><BR></P><br />
<P>This summer marks the 60th anniversary of the start of the Korean War, a bloody three-year conflict that set Communist North Korea against a South Korea supported by a&nbsp;UN coalition headed by the US.</P><br />
<P>It was the first armed confrontation of the Cold War and by the time a truce was agreed in 1953, two million soldiers and two million civilians had been killed or wounded.</P><br />
<P>Six decades on, the conflict is still not formally resolved.</P><br />
<P>Troops from both sides&nbsp;continue to face&nbsp;each other across the 38th parallel, while the relationship between Washington and Pyongyang, the North Korean capital, is dominated by acrimonious quarrels over the latter&#8217;s nuclear weapons programme.</P><br />
<P>But there is another bitter and intractable dispute that continues to haunt both sides.</P><br />
<P>North Korea alleges that&nbsp;the US&nbsp;used biological weapons against Korean civilians during the war– dropping &#8220;germ&#8221; bombs containing insects, shellfish and feathers infected with anthrax, typhoid and bubonic plague on villages across the country.</P><br />
<P>The US has always vehemently denied these claims, dismissing them as crude and outlandish communist propaganda from a secretive and totalitarian state.&nbsp;</P><br />
<P>Nevertheless, the accusations have refused to go away. Pyongyang continues to press for an apology for an &#8220;outrage&#8221; that&nbsp;the US&nbsp;insists never happened.</P><br />
<P><br />
<TABLE style="WIDTH: 33px; BORDER-COLLAPSE: collapse" borderColor=#ffffff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right border=0><br />
<TBODY><br />
<TR><br />
<TD><IMG src="http://english.aljazeera.net/mritems/Images//2010/3/17/201031783929716784_3.jpg" border=0></TD></TR><br />
<TR><br />
<TD align=middle><SPAN style="FONT-SIZE: 10px; FONT-FAMILY: Verdana"><SPAN style="FONT-SIZE: 10px; FONT-FAMILY: Verdana"><STRONG>Professor Mori Masataka has been trying to unravel the truth about alleged germ warfare</STRONG></SPAN></SPAN></TD></TR></TBODY></TABLE></P><br />
<P><STRONG>Twenty-year mystery</STRONG>&nbsp;</P><br />
<P>In a specially extended edition, <EM>People &#038; Power</EM> set out to investigate this extraordinary story.</P><br />
<P>Our journey began in North Korea where we were given unprecedented access to follow a leading Japanese academic, Professor Mori Masataka, who has been trying to unravel the mystery for the last twenty years.</P><br />
<P>On this, his fourth visit to the country, Mori&#8217;s intention was to talk to men who claim to have witnessed, first hand, biological attacks on villages in 1952.</P><br />
<P>But neither he nor <EM>People &#038; Power&#8217;s</EM> location producer, Tim Tate, were under any illusions.</P><br />
<P>North Korea is one of the world&#8217;s most secretive states and is usually impenetrable to journalists. Everywhere our cameras went, government officials went too, strictly monitoring where and what we could film.&nbsp;</P><br />
<P>In a vast museum in the centre of Pyongyang, Mori explored a room given over to what the North Koreans claim is direct evidence of US germ warfare – including specimen jars filled with flies, mosquitoes and fleas all allegedly injected with deadly pathogens.</P><br />
<P>A smartly uniformed army officer, Captain Ryu Uk Hui, drew his attention to some salvaged bomb casings.</P><br />
<P>On impact, she said, they were adapted to split open and release the insects to infect the local population. A film-show followed.</P><br />
<P><br />
<TABLE style="WIDTH: 33px; BORDER-COLLAPSE: collapse" borderColor=#ffffff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right border=0><br />
<TBODY><br />
<TR><br />
<TD><IMG src="http://english.aljazeera.net/mritems/Images//2010/3/17/201031783510326621_3.jpg" border=0></TD></TR><br />
<TR><br />
<TD align=middle><SPAN style="FONT-SIZE: 10px; FONT-FAMILY: Verdana"><SPAN style="FONT-SIZE: 10px; FONT-FAMILY: Verdana"><STRONG>North Koreans said masses of insects crawled around bomb casings which fell in the snow</STRONG></SPAN></SPAN></TD></TR></TBODY></TABLE></P><br />
<P>The grainy black and white footage, purportedly North Korean news film from 1952, appeared to show masses of insects crawling on the snow covered ground beside the bomb casings.</P><br />
<P>All this could have been phony, of course, and that is how&nbsp;the US&nbsp;has always responded to such claims, especially to filmed &#8220;confessions&#8221; from 36 captured US airmen – also screened in Pyongyang&#8217;s museum – in which they give the North Koreans apparently detailed accounts of their participation in&nbsp;the US&nbsp;&#8221;germ&#8221; raids.</P><br />
<P>Accounts that, it must be said, were all retracted on the air crew&#8217;s&#8217; return home to the US after the war.</P><br />
<P><STRONG>Hwanjin</STRONG></P><br />
<P>But other testimony is more difficult to fake convincingly.</P><br />
<P>Later, we are driven deep into the North Korean countryside, to a village called Hwanjin, where two elderly farmers are patiently waiting.</P><br />
<P>It is clear they have been tidied up for the occasion and both wore patriotic badges pinned to their tunics, yet their weathered faces, calloused hands and still grimy fingernails speak of long years spent in the fields.</P><br />
<P>Although it is impossible to be sure, neither seems to be a Communist Party apparatchik primed for the occasion. And one speaks with convincing passion about the events that took the life of his father and many others, in the days after the insects came.</P><br />
<P><br />
<TABLE style="WIDTH: 33px; BORDER-COLLAPSE: collapse" borderColor=#ffffff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right border=0><br />
<TBODY><br />
<TR><br />
<TD><IMG src="http://english.aljazeera.net/mritems/Images//2010/3/17/201031791837810472_9.jpg" border=0></TD></TR><br />
<TR><br />
<TD align=middle><SPAN style="FONT-SIZE: 10px; FONT-FAMILY: Verdana"><SPAN style="FONT-SIZE: 10px; FONT-FAMILY: Verdana"><STRONG></STRONG></SPAN></SPAN><STRONG></STRONG></TD></TR></TBODY></TABLE></P><br />
<P>&#8220;It was in March&#8221;, says Yun Chang Bin. &#8220;The flies were big and their colour was brown-ish.</P><br />
<P>&#8220;Not long after that, about April, terrible epidemics like typhoid fever were spread. People in the village developed high temperatures. Loss of appetite and then aches on the arms and legs, there was much pain.&#8221;</P><br />
<P>There were some 50 households in the village, he went on, and more than thirty people died.</P><br />
<P>&#8220;My father died. He suffered a high fever, and then he was not able to use the lower half of his body, he wasn&#8217;t able to eat and was not able to move.&#8221;</P><br />
<P>As his fellow farmer nods encouragingly beside him, Yun Chang Bin looks directly at Professor Mori.</P><br />
<P>&#8220;I want you to go and tell the peace-loving people in the world about the atrocity the Americans committed to inflict pain to us, to make us unhappy, to kill all us Korean people, by scattering germ bombs to exterminate us.&#8221;&nbsp;&nbsp;</P><br />
<P><STRONG>Tears and grimace</STRONG></P><br />
<P>At another village, another eyewitness, Li San, Bum holds his arms out as he describe the iron bomb that almost six decades ago had tumbled out of a low flying plane onto a nearby frozen lake, spilling its cargo of insects out onto the snow. And then the villagers began to get sick and die.</P><br />
<P>&#8220;When they moved their bowels their stools had blood in them. And then they developed fever, and the fever made them vomit everything. My grandmother died after contracting this fever. One of my uncles died as well.&nbsp;So we should regard the Americans as arch enemies &#8211; how can we think well of them,&#8221; Li San says.</P><br />
<P>Mori has interviewed dozens of North Koreans over the years and has heard similar tales from all of them. &#8220;They told me their stories, shedding tears and grimacing with anger. They told me this germ warfare actually happened.&#8221;</P><br />
<P><br />
<TABLE style="WIDTH: 33px; BORDER-COLLAPSE: collapse" borderColor=#ffffff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right border=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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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br />
<TD><IMG src="http://english.aljazeera.net/mritems/Images//2010/3/17/20103178382123371_3.jpg" border=0></TD></TR><br />
<TR><br />
<TD align=middle><SPAN style="FONT-SIZE: 10px; FONT-FAMILY: Verdana"><SPAN style="FONT-SIZE: 10px; FONT-FAMILY: Verdana"><STRONG>Yun Chang Bin says his father died from high fever after the US bombed near his village</STRONG></SPAN></SPAN></TD></TR></TBODY></TABLE></P><br />
<P>But however convincing he has found these accounts, Mori knows that testimony from North Korean citizens will not be enough to convince a sceptical world that the US used germ warfare in Korea.</P><br />
<P>&#8220;A scientific investigation or medical or biological investigation should be carried out. I think it is definitely necessary that a non-political purely-scientific organisation should be sent to North Korea to investigate&#8221;, Mori says.</P><br />
<P>As it happens, within months of the original allegations being made back in the 1950s, North Korea invited an international commission to visit the country.</P><br />
<P><STRONG>International commission</STRONG></P><br />
<P>Composed of scientists from France, Italy, Sweden, the Soviet Union and Brazil, and led by Joseph Needham, a distinguished – if left-leaning &#8211; British embryologist,&nbsp;the commission&nbsp;toured the affected areas, interviewed the sick and the dying and carried out a detailed analysis of their infections.</P><br />
<P>The resulting 600-page report included results of post-mortem on the victims: these identified bubonic plague, cholera and anthrax.</P><br />
<P>It concluded that germ warfare had been deployed exactly as the North Koreans claimed. Yet despite its apparent wealth of scientific evidence, it was again dismissed by&nbsp;the US&nbsp;as communist disinformation.</P><br />
<P>Which is why, if a new international enquiry was ever undertaken, it would have to spread its net far further than North Korea and to the US, in particular, where the truth almost certainly lies, buried deep in the Cold War secrets of a superpower.&nbsp;</P><br />
<P>It was there that <EM>People &#038; Power</EM> discovered that during the 1940s and 1950s American scientists at the US Army base in Fort Detrick, Maryland, had developed ways of delivering bomb-loads of insects infected with bubonic plague and other deadly pathogens.</P><br />
<P>Our investigations also uncovered two remarkable documents in the US National Archives.</P><br />
<P><STRONG>Unit 731</STRONG></P><br />
<P>They revealed that&nbsp;the US&nbsp;had bought the expertise of Unit 731, a Japanese army biological warfare team, which conducted human experiments in the 1930s and 1940s to perfect the technology of bacteriological warfare: in World War 2, the Japanese military had dropped thousands of &#8220;germ bombs&#8221; across Northern China, killing millions of civilians.&nbsp;</P><br />
<P><br />
<TABLE style="WIDTH: 33px; BORDER-COLLAPSE: collapse" borderColor=#ffffff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right border=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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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br />
<TD><IMG src="http://english.aljazeera.net/mritems/Images//2010/3/17/20103179741138833_9.jpg" border=0></TD></TR><br />
<TR><br />
<TD align=middle><SPAN style="FONT-SIZE: 10px; FONT-FAMILY: Verdana"><SPAN style="FONT-SIZE: 10px; FONT-FAMILY: Verdana"><STRONG></STRONG></SPAN></SPAN><STRONG></STRONG></TD></TR></TBODY></TABLE></P><br />
<P>A third crucial document – marked &#8220;Top Secret&#8221; –&nbsp; showed that in September 1951, the US Joint Chiefs of Staff issued orders to begin &#8220;large scale field tests… to determine the effectiveness of specific BW [bacteriological warfare] agents under operational conditions.&#8221;</P><br />
<P>If these &#8220;field tests&#8221; were indeed undertaken, then they may have drawn again on the expertise of the Japanese biological warfare team.</P><br />
<P>In Japan, <EM>People &#038; Power</EM> found home video footage from one of the former members of that team, shot just before his death, in which he claimed that its leaders had indeed assisted the&nbsp;US in mounting &#8220;an attack&#8221; in Korea.</P><br />
<P>But perhaps the most telling evidence came from a former US air force officer who took part in bombing raids over North Korea.</P><br />
<P>Kenneth Enoch was shot down in January 1952 and held as a POW for 20 months.</P><br />
<P><STRONG>&#8220;Confessions&#8221;</STRONG></P><br />
<P>While in captivity, he was one of 36 US air force officers who made written and filmed &#8220;confessions&#8221; that they had taken part in &#8220;germ bomb&#8221; missions.&nbsp;&nbsp;</P><br />
<P>When these POWs were repatriated in 1953, the US department of defence threatened to charge them with treason for co-operating with their captors.&nbsp;</P><br />
<P>Each then retracted their confessions in front of military cameras: each claimed they had been tortured or indoctrinated by North Korean and Chinese guards.<BR>&nbsp;<BR>But when we tracked down and interviewed Enoch, now a sprightly 85 and living in a gated retirement community in Texas, he denied having been ill-treated or indoctrinated – and appeared to make at least a partial admission that the&nbsp;US did use biological weapons in the Korean War.&nbsp;&nbsp;</P><br />
<P>&#8220;The people who deal in that don&#8217;t have to go and fight, and that&#8217;s a pretty sweet deal for them. You know, but they send it with you,&#8221; he said.&nbsp;Nevertheless, he continued to deny that he personally played any part in biological weapons attacks.</P><br />
<P><br />
<TABLE style="WIDTH: 33px; BORDER-COLLAPSE: collapse" borderColor=#ffffff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right border=0><br />
<TBODY><br />
<TR><br />
<TD><IMG src="http://english.aljazeera.net/mritems/Images//2010/3/17/201031784043919112_3.jpg" border=0></TD></TR><br />
<TR><br />
<TD align=middle><SPAN style="FONT-SIZE: 10px; FONT-FAMILY: Verdana"><SPAN style="FONT-SIZE: 10px; FONT-FAMILY: Verdana"><STRONG>At one point, Enoch said his statements had been coerced by the North Koreans</STRONG></SPAN></SPAN></TD></TR></TBODY></TABLE></P><br />
<P>Records of Enoch&#8217;s bombing missions over North Korea were removed by US air force investigators from the official records in March 1952 – two months after he was captured and one week before he made his confession to &#8220;germ warfare&#8221;.&nbsp;&nbsp;</P><br />
<P><EM>People &#038; Power</EM> asked both the US state department and the department of defence for an interview about the issue raised in our film.</P><br />
<P>They turned down the offer and also declined to answer&nbsp;ten specific questions we put to them about North Korea&#8217;s allegations.&nbsp;</P><br />
<P><STRONG>&#8220;Baseless claims&#8221;</STRONG></P><br />
<P>Instead, a spokesman for the US administration dismissed the claims as &#8220;baseless&#8221; and said they were &#8220;the disinformation campaign that refuses to die.&#8221;&nbsp;</P><br />
<P>So who is to be believed? Professor Mori Masataka, thinks he knows the answer. &#8220;Use of germ weapons in war is in breach of the Geneva Convention. I think that&#8217;s why the Americans are refusing to admit the allegations.&nbsp;But I have no doubt. I&#8217;m absolutely sure that this happened.&#8221;</P><br />
<P>The clear implication, of course, is that were North Korea&#8217;s claims ever to be proved, the US might be open to prosecution for war crimes – which would be awkward, to say the least, at a time when the US is relying on its moral authority to underpin international efforts to combat global terrorism and nuclear proliferation.&nbsp;</P><br />
<P>Either way, one thing is clear. Until the allegations are laid to rest and the US&#8217;s innocence or culpability is established beyond doubt &#8211; perhaps by an independent enquiry – one of the most enduring Cold War mysteries will continue to haunt Washington&#8217;s relationship with the world&#8217;s most secretive state.</P><br />
<P><STRONG>This episode of <EM>People &#038; Power</EM> can be seen from Wednesday, March 10, 2010 at the following times GMT: Wednesday:</STRONG> 0600, 1400<STRONG>; Thursday:</STRONG>&nbsp;1900; <STRONG>Friday:</STRONG> 0230;<STRONG> Saturday: </STRONG>0530 and 1900.</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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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반전/평화] 피카소의「한국에서의 학살」과 미군의 세균전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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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9 Mar 2010 10:03:55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반전·평화·민주주의]]></category>
		<category><![CDATA[731부대]]></category>
		<category><![CDATA[노근리 사건]]></category>
		<category><![CDATA[미군 세균전]]></category>
		<category><![CDATA[민간인학살]]></category>
		<category><![CDATA[반전]]></category>
		<category><![CDATA[평화]]></category>
		<category><![CDATA[피카소]]></category>
		<category><![CDATA[한국에서의 학살]]></category>
		<category><![CDATA[한국전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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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6.25, 한국은 미-일의 ‘마루타’였다 피카소의「한국에서의 학살」과 미군의 세균전 (2) 출처 : 코리아포커스 , 2006-04-21 오전 9:56:11&#160;&#160; &#160; 사진 : 첨파파일 1 ▲ 미국의 세균전 의혹&#160;(왼쪽) 미국의 세균전을 파헤친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650 border=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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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br />
<TD style="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5px; PADDING-TOP: 25px"><SPAN class=newstitle>6.25, 한국은 미-일의 ‘마루타’였다</SPAN></TD></TR><br />
<TR><br />
<TD class=subtitlegold style="PADDING-RIGHT: 0px; PADDING-LEFT: 2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피카소의「한국에서의 학살」과 미군의 세균전 (2)</TD></TR><!--기사 원문 및 올린시간 --><br />
<TR><br />
<TD class=newsM style="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5px" align=right><FONT color=#999999><SPAN class=newsbonmun><FONT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20%" color=#818464>출처 : 코리아포커스 , 2006-04-21 오전 9:56:11&nbsp;&nbsp;</SPAN></FONT> </FONT></TD></TR></TBODY></TABLE><br />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 border=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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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IMG height=10 src="http://www.coreafocus.com/design/blank01.gif" width=1></TD></TR></TBODY></TABLE><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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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 본문 시작 -------------------------------------><br />
<TD style="TEXT-ALIGN: justify"><SPAN class=newsbonmun><FONT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50%; FONT-STYLE: normal; FONT-FAMILY: 굴림,굴림체; FONT-VARIANT: normal"><!-- 메인 이미지 배치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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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height=2>사진 : 첨파파일 1</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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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class=menu><FONT style="FONT-WEIGHT: normal; FONT-SIZE: 9pt; COLOR: #3a6e7c; LINE-HEIGHT: 120%; FONT-FAMILY: verdana,굴림; TEXT-DECORATION: none">▲ 미국의 세균전 의혹&nbsp;<BR>(왼쪽) 미국의 세균전을 파헤친 『The United States and Biological Warfare』(가운데) 『The United States and Biological Warfare』의 한국어 번역판 『한국전쟁과 세균전』(오른쪽) 한국전쟁 당시 전선지역에서 미군의 세균무기 사용을 조사했다는 북한 의학과학원 김성중 교수(의사)가 2004년 8월 26일 조선중앙TV에 출연하여 미국 전투기들이 지나간 곳에 전염병균이 득실거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FONT style="FONT-SIZE: 8pt; COLOR: #959595; LINE-HEIGHT: 120%">ⓒ 인디아나대학출판사/중심/연합뉴스</FONT> </FONT></TD></TR><br />
<TR><br />
<TD height=10></TD></TD></TR></TBODY></TABLE><B>전단용 폭탄이 세균폭탄으로 개조되어 사용</B><BR><BR>오랫동안 묻혀 있던 한국전쟁 시기 미국의 세균전에 관한 논란은 동서냉전이 끝난 1998년 무렵 미국 사회에서 되살아났다.<BR><BR>소련의 붕괴 이후 공개된 문서 중에서 ‘세균전 조작설’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발견되자 미국의 보수파 학자들은 중국과 북한이 세균전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손으로 베낀 소련 문서에는 “국제과학조사단이 조사에 나서기 전에 북한이 시체에 세균을 주입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BR><BR>이 소식을 들은 북한은 “미군이 1952년 북한 지역 400여 군데에 700회 이상 세균탄을 투하해 콜레라, 페스트, 장티프스 등 각종 전염병을 퍼뜨렸다”며 대대적인 반미공세를 폈다.<BR><BR>한편 일단의 학자들에 의해 손으로 베낀 소련문서는 스탈린 사후 소련의 권력 투쟁 와중에 내무장관이었던 베리아가 자신의 정적이었던 외무장관 이그나티에프를 제거해내기 위해 조작한 문서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왜냐하면 소련 문서의 출처와 베껴 쓴 사람이 밝혀지지 않은데다 그 문서의 진본도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BR><BR>게다가 1998년 스티븐 앤디컷과 에드워크 해거먼이 20년 동안 미국ㆍ중국ㆍ북한ㆍ캐나다ㆍ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모은 광범위한 비밀문서와 관련 인물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The United States and Biological Warfare』라는 책을 펴내자 상황이 달라졌다. <BR><BR>이들은 한국전쟁 당시 중국과 북한이 세균 폭탄이라고 공개한 사진의 실체를 공개된 미국의 비밀문서를 통해 밝혀냈다. 미국은 오랫동안 중국과 북한이 공개한 사진을 전단용 폭탄일 뿐이라며, 공산주의자들의 터무니 없는 선전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런데 미국 스스로 “전단용 폭탄이 세균폭탄으로 개조되어 사용됐다”고 기록한 문서를 찾아낸 것이다. <!-- 본문 기사 끝 -------------------------------------></FONT></SPAN></TD></TR></TBODY></TABLE><br />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650 border=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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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 본문 시작 -------------------------------------><br />
<TD style="TEXT-ALIGN: justify"><SPAN class=newsbonmun><FONT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50%; FONT-STYLE: normal; FONT-FAMILY: 굴림,굴림체; FONT-VARIANT: normal"><!-- 메인 이미지 배치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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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height=2>사진 : 첨부파일 2</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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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class=menu><FONT style="FONT-WEIGHT: normal; FONT-SIZE: 9pt; COLOR: #3a6e7c; LINE-HEIGHT: 120%; FONT-FAMILY: verdana,굴림; TEXT-DECORATION: none">▲ 노근리 사건에서도 확인된 미국의 ‘부인하고 본다는 철칙(Doctrine of Plausible Denial)’&nbsp;<BR>(왼쪽) 오연호의『노근리 그 후』(1999)의 표지에 등장한 피카소의 학살도 (오른쪽) 노근리 지역에 미군이 주둔했음을 증명하는 미 제1기병사단 제7기병연대 제2대대 작전과장 위더스푼 소령이 작성한 부대배치도. 미군 제7연대 2대대(맨 왼쪽 깃발)가 바로 노근리에 배치되어 있다. <FONT style="FONT-SIZE: 8pt; COLOR: #959595; LINE-HEIGHT: 120%">ⓒ 월간 말 / AP 최상훈(잉걸출판사)</FONT> </FONT></TD></TR><br />
<TR><br />
<TD height=10></TD></TD></TR></TBODY></TABLE><B>가해자의 기록보다 가치가 없는 피해자의 생생한 목소리</B><BR><BR>한편 피카소의 그림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한 충북 영동군 노근리 민간인 학살사건 취재기를 적은『노근리 그 후』(1999)의 표지에도 등장했다. 오연호는『말』지 1994년 7월호에서 노근리 사건을 심층보도했으며, 이 사건은 훗날 AP가 세계적인 특종(?) 보도를 함으로써 유명해졌다.<BR><BR>4ㆍ19혁명 직후인 1960년 12월 27일, 충청남도 경찰국 공보주임과 반공연맹 충남도지부 총무과장을 역임한 정은용 노근리사건 대책위원장은 노근리사건은 전쟁법규위반사건이라며 서울 소재 주한미군 소청사무소 앞으로 손해배상 신청서를 제출했다.<BR><BR>그러나 미국은 오만과 독선으로 진실을 호도했고, 한국의 언론과 군사독재정권은 기독교인이며 반공주의자인 정은용의 목소리를 외면했다.<BR><BR>이에 굴하지 않고 정은용은 1994년 일흔 셋의 나이에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라는 노근리사건 실록소설을 출판하는 집념을 보였다.<BR><BR>그 결과 역사학자들과 기자들은 미국립문서보관소(NARA)의 문서더미 속에서 노근리 학살사건을 증명하는 미군의 작전기록과 비밀해제 문서를 찾아냈다. AP의 세계적 특종 해프닝은 피해자의 생생한 증언이 가해자의 기록보다도 가치가 없음을 드러낸 현대 역사학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었다.<BR><BR>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부인하고 본다는 철칙(Doctrine of Plausible Denial)’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은 1997년 노근리 생존자와 유족들이 피해배상을 신청하자, 한국 검찰에 &#8220;미 제1기병사단이 당시 노근리 지역에 주둔했다는 증거가 없다” 는 뻔뻔스러운 답변서를 보내기도 했다.<BR><BR>그러나 미국립문서보관소에는 당시(1950년 7월 26일) 노근리 지역에 미군이 주둔했음을 증명하는 미 제1기병사단 제7기병연대 제2대대 작전과장 위더스푼 소령이 작성한 부대배치도가 남아 있었다. <!-- 본문 기사 끝 -------------------------------------></FONT></SPAN></TD></TR></TBODY></TABLE><br />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650 border=0><br />
<TBODY><br />
<TR><!-- 본문 시작 -------------------------------------><br />
<TD style="TEXT-ALIGN: justify"><SPAN class=newsbonmun><FONT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50%; FONT-STYLE: normal; FONT-FAMILY: 굴림,굴림체; FONT-VARIANT: normal"><!-- 메인 이미지 배치 -------------------------------------><br />
<TABLE cellSpacing=1 cellPadding=0 width=570 align=center border=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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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nbsp;</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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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height=2>사진 : 첨부파일 3.</TD></TR><br />
<TR><br />
<TD class=menu><FONT style="FONT-WEIGHT: normal; FONT-SIZE: 9pt; COLOR: #3a6e7c; LINE-HEIGHT: 120%; FONT-FAMILY: verdana,굴림; TEXT-DECORATION: none">▲ 일본군 731부대장과 산성동 폭격 미군 ‘정찰임무보고’&nbsp;<BR>(왼쪽) 생체실험을 주도한 악마부대 일본군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石井四郞) 중장 (오른쪽) 산성동을 폭격하여 민간인 학살한 미군의 ‘정찰임무보고(MMR)’. 폭격시각, 호출부호, 기수 기종, 탑재 무기, 폭격 결과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FONT style="FONT-SIZE: 8pt; COLOR: #959595; LINE-HEIGHT: 120%">ⓒ 중국 하얼빈 731부대 전시관 / 도진순(미국립문서보관소)</FONT> </FONT></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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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height=10></TD></TD></TR></TBODY></TABLE><B>일본군 731부대의 한국전 참전과 미군의 산성동 폭격사건</B><BR><BR>한국전쟁의 진실을 밝혀내려는 국내외 양심적인 학자들의 연구성과에 힘입어 2000년 6월 도진순 교수는《한국전쟁 50주년 학술심포지엄》에서 &#8220;일본이 한국전 당시 미군을 도와 한반도에서 상륙작전과 세균전에 참여&#8221;했음을 밝혔으며, 2000년 7월 2일에는 MBC《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일급비밀! 미군의 세균전」을 방영하기도 했다.<BR><BR>미국은 1947년 일본군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石井四郞) 중장을 비롯한 부대 관계자들을 모두 전범 기소에서 면제했다. 일본군 731부대는 한국인과 중국인을 ‘마루따’로 생체실험을 한 악마의 부대였다. <BR><BR>이들 731부대 전범들은 한국전쟁 당시 도쿄에 본부를 둔 미군 극동의무사령부 산하 406의무부대 및 8003부대에서 복무했다. 이 부대가 한국전쟁 당시 세균전에 쓰인 병원체를 배양했던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BR><BR>일본군은 극비로 세균전 뿐만 아니라 미군의 원산상륙작전과 인천상륙작전에도 참가했으며, 일본의 전범들은 한국전 참전을 계기로 면죄부를 얻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이들은 현재까지도 일본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일본 우익세력의 뿌리가 되었다.<BR><BR>이후 도진순 교수는 안동 MBC 강동규 PD와 함께 미10군단이 1951년 1월 경북 예천군 보문면 산성동의 민간인들을 네이팜탄 등으로 폭격하여 참혹하게 살해한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BR><BR>도 교수는 비밀해제된 당시 미군의 군사작전 명령서를 분석하여 미 공군의 폭격에 의한 산성동 민간인의 피해가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음을 밝혀『역사비평』(2005년 가을)에 발표했다. 이 논문을 통해서 50년이 넘도록 입소문으로만 떠돌던 사건들이 사실(史實)이 되었다.<BR><BR>미군의 3차례에 걸친 폭격으로 134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들은 모두 민간인으로 여자가 80명이었으며, 1차 폭격 당시 정찰기 조종사였던 시몬스는 “적정이 없고 여자와 아이들만 있다”는 이유로 폭격을 거부하기도 했다. <BR><BR>그러나 미국은 오폭과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지 않고 “산성동 폭격은 정당하다”며 50년 이상 관련 사실을 은폐하였다. <!-- 본문 기사 끝 -------------------------------------></FONT></SPAN></TD></TR></TBODY></TABLE><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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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style="TEXT-ALIGN: justify"><SPAN class=newsbonmun><FONT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50%; FONT-STYLE: normal; FONT-FAMILY: 굴림,굴림체; FONT-VARIANT: normal"><!-- 메인 이미지 배치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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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nbsp;<BR>사진 : 첨부파일 4</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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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class=menu><FONT style="FONT-WEIGHT: normal; FONT-SIZE: 9pt; COLOR: #3a6e7c; LINE-HEIGHT: 120%; FONT-FAMILY: verdana,굴림; TEXT-DECORATION: none">▲ 유신독재정권의 검열에 의해 삭제된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nbsp;<BR>정영목 교수가 『조형』24호(2001)에 공개한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의 검열로 삭제된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도판. 1977년 대학시절 일본에서 보낸『현대세계미술전집』14권 ‘피카소’편에 수록된 「한국에서의 학살」흑백도판(왼쪽)이 원판(오른쪽)과 비교해 볼 때 검게 칠해져 삭제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FONT style="FONT-SIZE: 8pt; COLOR: #959595; LINE-HEIGHT: 120%">ⓒ 정영목</FONT> </FONT></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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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height=10></TD></TD></TR></TBODY></TABLE><B>1등 신문(?)《조선일보》의 생뚱맞은 참견</B><BR><BR>피카소의「한국에서의 학살」에 대한 역사학자와 사회학자의 뜨거운 관심과 비교해볼 때, 정작 미술사학계의 연구는 미비한 형편이다.<BR><BR>미술사학계에서는 서울대 정영목 교수가 거의 유일하게 관련 연구를 했다. 정 교수는 1996년『서양미술사학회 논문집』8권에 「피카소와 한국전쟁 &#8211; ‘한국에서의 학살’ 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을 기고했으며, 2001년에는『조형』24호에 「미술과 정치 : 피카소의 한국전쟁 관련 작품과 한국, 일본의 추상미술, 1950~1960」을 발표했다.<BR><BR>정 교수는 1977년 대학시절 일본에서 보낸『현대세계미술전집』14권 ‘피카소’편에 수록된 「한국에서의 학살」흑백도판이 검열기관에 의해 지워진 채로 우송된 사실과 비밀해제된 미국 FBI 문서를 통하여 피카소가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한 이후 무려 25년 간 소련의 첩자로 분류되어 FBI에 의해서 철저하게 사생활을 감시당했다는 사실을 밝혔다.<BR><BR>그러나 그의 논문에 기존의 학계에서 밝혀낸 미군의 세균전이나 민간인학살의 연구 성과를 거의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나타냈다.<BR><BR>한편 왜곡・과장・편파보도로 악명이 높은 1등 신문(?)《조선일보》가 생뚱맞게도 정광균의「피카소 &#8216;한국에서의 학살&#8217;」을 2002년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작으로 선정하면서 뒤늦게 이 문제에 개입했다.<BR><BR>외교통상부 퇴직관료 출신인 정씨의 평론은 예전에 발표된 신은철 교수와 정영목 교수의 연구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으며, 문장력 자체도 신춘문예의 미술평론 당선작으로는 함량 미달이 분명해 보인다. <BR><BR>정씨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그는 “일방적이고 균형을 잃은 편견”으로 한국전쟁과 피카소의「한국에서의 학살」을 평가했다. 그는 1950년대 당시 반공진영과 좌파진영이 모두 피카소의 학살도를 미군의 세균전과 민간인 학살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한 사실을 외면했다. 정씨는 50년 가까운 세월동안 한국의 독재정권과 정보기관이 무슨 이유로 검열을 통해 이 그림의 흑백 도판조차 국내반입을 금지했는지에 대해 침묵했다. <!-- 본문 기사 끝 -------------------------------------></FONT></SPAN></TD></TR></TBODY></TABLE><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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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style="TEXT-ALIGN: justify"><SPAN class=newsbonmun><FONT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50%; FONT-STYLE: normal; FONT-FAMILY: 굴림,굴림체; FONT-VARIANT: normal"><!-- 메인 이미지 배치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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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nbsp;사진 : 첨부파일 5</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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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class=menu><FONT style="FONT-WEIGHT: normal; FONT-SIZE: 9pt; COLOR: #3a6e7c; LINE-HEIGHT: 120%; FONT-FAMILY: verdana,굴림; TEXT-DECORATION: none">▲ 인권과 인간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작업&nbsp;<BR>(왼쪽)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펴낸『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실태보고서』 (오른쪽)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 회원들이 지난해 9월 7일 오후 서울 종각에서 과거청산 전진대회를 열었다. 한국전쟁 당시 시동생 배재환(당시 20세)씨를 잃은 백정순(72) 할머니가 집회 도중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FONT style="FONT-SIZE: 8pt; COLOR: #959595; LINE-HEIGHT: 120%">ⓒ 한울 / 허태주(코리아포커스)</FONT> </FONT></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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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height=10></TD></TD></TR></TBODY></TABLE><B>누가 뼈에 사무치도록 피가 맺힌 억울한 이들의 한(恨)을 풀어줄 것인가?</B><BR><BR>현재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한국에서의 학살」은 아직까지 한 번도 한국 땅을 밟지 못했다. 2004년에 국립현대박물관에서「한국에서의 학살」전시를 추진한다는 발표를 했으나 결국 작품 확보를 하지 못해 무산되고 말았다.<BR><BR>당시 한국 언론은 이 작품의 상징적 의미를 둘러싼 이데올로기의 대립만을 중점적으로 부각했다. 이 작품의 창작 배경이 ‘황해도 신천 양민학살사건’과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관심과 신천 양민학살사건을 벌인 주체가 미군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만을 관심에 두었다.<BR><BR>신천학살사건은 해리슨을 중대장으로 하는 미군 1개 중대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이라는 북한의 주장과는 달리 신천지역의 반공청년단에 의해 주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방북 경험이 있는 황석영이나 김원일 같은 소설가들도 신천박물관에서 북한의 주장을 확증할 만한 증거를 전혀 찾지 못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BR><BR>그러나 피카소의「한국에서의 학살」의 창작배경에는 신천학살사건이라는 하나의 사건뿐만이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세균전과 민간인학살 의혹이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60년이 넘도록 이 작품을 둘러싼 여러가지 논란이 있었던 것이다.<BR><BR>지난 2005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사건이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모두 669건이며, 대략 25만∼30만명이 학살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 보고되지 않은 사건을 고려하면 무려 100만명 가량의 민간인이 학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BR><BR>확인된 669건 중에서 남한에 의한 학살은 170건이었고, 인민군에 의한 학살은 90건이었다. 그리고 미군에 의한 학살 150건에 달했다. <BR><BR>이러한 과거의 어두운 역사에 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지난해 12월 1일 독립기관으로 출범했다. 현재(2006.3)까지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한 2019건의 사건 중에서 1564건(77.5%)이 한국전쟁을 전후한 민간인 집단학살과 관련이 있다. 신청건수의 통계를 통하여 한국전쟁 관련 피학살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의 피맺힌 억울함이 얼마나 뼈에 사무쳤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BR><BR>그러므로 60년 전 피카소가 억울하게 희생당한 민간인들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학살도를 그렸듯이, 이제는 우리가 인권과 인간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진실규명 작업에 나서야만 하지 않을까.&nbsp;<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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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WEIGHT: normal;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11px 0px 7px; PADDING-TOP: 0px; FONT-STYLE: normal; FONT-FAMILY: Dotum"><A href="http://blog.naver.com/inex1/110003635649" target=_blank></A>&nbsp;</P></DIV></FONT></SPAN></TD></TR></TBODY></TABL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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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반전/평화] 「한국에서의 학살」과 미군의 세균전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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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9 Mar 2010 09:57:37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반전·평화·민주주의]]></category>
		<category><![CDATA[FBI]]></category>
		<category><![CDATA[국제과학위원회]]></category>
		<category><![CDATA[미군 세균전]]></category>
		<category><![CDATA[반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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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피카소]]></category>
		<category><![CDATA[한국에서의 학살]]></category>
		<category><![CDATA[한국전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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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피카소’ 크레용이 ‘피닉스’로 바뀐 까닭 「한국에서의 학살」과 미군의 세균전 (1) 출처 : 코리아포커스 , 2006-04-17 오전 9:05:35&#160;&#160; &#160; ▲ 피카소(Picasso)의「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en Coree)」&#160;(왼쪽) 1953년 1월, 일본의 창수사(蒼樹社)에서 펴낸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5 width=650 border=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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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style="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5px; PADDING-TOP: 25px"><SPAN class=newstitle>피카소’ 크레용이 ‘피닉스’로 바뀐 까닭</SPAN></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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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class=subtitlegold style="PADDING-RIGHT: 0px; PADDING-LEFT: 2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한국에서의 학살」과 미군의 세균전 (1)</TD></TR><!--기사 원문 및 올린시간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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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class=newsM style="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5px" align=right><FONT color=#999999><SPAN class=newsbonmun><FONT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20%" color=#818464>출처 : 코리아포커스 , 2006-04-17 오전 9:05:35&nbsp;&nbsp;</SPAN></FONT> </FONT></TD></TR></TBODY></TABLE><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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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height=2><IMG id=userImg8278514 style="CURSOR: pointer" src="http://blogfiles6.naver.net/data19/2006/4/17/277/1-inex1.jpg" _onload='setTimeout("resizeImage(8278514)",200)' _onclick="popview(this, '90000003_00000000000000199CB831E6')"></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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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class=menu><FONT style="FONT-WEIGHT: normal; FONT-SIZE: 9pt; COLOR: #3a6e7c; LINE-HEIGHT: 120%; FONT-FAMILY: verdana,굴림; TEXT-DECORATION: none">▲ 피카소(Picasso)의「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en Coree)」&nbsp;<BR>(왼쪽) 1953년 1월, 일본의 창수사(蒼樹社)에서 펴낸 『세균전흑서(細菌戰黑書)』의 표지 (오른쪽) 피카소(Picasso)의「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en Coree)」. 2×1.1m, 목판 위에 유화, 1951년작, 파리 피카소미술관 소장 <FONT style="FONT-SIZE: 8pt; COLOR: #959595; LINE-HEIGHT: 120%">ⓒ 창수사(蒼樹社) / 파리 피카소미술관</FONT> </FONT></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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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height=10></TD></TD></TR></TBODY></TABLE><B>『세균전흑서』의 표지와 김병기의 「피카소와의 결별」</B><BR><BR>한국전쟁이 채 끝나기도 전인 1953년 1월, 일본의 창수사(蒼樹社)는 피카소(Picasso)의「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en Coree)」을 표지에 실은 책 한 권을 번역・출판하였다. ‘아메리카군의 세균전쟁’ ‘국제과학위원회보고’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의 제목은『세균전흑서(細菌戰黑書)』였다.<BR><BR>국제과학위원회는『세균전흑서(細菌戰黑書)』에서 1912년 이후 한반도에서 한 번도 발병한 적이 없는 페스트가 발병한 점, 미군 비행기가 떨어뜨린 조개를 먹은 평안도 대동군의 한 산간마을 주민이 콜레라에 걸려 사망한 점, 미군 포로들의 자백 등 미국이 세균전을 벌인 구체적인 증거를 보고했다.<BR><BR>한편 해방 직후 북한의 미술동맹에서 서기장을 역임하다가 월남하여 한국전쟁 당시 국군의 종군화가단 부단장으로 활약했던 김병기는 1954년 4월『문학예술』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해「피카소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BR><BR>“피카소씨여! (…) 당신이 발표하신「조선의 학살」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 물론 당신의 비설명적인 표현은 지나친 내용의 해석을 허용하지 않을런지도 모르나 총을 겨누는 로봇병사들의 한 그룹과 총을 맞는 벌거숭이 부녀자들의 다른 한 그룹이 무엇을 또한 누구를 의미하고 있는지 넉넉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1945년부터 몇 해를 두고 보아 왔으며, 특히 이번 동란의 격랑 속에서 지칠대로 보아온 한국에서의 학살은 당신의「조선의 학살」과는 정반대의 학살에서 시작했다고 하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BR><BR>미군의 세균전 의혹과 민간인 학살을 평가하는 국제과학위원회와 김병기의 시각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피카소의 작품「한국에서의 학살」에 대해서도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평가를 하고 있다.<BR><BR>그런데 특이하게도 둘 사이에 일치하는 한 가지 의견이 있다. 그것은 바로「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그림이 의미하는 바는 ‘미군의 세균전과 민간인 학살’이라는 점이다. 다만 한쪽은 그것이 진실이라고 보고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 본문 기사 끝 -------------------------------------></FONT></SPAN></TD></TR></TBODY></TABLE><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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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style="TEXT-ALIGN: justify"><SPAN class=newsbonmun><FONT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50%; FONT-STYLE: normal; FONT-FAMILY: 굴림,굴림체; FONT-VARIANT: normal"><!-- 메인 이미지 배치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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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height=2><IMG id=userImg469371 style="CURSOR: pointer" src="http://blogfiles13.naver.net/data17/2006/4/17/76/2-inex1.jpg" _onload='setTimeout("resizeImage(469371)",200)' _onclick="popview(this, '90000003_00000000000000199CB831E6')"></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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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class=menu><FONT style="FONT-WEIGHT: normal; FONT-SIZE: 9pt; COLOR: #3a6e7c; LINE-HEIGHT: 120%; FONT-FAMILY: verdana,굴림; TEXT-DECORATION: none">▲ 미국 FBI의 ‘피카소 파일’&nbsp;<BR>허버트 미트강은 1990년 11월 10일자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에 미국 FBI가 1944년부터 피카소를 공산주의자와 소련의 첩자로 분류하여 그를 감시해온 사찰문건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FBI 피카소 파일은 일부 중요한 부분이 삭제된 채로 공개되었다. <FONT style="FONT-SIZE: 8pt; COLOR: #959595; LINE-HEIGHT: 120%">ⓒ 미국 FBI</FONT> </FONT></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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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height=10></TD></TD></TR></TBODY></TABLE><B>반공진영과 좌파진영 모두 외면한「한국에서의 학살」</B><BR><BR>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프랑스 공산당은 피카소에게 반미 선전을 위한 작품을 그려줄 것을 부탁하였다. 공산당원이었던 피카소는 1951년 1월 18일에「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en Coree)」을 완성하였다. 가로 209.5cm, 세로 109.5cm 크기의 목판 위에 유화로 그린 이 그림은 1951년 5월 파리의 살롱 드메(Salon de mai)에서 처음으로 전시되었다. <BR><BR>이 그림이 전시되었을 때, 유럽의 평론가들과 각계의 반응은 냉담하였다. 미국을 비롯한 반공진영은 예술성이 약하다는 시비를 걸었고, 프랑스 공산당을 비롯한 좌파진영은 살인자의 실체가 명확하지 않다고 비판하였다.<BR><BR>아마도 피카소의 그림이 구체성을 결여했기 때문에 반공진영과 좌파진영 모두에게 외면당했을 것이다. 사실 피카소는 일생동안 한국을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으며, 한국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도 없었다. 다만 피카소는 1949년 4월 파리에서 열린 제1회 평화옹호세계대회에 참가하여 북한의 대표단을 이끌고 온 작가 한설야를 만난 적이 있으며, 보도사진을 통해 한국전쟁을 접했을 뿐이다. <BR><BR>그런데도 피카소가 그린「한국에서의 학살」은 냉전기간 동안 국내에서 금기시되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반공 독재정권은 원작은 말할 것도 없고, 화집의 도판으로도 이 그림을 소개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BR><BR>심지어 1960년대 초반 중앙정보부는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8216;피카소‘라는 상표의 크레용을 &#8216;피닉스&#8217;로 강압적으로 바꾸기도 했다. <BR><BR>독재정권과 정보기관이 이러한 조치를 내린 배경에는 미국 FBI가 1944년부터 피카소를 공산주의자와 소련의 첩자로 분류하여 그를 감시해온 사실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BR><!-- 본문 기사 끝 -------------------------------------></FONT></SPAN></TD></TR></TBODY></TABLE><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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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style="TEXT-ALIGN: justify"><SPAN class=newsbonmun><FONT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50%; FONT-STYLE: normal; FONT-FAMILY: 굴림,굴림체; FONT-VARIANT: normal"><!-- 메인 이미지 배치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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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nbsp;<IMG id=userImg8415805 style="CURSOR: pointer" src="http://blogfiles8.naver.net/data19/2006/4/17/87/3-inex1.jpg" _onload='setTimeout("resizeImage(8415805)",200)' _onclick="popview(this, '90000003_00000000000000199CB831E6')"></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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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height=2></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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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class=menu><FONT style="FONT-WEIGHT: normal; FONT-SIZE: 9pt; COLOR: #3a6e7c; LINE-HEIGHT: 120%; FONT-FAMILY: verdana,굴림; TEXT-DECORATION: none">▲ 브루스 커밍스의『한국전쟁의 기원』표지&nbsp;<BR>(왼쪽/가운데) 미국에서 간행된 원본의 표지에는 전쟁의 포화에 부서진 비행기 잔해가 실려 있다. (왼쪽) 1986년 일월서각에서 번역ㆍ출판한 책의 표지에는 피카소의「한국에서의 학살」이 실려 있다. <FONT style="FONT-SIZE: 8pt; COLOR: #959595; LINE-HEIGHT: 120%">ⓒ 역사비평사 / 일월서각</FONT> </FONT></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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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height=10></TD></TD></TR></TBODY></TABLE><B>80년대 재발견된 피카소의「한국에서의 학살」</B><BR><BR>정보기관의 검열로 인해 주목받지 못했던 피카소의「한국에서의 학살」은 1980년대 반미․반독재 운동의 열기가 고조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BR><BR>일월서각은 1986년 브루스 커밍스의『한국전쟁의 기원』을 번역ㆍ출판하면서 피카소의 학살도를 표지에 실었다. 이 책이 1981년 미국에서 간행되었을 때, 이 책의 표지에는 전쟁의 포화를 받고 부서진 비행기 잔해가 실려 있었다.<BR><BR>이후 재미 영문학자 신은철 교수는『월간 다리』(1990년 6월호)에「피카소 한국전쟁 ‘학살도’에 숨은 뜻은」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BR><BR>신 교수는 피카소가 학살도를 그리게 된 동기를 분석하고, 정치적 목적 없이 ‘평화’를 신봉하는 의미에서 그림을 이해할 것을 강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전쟁 당시 유럽 공산당원들이 반미의 용도로 사용한 피카소의 학살도가 5년 후 소련군의 헝가리 침범에 반대하는 포스터로 폴란드에서 널리 사용했다는 것이다. <!-- 본문 기사 끝 -------------------------------------></FONT></SPAN></TD></TR></TBODY></TABLE><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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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style="TEXT-ALIGN: justify"><SPAN class=newsbonmun><FONT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50%; FONT-STYLE: normal; FONT-FAMILY: 굴림,굴림체; FONT-VARIANT: normal"><!-- 메인 이미지 배치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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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height=2><IMG id=userImg3930908 style="CURSOR: pointer" src="http://blogfiles14.naver.net/data19/2006/4/17/205/5-inex1.jpg" _onload='setTimeout("resizeImage(3930908)",200)' _onclick="popview(this, '90000003_00000000000000199CB831E6')"></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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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class=menu><FONT style="FONT-WEIGHT: normal; FONT-SIZE: 9pt; COLOR: #3a6e7c; LINE-HEIGHT: 120%; FONT-FAMILY: verdana,굴림; TEXT-DECORATION: none">▲ 피카소의「한국에서의 학살」과 미국의 세균전 의혹&nbsp;<BR>(왼쪽) 강정구 교수가 펴낸『분단과 전쟁의 한국현대사』의 표지에 실려 있는 피카소의「한국에서의 학살」(오른쪽) 한국과 중국에서의 세균전 사실에 대한 국제과학조사단의 보고서. 김주환이 편찬한 『미국의 세계전략과 한국전쟁』(청사, 1989)에 번역본이 실려 있다. <FONT style="FONT-SIZE: 8pt; COLOR: #959595; LINE-HEIGHT: 120%">ⓒ 역사비평사 / 청사</FONT> </FONT></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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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height=10></TD></TD></TR></TBODY></TABLE><B>한겨울에 파리, 벼룩, 진드기가 나타난 까닭</B><BR><BR>1996년 강정구 교수가 펴낸『분단과 전쟁의 한국현대사』의 표지로 채택된 피카소의「한국에서의 학살」은 본격적으로 미군의 세균전 의혹 논란과 결부되었다. 강 교수는 1992년『동국사회연구』창간호와 월간『말』(1992.8)에 발표한「미국의 한국전쟁 세균전 의혹」 에 관한 글을 이 책에 수록하였다. <BR><BR>미군의 세균전 의혹은 1952년 1월 29일 인민군 의무본부위원회 문건에서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이 문건에서는 “1952년 1월 28일 아침 적기(미군 비행기)가 이천 지역 상공에 나타나 2∼3차례 선회하더니 남쪽 방향으로 날아갔다. (…)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안개가 걷혔고 중국군은 적기가 나타난 지역의 여러 곳 눈 위에서 파리, 벼룩, 진드기, 거미 등과 같은 곤충을 발견했다. 14시간동안 이 지역에서 벼룩, 파리, 거미가 발견됐다.”고 주장했다.<BR><BR>곧이어 북한 외무상 박헌영(1952.2.22)과 중국의 외교부장 주은래(1952.3.8)가 미국이 감행한 세균전을 반대하는 항의를 정식으로 제기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75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세계평화회의는 국제과학조사단을 구성하고 중국과 북한에서 미군의 세균전 논란에 대한 현지조사를 벌였다.<BR><BR>그 결과가 바로 1953년 1월 일본의 창수사(蒼樹社)에서 번역・출판한『세균전흑서(細菌戰黑書)』였다. 보고서에서 국제과학위원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대가 세균전을 감행한 자료, 미군의 세균전을 입증하는 곤충학적 자료, 식물병리학적 자료, 세균학적 실험 결과, 각 지역의 사례, 용기 및 폭탄 종류, 체포된 간첩들의 증언, 공군포로들의 진술 등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BR><BR>“북한 및 중국의 국민은 바로 세균무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세균무기는 미군들에 의해 갖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중 몇 개는 제2차 세계대전 시 일본군대가 사용한 것과 같은 방법을 발전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 본문 기사 끝 -------------------------------------></FONT></SPAN></TD></TR></TBODY></TABLE><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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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style="TEXT-ALIGN: justify"><SPAN class=newsbonmun><FONT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50%; FONT-STYLE: normal; FONT-FAMILY: 굴림,굴림체; FONT-VARIANT: normal"><!-- 메인 이미지 배치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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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nbsp;<IMG id=userImg7309327 style="CURSOR: pointer" src="http://blogfiles15.naver.net/data17/2006/4/17/94/6-inex1.jpg" _onload='setTimeout("resizeImage(7309327)",200)' _onclick="popview(this, '90000003_00000000000000199CB831E6')"></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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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class=menu><FONT style="FONT-WEIGHT: normal; FONT-SIZE: 9pt; COLOR: #3a6e7c; LINE-HEIGHT: 120%; FONT-FAMILY: verdana,굴림; TEXT-DECORATION: none">▲ 끊이지 않는 미국의 세균전 의혹&nbsp;<BR>(왼쪽) 1993년 3월 11일 북송된 인민군 종군기자 출신 비전향장기수 이인모 노인은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세균전을 증언했다. (오른쪽) 한국과 중국에서의 세균전 사실에 대한 국제과학조사단의 보고서를 실은 『미국의 세계전략과 한국전쟁』은 불온서적(금서)이 되었다. <FONT style="FONT-SIZE: 8pt; COLOR: #959595; LINE-HEIGHT: 120%">ⓒ MBC 뉴스 화면 / 청사</FONT> </FONT></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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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height=10></TD></TD></TR></TBODY></TABLE><B>일단 부인하고 우기고 보는 미국의 철칙</B><BR><BR>그러나 미국은 “과학은 과학으로 입증하거나 부인해야 한다”는 원칙을 부정하고, 이 보고서를 전형적인 공산당의 “터무니없는 선전”이라고 일축하며 정치적 공세로 치부하였다. 미국은 &#8220;결정적인 증거나 거짓말임이 판명되지 않은 경우 우선 부인하고 본다는 철칙(Doctrine of Plausible Denial)&#8221;을 현재까지도 철저히 신봉하고 있다. <BR><BR>미국의 이러한 철칙과 냉전체제 덕분(?)에 세균전 의혹과 민간인 학살 의혹은 오랫동안 진실이 밝혀지지 못했다.<BR><BR>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몇몇 미국의 양심적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은 미국의 세균전 의혹을 꾸준히 제기했다. 그 중에서 중국에서《China Monthly Review》라는 영자신문을 발행하던 미국인 존 W 파월은 전쟁동안에 세균전을 목격하고 미국에 비판적인 내용을 보도했다가 법원에 제소까지 당하기도 했다.<BR><BR>1956년 파월이 중국에서 돌아오자 미국 정부는 그를 선동죄, 반역죄 등 무려 13가지 혐의로 법원에 제소하였다. 법원에서 파월은 자신의 기사 내용이 거짓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국방부의 기밀문서들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하자, 법원은 정부에 문서들을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미국정부는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문서를 제출하지 않았고, 오히려 소를 취하해 버리고 말았다. 무려 6년을 끌었던 재판이 싱겁게 끝나버림에 따라 진실은 땅 속에 묻혀버렸다. <BR><BR>한편 북한의 역사책『조선전사』27권을 비롯하여 인민군 종군기자 이인모(1992)와 통일운동가 김세원(1993)의 수기,『미국의 세계전략과 한국전쟁』(청사, 1989) 등에서 미국이 세균전을 감행했다고 증언했지만 서구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nbsp;<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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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WEIGHT: normal;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11px 0px 7px; PADDING-TOP: 0px; FONT-STYLE: normal; FONT-FAMILY: Dotum"><A href="http://blog.naver.com/inex1" target=_blank></A>&nbsp;</P></DIV></FONT></SPAN></TD></TR></TBODY></TABL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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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반전/평화] &#8220;美, 한국전쟁 중 세균전 현장실험 명령&#822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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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9 Mar 2010 09:50:07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반전·평화·민주주의]]></category>
		<category><![CDATA[731부대]]></category>
		<category><![CDATA[미 국립문서보관소]]></category>
		<category><![CDATA[미군 세균전 실험]]></category>
		<category><![CDATA[반전]]></category>
		<category><![CDATA[생체실험]]></category>
		<category><![CDATA[알-자지라]]></category>
		<category><![CDATA[평화]]></category>
		<category><![CDATA[한국전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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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8220;美, 한국전쟁 중 세균전 현장실험 명령&#8221; 출처 : 연합뉴스 2010/03/19 00:31&#160;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0/03/18/0200000000AKR20100318230000070.HTML?did=1179m &#8220;미국, 한국전쟁 중 세균전 실험&#8221; (두바이=연합뉴스) 강종구 특파원 = 미군 합동참모본부가 한국전쟁 중 세균전 실험을 하도록 명령했다는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DIV class=news_title id=newstitle>&#8220;美, 한국전쟁 중 세균전 현장실험 명령&#8221;<br />
<SCRIPT language=javascript>var url = document.URL;var pos = url.indexOf(&#8220;AKR&#8221;);var nid = url.substr(pos,20);var pos2 = url.indexOf(&#8220;audio=&#8221;);var nid2 = url.substr(pos2+6,1);if (nid2 == &#8216;Y&#8217;){document.write(&#8220;<a href=_javascript:audio_play('" + nid + "');>&#8220;);document.write(&#8220; <img src=http://img.yonhapnews.co.kr/basic/svc/06_images/090814_te_top_ic_05.gif border=0 alt=오디오듣기></a>&#8220;);}</SCRIPT><br />
 <BR></DIV><!--// news Title --><!-- 기사내용 --><BR>출처 : 연합뉴스 <SPAN class=date>2010/03/19 00:31&nbsp;<BR><A h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0/03/18/0200000000AKR20100318230000070.HTML?did=1179m">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0/03/18/0200000000AKR20100318230000070.HTML?did=1179m</A><BR></SPAN><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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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tit style="FONT-WEIGHT: bold; COLOR: #103670">&#8220;미국, 한국전쟁 중 세균전 실험&#8221;</DIV><br />
<DIV class=summary style="COLOR: #103670">(두바이=연합뉴스) 강종구 특파원 = 미군 합동참모본부가 한국전쟁 중 세균전 실험을 하도록 명령했다는 문서가 발견됐다고 아랍권 위성채널 알-자지라가 18일 보도했다. 사진은 알-자지라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서에서 입수한 자료. <<알-자지라 방송화면 캡쳐>> 2010.3.19 <BR><A href="mailto:inyon@yna.co.kr"><FONT color=#252525>inyon@yna.co.kr</FONT></A></DIV></DIV></TD></TR></TBODY></TABLE><BR>알자지라, 美국립문서보관서 자료 입수<BR><BR>(두바이=연합뉴스) 강종구 특파원 =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한국전쟁 중인 1951년 북한에서 세균전 현장 실험을 명령했음을 보여 주는 문서가 발견됐다고 아랍권 위성채널 알-자지라가 보도했다.<BR><BR>&nbsp;&nbsp; 알-자지라는 지난 17일(현지시간) 방영한 `피플파워&#8217;라는 심층 보도프로그램을 통해 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입수한 문서를 공개했다.<BR><BR>&nbsp;&nbsp; 1951년 9월 21일 작성된 이 문서에는 &#8220;미 합참이 작전상황 중 (세균전에 사용되는) 특정 병원체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를 판별하기 위해 대규모 현장 실험을 개시할 것을 명령했다&#8221;고 기록돼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BR><BR>&nbsp;&nbsp; 미군이 한국전쟁 당시 세균전 무기를 사용했다는 의혹은 미국 참전용사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미 합참이 세균전 실험을 명령했다는 문서가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BR><BR>&nbsp;&nbsp; 북한은 일제 관동군 소속으로 세균전 연구를 담당했던 731부대 소속원들의 도움을 받아 미군이 한반도에서 세균전 만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BR><BR>&nbsp;&nbsp; 미국 정부는 한국전쟁 때 세균전을 벌였다는 의혹에 대해 부인하고 있지만 당시 미군이 731부대 대원들로부터 생체실험 자료를 건네받는 등 생화학 무기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는 점은 여러 자료를 통해 입증돼 왔다.<BR><BR>&nbsp;&nbsp; 일본 스나이시 게이치 교수가 2005년 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한 기밀 해제 문서에도 미군 주도 연합군이 731부대원들에게 생체실험 자료와 교환하는 조건으로 전범 재판의 기소를 면제해주고 총 15만∼20만엔의 돈을 부대원들에게 지급한 내용이 담겨 있다.<BR><BR>&nbsp;&nbsp; 북한을 방문한 알-자지라 취재진과 인터뷰한 북한 주민 윤창빈 씨는 &#8220;전쟁통이던 3월인가 파리들이 꽤 커지고 갈색빛을 띠더니 4월부터 마을에 장티푸스 처럼 전염병이 돌았다&#8221;고 말했다.<BR><BR>&nbsp;&nbsp; 그는 &#8220;50가구였던 마을에서 주민들이 팔, 다리가 가렵고 고열 증세에 시달리다가 30명이 죽었다&#8221;고 회상했다.<BR><BR>&nbsp;&nbsp; 알-자지라는 한국전쟁 당시 세균전과 관련해 미 국방부와 국무부에도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전했다.<BR><BR>&nbsp;&nbsp; 일본의 관련 전문가 모리 마사타카 교수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8220;생화학 무기 사용은 제네바 협정 위반이기 때문에 미국은 세균전 의혹을 인정하지 않으려 할 것&#8221;이라며 &#8220;그러나 나는 미국이 세균전을 감행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8221;고 주장했다.<BR><BR>&nbsp;&nbsp; 알-자지라는 당시 북한 폭격에 가담했던 미군 조종사 케네스 에노크(85.현 텍사스주 거주) 씨는 항공기 추락으로 북한군에 포로가 됐을 당시는 자신이 세균 폭탄 투하 임무를 수행했다고 말했으나 종전으로 석방된 후엔 강요에 의한 거짓 진술이라고 밝혔다면서 그럼에도 케네스 씨는 자신은 가담하지 않았으나 세균전이 수행됐을 개연성에 대해선 일부 시인했다고 전했다.<BR><BR>&nbsp;&nbsp; 그러나 미 합참의 명령이 실행됐음을 보여 주는 확증은 아직 없으며, 미국 정부가 관련 기록도 모두 없애 진위가 가려지지 않았다고 밝힌 알-자지라는 따라서 공정한 조사를 통해 사실 여부가 밝혀지지 않는 한 미군의 한국전 당시 생물학전 여부는 풀리지 않는 냉전시대 미스테리 중 하나로 남아 미국과 북한 관계에 망령으로 떠돌 것이라고 평가했다. <BR><A href="mailto:inyon@yna.co.kr"><FONT color=#252525>inyon@yna.co.kr</FONT></A><BR><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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