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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건강과 대안 &#187; 카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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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GMO] &#8216;콩 100% 국내제조 콩기름&#8217;&#8230; 낚이셨습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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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0 Jun 2013 20:19:02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GMO]]></category>
		<category><![CDATA[식품 · 의약품]]></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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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8216;콩 100% 국내제조 콩기름&#8217;&#8230; 낚이셨습니다한겨레21 등록 : 2013.06.20 15:12 수정 : 2013.06.20 16:11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92583.html 유전자조작작물(GMO)을 식품 원료로 사용했더라도 단백질로 최종 제품에 남아 있지 않으면 GMO로 표시할 필요가 없다. 콩기름의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FONT size=5>&#8216;콩 100% 국내제조 콩기름&#8217;&#8230; 낚이셨습니다</FONT><BR><BR>한겨레21 등록 : 2013.06.20 15:12</SPAN> <SPAN>수정 : 2013.06.20 16:11<BR></SPAN><A href="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92583.html">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92583.html</A><BR><B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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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IMG style="WIDTH: 590px" alt="" src="http://img.hani.co.kr/imgdb/resize/2013/0620/137162607005_20130620.JPG" border=0> </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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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style="WIDTH: 590px"><br />
<DIV class=description>유전자조작작물(GMO)을 식품 원료로 사용했더라도 단백질로 최종 제품에 남아 있지 않으면 GMO로 표시할 필요가 없다. 콩기름의 경우 100% GM 콩으로 만들어도 GMO 표시 대상이 아니다. 100% 수입콩으로 제조됐음에도 GMO 표시가 없는 국내 제품 모습.탁기형</DIV></TD></TR></TBODY></TABLE><br />
<H4><IMG src="http://img.hani.co.kr/section-image/09/news/icon_han21.gif" align=absMiddle border=0> </H4><FONT color=#003366><B>미국산 GM 콩으로 만들어도 표시 의무 강제 않는 현행 식품법<BR>“GMO 원재료 들어갔으면 반드시 표시” 홍종학 의원 개정안 발의 </B></FONT><br />
<P align=justify></P><br />
<P align=justify></P>지난 5월29일 저녁 9시 농림축산식품부 검역정책과장에게 주한 미국대사관한테서 전화가 왔다. “미국의 오리건주에서 재배가 금 지된 유전자조작(GM) 밀이 발견됐다는 사실을 30일 새벽 3시(한국시각)에 발표한다.” 그게 통보의 전부였다. 미국 정부의 공식 보고서나 성명서는 없었다고 농림축산식품부는 박주선 의원(무소속)에게 밝혔다. 우리나라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밀을 수입하며 오 리건주산 밀은 국내에 들어오는 미국산 밀의 3분의 1을 차지하는데도 말이다. 2010년 이후 오리건주에서 우리나라로 수입된 밀은 171만t에 이른다. 이번에 발견된 GM 밀 (MON71800)은 미국의 거대 농업기업 몬샌토가 1998~2005년 미국 16개 주에서 100여 건에 걸쳐 시험재배해 승인을 추진하다가 부정적 여론에 밀려 완전 폐기한 상품이다.<br />
<P align=justify></P><br />
<P align=justify></P><FONT size=3><B>수입 중단 않고 제 돈 들여 전수조사한 식약처 </B></FONT><br />
<P align=justify></P>우리나라처럼 미국산 밀을 많이 수입하는 일본은 즉각 오리건주산 밀 수입을 잠정 중단했다. 하지만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오 리건주에서 들어오는 밀과 밀가루의 수입 단계 검사를 강화하기로 했을 뿐이다. 미승인 GM 밀이 나오면 즉시 반송 조처하겠다고 했다. 앞서 2012년 4월 미국에서 광우병(소 해면상뇌증·BSE) 사례가 발생했을 때도 정부는 통상마찰 소지가 있다며 검역 중단이 나 수입 중단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br />
<P align=justify></P>지난 6월5일 식약처는 국내 주요 제분업체 7곳과 식품수입업체 2곳에서 보관한 오리건 주산 밀과 밀가루 샘플 40건과 5건을 수거 해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미승인 GM 밀이 검출되지 않았다.” 식약처는 “미국산 밀에 대해 GMO 분석을 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일본도 수입 중단에 준하는 조처를 했지만 GMO 검사는 하지 않았다.”<br />
<P align=justify></P><br />
<P align=justify></P><!-- ##### news BOX st.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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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 border=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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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style="PADDING-RIGHT: 4px; PADDING-LEFT: 4px; PADDING-BOTTOM: 4px; PADDING-TOP: 4px" bgColor=#dfe5ce><br />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 bgColor=#ebf1d9 border=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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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class=news_text03 style="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FONT size=4><B>일반 콩이 안전하니 GMO 콩도 안전?</B></FONT><br />
<P align=justify></P><FONT color=#008abd><B>허술한 GM 식품 승인 절차</B></FONT> 유전자조작작물(GMO)이 식품으로 승인받으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처(옛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유전자 재조합식품 등 안전성 평가자료 심사위원회’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 위원회의 의무적인 심사 승인 절차를 통과한 것만이 식품이고, 이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 식품이 아니다. 첫 GM 식품 승인은 2000 년 6월에 이뤄졌다.<br />
<P align=justify></P>1999년 11월12일 몬샌토코리아는 식품의약품안전청장에게 ‘제초제 내성 유전자조작 콩(GTS 40- 3-2)’의 안전성 심사를 요청했다. 심사 대상은 ‘서류’였다. 몬샌토가 제출한 서류를 토대로 유전자조 작식품의 안전성을 회사가 잘 평가했는지 심사하는 것이다. 별도의 실험은 없다. 개발자가 몇 년에 걸쳐 안전성 검사를 실시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심사위원회가 안전성 실험을 수행하기란 현실적 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다. GMO 개발자가 작성한 서류의 진정성을 믿고 심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면 개발자인 몬샌토는 유전자조작 콩의 투여 독성 실험을 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유전자재조합 콩 안정성 평가자료 심사 결과’ 보고서 15쪽을 읽어보자.<br />
<P align=justify></P>“현재의 자료 이외의 단회 투여 독성, 반복 투여 독성, 생식·발생 독성, 유전 독성 발암성, 기타 필요 한 독성(소화기계 독성 등)의 in vivo(생체 내) 독성 자료의 필요성은 없을 것으로 생각됨.”<br />
<P align=justify></P>그렇다면 무슨 근거로 GM 콩이 안전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일까? 답은 ‘실질적 동등성’이란 원리다. ‘사람들이 오랜 세월 먹어온 보통의 콩은 안전하다. 심사 대상 GM 콩은 보통 콩과 실질적으로 다르 지 않다. 그러므로 GM 콩은 안전하다.’ 1992년 5월29일 미국 조지 부시 행정부가 미국 연방 관보 57 권 22984쪽에 이러한 정책 성명을 냈고 우리나라 식품법이 이를 반영했다.<br />
<P align=justify></P>GM 식품을 승인하는 심사위원회의 구성은 어떻게 될까? 통상법 전문가 송기호 변호사가 <맛있는 식 품법 혁명>(2010)에서 국내 심사위원 명단(2001~2010년)을 처음 공개했다. 위원회는 매년 20명 안팎으로 구성되는데 그중 2명은 10년간 계속 위원을 맡았다. 김해영·김형진 교수다. 김해영 교수는 경희 대 GMO개발연구단 단장이며, 이 연구단은 GM 식품 기술을 개발하는 곳이다. 김형진 교수는 한국생 명공학연구원에서 일하는데, 이 연구원은 생명과학 기술의 연구·개발을 목적으로 정부가 세운 곳이 다. 또 2001~2008년 계속 심사위원이었던 신영철 교수는 같은 기간에 ‘주식회사 아미코젠’의 대표이 사도 맡았다. 이 회사의 법인등기부를 보면, 회사의 목적은 ‘생명공학 기술을 적용한 효소 및 신소재’ 의 개발·생산 및 판매다. 또 회사는 유전자에 의해 형질전환된 미생물을 이용한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다. 만일 GM 식품이 사회적으로 수용되지 않으면 이 특허 기술의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br />
<P align=justify></P>“유전자조작식품을 개발하거나 특허를 받은 사람들, 그러니까 유전자조작식품을 승인하고 수용하 는 데 직업적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유전자조작식품의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위원직을 그토록 장기간 맡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가?” 송 변호사가 반문한다. </TD></TR></TBODY></TABLE></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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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justify></P>박상표 건강과대안 연구위원은 이렇게 반 박했다. “미국에서 미승인 GM 밀이 발견됐는데, 우리나라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조 사하는 게 말이 되느냐? 미국이 자국 예산으로 조사해 유전자조작 밀을 걸러낸 뒤 수출 하는 게 당연하다. 그때까지 우리나라는 미국산 밀 수입을 잠정 중단하면 그만이다.”<br />
<P align=justify></P>식약처의 검사법도 문제다. 보통 GMO가 농산물이나 가공식품에 섞여 있는지 확인하려면 ‘공인검사법’이 필요하다. 검사법은 GMO 품목별로 제각각이다. GMO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검사법을 개발하는데, 이 정보는 정부의 재배 승인을 받은 품목에 한해 서만 제공된다. 하지만 이제껏 GM 밀은 재배 승인을 받은 것이 없다. 재배 승인을 받은 적이 없으니 검사법을 개발할 자료 자체가 없다. 미국 농무부가 검사 결과를 아직 발표 하지 못한 이유다.<br />
<P align=justify></P>그런데 식약처는 어떻게 검사를 했다는 것일까? 답은 GMO 유전자와 단백질을 확인하는 식약처의 자체 검사법이다. 그러고는 앞으로 검사를 계속하겠다고 덧붙였다. 미 승인 GM 밀의 샘플을 이제야 미국에서 건네받았고 공인검사법도 통보받을 예정이라서다. 공인검사법도 없는 상태에서 오리건주산 밀을 전수조사하는 ‘쇼’를 감행한 이유는 분명하다. GMO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 되는 걸 차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GMO는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br />
<P align=justify></P><br />
<P align=justify></P><FONT size=3><B>변형? 재조합? 용어부터 혼선 </B></FONT><br />
<P align=justify></P>GMO를 얘기하려면 먼저 용어를 정리해야 한다. 널리 통용되는 GMO의 영문 이름 은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이다. 우리 법률이 다르게 번역해 문제다. 식품위생법은 ‘유전자재조합식품’이라고 부르며, 농산물품질관리법은 ‘유전자변형농산물’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 간 이동에 관한 법률’이라는 긴 이름의 법에서는 ‘유전자변형생물체’라고 한다. 언론 에서는 ‘유전자조작’이라고 쓰는 게 일반적이 다. 재조합보다 변형이, 변형보다는 조작이 부정적으로 느껴진다. GM 식품 안전성을 승 인하는 식약처가 재조합을 고집한다. 어떤 용어를 쓰든지 사실은 모두 같은 것을 말한다. 다른 생물체의 유전자를 동식물 유전자 에 삽입해 종래 자연적 수정을 통해서는 발생하지 않던 새로운 유전자를 갖는 동식물 을 창조하는 작업이다.<br />
<P align=justify></P><!-- ##### news BOX st. ##### --><br />
<P align=justify></P><br />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 border=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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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style="PADDING-RIGHT: 4px; PADDING-LEFT: 4px; PADDING-BOTTOM: 4px; PADDING-TOP: 4px" bgColor=#dfe5ce><br />
<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 bgColor=#ebf1d9 border=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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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class=news_text03 style="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FONT size=4><B>90일 대신 2년간 관찰해보니…</B></FONT><br />
<P align=justify></P><FONT color=#008abd><B>GMO 안전성 논란 </B></FONT><br />
<P align=justify></P>유전자조작작물(GMO)의 안전성은 논란거리다. 안전성을 부정할 수도, 그렇다고 확신할 수도 없는 상태다. 다만 최근에 GMO의 안전성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br />
<P align=justify></P>2012년 9월 프랑스 캉대학교 질에리크 셀라리니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몬샌토의 제초제 ‘라운드 업’에 내성을 갖도록 만든 GM 옥수수 NK603과 라운드업을 쥐에게 먹이면서 신체 기능의 변화를 관 찰했다. NK603은 우리나라도 2002년 식용(2004년 사료용)으로 수입을 승인한 품목이다.<br />
<P align=justify></P>연구진은 실험 결과 NK603과 라운드업을 먹지 않은 대조군에 비해 이를 먹은 쥐에서 유선 종양과 간·신장 손상이 크게 늘었다는 점을 발견했다. 실험 대상은 암수 각 100마리씩 총 200마리였다. 보통 NK603을 비롯한 GMO의 동물실험은 최대 90일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프랑스 연구진은 쥐의 평균수 명 기간인 2년에 걸쳐 관찰했고, 암컷이 수컷보다 이상 증세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실험군에서 암컷 쥐가 조기 사망한 비율이 최고 70%에 달했기 때문이다. 대조군의 조기 사망률은 20%에 그쳤다. 연구 결과가 미국의 전문 학술지 <식품과 화학독성학> 온라인판에 공개되자 즉각 반박이 제기됐다. 실험 자체가 과학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많은 경우 이렇게 찬반 공방을 지속하면서 GMO의 안전성은 미궁에 빠졌다.<br />
<P align=justify></P>앞서 2005년 5월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몬샌토의 비공개 실험 자료를 입수해 GM 옥수수 MON863을 먹인 쥐의 면역 기능과 신장 크기 등에서 이상 현상이 관찰됐다고 보도했다. MON863 도 이미 우리나라에서 안정성 승인을 받은 품목이다. 프랑스 셀라리니 교수팀이 몬샌토의 자료를 검 토한 결과 ‘위해성이 있다’고 판정했다. 하지만 과학계의 반박이 뒤를 이었고 우리나라도 나름의 검토 과정을 거쳐 ‘안전하다’고 밝혔다.</TD></TR></TBODY></TABLE></TD></T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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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IMG style="WIDTH: 590px" alt="" src="http://img.hani.co.kr/imgdb/resize/2013/0620/137162607027_20130620.JPG" border=0> </TD></TR></TBODY></TABLE></DIV>1983년 5월19일 세계적 과학저널 <네이처>에는 새로 만들어진 꽃에 대한 논문이 실렸다. 벨기에와 독일 연구진이 항생제에 저항하는 물질을 일부러 꽃의 유전자에 심어 항생제 저항성을 가진 꽃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전까지는 식물 종을 개량하려 면 여러 대에 걸쳐 식물을 교배하는 ‘육종’ 이 유일한 수단이었다. 육종은 생물분류학 에서 비슷한 종류, 즉 종(species)이나 속 (genus)에 속하는 식물끼리 인위적으로 교 배하는 방법이다. 방울토마토와 씨 없는 수박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같은 절차 없이 새로운 식물을 단시일에 만들 수 있는 다른 차원이 탄생했다. 종과 속을 뛰어넘어 생물분류학상으로 훨씬 멀리 떨어져 있는 종류의 유전자는 물론이고, 동물과 미생물 의 유전자도 인위적으로 삽입되는 GMO다.<br />
<P align=justify></P>30년이 지난 현재 GMO는 무섭게 컸다. 몬 샌토·듀폰·신젠타 등 다국적 종자·농약 회 사와 카길 등 곡물회사가 세계 농업을 쥐락펴 락할 정도다. 전세계 GMO 경작지는 1996년 170만ha에서 지난해 1억7030만ha로 16년 만에 100배가 늘었다. 우리나라는 GMO 승인 건수로 볼 때 세계 5위다. GMO 재배국인 미 국·캐나다·멕시코를 제외하고 수입국만 따지면 일본에 이어 2위다. 2012년 6월까지 국내에서 승인을 거쳐 공식 유통되는 GMO의 종류는 일곱 가지다. 콩(대두)·옥수수·면화 (목화)·유채(카놀라)·사탕무·감자·알팔파 다. 이 GMO에 포함된 유전자는 모두 미생물 에서 왔고 기능은 두 가지다. 제초제를 뿌려도 잘 견디는 기능(제초제 내성 또는 저항성), 그리고 작물을 해치는 병해충을 없애는 기능 (살충성 또는 해충 저항성)이다.<br />
<P align=justify></P><FONT size=3><B>GMO 원료 포함해도 함량 순위 높아야 표기 </B></FONT><br />
<P align=justify></P>2011년 우리나라는 식용 GMO를 187만5 천t 수입했다. 모두 옥수수와 콩이다. 수입한 식용 옥수수 가운데 49%가 GMO였다. 식용 콩은 4분의 3(75%)으로 GMO 비중이 더 많았다. 하지만 GMO는 옥수수나 콩 원래의 모습이 유지된 채 팔리지 않는다. 다양한 과정을 거쳐 가공된다. GM 옥수수는 대부분 전분(녹말), 그리고 전분으로 만든 감미료를 뜻하는 전분당(과당·물엿·올리고당 등)으로 바뀐다. 반면 GM 콩은 대부분(99% 이상) 콩기름 제조에 쓰인다. 국내 식용유 시장 점유율 상위 4개사가 GM 농산물을 싹쓸이하는 이유다. CJ제일제당·사조해표·대상·삼양제넥스가 지난 3년간 우리나라 GMO 수입량(565만7천t)의 86%(486만8천t)를 들여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뿐만 아니다. GM 식품이 분명하지만 농산물이 아니라서 아예 GMO 수입량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br />
<P align=justify></P>김훈기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카놀라유를 사례로 들었다. “카놀라유는 유채의 한 종류에서 씨앗을 원료로 삼아 만든 식용유다. 이때 사용되는 유채는 1970년대 캐나다에서 식용으로 품종이 개량된 것인데, 80% 이상이 GMO다. 우리나라는 카놀라유를 씨앗이 아닌 기름 상태로 수입한다. 농산물이 아니고 가공식품이라서 정부는 GMO 통계에 명시하지 않는다.”<br />
<P align=justify></P><br />
<DIV class=article-alignC><br />
<TABLE class=photo-view-area><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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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IMG style="WIDTH: 590px" alt="" src="http://img.hani.co.kr/imgdb/resize/2013/0620/137162607016_20130620.JPG" border=0> </TD></TR><br />
<TR><br />
<TD style="WIDTH: 590px"><br />
<DIV class=description>승인되지 않은 유전자조작(GM) 밀이 미국 오리건주에서 발견됐지만 우리 정부가 미국산 밀 수입을 중단하지 않자 소비자생활협동조합(iCOOP) 회원들이 지난 6월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수입 중단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한겨레 박종식</DIV></TD></TR></TBODY></TABLE></DIV>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박지호 간사는 6월12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를 방문했다. 콩과 옥수수가 포함된 제품에 GMO라는 표시가 돼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지난 4월에도 100여 개를 조사했지만 “국내 제품에서 GMO 표시가 된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박 간사는 말했다. 가끔 수입 제품에서만 ‘유전자재조합 옥수수 포함 가능성 있음’이라는 문구가 발견됐다.<br />
<P align=justify></P>GMO는 표시하지 않으면 일반 농산물과 마구 뒤섞여도 소비자는 알 길이 없다. 그래서 GMO 표시제는 소비자의 ‘알 권리’와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표시제가 시행되고 있다. GM 식품 자체에는 ‘유전자재조합(변형)식품’, GM 콩이 포함돼 있으면 ‘유전자재조합 콩 포함 식품’, 정확하진 않지만 포함될 가능성이 있으면 ‘유전자재조합 콩 포함 가능성 있음’ 등으로 표기한다. 이러한 GMO 표시를 왜 발견할 수 없을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br />
<P align=justify></P><FONT size=3><B>“소비자 주권 지키는 게 경제민주화”</B></FONT><br />
<P align=justify></P>첫째, 불가피하게 섞여 들어간 경우다. 워낙 많은 GMO를 생산하고 있어서 유통 과정에서 일반 농산물에 GMO가 혼합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국가별로 ‘비의도적 혼입률’을 채택한다. 의도하지 않게 GMO가 섞인 경우 표시를 면제해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혼입률을 3% 이하로 정했다. 2007년 이뤄진 GM 식품 조사 결과 전체 4521건 중 1057건은 GMO 성분이 3% 이내로 검출돼 GMO 표시 없이 유통됐다. 2011년 3월에는 서울환경운동연합이 국내에서 GMO 표시가 없는 햄과 소시지 24개 제품 가운데 6개에서 GM 콩 성분이 나왔다고 밝혔지만, 비의도적 혼입률로 피해갔다. 유럽연합(EU)은 0.9%, 일본은 5%로 한다.<br />
<P align=justify></P>둘째, GMO를 식품 원료로 사용했더라도 가공식품은 표시 대상이 아니다. 현행 표시제를 보면, GM 농산물에 삽입한 외래 유전자 또는 그 유전자가 만든 단백질이 최종 제품에 남아 있지 않거나 검출할 수 없는 경우에는 GMO 표시를 할 필요가 없다고 돼 있다. 예를 들어 콩기름의 경우 콩에서 지방 성분만 뽑았기 때문에 유전자나 단백질이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100% GM 콩으로 만들었어도 GM 식품이라고 표시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식품에 쓰인 원료 가운데 GM 농산물이 전체의 5순위에 들어 있지 않으면 역시 표시가 면제된다. 그 결과 GM 옥수수 전분으로 만드는 빵·과자·음료·스낵·소스 등에 GMO 표시가 없을 수밖에 없다. 옥수수차·팝콘·시리얼도 마찬가지다. 김은진 원광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의 지적이다. “옛 식품법은 주요 원재료를 함량이 많은 순으로 5가지 이상 표시하도록 했고, GMO 표시 기준도 이를 반영했다. 하지만 현재는 모든 원재료를 표시하도록 식품법이 바뀌었고 GMO 표시도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 GMO 재배국이라 표시제에 소극적이던 미국에서도 주별로 의무 표시제 법안이 통과되기 시작했다. 미국 버몬트주 의회가 GMO 표시법을 107 대 37로 최근 통과시켰다.<br />
<P align=justify></P>홍종학 의원(민주당)이 식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제품의 주요 원재료 함량 순위와 잔류 여부에 상관없이 GMO가 첨가됐으면 모두 표시하도록 했다. EU와 동일한 방식이다. 또 정부 기관별로 서로 다르게 사용하는 GMO 용어를 ‘유전자변형식품’으로 통일하고 토종 먹을거리를 찾는 소비자를 위해 ‘무유전자변형식품’(GMO Free)도 명시할 수 있도록 했다. 홍 의원은 “소비자 주권을 지키는 게 경제민주화”라고 설명했다.<br />
<P align=justify></P><B>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br />
<P align=justify></P>참고 문헌 김훈기 <생명공학 소비시대 알 권리 선택할 권리>(2013), 송기호 <맛있는 식품법 혁명>(2010) </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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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GMO] 지구촌 GMO오염 사례 수두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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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7 Jun 2013 13:35:18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GMO]]></category>
		<category><![CDATA[식품 · 의약품]]></category>
		<category><![CDATA[GMO 오염사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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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지구촌 GMO오염 사례 수두룩 일반 곡물 재배지서 원치 않은 GMO가 &#8216;쑥쑥&#8217;운송 과정서 씨앗 옮겨져정부, 농민 불이익 덜어주려 곡물 속 3% 혼입 허용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입력시간 : 2013.06.07 20:14:23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지구촌 GMO오염 사례 수두룩<!--/DCM_TITLE--><br />
<DIV class=subtitle id=GS_SubTitle><!--DCM_SUBTITLE-->일반 곡물 재배지서 원치 않은 GMO가 &#8216;쑥쑥&#8217;<BR>운송 과정서 씨앗 옮겨져<BR>정부, 농민 불이익 덜어주려 곡물 속 3% 혼입 허용<!--/DCM_SUBTITLE--></DIV><br />
<DIV id=GS_Reporter><br />
<UL><br />
<LI><!--DCM_GIJA--><BR>김경준기자 <A href="mailto:ultrakj75@hk.co.kr">ultrakj75@hk.co.kr</A><!--/DCM_GIJA--></LI></UL><br />
<DIV id=Input_Time><br />
<DL><br />
<DD>입력시간 : 2013.06.07 20:14:23</DD><br />
<DD><SPAN id=modify_gisa></SPAN></DD></DL></DIV><A href="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306/h2013060720142321950.htm">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306/h2013060720142321950.htm</A><BR><BR><BR></DIV><SPAN id=AD_GISA_PHOTO_LINE style="DISPLAY: block"><br />
<LI><IMG id=relBigPhoto alt=관련사진 src="http://photo.hankooki.com/newsphoto/2013/06/07/feogoo201306072013020.jpg" _onload=SetSumSize() ;></LI><br />
<LI class=text_left id=photosummary style="DISPLAY: block; WIDTH: 400px">카길의 사료공장 직원이 옥수수 더미 앞에서 옥수수 낱알 한 움큼을 손에 담아 보이고 있다. 카길 제공</LI><BR>2001년 1월 국내에서 재배하는 콩에 GM 콩이 섞여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경기 남부와 충남 북부 지역에서 채취한 3,000여 개의 콩잎을 검사한 결과 10개에서 <A class=dklink style="CURSOR: default; COLOR: #00309c; TEXT-DECORATION: underline" _onclick="return false" href="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306/h2013060720142321950.htm" target=_blank>유전자</A> 변형이 확인된 것이다.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국내에서 GMO 재배가 승인된 바 없다. 당국은 <A class=dklink style="CURSOR: default; COLOR: #00309c; TEXT-DECORATION: underline" _onclick="return false" href="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306/h2013060720142321950.htm" target=_blank>수입</A>된 LMO가 <A class=dklink style="CURSOR: default; COLOR: #00309c; TEXT-DECORATION: underline" _onclick="return false" href="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306/h2013060720142321950.htm" target=_blank>운송</A>이나 하역 과정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사료용 LMO의 사후관리를 담당하는 농산물<A class=dklink style="CURSOR: default; COLOR: #00309c; TEXT-DECORATION: underline" _onclick="return false" href="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306/h2013060720142321950.htm" target=_blank>품질관리</A>원에 따르면 2008~2012년에 LMO 면화와 <A class=dklink style="CURSOR: default; COLOR: #00309c; TEXT-DECORATION: underline" _onclick="return false" href="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306/h2013060720142321950.htm" target=_blank>옥수수</A>가 경기, 충남ㆍ북, 전남, 경남 등 전국에 걸쳐 13군데에서 작물 상태로 발견됐다. <BR><BR><A class=dklink style="CURSOR: default; COLOR: #00309c; TEXT-DECORATION: underline" _onclick="return false" href="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306/h2013060720142321950.htm" target=_blank>미국</A> <A class=dklink style="CURSOR: default; COLOR: #00309c; TEXT-DECORATION: underline" _onclick="return false" href="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306/h2013060720142321950.htm" target=_blank>캐나다</A> 남미 등 GMO 재배가 대규모로 이뤄지는 국가에서는 이처럼 일반 곡물 재배지에서 GMO가 함께 자라는 &#8216;GMO 오염&#8217; 사례가 허다하다. 지난달 말 미국 오리건주에서 재배 승인이 안된 GM 밀이 발견된 것도, 경위에 대한 <A class=dklink style="CURSOR: default; COLOR: #00309c; TEXT-DECORATION: underline" _onclick="return false" href="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306/h2013060720142321950.htm" target=_blank>조사</A>가 진행 중이긴 하나, 극단적인 GMO오염 사례일 가능성이 크다. 씨앗은 바람 곤충 새 등에 의해서, 혹은 수확ㆍ운송 과정에서 옮겨지거나 수분(受粉)이 이뤄지기 일쑤다. <BR></SPAN>몬산토는 종자 <A class=dklink style="CURSOR: default; COLOR: #00309c; TEXT-DECORATION: underline" _onclick="return false" href="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306/h2013060720142321950.htm" target=_blank>특허</A>를 앞세워 이처럼 의도하지 않았지만 GM 작물을 재배하게 된 농민들에게도 <A class=dklink style="CURSOR: default; COLOR: #00309c; TEXT-DECORATION: underline" _onclick="return false" href="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306/h2013060720142321950.htm" target=_blank>피해보상</A> <A class=dklink style="CURSOR: default; COLOR: #00309c; TEXT-DECORATION: underline" _onclick="return false" href="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306/h2013060720142321950.htm" target=_blank>소송</A>을 건다. 몬산토는 <A class=dklink style="CURSOR: default; COLOR: #00309c; TEXT-DECORATION: underline" _onclick="return false" href="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306/h2013060720142321950.htm" target=_blank>지적 재산권</A>을 지키기 위해 제보 <A class=dklink style="CURSOR: default; COLOR: #00309c; TEXT-DECORATION: underline" _onclick="return false" href="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306/h2013060720142321950.htm" target=_blank>전화</A>를 받는가 하면 불법 재배를 색출하려고 사설 탐정까지 동원한다. <BR><BR>이런 GMO 오염 때문에 생겨난 것이 &#8216;비의도적 혼입률&#8217;이다. 우리나라는 비의도적 혼입률을 3%까지 인정하고 있다. 즉 GMO가 해당 <A class=dklink style="CURSOR: default; COLOR: #00309c; TEXT-DECORATION: underline" _onclick="return false" href="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306/h2013060720142321950.htm" target=_blank>농산물</A>이나 재료의 3% 이하일 경우엔 GMO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2007년에 이뤄진 GMO 식품 조사 결과 전체 4,521건 중 1,057건은 GMO 성분이 3% 이내로 검출돼 GMO 표시 없이 유통됐다. EU는 0.9%, <A class=dklink style="CURSOR: default; COLOR: #00309c; TEXT-DECORATION: underline" _onclick="return false" href="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306/h2013060720142321950.htm" target=_blank>일본</A>은 5%다. <BR><BR>농수산물품질관리법에는 검정기술의 정밀도 및 국제동향을 고려해 비의도적 혼입률을 1% 수준까지 점차적으로 낮춰 나가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보유하고 있는 검정 정밀도는 0.05% 수준이지만 비의도적 혼입률은 여전히 3%에 머물고 있다. <BR><BR>김은진 교수는 &#8220;비의도적 혼입률은 소비자가 농민의 불이익을 고통 분담 차원에서 참아주는 것인데, 수출국 눈치를 보면서 일본보다 낮은 3%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다는 건 어불성설&#8221;이라고 말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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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220;&#8216;식량 마피아&#8217;의 밥상 폭격이 시작됐다&#8221;</title>
		<link>http://www.chsc.or.kr/?post_type=column&#038;p=446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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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7 Oct 2011 13:43:10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광우병]]></category>
		<category><![CDATA[국민건강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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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미국산 쇠고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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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카길]]></category>
		<category><![CDATA[한미F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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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60; 한·미 FTA 깃발 들고 밥상 점령하려는 식량마피아 카길 한·미 FTA 비준을 코앞에 두고 우리의 밥상을 점령하려는 1% 부자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싸움의 상대는 국내 재벌기업인 CJ제일제당과 세계 최대의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FONT>&nbsp;</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한·미 FTA 깃발 들고 밥상 점령하려는 식량마피아 카길</B></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한·미 FTA 비준을 코앞에 두고 우리의 밥상을 점령하려는 1% 부자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싸움의 상대는 국내 재벌기업인 CJ제일제당과 세계 최대의 식량 마피아 카길. 99% 민중들이 밥상의 안전 따윈 관심두지 말고 격투기 K-1 관람하듯 구경만하고 있으면 &#8216;값싸고 질 좋은&#8217; 식사를 할 수 있을까?</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카길은 현재 국내 곡물 및 사료시장 점유율 1위, 미국산 수입 쇠고기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카길은 국내 종자시장 1위 업체인 몬산토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다.</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그런데 최근 카길은 충청남도와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충남에 대형 곡물 저장고, 사료공장, 대두가공공장을 지을 예정이란다. 앞으로 카길은 유전자조작 콩을 대량으로 싼 값에 들여와 창고에 보관한 후 콩기름을 짜고, 그 찌꺼기로 다시 사료를 만들어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만든 사료를 국내 한우, 젖소, 양돈, 양계 농가에 팔아서 돈을 벌고, 국내 축산업이 위축될 경우 미국산 쇠고기를 수출하여 수익을 올리는 이른바 &#8216;꽃놀이패&#8217;를 쥐게 되었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깃털까지 뽑아 모자를 만들어 팔아먹을 수 있는 카길의 오랜 숙원이 해결된 것이다.</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노태우 전 대통령은 6공화국 시절에 해표식용유를 생산하는 자신의 사돈 기업 동방유량을 고려해 카길의 콩 장사를 막았다고 전해진다. 아직까지도 국내에서 콩을 수입하여 콩기름을 만들어 파는 기업은 CJ제일제당과 사조해표 2곳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16개 품목을 선정할 때도 콩을 원료로 사용하는 된장, 간장, 청국장 등은 모두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포함되었지만 식용유는 제외되었다.</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카길이 점령한 식탁의 미래, 미국산 쇠고기를 보라</B></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IMG alt=Park_1.JPG src="files/attach/images/201/508/069/Park_1.JPG" editor_component="image_link"><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카길의 작업장에서 수입제한물품이 발견된 사례들. ⓒ박상표</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그렇다면, 카길이 점령한 우리 식탁의 미래는 어떨까? 그것이 궁금하다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과정을 꼼꼼히 돌이켜보자.</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한·미 FTA의 4대 선결조건으로 광우병 발생으로 수입이 중단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게 된 배후엔 카길이 있었다. 또한 2008년 4월 이명박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를 방문하기 직전에 발표되어 촛불시위를 불러온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 협상의 배후에도 카길이 있었다.</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당시 한국으로 쇠고기를 수출하는 카길의 작업장은 모두 5곳이었다. 그런데 5곳의 사업장 중에서 4군데에서 우리나라로 수출한 쇠고기에서 갈비통뼈와 등뼈가 적발되었다. 86E와 86K 2곳의 작업장은 2회 이상 연속 위반이 적발되었는데, 특히 86E 사업장은 광우병 위험물질(SRM)으로 분류된 등뼈가 적발되어 미국산 쇠고기 수출 선적이 잠정적으로 중단된 결정적 원인을 제공하였다.</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카길 등 미국 축산업계는 미국 농무부와 무역대표부에 로비를 하여 한국의 쇠고기 검역기준을 무력화시켜 버렸다. 뼛조각, 갈비통뼈, 등뼈 따위가 적발되더라도 아무 문제없도록, 30개월 이하이건 30개월 이상이건 따질 필요도 없도록 쇠고기 수입조건을 바꿔버린 것이다.</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쇠고기 협상과 촛불의 진실</B></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미국 농무부와 무역대표부는 한·미 FTA 미국 의회 비준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한·미 FTA를 하려면 쇠고기라는 통행료를 지불하라는 것이다.</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2008년 1월 16일 미 상원의원 2명과 주한미대사를 만나 &#8220;기자들이 없으니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서 미국산 쇠고기가 좋고 싸기 때문에 좋아한다&#8221;고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자리에서 이명박 당선인은 쇠고기 문제가 FTA 비준 등 한미간 제반 현안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쇠고기 시장 개방이 조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08SEOUL102.html)</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주한미대사관이 2008년 1월 17일자로 작성한 3급 비밀문서를 보면, 현인택 전 장관이 버시바우 주한미대사와 이명박 당선인의 방미순방을 논의하면서 &#8220;캠프 데이비드를 방문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8221;이라면서 &#8220;이당선인이 쇠고기 이슈에 대한 정치적 민감성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미국 방문에 앞서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 시장에 개방될 것&#8221;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08SEOUL102.html)</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버시바우 대사도 2008년 3월 25일자 2급 비밀문서를 통해 &#8220;이대통령이 4월 16일 한미정상회담 참석차 워싱턴에 도착하기 전에 쇠고기 시장 전면 재개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8221;고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보고했다. 또한 이대통령 참모진은 4월 9일 총선 전까지 협상타결이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미 대사에게 밝혔다. 이 문서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8220;한국의 통상팀은 이대통령 방미까지 미국측 요구에 맞춰 결과를 발표할 수 있도록 협상을 물밑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8221;고 보고한 대목이다. 또한 주한 미대사는 &#8220;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지 않다고 믿고 있다&#8221;면서 &#8220;이명박 정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FTA 비준을 위해 필수적으로 쇠고기 시장을 재개방해야 한다고 정당화시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8221;고 보고했다.(08SEOUL592.html)</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IMG alt=Park_2.JPG src="files/attach/images/201/508/069/Park_2.JPG" editor_component="image_link"><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시장 점령은 이미 현실이다. 한미FTA 이후에는 SRM이 포함된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도 한국의 밥상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사진은 본문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한미FTA 비준 이후 30개월 이상 쇠고기 전면개방은 시간문제일 뿐</B></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2010년 8월 4일 미국 상원 농림식량위 청문회에서 맥스 보커스 재무위원장은 한미FTA와 관련해 &#8220;한국은 월령과 부위에 상관없이 쇠고기 시장을 전면 개방해야 한다&#8221;고 발언했다. 청문회에 출석한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수출은 &#8220;한미FTA의 2가지 핵심쟁점(자동차, 쇠고기) 중 하나&#8221;라고 답변했다. 또한 커크는 한·미 FTA 발효 이후 한국 측과 쇠고기 시장 개방 협의에 나서겠다고 확언한 바 있다.</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그런데 2008년 한국의 촛불시위에 놀란 미 축산업계와 행정부는 한미FTA 미국 의회 비준의 선결조건으로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요구를 하는 것은 득보다는 실(失)이 많을 수도 있다면서 맥스 보커스 의원을 설득하여 우선순위를 바꾸었다. 다시 말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이후 한미FTA 비준에서 한미FTA 비준 이후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으로 순서만 바꾼 것이다.</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따라서 2011년 10월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순방에 맞춰 미국 의회에서 한미FTA를 비준하고, 이후 한국 국회에서 날치기나 야합을 통해서 한미FTA가 비준된다면 그 다음 순서는 바로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개방이 될 것이다.</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IMG alt=Park_3.JPG src="files/attach/images/201/508/069/Park_3.JPG" editor_component="image_link"><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이 국회 앞에서 릴레이 일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미FTA저지 범국본</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이렇게 되면 최근 광우병으로 수입이 중단되었다가 30개월 미만, 내장 제외 등을 조건으로 수입이 재개된 캐나다도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을 요구할 것이다. 만일 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캐나다는 다시 한 번 WTO에 제소를 하거나, 한-캐나다 FTA 결렬을 위협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9월말 이명박 정부는 한-호주FTA 협상의 진전을 위해 호주산 쇠고기의 관세를 단계적으로 전면 철폐하겠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한-EU FTA가 타결됨에 따라 조만간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EU 국가들도 미국이나 캐나다와 같은 기준으로 유럽산 쇠고기를 수입하라고 요구할 것이다.</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결국 한·미 FTA로 시작되어 촛불을 거쳐 한미FTA로 끝난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독화살이 되어 우리를 덮치게 될 것이다. 이제 1% 부자들의 싸움에 우리의 밥상을 맡길 것인지는 99% 민중들의 손에 달려 있다.</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FONT>&nbsp;</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박상표 (건강과대안 운영위원,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FONT></DIV><br />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 이 글은 2011년 10월13일자로 프레시안에 게재된 글입니다.&nbsp;</FONT></D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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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업감시] 식량위기의 최대 수혜자, 몬산토와 카길 (UN 총회 연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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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3 Aug 2011 15:25:06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기업감시]]></category>
		<category><![CDATA[식품 · 의약품]]></category>
		<category><![CDATA[UN총회]]></category>
		<category><![CDATA[다국적 기업]]></category>
		<category><![CDATA[몬산토]]></category>
		<category><![CDATA[미구엘 데스코토 부로크만(H. E. M. Miguel d’Escoto Brockmann)]]></category>
		<category><![CDATA[식량위기]]></category>
		<category><![CDATA[카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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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2008년 10월 25일 UN 밀레니엄 개발목표(the Millennium Development Goals)에 참석한 세계 각국의 정상들에게 제63회 유엔총회 의장 미구엘 데스코토 부로크만(H. E. M. Miguel d’Escoto Brockmann)이 한 연설&#8220;사람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한다는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P>2008년 10월 25일 UN 밀레니엄 개발목표(the Millennium Development Goals)에 참석한 세계 각국의 정상들에게 제63회 유엔총회 의장 미구엘 데스코토 부로크만(H. E. M. Miguel d’Escoto Brockmann)이 한 연설<BR><BR>&#8220;사람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한다는 식량의&nbsp;본원적인 목적은 종자(씨앗)에서부터&nbsp;대규모 유통망까지 식량 생산의 모든 과정을 독점하고 있는 한줌의 다국적 기업의 경제적 이익에 종식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들 다국적 기업들은 세계적 위기의&nbsp;최고의 수혜자들입니다.&nbsp;전 세계적으로 식량위기가 시작된 2007년 통게를 보면, 곡물시장을 통제하고 있는 몬산토나 카길 같은 기업들은&nbsp; 이윤이 각각 45%와 60%나 증가했습니다. 카길의 자회사인&nbsp;화학비료업계의 선두기업 모자이크(Mosaic Corporation)의 경우 한 해의 수익이 2배로 증가했습니다.<BR><BR>&#8220;14.&nbsp;The essential purpose of food, which is to nourish people , has been subordinated to the economic aims of a handful of multinational corporations that monopolize all aspects of food production, from seeds to major distribution chains, and they have been the prime beneficiaries of the world crisis. A look at the figures for 2007, when the world food crisis began, shows that corporations such as Monsanto and Cargill, which control the cereals market, saw their profits increase by 45 and 60 per cent, respectively; the leading chemical fertilizer companies such as Mosaic Corporation, a subsidiary of Cargill, doubled their profits in a single year.&#8221;<BR><BR><BR>미구엘 데스코토 부로크만의 유엔총회 개막 연설문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BR><BR>============================</P><br />
<P>Opening remarks by H. E. M. Miguel d’Escoto Brockmann President of the General Assembly <BR>at the High-level Event on the Millennium Development Goals&nbsp;25 September 2008, United Nations, New York</P><br />
<P>SOURCE : UNITED NATIONS </P><br />
<P>NEW YORK, USA, September 26, 2008/African Press Organization (APO)/ — Opening remarks by H. E. M. Miguel d’Escoto Brockmann <BR>President of the General Assembly </P><br />
<P><BR>1. I would like to extend a warm welcome to this high-level event which the Secretary-General and I have convened. This event represents a very important opportunity for us to focus our collective efforts, in a spirit of unity and fraternal solidarity, on addressing one of the biggest and most crucial challenges of our time:theeradication of poverty and hunger.<BR><BR>2. In 1995, meeting in Copenhage n at the World Summit for Social Development, Heads of State and Government from all over the world solemnly undertook to end poverty and hunger in the world. They stated very clearly that for the first time in human history this goal had become possible, thanks to the resources, knowledge and technology available in the modern age. The Copenhage n commitments also viewed poverty eradication as a political necessity as well as an ethical and moral imperative, since a global system based upon enormous inequalities was unsustainable.<BR><BR>3. In September 2000, the the n 189 States Members of the United Nations , meeting in the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adopted the Millennium Declaration, in which they pledged to “free our fellow men, women and children from the abject and dehumanizing conditions of extreme poverty ” by 2015. To that end, the eight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were subsequently formulated.<BR><BR>4. The Millennium Declaration calls for a coordinated, time bound strategy that tackles many problems simultaneously on various fronts. Among other commitments, we agreed to halve, by 2015, the proportion of people living in extreme poverty; but also to solve the problems of hunger, malnutrition and disease, promote gender equality and empower women, and guarantee basic education for all. The Declaration also proposes that wealthier countries should provide direct support to developing countries in the form of aid, trade, debt relief and investment.<BR><BR>5. A significant increase in international assistance for the world’s poorest countries is essential for global development. While all donor countries undertook in Monterrey to allocate 0.7 per cent of their gross domestic product to development cooperation, very few have lived up to this commitment. For every dollar that the developed countries spend on international assistance, they invest $10 in military budgets.<BR><BR>6. It is calculated that the amount spent so far on the Iraq war could have pa id for a full course of primary schooling for all of the world’s children and youth who are not in school. The price of a single missile is enough to build about 100 schools in any country in Africa, Asia or Latin America.<BR><BR>7. Furthermore, unfair trade practicesalso delay development, as poor countries are shut out of markets and deprived of trade opportunities. The high tariffs that rich countries impose on poor countries’ products amount to a “perverse tax” that deprives developing countries of funds for health care and education.<BR><BR>8. Thus far, the progress made towards the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has, with few exceptions, been limited. Many countries have fallen behind and are unlikely to achieve the Goals by the target date. It is therefore worthwhile for us to learn from those that have made significant progress and to help each other so that all of us can move forward.<BR><BR>9. It is clear that the world food crisis is increasing social tensions and bringing about a significant rise in extreme poverty. World hunger has its roots in the inequitable distribution of purchasing power both between and within countries. Thus, our efforts should focus primarily on reducing inequities in our global system of food production. My brothers and sisters,<BR><BR>10. We have the technical and productive capacity to do this. It is incumbent on this Assembly to garner the strong sense of solidarity that will awaken the necessary political will to turn this crisis into an opportunity to transform a world system that denies the poor a right as basic as the right to food.<BR><BR>11. The World Bank has concluded that 75 per cent of the increase in food prices stems from the production of biofuels and factors rela ted to rapidly growing demand for biofuels.<BR><BR>12. The developed countries’ lavish agricultural subsidies have weakened agriculture in developing countries. At the same time, only a fraction of international aid is earmarked for improving agricultural productivity. Aid for agriculture has shrunk from 17 per cent of total development assistance, the high point reached in 1996, to 3 per cent today. Now some international donors are demanding an end to fertilizer subsidies. Faced with today’s world food crisis we must speak out on behalf of our brothers and sisters and say “This is not right”. It is not just to keep in place agricultural and energy policies that give rise to these kinds of distortions. Now is the time to help the poorest countries to boost their food prod agricultural products at the prices imposed on them and have undermined the ir ability to compete by heavily subsidizing the production and export of these products. Together these factors have shaped a food production system that puts private economic interests ahead of people’s basic dietary needs.<BR><BR>13. Food shortages are a consequence of these misguided policies, which have forced poor countries to import<BR><BR>14. The essential purpose of food, which is to nourish people , has been subordinated to the economic aims of a handful of multinational corporations that monopolize all aspects of food production, from seeds to major distribution chains, and they have been the prime beneficiaries of the world crisis. A look at the figures for 2007, when the world food crisis began, shows that corporations such as Monsanto and Cargill, which control the cereals market, saw their profits increase by 45 and 60 per cent, respectively; the leading chemical fertilizer companies such as Mosaic Corporation, a subsidiary of Cargill, doubled their profits in a single year.<BR><BR>15. At the same time , in response to the financial crisis, major hedge funds have shifted millions of dollars into agricultural products. These funds control 60 per cent of the supply of wheat and other basic grains. Most of these crops are purchased as “futures”. In other words, speculators have been increasingly active in food-related financial markets.</P><br />
<P>Friends,<BR><BR>16. Eight years after we adopted the Millennium Declaration, global inequality remains exactly the same or has even deteriorated since 2000, and the planet is at serious risk of not meeting the basic needs of the poorest of the poor. If current trends continue, it will be difficult even to prevent a further widening of the gap between the MDG targets and the results achieved; between the have’s and the have not’s of our world.<BR><BR>17. Today, 3 billion 140 million people live on less than $2.50 a day. Of these, about 44 per cent survive on less than $1.25 a day, according to a new World Bank report issued on 2 September 2008. Every day, more than 30,000 people die of malnutrition, avoidable diseases and hunger. Some 85 per cent of them are children under the age of 5.<BR><BR>18. The top 10 per cent of the world’s people possess 84 per cent of the world’s wealth, while the rest are left with the remaining 16 per cent. Yet we have the technical and productive capacity to adequately feed the whole planet. It is a matter of reorienting our priorities. We must now muster the resolve to feed the world’s hungry.<BR><BR>19. Neoliberal economic restructuring worldwide has affected the supply and access to three of life’s basic necessities: food, water and fuel. In recent years, the prices of these three variables have risen at the global level, with devastating economic and social consequenc es. Today these three basic necessities are controlled by a small group of global corporations and financial institutions.<BR><BR>20. All of these processes put at risk are ability to reach our development targets related to health. The poor performance in reducing maternal mortality is a telling sign of the magnitude of the problem. The current rate of more than 500,000 pregnancy- and childbirth-related maternal deaths each year constitutes a disgrace for humanity. The Secretary-General and I will therefore join forces to strengthen global health through increased support for initiatives in this area.<BR><BR>21. Today the developed countries are feeling the effects of an acute credit crisis. However, the failures or, more accurately, the lack of a viable international economic system has plunged the developed countries of the West, and the world economy as a whole, into a severe crisis.<BR><BR>22. We must all ensure that the current crisis, which was caused in large part by a preference for protectionist policies or special interests at the expense of the common good, is not used as a pretext for failing to honour the commitments undertaken.</P><br />
<P>23. If we are to achieve the Millennium Goals, which remain modest, we must demonstrate the resolve and take the necessary steps to incorporate fully into this international endeavor our indigenous brothers and sisters as a yardstick for monitoring progress on the Millennium Goals. Their effective inclusion will require a redefinition of development goals to reflect the particular worldview s, perspectives and concepts of development of indigenous peoples. Each and all of us together have much to learn from our indigenous brothers and sisters about respect for and the care of our Mother Earth, water and nature, which are the source and the sustenance of life for all species.</P><br />
<P>Dear brothers and sisters,</P><br />
<P>24. This snapshot of the world that I have presented today has a direct impact on the achievement of the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Only through deep reflection and clear, courageous political decisions will we be able to address the structural causes and achieve the Goals that we agreed upon in 2000. I invite you in the dialogues at each of the round tables today to share successful experiences so that all of us will be able to generate effective, sustainable changes that benefit the poorest of the poor.</P><br />
<P><BR>25. There can be no denying of the fact that these global upheavals have increased the burden of the most vulnerable among us , those brothers and sisters who already bear the yoke of extreme poverty, the uncertainty and uprootedness caused by climate change, and who are the victims of the direct and collateral damage inflicted by wars of aggression or greed.</P><br />
<P><BR>26. May it be most of all for the benefit of these brothers and sisters that we dedicate our best efforts today.</P><br />
<P><BR>Thank you.</P><br />
<P>====================<BR><BR>[참고] Monsanto and the World Food Crisis<BR><BR><A href="http://www.sourcewatch.org/index.php?title=Monsanto_and_the_World_Food_Crisis">http://www.sourcewatch.org/index.php?title=Monsanto_and_the_World_Food_Crisis</A><BR><BR></P><br />
<P>Monsanto, ever on the lookout for a new financial opportunity, especially one which, on the surface at least, appears to be benevolent found one in biofuels. The growing of corn, in Monsanto&#8217;s case, genetically engineered corn, for the production of ethanol purportedly to reduce the use of fossil fuels <A class="external autonumber" title=http://americas.irc-online.org/am/5179 href="http://americas.irc-online.org/am/5179" rel=nofollow>[1]</A><A class="external autonumber" title=http://www.monsanto.com/responsibility/our_pledge/facing_challenges/energy.asp href="http://www.monsanto.com/responsibility/our_pledge/facing_challenges/energy.asp" rel=nofollow>[2]</A><A class="external autonumber" title=http://www.biodieselmagazine.com/article.jsp?article_id=1431 href="http://www.biodieselmagazine.com/article.jsp?article_id=1431" rel=nofollow>[3]</A><A class="external autonumber" title=http://monsanto.mediaroom.com/index.php?s=43&#038;item=354 href="http://monsanto.mediaroom.com/index.php?s=43&#038;item=354" rel=nofollow>[4]</A>. Unfortunately though, as is often the case with Monsanto, this silver lining has a rather large and ominous cloud, and in the massive diversion of land once used to grow food to growing crops for the fueling of automobiles yet another crisis has ensued.</P><br />
<P>The crisis was not unforseen. It was in fact, some would say, rather obvious. As far back as 2001 David Pimentel, Cornell professor in the College of Agriculture and Life Sciences, stated &#8220;<I>Abusing our precious croplands to grow corn for an energy-inefficient process that yields low-grade automobile fuel amounts to unsustainable, subsidized food burning</I>&#8221; <A class="external autonumber" title=http://www.news.cornell.edu/Chronicle/01/8.23.01/Pimentel-ethanol.html href="http://www.news.cornell.edu/Chronicle/01/8.23.01/Pimentel-ethanol.html" rel=nofollow>[5]</A>. In 2004 George Monbiot warned (and has been warning all along <A class="external autonumber" title=http://www.monbiot.com/index.php?s=biofuels&#038;sbutt=Find href="http://www.monbiot.com/index.php?s=biofuels&#038;sbutt=Find" rel=nofollow>[6]</A>) that &#8220;<I>The adoption of biofuels would be a humanitarian and environmental disaster</I>&#8220;. &#8220;Surely,&#8221; Monbiot continued, &#8220;if there was unmet demand for food, the market would ensure that crops were used to feed people rather than vehicles? There is no basis for this assumption. The market responds to money, not need. People who own cars have more money than people at risk of starvation. In a contest between their demand for fuel and poor people’s demand for food, the car-owners win every time&#8221; <A class="external autonumber" title=http://www.monbiot.com/archives/2004/11/23/feeding-cars-not-people/ href="http://www.monbiot.com/archives/2004/11/23/feeding-cars-not-people/" rel=nofollow>[7]</A>. It&#8217;s no surprise, therefore, that is precisely what happened. And while the world pays more to eat due to the engineered shortage of land for food crops thus driving up prices, or not eat, Monsanto et al. have been making out like bandits.</P><br />
<P>&#8220;<I>The World Bank says that 100 million more people are facing severe hunger. Yet some of the world&#8217;s richest food companies are making record profits. Monsanto last month reported that its net income for the three months up to the end of February this year had more than doubled over the same period in 2007, from $543m (£275m) to $1.12bn. Its profits increased from $1.44bn to $2.22bn&#8230;. The Food and Agriculture Organisation reports that 37 developing countries are in urgent need of food. And food riots are breaking out across the globe from Bangladesh to Burkina Faso, from China to Cameroon, and from Uzbekistan to the United Arab Emirates. Benedict Southworth, director of the World Development Movement, called the escalating earnings and profits &#8220;immoral&#8221; late last week. He said that the benefits of the food price increases were being kept by the big companies, and were not finding their way down to farmers in the developing world.&#8221; <A class="external text" title=http://www.independent.co.uk/environment/green-living/multinationals-make-billions-in-profit-out-of-growing-global-food-crisis-820855.html href="http://www.independent.co.uk/environment/green-living/multinationals-make-billions-in-profit-out-of-growing-global-food-crisis-820855.html" rel=nofollow>Multinationals make billions in profit out of growing global food crisis</A></I>&#8221; In fact, &#8220;<I>Monsanto &#8230; has gotten farmers to accept seed prices twice the level of a decade ago</I>&#8221; <A class="external autonumber" title=http://www.organicconsumers.org/articles/article_12141.cfm href="http://www.organicconsumers.org/articles/article_12141.cfm" rel=nofollow>[8]</A>.</P><br />
<P>H. E. M. Miguel d’Escoto Brockmann, President of the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stated, &#8220;The essential purpose of food, which is to nourish people, has been subordinated to the economic aims of a handful of multinational corporations that monopolize all aspects of food production, from seeds to major distribution chains, and they have been the prime beneficiaries of the world crisis. A look at the figures for 2007, when the world food crisis began, shows that corporations such as Monsanto and Cargill, which control the cereals market, saw their profits increase by 45 and 60 per cent, respectively; the leading chemical fertilizer companies such as Mosaic Corporation, a subsidiary of Cargill, doubled their profits in a single year&#8221; <A class="external autonumber" title=http://appablog.wordpress.com/2008/09/26/opening-remarks-by-h-e-m-miguel-d%E2%80%99escoto-brockmann-president-of-the-general-assembly-at-the-high-level-event-on-the-millennium-development-goals-25-september-2008-united-nations-new-york/ href="http://appablog.wordpress.com/2008/09/26/opening-remarks-by-h-e-m-miguel-d%E2%80%99escoto-brockmann-president-of-the-general-assembly-at-the-high-level-event-on-the-millennium-development-goals-25-september-2008-united-nations-new-york/" rel=nofollow>[9]</A>.</P><br />
<P>In fact, &#8220;Hugh Grant, Monsanto Chairman, CEO, and President probably won’t notice the increased price of a loaf of bread. And if he does it will be with a smile. Grant is $13,000,000 and some change wealthier today than he was on Monday, as he chose to <A class="external text" title=http://www.forbes.com/feeds/ap/2008/05/20/ap5030300.html href="http://www.forbes.com/feeds/ap/2008/05/20/ap5030300.html" rel=nofollow>exercise stock options</A> &#8211; 116,000 shares worth – that netted him a profit of over $114 PER SHARE. Like many of us, I wouldn’t mind paying the extra dollar per loaf of bread if I knew the majority of that dollar was going back into the hands of farmers. Instead, the higher prices at the checkout line are funneled to the agri-giants like Monsanto and Cargill, <A class="external text" title=http://marketplace.publicradio.org/display/web/2008/05/08/food_companies/ href="http://marketplace.publicradio.org/display/web/2008/05/08/food_companies/" rel=nofollow>companies making record profits</A>. Remind you of gas prices and oil companies? Reminds me that these agri-giants spent <A class="external text" title=http://www.csmonitor.com/2008/0514/p08s01-comv.html href="http://www.csmonitor.com/2008/0514/p08s01-comv.html" rel=nofollow>$100 million on getting their way</A> in the Farm Bill, an investment with huge dividends – for Monsanto’s Hugh Grant anyway&#8221; <A class="external autonumber" title=http://www.competitivemarkets.com/index.php?option=com_content&#038;task=view&#038;id=136&#038;Itemid=20 href="http://www.competitivemarkets.com/index.php?option=com_content&#038;task=view&#038;id=136&#038;Itemid=20" rel=nofollow>[10]</A>.</P><br />
<P>The market being what it is, biofuels also became a convenient way to stick it to organics as well. &#8220;<I>But farmers and grain buyers say the growth of new organic acreage has slowed, falling short of rising demand and causing organic grain prices to soar. That is partly because prices for conventional corn, soybeans and wheat are at or near records, so there is less incentive for farmers to switch to organic crops; making the switch requires a three-year transition and piles of paperwork. &#8216;There has been no new surge of land going into organic,&#8217; said Lynn Clarkson, who buys organic grain as president of Clarkson Grain in central Illinois. &#8216;We are having to compete with this ethanol juggernaut,&#8217; he added, referring to the growing use of field corn for fuel</I>&#8221; <A class="external autonumber" title=http://www.nytimes.com/2008/04/18/business/18organic.html?_r=2&#038;oref=slogin&#038;ref=business%3E&#038;pagewanted=print&#038;oref=slogin href="http://www.nytimes.com/2008/04/18/business/18organic.html?_r=2&#038;oref=slogin&#038;ref=business%3E&#038;pagewanted=print&#038;oref=slogin" rel=nofollow>[11]</A>. Also convenient, the food shortage has become a way to overcome objections to GMOs <A class="external text" title=http://www.nytimes.com/2008/04/21/business/21crop.html?pagewanted=print href="http://www.nytimes.com/2008/04/21/business/21crop.html?pagewanted=print" rel=nofollow>In Lean Times, Biotech Grains Are Less Taboo</A>.</P><br />
<P>Ironically however, rather than helping to solve global warming, biofuels will, according to experts, actually <I>contribute</I> to it <A class="external autonumber" title=http://www.sciencedaily.com/releases/2009/01/090128074830.htm href="http://www.sciencedaily.com/releases/2009/01/090128074830.htm" rel=nofollow>[12]</A><A class="external autonumber" title=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08/02/07/AR2008020704230.html?hpid=moreheadlines href="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08/02/07/AR2008020704230.html?hpid=moreheadlines" rel=nofollow>[13]</A><A class="external autonumber" title=http://www.latimes.com/news/printedition/asection/la-sci-biofuel8feb08,1,7253036.story?ctrack=2&#038;cset=true href="http://www.latimes.com/news/printedition/asection/la-sci-biofuel8feb08,1,7253036.story?ctrack=2&#038;cset=true" rel=nofollow>[14]</A><A class="external autonumber" title=http://www.indypendent.org/?p=1159 href="http://www.indypendent.org/?p=1159" rel=nofollow>[15]</A><A class="external autonumber" title=http://www.guardian.co.uk/environment/2009/feb/02/biofuels-health href="http://www.guardian.co.uk/environment/2009/feb/02/biofuels-health" rel=nofollow>[16]</A>. See also <A class="external text" title=http://counterpunch.com/bryce02052009.html href="http://counterpunch.com/bryce02052009.html" rel=nofollow>The Unraveling of the Ethanol Scam</A>.</P><br />
<P>Not enough? According to a report by Friends of the Earth, thanks to federal subsidies (paid for with taxpayer dollars) to the biofuel industry &#8220;In total, between 2008 and 2022, taxpayers will have paid out over $400 billion to the biofuels industry. Were Obama proposals for 60 billion gallons per year to be realized, subsidies would top $120 billion per year by the end of the period, for a cumulative subsidy during the 2008-30 period of more than $1 trillion. For this investment, we accelerate land conversion and exacerbate a wide range of environmental problems. Already, the ecological impact of increased biofuels production is evident, both in the U.S. and abroad, including deforestation, water pollution and increased greenhouse gas emissions&#8221; <A class="external autonumber" title=http://www.foe.org/sites/default/files/FOE%20VEETC%20Evaluation%20FINAL.pdf href="http://www.foe.org/sites/default/files/FOE%20VEETC%20Evaluation%20FINAL.pdf" rel=nofollow>[17]</A>.</P><br />
<P>Also see <A class="external text" title=http://www.thenation.com/doc/20080512/nichols href="http://www.thenation.com/doc/20080512/nichols" rel=nofollow>The World Food Crisis</A>, <A class="external text" title=http://online.wsj.com/article/SB120949327146453423.html href="http://online.wsj.com/article/SB120949327146453423.html" rel=nofollow>Grain Companies&#8217; Profits Soar As Global Food Crisis Mounts</A>, <A class="external text" title=http://www.corporateeurope.org/agrofuelfolly.html href="http://www.corporateeurope.org/agrofuelfolly.html" rel=nofollow>The EU&#8217;s agrofuel folly: policy capture by corporate interests</A></P><br />
<P><A id=Monsanto_and_drought-tolerant_maize_in_Africa name=Monsanto_and_drought-tolerant_maize_in_Africa></A></P><br />
<H2><SPAN class=mw-headline>Monsanto and drought-tolerant maize in Africa</SPAN></H2><br />
<P>From Matt Brown, <A class="external text" title=http://www.aatf-africa.org/userfiles/wema-newhope-ug.pdf href="http://www.aatf-africa.org/userfiles/wema-newhope-ug.pdf" rel=nofollow>&#8220;New hope to end scourge of drought,&#8221;</A> The National Newspaper, March 1, 2010</P><br />
<P>In 2010, Monsanto became involved in an ongoing project designed to develop new African drought-tolerant maize varieties. When a particular piece of DNA in bacillus subtilis (cspB) was injected into an ordinary maize seed, the leaves of the fully grown maize plant curled up in dry conditions thus losing less water to evaporation and making the crop virtually resistant to crippling droughts that have plagued Africa for centuries.</P><br />
<P>Researchers with the Water Efficient Maize for Africa (WEMA) project are currently testing drought-resistant GM maize seeds in Kenya, Tanzania, Uganda, Mozambique, and South Africa. According to its <A class="external text" title=http://www.aatf-africa.org/wema/about_the_project/faqs href="http://www.aatf-africa.org/wema/about_the_project/faqs" rel=nofollow>website</A>, WEMA is a public-private partnership led by the African Agricultural Technology Foundation (AATF) to address the devastating effects of drought by developing drought-tolerant maize.</P><br />
<P>According to AATF, more than half the population of sub-Saharan Africa depends on maize as their main food source. Across much of Africa, subsistence farmers and their maize crops are vulnerable to changing weather patterns. The GM seeds are expected to increase yields by 20 to 35 percent, translating into two million metric tons of maize during drought years, or enough to feed 14-21 million people.</P><br />
<P>Genetic engineers, biotechnology companies (including Monsanto), philanthropists (including the Bill and Melinda Gates Foundation), and policy makers are working to make the new technology widely available to small-scale African farmers.</P><br />
<P>The Bill and Melinda Gates foundation and the Howard G. Buffett Foundation are financing the project, essentially underwriting the research and development of GM seeds so that they will be as cheap as conventional seeds.</P><br />
<P>For Monsanto, the project translates into opening markets in Africa: &#8220;This technology will be given royalty-free to small scale farmers in sub-Saharan Africa,&#8221; stated a spokesman for Monsanto&#8217;s Africa division. &#8220;We&#8217;re not here because of charity. If you help small farmers, today they may not be good customers. But in 10 years, they may be good customers.&#8221;</P><br />
<P>However, Monsanto&#8217;s involvement is not without controversy. Miriam Mayet, director of the Johannesburg-based African Center of Biosafety, believes that &#8220;Monsanto&#8217;s prominent role in the project&#8230;is a disingenuous attempt to paint a pretty picture of benevolence when really what it has also set its sights on is a potential market in Africa to peddle its GM seeds.&#8221;</P><br />
<P>As for the project in general, Mayet stated: &#8220;WEMA is a strategic way of making the acceptance of GM [seeds] more palatable on a continent that sees little value in the current two-trait GM technology. The field trials pose the most immediate biosafety threats including the risk of gene flow via cross pollination.&#8221;</P><br />
<P>The GM seeds are currently being developed in labs in South Africa. Drought-tolerant seeds, which are created using conventional breeding and are not as efficient as the GM seeds, are now being field-tested. The GM seeds could be tested during the 2010 dry season, once government regulations are in place and could be on the market within five years.</P><br />
<HR></p>
<p><P><A id=Other_SourceWatch_resources name=Other_SourceWatch_resources></A></P><br />
<H2><SPAN class=mw-headline>Other SourceWatch resources</SPAN></H2><br />
<UL><br />
<LI><A title=Monsanto href="/index.php?title=Monsanto">Monsanto</A></LI></UL></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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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광우병] 일미 쇠고기 협상 진전 있을 것으로 예상(블룸버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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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5 Oct 2010 19:50:24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광우병]]></category>
		<category><![CDATA[식품 · 의약품]]></category>
		<category><![CDATA[1조$]]></category>
		<category><![CDATA[20개월 미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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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일미 쇠고기 협상]]></category>
		<category><![CDATA[일본 수입조건]]></category>
		<category><![CDATA[카길]]></category>
		<category><![CDATA[카노 미치히코(鹿野道彦)]]></category>
		<category><![CDATA[타이슨 푸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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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일본 내각 산하 식품안전위원회에서 광우병 위험을 평가하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함에 따라 일-미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협상이 진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블룸버그 통신의 10월 15일자 기사입니다.미국 축산업계는 일본이 20개월령 수입제한을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일본 내각 산하 식품안전위원회에서 광우병 위험을 평가하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함에 따라 일-미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협상이 진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블룸버그 통신의 10월 15일자 기사입니다.<BR><BR>미국 축산업계는 일본이 20개월령 수입제한을 완화하여 30개월 이하의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할 경우 수출량이 2배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BR><BR>2010년 9월 14일&nbsp;일본 집권 민주당 대표로 선출된&nbsp;간 나오토 총리는 내각 개편을 단행하였습니다.&nbsp;새롭게 임명된 카노 미치히코(鹿野道彦, 68세) 농림수산상은 하토야마 그룹 소속의 11선 <BR>중의원으로 중의원 예산위원장과 총무처장관을 역임한 바 있습니다.<BR><BR>그는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 완화 문제로 마헤하라 세이지 외무상과의 이견을 공개적으로<BR>표출하여 화제가 되었듯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BR><BR>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타이슨 푸드와 카길 등 거대 쇠고기 기업은 일본의 엄격한 수입조건 때문에 매년 1조$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BR><BR>============================================================<BR><br />
<H1>U.S. Beef Talks May Progress as Japan Gathers Mad-Cow Disease Risk Data</H1><br />
<DIV id=story_meta><CITE class=byline>By <SPAN class=author>Aya Takada</SPAN> &#8211; <SPAN class=datestamp><br />
<SCRIPT type=text/javascript>document.write(dateFormat(new Date(1287111232000),&#8221;mmm d, yyyy h:MM TT Z&#8221;));</SCRIPT><br />
Oct 15, 2010 11:53 AM GMT+0900 <BR><BR><br />
<P>Japan, the biggest buyer of American beef before an outbreak of mad cow disease prompted the country to ban imports, is analyzing the safety of meat from cattle older than 20 months amid U.S. calls to normalize the trade. </P><br />
<P>Japan restricts U.S. beef imports to cattle aged 20 months or younger on concern that older animals may be at higher risk for the disease, also known as 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 The nation’s Food Safety Commission must rule that any change in policy won’t increase human health risks, in order for imports of older cattle to resume. </P><br />
<P>Japan banned American beef when the U.S. disclosed its first case in 2003. The ban was relaxed in 2005 to allow meat from young cattle. Companies including <A class=web_ticker title="Get Quote" href="/apps/quote?ticker=TSN:US"><FONT color=#0033cc>Tyson Foods Inc.</FONT></A> and Cargill Inc. lose about $1 billion in sales a year because of the restriction, said the National Cattlemen’s Beef Association. </P><br />
<P>“We have to collect enough data before submitting a request to the Food Safety Commission for risk assessment,” Minoru Yamamoto, director at the international animal health affairs office of the Ministry of Agriculture, Forestry and Fisheries, said in an interview in Tokyo. “We are seeking information from the U.S. and waiting for their replies.” </P><br />
<P>Mexico, South Korea and Taiwan buy U.S. beef from cattle younger than 30 months. Canada, Indonesia and Malaysia accept the meat from animals of any age, in line with international guidelines. Japan also requires U.S. shippers to remove risk materials, such as the spinal cord, that can transmit the disease to humans if consumed. </P><br />
<P>Beef Shipments </P><br />
<P>If Japan raises the age limit to 30 months, U.S. beef shipments to the Asian nation may return close to pre-ban levels, said <A title="Search News" href="http://search.bloomberg.com/search?q=Susumu%20Harada&#038;site=wnews&#038;client=wnews&#038;proxystylesheet=wnews&#038;output=xml_no_dtd&#038;ie=UTF-8&#038;oe=UTF-8&#038;filter=p&#038;getfields=wnnis&#038;sort=date:D:S:d1&#038;partialfields=-wnnis:NOAVSYND&#038;lr=-lang_ja"><FONT color=#0033cc>Susumu Harada</FONT></A>, senior director at the Tokyo office of the <A title="Open Web Site" href="http://usmef.org/" rel=external><FONT color=#0033cc>U.S. Meat Export Federation</FONT></A>. </P><br />
<P>“The change would remove obstacles in the beef trade as U.S. products for overseas shipments are mostly from cattle aged up to 24 months,” Harada said in an interview. </P><br />
<P>Japan imported 475,000 metric tons of beef last fiscal year, of which 75 percent was from Australia and 16 percent was from the U.S., according to the agriculture ministry. In the year ended March 31, 2004, U.S. beef represented 201,000 tons, or 39 percent, of Japan’s total imports. Japan banned U.S. beef in December 2003, prompting restaurant chain operator <A class=web_ticker title="Get Quote" href="/apps/quote?ticker=9861:JP"><FONT color=#0033cc>Yoshinoya Holdings Co.</FONT></A> to suspend sales of its “gyudon” beef bowl. </P><br />
<P>U.S. government representatives will visit Japan as Agriculture Minister <A title="Search News" href="http://search.bloomberg.com/search?q=Michihiko%20Kano&#038;site=wnews&#038;client=wnews&#038;proxystylesheet=wnews&#038;output=xml_no_dtd&#038;ie=UTF-8&#038;oe=UTF-8&#038;filter=p&#038;getfields=wnnis&#038;sort=date:D:S:d1&#038;partialfields=-wnnis:NOAVSYND&#038;lr=-lang_ja"><FONT color=#0033cc>Michihiko Kano</FONT></A> will chair a ministerial meeting on food security of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members from Oct. 16-17. Kano replaced <A title="Search News" href="http://search.bloomberg.com/search?q=Masahiko%20Yamada&#038;site=wnews&#038;client=wnews&#038;proxystylesheet=wnews&#038;output=xml_no_dtd&#038;ie=UTF-8&#038;oe=UTF-8&#038;filter=p&#038;getfields=wnnis&#038;sort=date:D:S:d1&#038;partialfields=-wnnis:NOAVSYND&#038;lr=-lang_ja"><FONT color=#0033cc>Masahiko Yamada</FONT></A>, known for his tough stance on food safety, when Prime Minister <A title="Search News" href="http://search.bloomberg.com/search?q=Naoto%20Kan&#038;site=wnews&#038;client=wnews&#038;proxystylesheet=wnews&#038;output=xml_no_dtd&#038;ie=UTF-8&#038;oe=UTF-8&#038;filter=p&#038;getfields=wnnis&#038;sort=date:D:S:d1&#038;partialfields=-wnnis:NOAVSYND&#038;lr=-lang_ja"><FONT color=#0033cc>Naoto Kan</FONT></A> reshuffled his cabinet on Sept. 17. </P><br />
<P>‘Sound Science’ </P><br />
<P>U.S. lawmakers called President <A title="Search News" href="http://search.bloomberg.com/search?q=Barack%20Obama&#038;site=wnews&#038;client=wnews&#038;proxystylesheet=wnews&#038;output=xml_no_dtd&#038;ie=UTF-8&#038;oe=UTF-8&#038;filter=p&#038;getfields=wnnis&#038;sort=date:D:S:d1&#038;partialfields=-wnnis:NOAVSYND&#038;lr=-lang_ja"><FONT color=#0033cc>Barack Obama</FONT></A> to address beef trade during his meeting with Kan when the Japanese prime minister visited the nation last month, saying Japan’s restrictions “are not based on sound science nor are they consistent with international guidelines.” </P><br />
<P>“At the very least, Japan should agree to immediately relax its age restrictions to 30 months as an interim step on a pathway that would amend its import protocol to be consistent with OIE guidelines,” senators including former Agriculture Secretary Mike Johanns and agriculture committee member Pat Roberts said in a letter to the president. </P><br />
<P>The World Organization for Animal Health, also known as OIE, voted in May 2007 to give the U.S. its “controlled-risk” rating for mad cow disease. The designation means controls are effective, and meat from U.S. cattle of any age can be safely traded. The OIE standards are used to settle trade disputes at the World Trade Organization. </P><br />
<P>Relaxing Restriction </P><br />
<P>Kano told reporters on Sept. 24 that Japan was “making a decision based on scientific knowledge” regarding food-safety issues. His remarks came a day after Foreign Minister <A title="Search News" href="http://search.bloomberg.com/search?q=Seiji%20Maehara&#038;site=wnews&#038;client=wnews&#038;proxystylesheet=wnews&#038;output=xml_no_dtd&#038;ie=UTF-8&#038;oe=UTF-8&#038;filter=p&#038;getfields=wnnis&#038;sort=date:D:S:d1&#038;partialfields=-wnnis:NOAVSYND&#038;lr=-lang_ja"><FONT color=#0033cc>Seiji Maehara</FONT></A> was quoted by Kyodo News as telling Secretary of State <A title="Search News" href="http://search.bloomberg.com/search?q=Hillary%20Clinton&#038;site=wnews&#038;client=wnews&#038;proxystylesheet=wnews&#038;output=xml_no_dtd&#038;ie=UTF-8&#038;oe=UTF-8&#038;filter=p&#038;getfields=wnnis&#038;sort=date:D:S:d1&#038;partialfields=-wnnis:NOAVSYND&#038;lr=-lang_ja"><FONT color=#0033cc>Hillary Clinton</FONT></A> that relaxing the age restriction would be considered. </P><br />
<P>Japan planned to ease the restriction on U.S. beef imports to allow meat from cattle aged up to 30 months in 2007 under the former government of the Liberal Democratic Party. The administration of President <A title="Search News" href="http://search.bloomberg.com/search?q=George%20W.%20Bush&#038;site=wnews&#038;client=wnews&#038;proxystylesheet=wnews&#038;output=xml_no_dtd&#038;ie=UTF-8&#038;oe=UTF-8&#038;filter=p&#038;getfields=wnnis&#038;sort=date:D:S:d1&#038;partialfields=-wnnis:NOAVSYND&#038;lr=-lang_ja"><FONT color=#0033cc>George W. Bush</FONT></A> had urged Japan to eliminate the age limitation completely, in line with international standards, and the deadlock continued. </P><br />
<P>Japan and the U.S. held their first working-level meeting in three years last month, based on an agreement reached in April between Agriculture Secretary <A title="Search News" href="http://search.bloomberg.com/search?q=Tom%20Vilsack&#038;site=wnews&#038;client=wnews&#038;proxystylesheet=wnews&#038;output=xml_no_dtd&#038;ie=UTF-8&#038;oe=UTF-8&#038;filter=p&#038;getfields=wnnis&#038;sort=date:D:S:d1&#038;partialfields=-wnnis:NOAVSYND&#038;lr=-lang_ja"><FONT color=#0033cc>Tom Vilsack</FONT></A> and then Agriculture Minister <A title="Search News" href="http://search.bloomberg.com/search?q=Hirotaka%20Akamatsu&#038;site=wnews&#038;client=wnews&#038;proxystylesheet=wnews&#038;output=xml_no_dtd&#038;ie=UTF-8&#038;oe=UTF-8&#038;filter=p&#038;getfields=wnnis&#038;sort=date:D:S:d1&#038;partialfields=-wnnis:NOAVSYND&#038;lr=-lang_ja"><FONT color=#0033cc>Hirotaka Akamatsu</FONT></A> to resume beef talks. </P><br />
<P>Double Exports </P><br />
<P>President <A title="Search News" href="http://search.bloomberg.com/search?q=Obama&#038;site=wnews&#038;client=wnews&#038;proxystylesheet=wnews&#038;output=xml_no_dtd&#038;ie=UTF-8&#038;oe=UTF-8&#038;filter=p&#038;getfields=wnnis&#038;sort=date:D:S:d1&#038;partialfields=-wnnis:NOAVSYND&#038;lr=-lang_ja"><FONT color=#0033cc>Obama</FONT></A>’s administration increased pressure on Japan to re-open its market to U.S. beef as part of a goal to double the country’s exports in the next five years. </P><br />
<P>Japan was the third-largest destination for U.S. beef last year, at $470 million, up from $383 million in 2008, according to the U.S. Meat Export Federation. That compares with $1.391 billion in 2003. Mexico and Canada were the biggest buyers of U.S. beef last year. </P><br />
<P>More than 100 countries buy beef from the U.S., which has found three cases of the disease in the past two decades, and no incidents in the last three years, Vilsack said on April 9 in Tokyo. </P><br />
<P>To contact the reporter on this story: <A title="Search News" href="http://search.bloomberg.com/search?q=Aya%20Takada&#038;site=wnews&#038;client=wnews&#038;proxystylesheet=wnews&#038;output=xml_no_dtd&#038;ie=UTF-8&#038;oe=UTF-8&#038;filter=p&#038;getfields=wnnis&#038;sort=date:D:S:d1&#038;partialfields=-wnnis:NOAVSYND&#038;lr=-lang_ja"><FONT color=#0033cc>Aya Takada</FONT></A> in Tokyo <A title="Send E-mail" href="mailto:atakada2@bloomberg.net"><FONT color=#0033cc>atakada2@bloomberg.net</FONT></A> </P><br />
<P>To contact the editor responsible for this story: Richard Dobson at <A title="Send E-mail" href="mailto:rdobson4@bloomberg.net"><FONT color=#0033cc>rdobson4@bloomberg.net</FONT></A> </P></SPAN></CITE></D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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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광우병] 일본,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 20개월 미만 유지 방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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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3 Sep 2010 12:28:58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광우병]]></category>
		<category><![CDATA[식품 · 의약품]]></category>
		<category><![CDATA[1조 달러]]></category>
		<category><![CDATA[20개월 미만]]></category>
		<category><![CDATA[NCBA(National Cattlemen's Beef Association)]]></category>
		<category><![CDATA[미국 축산육우협회]]></category>
		<category><![CDATA[미국산 쇠고기 수입]]></category>
		<category><![CDATA[일본 수입조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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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타이슨 푸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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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번 주 화요일과 수요일에 개최될 미일 농림부장관 및 후생노동성(보건복지부) 장관 회담을 앞두고&#8230; 山田正彦(Masahiko Yamada) 일본 농림수산상 등 일본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엄격한 수입제한 조건을 계속 유지할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이번 주 화요일과 수요일에 개최될 미일 농림부장관 및 후생노동성(보건복지부) 장관 회담을 앞두고&#8230; 山田正彦(Masahiko Yamada) 일본 농림수산상 등 일본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엄격한 수입제한 조건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는 소식입니다.<BR><BR>다시 말해 일본정부는 광우병 위험을 막기위해 현행 2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를 계속 유지할 방침이라고 합니다.<BR><BR>中川健治( Kenji Nakagawa) 일본 농림수산성 대변인은 과학적 지식의 근거에 의해 일본정부가 매우 중요한 식품안전 의제로&nbsp;여기고 있는&nbsp;광우병 이슈에 대해 미국 정부와&nbsp;토론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치는 발언을 했습니다.(다시 말해 20개월 미만의 미국산 쇠고기만을 수입하는 일본 정부의 조치가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BR><BR>미국 축산육우협회(NCBA, National Cattlemen&#8217;s Beef Association)에 따르면, 2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금지 조치로 인해 타이슨 푸드사와 카길사을 비롯한 &nbsp;미국의 축산업계는 매년 1조 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다고 합니다. <BR><BR>미국의 축산업계는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지난 2007년 미국을 광우병 위험통제국 등급 판정을 내린 것과 WTO가 무역분쟁이 발생했을 때 OIE 기준에 따라 분쟁해결을 해왔다는 점을 근거로 일본의 쇠고기 시장개방 확대를 원하고 있지만,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일본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겠다는 일본정부의 강력한 의지 앞에서는 미국 축산업계의 압력이 무용지물이 되고 있습니다.<BR><BR>미일의 사례는 미국 및 캐나다 정부로부터 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압력을 받고 있는 한국 정부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BR><BR>===========================================================<BR><br />
<DIV id=date><FONT size=4>Tough stance on U.S. beef to remain<BR></FONT><BR>출처 : Japan Times Saturday, Sept. 11, 2010<BR><A href="http://search.japantimes.co.jp/rss/nb20100911n1.html">http://search.japantimes.co.jp/rss/nb20100911n1.html</A><BR></DIV><br />
<DIV id=credit>Bloomberg</DIV><br />
<DIV id=mainbody><br />
<P id=paragrah>Japan will maintain its stance on restricting some U.S. beef when officials from the two countries hold talks next week, the agriculture ministry said Friday.<BR><BR>Officials from the agriculture and health ministries will meet their U.S. counterparts Tuesday and Wednesday in San Francisco to exchange opinions on U.S. beef, the two ministries said in a joint statement. Japan doesn&#8217;t allow imports of U.S. beef from animals older than 20 months out of fear of mad cow disease.</P><br />
<P id=paragrah>&#8220;Our stance is unchanged,&#8221; agriculture minister Masahiko Yamada was cited as saying earlier Friday by ministry spokesman Kenji Nakagawa. &#8220;We would like to hold talks based on scientific knowledge as we consider food safety as a very important issue.&#8221;</P><br />
<P id=paragrah>U.S. Agriculture Secretary Tom Vilsack agreed with then farm minister Hirotaka Akamatsu to resume bilateral talks on normalizing beef trade, stalled since August 2007, when he visited Tokyo in April.</P><br />
<P id=paragrah>Companies including Tyson Foods Inc. and Cargill Inc. are losing sales of about $1 billion a year because of Japan&#8217;s refusal to allow imports of beef from older animals, according to the National Cattlemen&#8217;s Beef Association.</P><br />
<P id=paragrah>The World Organization for Animal Health, or OIE, voted in May 2007 to give the U.S. its &#8220;controlled-risk&#8221; rating for mad cow disease, indicating controls are effective and meat from U.S. cattle of any age can be safely traded. The OIE standards are used to settle trade disputes at the World Trade Organization.</P></D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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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업감시]  삼성그룹 대국민 죄악 &#8220;사카린 밀수사건&#822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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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3 Jul 2010 21:56:18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건강정책]]></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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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삼성그룹 대국민 죄악 &#8220;사카린 밀수사건&#8221; [출처] 삼성그룹 대국민 죄악 &#8220;사카린 밀수사건&#8221; &#124;작성자 ingebbanghttp://blog.naver.com/ingebbang/60009085290중앙정보부 전 감찰실장 방준모 증언 &#8221;충격 실상&#8221; 현재 삼성그룹은 한국의 최대 재벌이다. 최근 드라마 &#8220;영웅시대&#8221; (MBC)가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TABLE class=post-head cellSpacing=0 cellPadding=0><br />
<TBODY><br />
<TR><br />
<TD class=htc></TD><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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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br />
<TD class=bcl noWrap></TD><br />
<TD class=bcc><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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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ODY><br />
<TR><br />
<TD class=p12 vAlign=bottom><br />
<DIV class=htitle id=title_1><SPAN class="pcol1 itemSubjectBoldfont"><FONT face=돋움 color=#333333>삼성그룹 대국민 죄악 &#8220;사카린 밀수사건&#8221; </FONT><br />
<DIV class=autosourcing-stub><br />
<P style="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WEIGHT: normal; FONT-SIZE: 12px; PADDING-BOTTOM: 0px; MARGIN: 11px 0px 7px; PADDING-TOP: 0px; FONT-STYLE: normal; FONT-FAMILY: Dotum"><STRONG style="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출처]</STRONG> <A href="http://blog.naver.com/ingebbang/60009085290" target=_blank>삼성그룹 대국민 죄악 &#8220;사카린 밀수사건&#8221; </A><SPAN style="PADDING-RIGHT: 7px; PADDING-LEFT: 5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SPAN><STRONG style="PADDING-RIGHT: 7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작성자</STRONG> <A href="http://blog.naver.com/ingebbang" target=_blank>ingebbang</A></P></DIV></SPAN></DIV></TD></TR></TBODY></TABLE><A href="http://blog.naver.com/ingebbang/60009085290">http://blog.naver.com/ingebbang/60009085290</A><BR><BR>중앙정보부 전 감찰실장 방준모 증언 &#8221;충격 실상&#8221; <BR><BR>현재 삼성그룹은 한국의 최대 재벌이다. 최근 드라마 &#8220;영웅시대&#8221; (MBC)가 재벌들의 성장 이면사를 소재로 다루고 있는데, 인기를 얻고 있다. 삼성그룹의 성장사 가운데 가장 치욕적인 사건을 들라면 단연 사카린 밀수 사건을 들 수밖에 없다. 암 유발 가능성이 있는 사카린을 밀수, 국민에게 팔아 치부(致富)했다는 것 때문이다. <BR><BR>사카린 밀수 사건 그 자체가 삼성그룹의 어두운 보고서다. 중앙정보부 감찰실장을 역임했던 방준모씨(미국 뉴저지 거주)는 기자와 오랜 시간 인터뷰를 가졌었다. 그 가운데 사카린 사건도 자세히 증언 했다. 드라마 &#8220;영웅시대&#8221;도 사카린 사건을 다룬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삼성이 저지른 대국민 죄악(罪惡)의 하나였던 사카린 밀수 사건의 전모를 공개한다. <편집자주> <BR><BR>지금은 작고한 이병철 회장이 이끄는 삼성그룹은 한국 최대의 재벌이다. 한때 항간에서는 이병철씨를 호칭할 때 &#8216;돈병철&#8217;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50년대 이후 줄곧 그렇게 불려오기도 했지만, 그는 한국 경제를 살리는 큰 인물이었다. 삼성 재벌 이병철 회장이 민족사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는 향후 역사가들이 냉철하게 평가를 내릴 것이지만….친일 식민 자본가, 매판 자본가, 권력과 밀착된 권력시녀의 재벌로 호칭되는 부정적인 면도 있으나 민족자본을 형성한 민족기업이라는 긍정적인 점도 있다.<BR><BR>대재벌로 성장하기까지 그 내면을 추적한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한국 현대사의 상당 부분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병철씨는 1910년 2월 12일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태어났다. 부친 이찬우씨와 모친 권씨 사이에서 4남매의 막내로 탄생했다. 1년 추수가 1천 석이나 되는 부농에서 자라났다고 한다.1938년 대구의 수동에 차린 &#8216;삼성상회&#8217;란 구멍가게가 오늘의 삼성재벌의 출발이다.<BR><BR>우선 외형상으로 삼성재벌이 한국경제에서 어떤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볼 필요가 있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밝게 한 삼성그룹의 1980년대를 보자. 1982년의 삼성그룹 총매출액은 5조 3천억 원이었다. 한국의 GNP가 48조 3천억이었으므로 총GNP의 5.3%를 삼성이 차지했던 셈이다. 엄청난 자본집중 현상을 한눈에 보게 한다.<BR><BR>돈 버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손대<BR><BR>일본 동경공대의 이론경제학자인 야지마 긴자 교수가 1980년대 초에 분석한 삼성그룹의 현황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룹 스스로도 발전하기 위한 노력을 했겠지만 권력과의 밀착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그렇게 많은 부를 축적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BR><BR>≪&#8221;섬유, 식품, 전자, 제지, 석유화학, 조선, 조립기계, 무역을 주로 한 종합상사(1호)활동, 백화점, 체인 스토어의 유통업, 건설, 부동산, 관광, 레저산업, 매스컴에서 의료, 농축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를 커버한 기업그룹이다. 더구나 모든 기업들이 한국의 대표적 기업이다.제품의 마켓셰어를 보자. 설탕 53.7%, 조미료 34%, 모직복지 44.1%, 합섬복지 53%(학생용), 기성복 33.2%(신사복), 텔레비전 33.0%, 신문용지 39.1%, 생명보험 31.6%, 화재보험 34.8%(단체) 등이다.<BR><BR>말하자면 설탕정제의 제일제당은 제당업계의 톱기업이라는 점, 제일제당은 설탕 외에 조미료, 배합사료, 밀가루, 엿, 유가공 등도 손을 대고 있다. 브랜드는 백설표. 제일모직은 골덴텍스란 브랜드로 한국산 복지를 국제 수준에 올려 놓았다. 수출액 4백 19억원(1982년)이 그것을 증명한다.<BR><BR>제일합섬은 국내 수요의 50% 이상을 공급하고 수출만 5백 81억원(1982년)이 된다.텔레비전을 생산하고 있는 메이커는 삼성전자와 삼성전기. 삼성전기는 삼양전기를 병합해서 설립한 전기회사로, 한국 유일의 양산체제를 갖추고 있다. 텔레비전 외에 VTR, 테이프 레코더 등도 수출하고 있다. <BR><BR>수출시장은 아메리카, 캐나다, 유럽, 중동, 동남아시아, 일본, 오스트리아 등지(삼성전기는 1977년초 삼성전자와 합병).삼성전자는 삼성그룹의 일렉트로닉스 사업의 모체로 텔레비젼, 냉장고, 음향기기, 컴퓨터, 전자시계 등을 생산 수출은 2천 1백억 원(1982년). <BR><BR>그밖의 관련제품 메이커로 삼성전관(현재의 삼성SDI), 미국의 코닝과 합자 설립한 삼성코닝, 삼성전자부품 등이 국내수요를 충조시키고 해외에도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전주제지(한솔그룹의 전신)는 신문용지 생산메이커, 연생산 13만톤. 동방생명(현재의 삼성생명)은 생명보험을 취급, 1982년 말 현재 보험사상 최초로 1조원의 자산을 돌파, 신기원을 이룩했다. 물론 한국 최대의 생명보험 회사이다. <BR><BR>손해보험은 안국화재(현재의 삼성화재)가 단연 톱이다.그밖에 서울 중심가에 있는 신세계 백화점 역시 한국 최대의 백화점이다.그리고 제쳐놓을 수 없는 삼성물산은 종합상사 제1호. 수출액은 1975년 2억2천만 달러, 1976년엔 3억 8천만 달러, 1977년엔 5억 6백만 달러를 달성, 정부로부터 영예의 5억 달러 탑을 받은, 수출 실적에서도 단연 제1위이다.그야말로 경이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한국의 전 산업의 성장률도 물론 놀라울 정도다. <BR><BR>1972년엔 불과 16억 6천 달러였던 것이 해마다 96.8%(1973년), 40.6%(1974년), 18%(1975년), 43.7%(1976년)로 늘어나 1977년엔 마침내 1백 4억 달러를 돌파했다. 5년 동안 거의 7배에 가까운 성장률을 보였다.이에 비해 삼성그룹은 1972년엔 3천 5백만 달러, 전 산업수출에서 2.1%의 비율을 차지했었다. 그것이 다음 해엔 1백 40.9%로 크게 뛰어 8천 3백만 달러, 다음해엔 28.9%, 다음 1975년엔 2백 23.4%로 경이적인 성장을 보여 일거에 3.2%에서 6.4%로 비율을 확대했다.<BR><BR>1976년에도 전 산업의 수출 81억 달러에 대해 삼성그룹은 4억 1천만 달러를 수출, 전 산업대비 5%를 차지했으며, 1977년엔 전 산업 1백 4억 달러 대비 5억 6백만 달러를 달성, 6%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982년의 수출고는 34억 달러.가히 &#8216;한국의 기적&#8217;의 원천을 여기서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다.<BR><BR>더욱 놀라운 것은 삼성그룹의 매상이 한국 GNP의 8%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1976년 GNP가 12조 1천억 원인데 삼성의 매상은 4천 4백억으로 3.6%를 차지했다. 1977년엔 GNP 15조 4백 10억 원에 삼성그룹은 6천 3백억 원으로 4.2%를 점하고 있다. 1982년의 GNP는 48조 3천억 원인데, 삼성의 총 매출액은 5조 3천억 원, 무려 5.3%를 차지하고 있다.또한 삼성그룹의 납세액이 국가세입 예산 중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당연하다. 정부의 조세수입의 5.1%를 삼성그룹이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8221;≫<BR><BR>한국의 별(장성)들은 정변이 일어날 때마다 우수수 떨어지곤 했다. 삼성(三星) 역시 이름 그대로 세 개의 별이다. 과연 삼성의 생명은 영원할 것인지…. 삼성그룹은 한국에서 &#8216;공룡&#8217;으로 통한다. 공룡은 적자생존의 원칙에 의해 이 땅에서 멸종된 동물이다. 이런 동물을 삼성에 비유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정보부가 이러한 삼성그룹과 어떻게 밀착되었으며, 어떤 공작으로 견제했는가를 돌이켜본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BR><BR>삼성의 연대별 설립회사는 다음과 같다.<BR><BR>삼성상회(1938년 창설), 삼성물산(1952년 설립), 제일제당공업(1953년 설립), 제일모직공업(1954년 설립), 안국화재해상보험(1958년 인수), 동방생명보험(1963년 인수), 신세계백화점(1963년 인수), 중앙개발(1963년 설립), 전주제지(1965년 설립), 중앙일보사(1965년 설립), 삼성미술문화재단(1965년 설립), 고려병원(1966년 설립), 삼성전자공업(1969년 설립), 삼성전기(1969년 설립), 삼성전관(1970년 설립), 삼성공제회(1971년 설립), 제일합섬(1972년 설립), 호텔신라(1973년 설립), 삼성전자부품(1973년 설립), 삼성코닝(1973년 설립), 삼성석유화학(1974년 설립), 삼성중공업(1974년 설립), 삼성반도체(1974년 설립), 용인자연농원(1976년 개장), 삼성종합건술(1977년 설립), 삼성조선(1977년 설립), 그리고 한국중장비공장(창원), 삼성전자 포르투갈공장, 삼성시계, 조선호텔, 한·알라스카 등.<BR><BR>공룡처럼 거대해진 삼성이 어떻게 성장을 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이병철씨의 성장 배경부터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BR><BR>이병철씨는 경제적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거기에다가 사업가에게 꼭 필요한 여자와 요정을 다룰 줄 아는 소질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가 작고하기 직전에 펴낸 자서전 {호암자전}에서는 어린 나이 때부터 요정 출입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BR><BR>≪&#8221;비록 건강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학업을 중도에 방기했다는 것은 자못 좌절감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또한 단조로운 시골생활 속에서 마음붙일 만한 일도 없었다. 견디다 못해 나는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여관에 장기 투숙하기도 하고 친지 집을 하숙집 삼아 묵기도 했다.이렇게 2년 가까이나 무위의 서울생활을 하다 보니 오히려 심신이 더없이 피로해지기만 했다. 당시 유행하던 카페며 명월관 등의 술집 출입에도 지치게 되었다.&#8221;≫<BR><BR>그는 결혼은 16세에 했으며, 26세 때는 이미 4남매의 아버지가 되었다.<BR>그의 자서전을 더 인용해 본다.<BR><BR>&#8220;내가 중동학교에 들어간 16세 때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의 후손인 경북 달성군 묘동의 순천 박씨댁에 장가를 들었다.지체를 따지고 가풍을 보고 부친께서 손수 고른 혼처였다. 상례에서 처음으로 신부를 대면한 구식혼례이다.당시의 풍습으로는 조금도 조혼이 아니었지만 맏딸 인희가 태어난 것은 20세 때로 다음, 맹희, 창희, 숙희의 순으로 자식을 보고, 26세 때에는 이미 4남매의 아버지였다.&#8221; <BR><BR>젊을 때부터 수완이 뛰어난 이병철씨<BR><BR>어린 나이부터 요정 출입을 경험한 이병철씨는 20대 때부터 사업가들과 친숙해졌다. 요정 출입 실력은 해방과 해방 이후의 난세를 헤쳐나오는 생명선이 될 때가 많았다. 사업가들이 같이 요정에 들어갔다가 이병철씨에게 호감을 갖고 나오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라고 소문이 나 있다. 그는 20대에 70∼80여명의 기생들을 예약한 후 접대해서 일본인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BR><BR>≪&#8221;마산에서의 정미업의 성공으로 사업에 대한 자신을 어지간히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정미소를 더이상 확대한다 한들 투자 효과면에서 신통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동안의 이익금으로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처음부터 정미를 위한 양곡의 운송에도 화물자동차를 이용해 왔다. 그러나 마산에서는 화물량에 비해 화물자동차 수가 달리는 형편이었다. 따라서 운송수단을 직접 갖는다는 것은 정미업의 경영에도 큰 도움이 되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BR><BR>이리하여 나는 자동차 5대를 굴리던 일인경영의 마산 일출자동차회사를 매수하는 동시에 신형 트럭 5대를 새로 매입하여 운송회사를 경영하기도 했다.예상하던 바와 같이 운송업은 호조일로를 걸었다. 그러자 우리는 또다른 사업을 벌여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우리가 해서 안되는 일은 없을 것만 같았던 것이다. 한편 사업이 번창하자 근향 동년배의 돈많고 호탕한 친구들이 많이 생기고 이들과 어울려서 밤마다 호유를 일삼았다. <BR><BR>졸부로 어깨가 자못 으쓱해진 나는 젊음의 호기에 이끌리는대로 초저녁부터 요정을 전부 대절해서 노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하루는 마산에 있는 기생과 일본 예기들 70, 80명을 전부 예약해 놓았다. 공교롭게도 그날 경남의 경찰부장이라는 일인이 마산에 왔다. 마산에서는 대단한 상전이라 그를 향응하기 위해 일류 요정에 안내하기로 했던 모양이었다. 그 당시 마산에는 일본요정 망월 등 일류요정이 7, 8군데 있었다고 기억한다.그러나 어느 요정에서나 반듯한 기생은 모조리 내가 예약을 해 놓은 다음이었다.<BR><BR>그 때만 해도 남이 미리 예약해놓은 다음에는 아무리 권세가 높은 사람의 요구가 있다 해도 이기지 못하는 것이 유흥가의 불문율로 되어 있었다. 당황한 일본 관리들이 나에게 달려와서 자기네의 딱한 사정을 털어놓고는 제발 요리집 한 군데와 기생 서너 명만이라도 양보해 달라고 간청했다.&#8221;≫<BR><BR>이병철 회장의 사람 다루는 솜씨는 후일 삼성그룹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이병철씨가 성공한 요인 중 첫째의 배경은 로비 실력이 뛰어나다 는 것을 들었다. 또다른 성공 요인으로는 부동산을 통해 재산을 증식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자기 돈이 아니라 일본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산 부동산들이 돈을 벌어주었다. 당시 화폐로 집 한채의 값은 1백원 정도였다. 그런데 이병철씨는 11만원이라는 거액을 은행으로부터 빌려냈다. <BR><BR>수완가가 아니면 은행의 문턱을 밟을 수도 없는 시대에 11만원의 돈을 빌려냈다는 것은 설명할 여지가 없이 그가 수완가였음을 증명해준다. 은행 돈을 빌려 부동산을 사들이고 힘 하나 안 들이며 돈을 벌었던 그때의 경험은 후일 삼성그룹이 일어서는 기본전략이 된다. 젊었을 때의 이병철씨가 일본인들을 이용해서 돈을 번 경험은 후일 한국 경제에 끼친 긍정적 부분과 부정적 부분으로 역사 위에 선명히 나타나게 된다.<BR><BR>부동산 투자로 돈 쉽게 벌어<BR><BR>이병철씨가 자랑 처럼 말하고 있는 27세 때의 토지 매입과 일본은행에서의 대출에 얽힌 얘기는 식자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내용이다.<BR><BR>≪&#8221;세번째 사업으로 나는 토지를 사모으기 시작했다. 정미와 미곡 거래 등을 통해 지가의 동향에도 자연히 관심이 갔다. 당시의 토지 가격은 평당 25전, 한 두락은 2백평이다. 논 2백평 한 두락의 쌀 생산량은 대두로 26두인데, 소작료로 생산량의 반인 13두를 제하더라도 13두의 소득이 있었다. <BR><BR>당시 13두의 쌀값은 15원이었으므로 관리비 1원, 지세 1원, 기타 잡비 1원을 제한 실수입은 12원이 된다.지가 50원의 논 한 두락에서 연 7분 3리의 은행이자 3원 65전을 공제해도 투자액의 16%인 8원 35전의 연간 순수익을 얻은 셈이 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세계적인 공황에다 일본 제국주의의 농민수탈 정책이 극심하여 이농자가 속출했기 때문이었다. <BR><BR>땅을 사모으기 위해서 면밀한 수지계산서를 첨부하여 이미 오랫동안 거래실적을 쌓은 식산은행 마산지점에 융자신청을 했다. 히라다(平田)지점장은 토지를 담보로 감정가격의 8할까지 융자할 수 있고, 이자는 7분 3리라고 말했다.김해평야의 경작이 가능한 전답은 한 평도 남기지 않고 사들이기로 작정하고 매물로 나와 있는 물건들을 조사했다. <BR><BR>40만평의 논을 처분하려는 일본인이 있다는 말을 듣자 곧 계약을 하고 착수금으로 1만원을 지불하였다. 아마노(天野)농장이라는 큰 농장의 일부였으며, 주인은 아마노라는 사람이다.다음날 히라다 지점장을 만나 경위를 설명하였다. 열흘쯤 지나 연락을 받고 다시 만났더니 그는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BR><BR>&#8220;토지대전의 잔금 9만원은 이미 아마노씨에게 지불했고 그러고나서도 2만원이 남아 당신 구좌에 넣어두었다&#8221;는 것이다.이때 산 논은 평당 25전으로 40만평이니까 총액은 10만원, 1만원을 착수금으로 지불했으므로, 은행에서 9만원을 대부받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은행의 감정결과는 평당 38전이므로 평당 27전, 총액으로는 11만원을 융자할 수 있다는 것이다.<BR><BR>매입대금을 은행 융자로 전액 지불하고도 돈이 남는다. 이렇게 손쉬운 돈벌이는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적당한 전답을 찾아 계약하고 싶다는 의향을 은행에 통고하면 은행은 바로 감정하고 융자를 해준다. 그뿐이 아니다. 명의변경이나 담보권의 설정 등 복잡한 절차까지도 모두 은행이 대행해 주는 것이다.토지 투자사업은 순조로웠다. 식산은행의 금고가 마치 나의 금고로 착각될 정도로 되었다. 1년이 지나자 나는 연수 1만석거리, 2백만 평의 대지주가 되어 있었다. (이병철저, {호암자전}, 29∼31쪽)&#8221;≫<BR><BR>그 뒤 어려움을 겪어 토지를 매각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 부동산에 손댄 이병철씨는 서울 서소문동 주변의 땅, 용인 땅, 골프장 땅을 비롯, 전국 요소요소의 땅을 수없이 구입, 부동산을 통해 대기업으로 일어선다.<BR><BR>세인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방법이 부동산 매입에 동원된다. 이병철씨는 스스로를 &#8216;운좋은 사람&#8217;으로 자칭하고 있다. &#8220;나는 시운을 타고 났다는 의미로서 행운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 비해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내가 이 정도로 사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것은 나 같은 인물을 요구하는 시대의 환경에 태어났기 때문이다.&#8221;<BR><BR>역시 그는 &#8216;운좋은 사람&#8217;이었다.이병철씨가 성공한 또다른 요인을 꼽는다면, 먹고 입는 소비재 사업에 손을 댔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는 돈 버는 일이면 뭐든지 손을 댔다. <BR><BR>그래서 밀수사건 같은 대사건이 터진 것이다.1938년 3월 1일 대구 수동에 설립한 삼성상회는 식품·의류·농산물들을 판매했다. 상호를 삼성(三星)으로 정할 때는 큰 의미가 있었다. 삼성의 &#8216;三&#8217;은 &#8216;큰 것·많은 것·강한 것&#8217;을 뜻했으며, &#8216;星&#8217;은 &#8216;밝고·높고·영원히 깨끗이 빛나는 것&#8217;을 담고 있었다고 한다.&#8217;크고 강력하고 영원하라&#8217;는 소원을 담아 &#8216;삼성&#8217;이라고 상호를 지었다고 한다. 그렇게 이름을 붙인 그 자신도 후일 삼성이 한국을 주름잡는 거대 재벌이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삼성이 일어선 배경은 먹고 입는 소비재 산업에 손을 댄 것이었다. 이 중 양조장 경영에 대한 언급은 빼놓을 수 없다(1939년).<BR><BR>≪&#8221;삼성상회의 업적은 순조롭게 신장해갔다. 자금의 여유가 생겨 무엇인가 새로운 투자 대상이 없는가 찾던 끝에 양조업에 착수했다.대구에는 그 당시 규모가 큰 양조장이 여덟 군데 있었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경영하는 것이 각각 4개씩이었다. 청주(淸酒)의 상권은 일본인이, 막걸리나 약주의 상권은 한국인이 운영하고 있었다. 나의 목표는 청주에 있었다. 때마침 일본인이 경영하던 조선양조라는 회사가 매물로 나왔다.<BR><BR>연간 양조량 7천석으로 대구에서 첫째 둘째를 다투는 큰 규모였다. 경영자들 사이에 균열이 생겨 급히 팔려고 서두르고 있었다. 10만원을 호가하는데도 즉각 매수했다.양조는 당시 허가가 제한되어 하나의 큰 이권이기도 했으므로, 매매에는 시설평가액에 상당한 프리미엄이 붙는 것이 예사였다. 그것을 감안하면 헐값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삼성상회 개업 1년 후의 일이었다.<BR><BR>중일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전시체제는 강화되었고, 경제활동에도 갖가지 통제가 가해지면서 경제는 더욱더 침체해갔다. 그러나 유독 양조만은 봄을 구가할 수 있었다. 시장개척에 부심할 필요도 없고, 할당량의 술을 빚기만 하면 절로 팔려나갔다. 세수 확보를 위해 밀주단속이 철저해지자, 양조업자는 도리어 재고 부족에 고민하는 형편이었다.양조업에 대한 과세는 이익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BR><BR>어느덧 대구에서도 굴지의 고액 납세자가 되어 있었다.항상 친구나 양조업자들과 어울려서 요정으로 향하는 일이 잦았다. 돈과 시간을 주체 못하듯 밤마다 새벽 한시가 지나서야 귀가하고 아침에는 열시가 넘어서야 겨우 일어나는 나태한 생활이 계속되었다.그때는 하루 저녁 요리가 1인당 10원 정도였고, 기생 화대도 한 시간 1원이면 후한 편이었다. 대구의 요정이 싫증이 나면 서울이나 동래 등지로 나들이를 했으며, 그래도 마음에 차지 않으면 일본의 별부(別俯)나 경도(京都)등지로 원정까지 했다.(이병철, {호암자전}, 36∼37쪽)&#8221;≫<BR><BR>일제시대 때 양조장을 경영했다는 것은 보통 수완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병철씨는 인재 등용에 뛰어난 안목을 가진 것도 사업성공의 비결이었다. 그의 소신은 의인물용 용인물의(疑人勿用用人勿疑)였다. 의심이 가는 사람은 고용하지 않고, 일단 고용했으면 의심을 안하고 전적으로 일을 맡기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그래서 사원을 채용할 때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직접 면담하는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기업이 영원히 생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BR><BR>그는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BR><BR>&#8220;기업은 영원한가. 이에 대한 답은 물론 &#8216;노&#8217;이다. 영원은 커녕 짧으면 10년, 20년, 길어도 40년, 50년의 사이클로 소장하고 있다. 영고성쇠를 거듭하는 기업의 수명은 인간의 그것보다도 훨씬 짧고 덧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생애 중에서 기업 경영에 바칠 수 있는 경영수명도 30∼40년에 불과하다. <BR><BR>이웃나라 일본의 기업실태를 {일본경제신문}의 자매지 {일경 비즈니스}가 실시한 &#8216;일본 톱기업 1백사의 과거 1백년간의 성쇠조사(1983년 9월 19일호)&#8217;에 보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있다.이 조사는 1896년부터 1982년까지 대체로 10년 간격으로 9기간에 걸쳐 매상고 기준으로 상위 1백사의 변천을 조사하고 있다.<BR><BR>그 조사결과에 따르면, 9기간 동안 연속하여 상위 1백사 안에 드는 번영을 누린 기업은 단 2사 뿐이고, 나머지 98사는 도산·흡수·병합·변신 또는 업적부진 등의 이유 때문에 1백사 랭킹에서 탈락되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일단 1백사 안에 든 기업은 평균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랭킹에 머무를 수 있었는가, 다시 말해서 번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기간은 평균 얼마 동안이었는지 조사한 것을 봐도, 겨우 30년간에 불과했다.<BR><BR>다른 항목의 조사에서는 1896년의 제1기 1백사 랭킹에서 상위 10사에 들었던 기업 중 9사가 회사 설립 후 평균 27년 후에는 흡수·병합이나 도산으로 그 사명(社名)이 소멸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히고 있다.(이병철 {호암자전},244∼245쪽).&#8221; <BR><BR>소멸을 막기 위해,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덕망을 갖춘 인격자 ▲탁월한 지도력 구비 ▲신망받는 인물 ▲창조성이 풍부 ▲분명한 판단력 ▲추진력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그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삼성(三星)은 기업의 영속을 위해 하루에 삼성(三省)해야 할 시대에 와 있다. 삼성의 네번째 성장 이유는 빚을 잘 얻어다 쓴 것을 들 수 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일·미로부터 얻어온 차관과 은행돈이 기업성장의 주축이 되었다.해방이 된 후에 이병철씨는 해외정보를 알기 위해 일본으로 달려갔다. <BR><BR>그의 회고록을 옮긴다.≪&#8221;1950년 2월, 패전의 상처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동경을 방문했다. 전택보·설경동씨 등 일행 15명으로 구성된 일본 경제 시찰단의 일원으로서였다. GHQ(점령군 총사령부)의 초청에 의한 것인데, 한국과의 교역을 통해 경제부흥을 도모하려는 일본경제의 제안으로 시찰단 초청이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물론 해방 후 최초의 일본 시찰단이기도 했지만, 20년만의 동경 방문이었고, 한때 피지배국의 국민이던 처지에서 독립국의 국민으로 바뀐 후의 첫 방문이었다(중략).<BR><BR>하네다공항에서 우리를 출영해준 사람 가운데는, 조선 총독부의 수석 총무국장이었던 호즈미씨(*積) 조선신탁회 사장이었던 다다이씨(讚井)를 비롯하여, 마산에서 토지 매입을 확대했을 때 융자 일을 도와준 전 식산은행 마산지점장 히라다씨(平田)와 경북지사를 지낸 노다씨(野田)도 있었다. <BR><BR>그밖에도 몇몇 지면의 사람이 있었지만, 그렇게 봐서 그런지 그들에게서 옛날의 위풍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네다에서 도심에 이르는 연도에는 판자집이 즐비할 뿐, 황거 앞의 석조빌딩에 휘날리는 성조기만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시찰단은 5월까지 3개월동안 각지를 정력적으로 돌아보았다.(이병철, {호암자전}.50∼51쪽)&#8221;≫<BR><BR>이병철씨는 비료공장을 짓기 위해 차관 교섭을 시작하던 때를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BR><BR>≪&#8221;1960년의 신정을 동경 제국호텔에서 한가로이 보내고 있었다. TV들은 정초 특집을 방영하고 있었다.(중략). 그 토론에서 어느 전문가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과의 대결에서 자유진영이 승리하려면 서방측의 단결이 불가결한데, 빈곤과 정치불안에서 오는 쿠데타나 내부 분열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아 염려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유진영의 단결을 위해서는 선진국의 원조로 후진국 경제의 안정과 발전을 도모해가야 하는데, 미국 단독의 힘만으로는 벌써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고 했다.<BR><BR>이 대목은 우리나라 실정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8217;이제 미국 단독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자유 진영을 구할 수 없게 되었다. 종전 이래 미국의 원조로 전화에서 부흥한 선진제국이 각기 GNP의 1%를 원조가 차관 등의 여러가지 형태로 개발의 가능성이 있는 후진국에 제공함으로써 미국의 원조부담을 분담해야 한다.<BR><BR>미국의 발의로 그 첫 회의가 작년(1959년) 워싱턴에서 개최되어 이미 몇몇 나라가 차관을 얻어 공장을 건설했고, 금년(1960년)에는 서독에서 2차 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여기에는 미국 외에 영국·서독·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호주·포르투갈 등 10개국이 참여한다&#8217;는 대목에 나는 바짝 귀를 기울였다. 일본은 나중에 추가로 그 그룹에 가입했었다.<BR><BR>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것은 OECD산하의 DAG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DAG(개발원조 그룹)는 1961년 가을 DAC(개발원조위원회)로 개편되어 참여국가도 해마다 확대되어 갔다. 답답하던 가슴이 트이는 듯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막막하던 비료공장 계획은 물론, 한국경제에도 서광이 비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동경에서 자세히 조사해 본 결과, 정부원조가 아니고도 민간 베이스의 상업차관이 있어, 사업계획만 타당하면 장기저리의 자금대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BR><BR>귀국하자마자 이기붕 국회의장을 만나 외국차관으로 대규모 비료공장을 세울 구상을 이야기했다.&#8221;훌륭한 착상입니다. 우리나라로서는 처음이라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삼성의 수용능력이라면 가능할 것입니다. 최대한 지원하겠습니다.&#8221; 이의장은 이렇게 격려해주었다.그 다음날 경무대를 방문했다. 사업 일로 이대통령을 찾기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BR><BR>비료공장 건설에 관한 계획과 기본구상을 대통령에게 솔직히 말했다. &#8220;우리나라에서도 점차 2차 산업이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물자를 국산화하지 못하고 수입에 막대한 외화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기업가가 해야 할 일은, 수입 대체산업을 하나라도 더 진흥시켜 달러를 절약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비료공장을 세우고자 합니다. 단일 수입품목으로는 지금 가장 외화를 많이 쓰고 있는 것이 비료입니다.&#8221; <BR><BR>&#8220;장차 우리나라가 비료를 자급자족하려면 소규모 공장으로는 불가능하고, 4·5천만 달러를 투자하는 국제 수준의 현대적인 대규모 공장을 여러 개 건설할 필요가 있다&#8221;고 역설했다. &#8220;뭐, 4·5천만 달러?&#8221; 약간 놀란 듯한 대통령의 반문에 &#8216;유럽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할 계획&#8217;이라고 대답하자 훌륭한 생각이라고 하면서 매우 만족한 표정으로 꼭 성취시키라고 격려해주었다. 이 대통령은 달러를 쓰는 일이라면 극히 적은 액수더라도 직접 결재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로서는 거액인 4·5천만달러의 차관계획을 선뜻 승락해주었던 것이다.(이병철 {호암자전}, 94∼96쪽)&#8221;≫<BR><BR>외국 빚을 잘 얻어들였던 것이 삼성이 성장하는 기틀이 되었다. 물론 한국 경제의 성장이 외국에 의존한 바가 컸기 때문에 모든 재벌들의 동일현상이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삼성은 외채를 갚는데 앞장서야 할 그룹이기도 하다.한국에 있어서 권력과 재벌은 &#8216;바다와 배&#8217;의 관계처럼 밀착되어 왔다. 권력이 정치자금을 얻기 위해 파도가 되어 배를 뒤흔들기도 하고, 또 성난 파도가 되어 침몰시키기도 하며, 때로는 순항을 시키기도 해왔던 것이다.<BR><BR>대통령 박정희와 삼성그룹 이병철, 이 두 사람은 바다와 배의 관계처럼 18년 간을 밀착해왔다. 5·16혁명을 일으킨 박정희 대통령은 이병철씨를 부정축재자 1호로 몰아 1백 3억 4백만환(7개기업 전체 부정축재액의 27%)의 벌과금을 물렸다. 세인들은 그때 삼성이 멸망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병철씨는 박정희 대통령이 궁정동에서 총격 당할 때까지 삼성그룹을 한국의 상위그룹으로 지켜왔다. 권력이 재벌을 다스렸지만, 역으로 재벌도 권력을 다스린 것이다.<BR><BR>박정희와 이병철의 운명적인 만남<BR><BR>박정희와 이병철씨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이병철씨는 5·16혁명이 일어나는 날 아침 동경 제국호텔에서 골프장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본인 운전수로부터 &#8220;한국에서 군사혁명이 일어났다&#8221;는 말은 들었지만, 착잡한 심정으로 골프장으로 향했다. <BR><BR>이씨는 말한다.≪&#8221;5월 29일에는 경제인 11명이 부정축재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신문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그 중의 한 사람이 &#8216;부정 축재의 1호는 동경에 있는데, 우리들 조무라기만 체포하는 것은 불공평하다&#8217;고 옥중에서 불평했다는 말이 전해졌다. <BR><BR>6월 4일이던가, 재일 거류민단장인 권일씨가 찾아와서, 귀국을 재촉해달라는 국가재건최고회의 당국의 말을 전하면서 귀국을 권했다. 며칠 후에는 다시 혁명정부가 파견했다는 청년 2명이 호텔에 나타나더니, 즉시 귀국하는 편이 신상에 이로울 것이라는 협박이나 다름없는 말을 남겨놓고 사라졌다.열흘이 지난 6월 13일 이번에는 마루노우치서의 경부(警部) 두 사람이 찾아왔다. 신변보호 때문이라고 했다. <BR><BR>&#8220;당신들은 한국인을 나에 대한 가해자로 가상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런 일이 있을 리 없다. 또한 만일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일본경찰에 책임은 없다&#8221;고 거절하였다. 그러나 경시청의 명령이라고 하면서 형사를 배치해 놓고 떠나갔다.(중략)<BR><BR>귀국에 앞서 나의 솔직한 소신을 피력해두고자 국가재건 최고회의의 이주일 장군 앞으로 서한을 보냈다. 우선 조국의 적화를 방지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에 진력하고 혁명정부에 사의를 표하고 이어 부정축재자 처벌에 대한 의견을 대략 다음과 같이 밝혔다.<BR><BR>&#8216;부정축재자를 처벌한다는 혁명정부 방침 그 자체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백해무익한 악덕 기업인들과 변칙적이고 불합리한 세제하에서도 국가경제 재건에 기여하면서 국민에게 일자리를 주어 생활을 안정시키고 세금을 납부하여 국가 운영을 뒷받침해 온 기업인들과는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BR><BR>염려하는 바는 오늘날의 혼란의 근원은 국민의 빈곤에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하면 제거하는가 하는 의문에 대해 달리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의 안정없이 빈곤을 추방할 수는 없다. 경제인을 처벌하여 경제활동이 위축된다면 빈곤 추방이라는 소기의 목적에 오히려 역행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BR><BR>이것은 나를 비롯한 많은 기업인들의 처벌을 모면하기 위한 궤변이 결코 아니다. 나는 전 재산을 헌납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이 국민의 빈곤을 해결하는 방법이 된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바다.&#8217; <BR><BR>이 서한이 6월 11일 한국신문에 공표되자 그 진의 여부를 확인하려고 일본의 각 보도기관 기자 몇 명이 번갈아 찾아왔다. 6월 24일 오전 10시 제국호텔에서 AP, UPI 등의 기자들과 회견했다. &#8220;타의 아닌 본의에서 나온 일이다. 빈곤 재기를 위해서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할 용의가 있다. 귀국하는 대로 이에 필요한 절차를 밟고 정부의 조치를 기다리겠다&#8221;고 밝혔다.(이병철저, {호암자전}. 109∼111쪽)&#8221;≫<BR><BR>이 서한과 기자회견은 기업이 군사정권으로부터 생존권을 따내기 위한 일종의 제스처였다.<BR><BR>정보부에 끌려간 이병철<BR><BR>6월 26일. 그는 박준규씨(전 국회의장)와 함께 일본에서 귀국했다. 비행기는 밤에 도착했고, 그날은 비가 내렸다.정보부 이병희 서울분실장이 비행장에 나갔다. 그는 육사 8기생이며, 나와 동기생이었다. 나는 당시 정보부 서울분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병철씨가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자 이병희는 그를 지프차에 태웠다. 이병철씨는 불안한 듯 이병희에게 물었다.<BR><BR>&#8220;어디로 갑니까?&#8221;<BR>&#8220;나도 잘 모릅니다.&#8221;<BR><BR>이병희가 잘 모른다고 하자 더 초조한 분위기였다. 이병철 씨는 명동 메트로호텔로 안내되었다. 호텔은 헌병들이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었다. 혁명에 성공한 박정희 장군은 이병철씨를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6월 27일, 최고회의 부의장이 된 박정희 씨가 이병철 씨를 불러들였다. 박 부의장은 참의원 자리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 때까지도 헌병들의 경비는 전시체제와 같은 분위기였다. 검은 안경을 낀 박정희씨 앞에 불려온 이병철씨는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BR><BR>&#8220;언제 돌아오셨습니까?&#8221;<BR>&#8220;이제 돌아왔습니다.&#8221;<BR>&#8220;부정축재자 처벌에 대해 할 말이 있으면 해보십시오.&#8221;<BR>&#8220;부정축재자로 지정되는 기업인에게는 사실 아무 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8221;<BR><BR>그 말을 듣고 있던 박정희의 얼굴 표정은 약간 굳어졌다.박 장군은 입을 열었다. &#8220;죄가 없다니 무슨 말입니까!&#8221; 잠시 무거운 침묵이 주위를 감돌았다. &#8220;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탈세를 했다고 부정축재자로 지목했습니다. 그러나 현행 수익을 훨씬 넘는 세금을 징수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는 전시 비상사태하의 세제 그대로입니다. 이런 세법 하에서 세율 그대로 세금을 납부한 기업은 아마 도산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BR><BR>만일 도산을 모면한 기업이 있다면 그것은 기적입니다. 액수로 보아 1위에서 11위 안에 드는 사람만 부정축재자로 구속하고 있지만, 12위 이하의 기업인도 수천·수만명이 있습니다. 어떤 선을 그어서 죄의 유무를 가린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처사입니다.&#8221;<BR><BR>군인으로서의 박장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제에 문외한이었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순간은 제3공화국이 재계와 밀착되는 최초의 순간이기도 했다. 이병철씨는 그때를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BR><BR>부정축재자 처벌로 고민한 박장군<BR><BR>≪&#8221;박부의장은 그렇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8221;기업하는 사람의 본분은, 많은 사람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그 생계를 보장해주는 한편, 세금을 납부하여 그 예산으로 국토방위는 물론이고 정부운영, 국민교육, 도로 항만시설 등 국가운영을 뒷받침 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BR><BR>이른바 부정축재자를 처벌한다면 그 결과는 경제위축으로 나타날 것이며, 이렇게 되면 당장 세수(稅收)가 줄어 국가 운영이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오히려 경제인들에게 경제건설의 일익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 국가에 이익이 될 줄 압니다.&#8221;<BR><BR>박부의장은 내 말을 감동깊게 듣는 것 같았으나, 그렇게 되면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가의 대본에 필요하다면 국민을 납득시키는 것이 바로 정치가 아니겠느냐고 말하였다. 한동안 실내는 침묵에 빠져 있었다. 잠시 후 미소를 띤 박 부의장은 다시 한번 만날 기회를 줄 수 없겠느냐면서 거처를 물었다. 메트로호텔에서 연금상태에 있다고 했더니 자못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 청년(이병희 서울분실장)에게 까닭을 물었다. 이튿날 아침 그 청년이 찾아와서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했다(이병철, {호암자전}, 114∼115쪽).&#8221;<BR><BR>이병철 씨와 박정희 장군의 첫번째의 만남이 있은 얼마 후, 두 사람은 또다시 만났다. 박정희 장군이 장도영 장군을 제거한 후 국가재건 최고회의의 의장이 되어 있을 때였다. 이병철씨는 부정축재 기업들이 벌금을 낼 게 아니라 공장을 지어 주식을 정부에 납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BR><BR>&#8220;그렇게 해주시면 기업이 국가에 해를 끼쳤는지 이바지했는지를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8221;<BR>&#8220;국민들이 그것을 납득하겠습니까?&#8221;<BR><BR>박장군으로서도 고민이었다. 빈곤과 부정을 추방하기 위해 혁명을 했다고 발표했는데, 경제인 말을 들으면 부정 추방에 차질이 오고, 부정 경제인을 없애면 빈곤추방에 차질이 생길 것이고… 그래서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일이 있은 후, 박정희씨와 이병철씨는 자주 만났다. 1962년 6월 9일에는 제2차 통화개혁이 단행되었다. <BR><BR>통화개혁이 단행된 이튿날인 6월 10일 박의장은 이병철씨를 불러들였다. 박 의장이 말문을 먼저 열었다.<BR><BR>&#8220;어제 밤에 중대발표 방송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8221;<BR>&#8220;큰 혼란에 빠질 것 같습니다.&#8221;<BR>&#8220;경제건설을 위한 자금조달 때문에 취한 극비조치입니다. 최고회의 내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새 지폐는 천병규 재무장관이 영국에서 인쇄해왔지요.&#8221;<BR>&#8220;국민경제면에서 큰 낭비가 아닐까요. 세계적으로 볼 때, 화폐개혁으로 이익을 본 일이 없습니다. 은행에서 돈을 바꾸는 국민들의 원성도 대단할 것입니다.&#8221;<BR><BR>박의장은 중대한 경제문제가 있을 때마다 이병철씨 등 경제인협회 회원들과 의논키로 약속했으나 화폐개혁만은 의논하지 않았다.<BR><BR>1963년 10월에 군정을 민정으로 이양하기 위한 대통령 선거에서 박장군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민정이양 후인 1964년 초 박정희 대통령은 이병철 씨를 또다시 불러들였다. <BR><BR>&#8220;이사장! 이제부터는 일을 피하지만 말고 새 사업을 일으켜서 경제건설에 적극 참여해 주십시오. 농약공장을 건설해보시오.&#8221;<BR>&#8220;이 자리에서 답변하기는 어렵습니다.&#8221;<BR>&#8220;우리에게 협조할 생각이 없다는 말입니까?&#8221;<BR>&#8220;아닙니다. 역부족일 뿐입니다.&#8221;<BR>&#8220;정부가 적극 뒷받침해줄 테니 비료공장을 지으시오.&#8221;<BR>&#8220;행정부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8221;<BR><BR>박대통령은 즉석에서 장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불렀다.<BR><BR>&#8220;장장관! 이사장이 비료공장을 짓기로 했소. 전 책임을 지고 뒷받침하시오.&#8221;<BR>&#8220;예. 각하! 최선을 다해서 지원하겠습니다.&#8221;<BR><BR>이병철 씨는 박정희 대통령과의 밀착으로 비료공장건설의 대사업을 따냈다. 그러나 후일 이것이 화가 될 줄은 미처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삼성그룹 이병철씨는 박정희 대통령과 밀착, 정부로부터 비료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따냈다. 박대통령은 1964년 대통령 선거 직후 이병철 씨와 만난 후 장기영 경제기획원 장관을 즉석에서 불러 &#8220;삼성 이병철 회장을 도와주라&#8221;고 명령했었다.장장관은 이 명령에 따라 삼성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BR><BR>&#8220;이회장! 행정상의 문제는 모두 내가 뒷받침할 테니 비료공장 건설을 빨리 추진하시오.&#8221;<BR>&#8220;대외교섭권 등의 권한이 삼성에게 있어야 하고, 이 대외교섭권을 삼성에 일임한다는 정부의 공한(公翰)이 필요합니다.&#8221;<BR>&#8220;알았습니다. 대통령께 건의하겠습니다.&#8221;<BR><BR>며칠후, 박대통령은 이병철 씨를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박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8220;공장 건설을 빨리 진행시켜라&#8221;고 독려했다. 정부가 대외교섭권을 삼성에게 위임했다는 공한을 받은 이병철씨는 이 공한을 들고 쏜살같이 일본으로 달려갔다. <BR><BR>그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BR><BR>&#8220;정부가 삼성에 대규모 비료공장의 건설을 일임했다는 공한을 장기영 장관으로부터 받아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5천만 달러의 큰 상담인 만큼 긴장됨을 어찌할 수 없었다. 동경에서 평소 교분이 두터웠던 미즈가미 미쓰이물산 사장, 이나야마 야하다제철 사장, 소또지마 고베 제강 사장을 초청하여 공한을 보이면서 &#8220;정부로부터 비료공장 건설을 의뢰받았는데, 일본의 플랜트를 택해야 할지 미국이나 유럽의 플랜트를 택해야 할지, 이것은 오직 여러분의 협조여하에 달려 있다.&#8221; 고 말했다. 이나야마 사장은 매우 놀라면서 &#8220;우리가 최대한으로 협력할 터이니 일본에 맡겨달라&#8221;고 간청했다.이 말이 전해지자 일본의 비료업계에서는 벌집 쑤신 듯이 소동이 벌어졌다. <BR><BR>한국은 일본 비료업계의 큰 시장인데 그 시장을 잃을 뿐더러, 한국이 장차 해외시장에서 경쟁상대가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일본의 비료업계를 대표하여 쇼와 전공의 야스미시 사장이 찾아와 &#8220;공장건설을 철회하면, 앞으로 한국에는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장기적으로 공급하겠다.&#8221;고 제안했다. <BR><BR>물론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렇다면 굳이 한국을 도울 필요는 없다고 비료업계의 대표들은 차관 공여의 저지운동을 전개하였다. 비료업계와는 반대로 일본 재계는 호의적이었다. 이나야마(야하다제철) 사장은 &#8220;한국의 비료공장은 꼭 일본이 맡아야 한다. 일본의 플랜트는 구미의 그것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거리가 가까워서 애프터 서비스에도 편리하다. 이러한 실리적인 조건 외에도 일본 재계로서는 한국의 비료공장 건설에 협력해야 한다. <BR><BR>한국 농민에게 절실한 비료공장을 일본의 협력으로 건설하게 되면 한·일간의 선린우호에도 이바지할 수 있게 된다.&#8221;고 강조하는 것이었다.&#8221;삼성은 미쓰이물산과 차관협정을 맺었다. 일본정부의 차관 승인은 한일협정이 정식으로 조인되기 2주일 전인 1965년 5월에 떨어졌다.<BR><BR>삼성은 경제기획원의 승인을 얻어 1965년 9월 일본 미쓰이(三井)물산으로부터 상업차관 4천 3백 90만 달러를 얻어오게 되었다. 이 차관은 한국의 민간차관 1호였다. 이병철씨는 이 자금을 얻어오기 위해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추진하는 한일회담의 타결을 위한 일본 로비활동을 벌이기도 했다.<BR><BR>이렇게 해서 얻어온 차관으로 한국 비료공장 건설이 시작된 때는 1965년 12월 10일이었다. 한일협정이 굴욕외교였다고 심한 시위가 계속될 때 이병철씨는 일본으로부터 얻어온 차관으로 비료공장 건설작업을 시작했던 것이다.1966년초부터는 일본으로부터 공장을 지을 기계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1966년 9월경에는 공정이 80% 정도 진척되었다.<BR><BR>사카린 2천3백 부대를 밀수<BR><BR>9월 16일 삼성의 사카린 밀수사건이 시중에 터져나왔다. 일본서 도입되는 자재 속에 43kg짜리 사카린 2천 3백 부대를 밀수, 시중에 팔아 거액의 돈을 긁어모으는 사실이 신문에 폭로되기 시작했다. <BR><BR>김형욱 정보부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BR><BR>&#8220;재벌밀수라고 속칭되던 이병철 씨의 사카린 밀수는 그것이 한일회담 타결 후 비료공장 건설이란 이름으로 제1호로 들여온 민간차관 중에 &#8216;사카린&#8217; 같은 밀수 품목이 들어 있었다는 점, 그것도 천하가 아는 재벌 이병철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심지어 밀수까지도 불사한다는 점, 그리고 1964년 대통령 선거 직전 장기영의 소개로 박정희의 은덕을 입어 제일착으로 한국에 상륙한 일본 미쓰이물산이 개입되었다는 점 등으로 비상한 충격을 야기시켰다. <BR><BR>그것은 한일간 경제유착의 어두운 면을 들어내는 첫번째 사건이었다.이 사건의 발단을 이병철 씨의 한국비료가 부총리 장기영의 중재를 통해 미쓰이물산으로부터 요소 비료공장 건설을 위한 민간 상업차관 4천 3백 90만 달러를 얻게 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차관은 4년거치 연리 5.5%, 1할의 조건이었는데, 당초에 한국 국회의 승인을 얻을 때부터 시비가 있었다. <BR><BR>꼭같은 규모의 비료공장 건설이 일본 현지에서는 2천 2백만 달러면 해결됐다. 특히 일본은 같은 규모의 비료공장을 소련에 2천 8백만 달러에 판매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중 1천만 달러의 자금을 일본에 도피시켜 이 흑막에 관련된 한일 정치가들의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고 김대중이 국회 본회의에서 추궁하고 나올 정도였으니….&#8221;<BR><BR>삼성의 부정사실이 속속들이 파헤쳐지기 시작했다. 재벌(財閥)이 받아야할 당연한 재벌(災罰)이었다.이병철 씨는 사카린 밀수사건이 폭로될 때, 일본에 머물고 있었다. 일본에서 이 보고를 받았다. 이씨는 그때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BR><BR>&#8220;한국 비료공장 완공의 날이 바로 목전에 있었다. 부푼 마음으로 동경에서 기계의 선적을 독려하고 있었다.그러던 차에 느닷없이 서울에서 긴급연락이 날아왔다. 보세창고에 있던 OTSA라는 약품을 정부의 허가없이 시중에 매각하여 큰 소동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급히 귀국했다. 실은 OTSA는 이탈리아 몬테카티니사가 개발한 특수약품으로서 요소비료 제조공정의 하나인 탄산가스의 흡수제조 과정에 쓰이는 것이므로 한비의 설계회사인 동양 엔지니어링을 통해 그 특허를 몬테카티니사로부터 산 것이다. <BR><BR>그것이 협소한 보세창고 내에 수많은 자재들과 함께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는데, 어떤 현장 담당사원의 부주의로 당국의 허가없이 6톤(당시 5만 달러 상당)을 처분했다. 이 과오로 지난 봄(1965년)에 벌금을 물어 일단 해결된 사건이었는데, 몇몇 정치가의 의도적인 방해공작으로 말미암아 또다시 재연되었던 것이다.<BR><BR>사태는 심각했다. 한국 제일의 재벌이 밀수를 했다고 신문들은 연일 대서특필했다. 국회에서도 연일 이 문제가 거론되었다. 어느 신문은 반년 동안에 걸쳐 사설이나 기사를 통해 계속 삼성을 비난하였다. 이러한 이론에 눌렸음인지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위배하면서까지 강제수사에 나서 차남 창희를 비롯한 몇 사람의 삼성 사원을 구속하기에 이르렀다.<BR><BR>이 사건이 정치 문제화되고, 일부 매스컴이 이에 가담하여 끈질긴 삼성공격을 되풀이했던 이면에는 당시의 복잡한 정계 사정이 얽혀 있었다. 그뿐이었다. 당시 권력구조의 중추에 있던 인물이 OTSA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한국비료주식의 30% 증여를 요구해왔었던 사실도 있었다. 아무튼 삼성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장되어 마치 국가적 범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몰아붙이는 것은 정도를 넘는 일이었다. 입을 열면 모두 변명으로밖에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였다.&#8221;<BR><BR>사카린 사건이 확대된 것은, 김두한 의원이 국회 국무위원석에 똥물을 퍼부으면서부터였다. 1966년 2월 2일 야당의원 김대중·김두한씨 등이 국회 발언을 통해 삼성의 사카린 밀수사건을 집요하게 추궁했었다. 김대중 의원은 1966년 9월 22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이 문제를 또다시 거론했다. 달변가이며 사리판단이 분명한 김의원의 발언은 회의장에 있는 사람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정의감과 애국의식을 갖고 외치는 소리는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었다.<BR><BR>김대중 의원의 연설이 끝난 후, 장내는 죽은 듯이 조용했다. 이때였다. 김두한 의원이 등단하였다. 그는 전날 밤 파고다공원에서 몰래 퍼온 20리터 가량의 똥물통을 들고 당당히 국무위원석으로 걸어갔다.<BR><BR>&#8220;장관들은 이 똥물이나 드시오. 이것은 국민들이 보내는 사카린이오! 자 맛 좀 보시오.&#8221;<BR><BR>이렇게 외친 김두한 의원은 삼성 사카린 밀수사건의 주무 부처 장관인 재무장관 김정렴을 비롯, 총리 정일권, 경제기획원 장관 장기영, 법무부 장관 민복기, 상공부 장관 박충훈씨 등의 온몸에 똥물을 뿌렸다. 공중변소의 똥물은 가장 악취가 심한 인분이다.이 지독한 냄새가 나는 똥물을 뒤집어 쓴 장관들은 혼비백산이 되어 밖으로 뛰어나갔다.장관들에게 똥물을 뿌린 김두한은 똥물 투척사건 후에 의원직을 헌신짝 버리듯 버렸다.<BR><BR>곤혹스러워진 삼성재벌<BR><BR>김형욱 정보부장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긴급히 호출되어 불려갔다. 김부장은 미국에 망명할 당시 이 사건의 내막을 밝혔다.<BR><BR>≪내각이 총사퇴하는 판에 나는 박정희로부터 긴급호출을 받았다. &#8220;김부장, 울산 가보았소?&#8221; &#8220;아직 못 가보았습니다.&#8221; &#8220;비료공장이 약 3분의 2가 완성됐다고 하는데, 이런 말썽이 일어났으니 자칫하면 자유당 시절 비슷한 말썽 때문에 완성이 못된 독립산업 격으로 중단되고 말겠으니 부장이 개입하여 적절히 조치를 취하시오. 어떻게 하더라도 공장은 완공시켜야 할 것 아니오.&#8221;<BR><BR>나는 특별비행기를 주선하여 당일로 울산으로 내려갔다. 현지답사를 하고 와서 박정희의 허락을 받아 중앙정보부 차장이던 이병두를 비료공장건설 책임자로 임명하여 완공을 서둘렀다. 공사현장에 중앙정보부 대공분실까지 설치해 두었다. <BR><BR>한편 나는 일본 현지에 있던 요원들에게 지시, 미쓰이물산과 교섭하는 한편 광범한 소스로부터 정보를 수집하였다. 결과는 예상대로 이병철의 삼성 재벌이 계획적인 밀수를 한 것으로 판명되었다.<BR><BR>이병철은 관계자들에게 2백만 달러의 정식 커미션을 상납하고 국내에서 이를 보충하는 한편, 내자조달을 하려는 속셈으로 한국시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품목만을 골라 비료공장 건설 자재라고 위장하여 밀수입을 하고 있었다. <BR><BR>이 품목들이 &#8216;사카린&#8217;은 물론 표백제, 전화기 제품, 수세식 변기, 심지어 목욕하는 욕조에 이르기까지 1만여 가지에 달하고 있었다. 울산 현장에서 나의 요원들이 조사를 시작하자 이병철측은 당황하여 물건들을 모래사장에 묻기도 하고, 바닥에다 버리기도 하면서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을 나는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환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병철측은 그중 일부를 황급히 미쓰이물산측에 되돌려 보내려고까지 했는데 미쓰이측이 이를 거절하자 처분못한 물건들을 홍콩으로 다시 밀수출하려다가 우리 요원들에게 덜미를 잡히기도 하였다.&#8221;≫<BR><BR>국회에서 똥물을 뿌린 김두환 의원이 정보부로 불려왔다. 이×택 수사과장은 김의원의 배후를 조사했다.김종필씨계의 김용태·김종락씨가 그 배후에 있지 않는가를 캐내기 위해서였다.사건의 확대와 함께 검찰은 이병철씨의 둘째아들 이창희씨를 밀수혐의로 입건했다. <BR><BR>사태가 험악스러워지자 이씨는 자구책을 내놓았다. &#8220;한비 공장을 국가에 헌납하겠다&#8221;는 발표를 신문지상에 했던 것이다.정보부 이병두 차장이 공장건설 현장에 파견되어 건설을 지휘하기까지 했다. <BR><BR>공장이 완공될 무렵이었다. 이병철씨는 돌연 공장을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발표를 백지화하고, &#8220;헌납하지 못하겠다&#8221;고 발뺌을 하는 것이었다.이씨의 배짱은 알아줄 만했다. 그가 그런 배짱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박대통령과의 밀착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BR><BR>이때 김형욱 부장이 날 호출했다. &#8220;방실장! 이병철이가 주식을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알고 있소?&#8221; &#8220;예. 신문에서 읽었습니다.&#8221; &#8220;그런데 이병철이가 이제 와서 오리발을 내민단 말이오. 방실장이 이 사건을 마무리하시오.&#8221;<BR><BR>나는 당황했다. 5국 수사과에서 담당해왔던 일이 나에게 넘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세부사항을 모르고 있었다. 감찰실의 수사관을 수사과에 보내 일체의 조사결과를 가져오도록 했다.사건증거, 수사자료 등을 가지고 왔다. 밀수품을 매장했던 현장사진, 산적된 밀수품의 사진들을 쳐다보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BR><BR>국가나 민족은 어찌되었든, 이렇게 돈을 벌어야 되느냐는 부분에서는 부정적인 견해였다. 중학생 시절에 역사선생이 칠판에 &#8216;상인매국&#8217;이란 말을 썼는데, 그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삼성의 밀수사건을 소상히 재조사한 나는 이병철씨가 &#8216;한비&#8217;를 국가에 헌납하도록 하는 마지막 공작을 진행시켰다.돈과 섹스와 명예, 이것을 인간이 추구하는 3대요소라고 생각해보자. <BR><BR>그러나 재벌들의 경우는 돈에 구애를 받지 않을 것이다. 한 인간이 일생동안 10억원을 쓴다면, 그 이상의 돈은 그 일생과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그 이상의 축적된 돈은 &#8216;명예&#8217;와 연결이 되는 돈이다. <BR><BR>나는 이병철씨의 약점이 &#8216;명예&#8217;에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1차공작으로 한비와 관련이 있는 삼성의 간부들을 불러들여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조사를 하다가 내보낸 후의 반응은 다양했다. 정보부가 어떻게 조사를 하고 있는가가 한비의 성상영 사장에게 보고되기 시작했다. 성사장은 이병철씨와 사돈지간이었다. 성상영 사장을 조사하게 되었다. 최후의 조사대상은 이병철씨 가족에 두었다. 감찰실의 유능한 두 수사관을 불렀다. 삼성 밀수수사는 필동 안전가옥에서 진행시키고 있었다.<BR><BR>&#8220;당신들 두 사람은 현관에 지키고 서 있다가 한국비료 성사장이 들어오면 대기실에서 시비를 거시오. 단 폭행을 가하거나 상처는 내지 마시오. 다만 정신적으로 겁을 먹게 하시오.&#8221; &#8220;예, 알았습니다.&#8221;<BR><BR>얼마 후 성사장이 안전가옥으로 들어온다는 신호가 왔다. 성사장이 대기실에 도착하자마자 두 수사관은 그가 누구인지 모른 체 하면서 격앙된 어조로 삼성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8220;삼성 놈들은 천벌을 받아 죽을 놈들이야! 건설자재를 들여온다면서 사카린을 밀수해오고, 심지어는 똥누는 변기까지 밀수를 해오다니, 죽일 놈들이라니깐? 울산 현장에 갔다온 수사관들은 분노해서 자기 손에 걸리면 뼈다구도 안 남도록 조지겠다고 하던데….&#8221;<BR><BR>이렇게 말한 수사관은 &#8220;아이고! 내 주먹이 운다&#8221;고 소리치면서 벽을 꽝 때렸다.옆에 앉아 있었던 성사장은 새파랗게 질렸다. 이때였다. 모 수사관이 알고있으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8220;당신은 누구십니까. 누굴 기다리고 계십니까?&#8221;라고 물었다. &#8220;네. 저는 한국비료 사장입니다.&#8221; 수사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성사장한테 달려들었다. &#8220;앗, 바로 네가 밀수의 왕초구나, 여기서 만날 줄은 미처 몰랐다. 내 주먹이 울던 참인데 주먹 맛 좀 봐야겠어!&#8221; <BR><BR>그는 성사장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멱살을 잡힌 성사장은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대기실로 들어섰다. &#8220;이거 왜들이랫! 점잖은 손님이신데 잘 모셔야지. 이게 무슨 짓들이야. 다 물러가시오.&#8221;두 수사관은 민망한 표정을 지으면서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8220;성사장님.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오신 걸 빨리 알았으면 안으로 모셨을텐데,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8221;내가 부드럽게 대하자 그는 긴장을 풀었다. &#8220;괜찮습니다.&#8221;<BR><BR>&#8220;제가 말씀을 안 드려도 분위기를 간파하셨을 줄로 압니다. 국회의 여야는 물론 국민·공무원들이 삼성을 그렇게 욕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삼성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해주는 기미가 있으면 저도 아래 수사관들에게 사장님처럼 당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입니다.&#8221; 공작은 잘 진행되어갔다. 겁에 질린 성사장은 나의 말에 수긍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대기실에서 혼난 한국비료의 성사장은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했다. <BR><BR>중앙정보부 안전가옥에 불려왔다는 압박감이 그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BR>&#8216;한비 헌납&#8217; 발표를 백지화하려는 이병철씨는 중앙일보·TBC-TV 등 산하 매스컴을 동원하여 정부가 자유기업을 간섭한다는 내용의 기사와 방송으로 자신을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신상초·황성모씨 등 지식인들을 동원, 중앙 매스컴을 통해 어느 나라 재벌이든지 그런 정도의 부정은 있다는 논지의 발언을 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2백억 규모의 재벌에게 2천만원 상당의 밀수란 재벌 재산의 천분의 일에 해당되는 적은 금액으로 큰 문제가 안된다는 주장을 늘어놓기까지 했다.<BR><BR>한비 사장 사퇴 약속<BR><BR>이런 상황에서 중앙정보부가 한비주식의 환수공작을 진행시켰던 것이다. &#8220;성사장님! 삼성이 국민의 원성을 씻기 위해서라도 비료공장을 깨끗이 국가에 헌납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8221; &#8220;실장님, 알겠습니다. 알다시피 한비는 제것이 아니고 삼성 소유입니다. 그래서 제가 책임있는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저는 사장직을 사퇴하고 제 명의의 주식은 깨끗이 국가에 헌납하겠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권한 모두를 몽땅 내놓도록 주선하겠습니다. 그리 알아주십시오.&#8221;<BR><BR>&#8220;감사합니다. 곧 저희 부장님한테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성사장의 정성어린 결정에 감사를 드립니다.&#8221; &#8220;저는 이 길로 돌아가서 사장직을 사퇴하고 헌납 조치를 취하겠습니다.&#8221;<BR><BR>성사장은 이렇게 해서 설득되었다. 성사장 이외에도 관련이 있는 인물을 차례로 불러들여 조사를 진행했다. 그 다음은 이병철씨의 큰아들 이맹희씨를 불러들였다. 당시 이맹희씨는 동생인 창희보다 경영술이 없었던지 요직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차남 창희는 밀수사건의 책임을 지고 형무소에 수감 중이었다. <BR><BR>그를 불러들인 것은 이병철씨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작전이었다. 사실 이 맹희씨는 한비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그런데도 구실을 만들어 불러들인 것은 이병철씨에게 심리적인 압력을 넣기 위한 공작의 일환이었다. 큰아들, 작은아들이 한비 문제로 곤욕을 치른다고 생각하면 비료공장의 국가헌납을 빨리 결정할 것 같아서였다.죄없는 사람을 괴롭힌다는 죄의식이 나의 가슴에 가득 들어찼다. <BR><BR>지금와서 생각하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고, 후회스런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양심의 가책 속에서도 맹희씨를 불러들인 것은 국가임무를 수행하는 정보공작 기술자라는 것 때문이었다. 감찰실에 불려온 이맹희씨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싱글벙글 웃는 표정으로 방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BR><BR>나는 그 순간 맹희씨의 안면을 향해 일격을 가했다.&#8221;윽!&#8221;평생 매를 맞아본 일이 없는 맹희씨는 한 대의 따귀 세례를 받자 안면 근육이 굳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표정이었다. &#8220;남의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인사도 없이 웃으면서 들어오는 놈이 어딨어. 넌 누구냐!&#8221; &#8220;이맹희입니다.&#8221;<BR><BR>&#8220;재벌의 아들이면 그래도 되는 거야. 아무데서나 돈이면 통하는 줄 알아. 오늘은 돈으로 다 된다는 생각이 착오라는 것을 보여주겠다.&#8221; 미리 조사한 수사자료를 들척이면서 맹희씨는 한비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속담처럼 &#8216;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8217;이 어디에 있겠는가. 들어설 때 안면에 가한 따귀 한 대의 효력은 대단했다.<BR><BR>&#8220;시키는 대로 하겠다&#8221;는 말만을 되풀이했다. 그를 떠나 보낼 때쯤은 가까운 사이처럼 여겨지게 해 주었다. &#8220;당신에게 잘못이 없는 줄 잘 압니다. 이병철 회장의 잘못 때문에 당신을 불러온 것입니다. 당신까지 불러들여 조사를 하게 된 것은 미안하지만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8221; 이맹희씨를 데려와서 조사한 것은 조사의 파급효과를 얻기 위한 공작의 일부였다. 그가 돌아가서는 &#8220;아버지 때문에 죄없는 나까지 혼났다&#8221;고 말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병철 회장의 마음이 흔들릴 것이라는 데 초점을 두었던 것이다.<BR><BR>며칠 후였다. 이번에 호출할 사람은 이병철 회장이었다. 예비 공작이 성공을 거두었는지를 확인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이 회장을 반도호텔로 불러냈다. 거물 재계인사인 만큼 남산본부로 호출하는 것을 피했다.나는 반도호텔에 먼저 가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BR><BR>호텔 회의실 문이 열렸다.비서가 문을 열었다. 뒤이어 이회장이 들어왔다. 이회장의 인상은 특이한 상이었다. 일본의 풍신수길이 원숭이상 같은 특이한 상이었는데, 이병철 회장 역시 범인과 다른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시정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평범한 상은 아니었다. 타임머신을 과거에서 현재로 끌어오면서 현존시킨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나의 솔직한 표현이다.<BR><BR>&#8220;어서오십시오. 저는 정보부 감찰실장입니다. 오늘 이같은 자리에 모시게되어 죄송합니다.&#8221;"한비가 계속 말썽이 된 것 같은데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8220;이회장은 겸손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이회장 앞에서는 수사하는 자세나 분위기를 전혀 풍기지 않았다. 그를 부르기 이전에 여러 사람을 불러 정보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간접적으로 알렸기 때문이었다. <BR><BR>나는 이회장에게 &#8220;솔직하게 말하겠다&#8221;는 말을 서두에 꺼내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이병철 회장은 착잡한 표정으로 나의 말을 듣고 있었다. <BR><BR>&#8220;김형욱 부장의 명령으로 이회장님을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시는 것이 좋으실 것 같습니다. 국민 앞에 약속한 것을 이행하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씀을 전해 드리려고 모셨습니다.&#8221;<BR>&#8220;직원들을 통해서, 방실장의 뜻을 전해 들었습니다.&#8221;<BR>&#8220;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분위기에서 뵙기를 원하기 때문에 한비 주식의 국가헌납을 빨리 실행하시길 권합니다.&#8221;<BR>&#8220;알았습니다. 곧 결정을 짓겠습니다.&#8221;<BR><BR>상황판단에 예민한 이회장은 정보부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이미 자세히 알고 있었다. 나는 쐐기를 박기 위해서 몇 마디를 더했다.<BR><BR>&#8220;회장님께 국민의 여론이 어떤가를 말씀드리고 싶은데 들어주시겠습니까? 회장님 측근들은 좋은 말만 전해드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성의 발전을 위해 제 얘기도 들어두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8221;<BR>&#8220;말씀하십시오. 어떤 말이든지 듣겠습니다.&#8221;<BR>&#8220;저는 정보와 여론 수집차 민중 속에 뛰어드는 시간이 많습니다. 이회장님에 대한 국민의 원성이 대단합니다. 시내 아이스크림점을 도산케 하고, 골동품에 투자하며, 외국에서 소모품만 수입해서 돈을 벌어 우리나라를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매판 자본가라는 비난이 시내에 쫙 퍼져 있습니다. 다시 혁명이 일어나면 종로 네거리에 끌어내어 처단해야 한다는 말까지 떠돌고 있습니다. 이번에 한비공장을 건설함으로써 생산업에 손대셨는데, 사카린 밀수사건이 터져 삼성의 이미지가 더욱 엉망이 되었습니다. 이런 여론은 중앙매스컴을 아무리 동원해도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들입니다.&#8221;<BR><BR>이회장은 들어올 때 얼굴에 감돌았던 온화한 미소를 잠시 자취를 감추었다. 심각한 표정이었다. <BR><BR>&#8220;방실장의 충고, 정말 고맙습니다.&#8221; 이회장을 반도호텔로 호출한 나의 임무는 그렇게 끝났다. 이회장이 돌아간 뒤에도 계속해서 삼성간부를 호출했다. 이회장의 결심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BR><BR>한비헌납을 약속하다<BR><BR>며칠 후 정보부 부장실에서 이회장을 만났다. 이회장이 김형욱 부장을 만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다. 김부장은 이병철씨와 만나서 아래와 같은 얘기를 나누었다고 술회했다.<BR><BR>≪&#8221;나는 다시 공식적으로 수사를 재개하고 이를 이병철측에 알렸다. 이삼일 후 이병철로부터 면담 요청이 들어왔다. &#8220;이병철 씨, 당신 양심이 있는 거요, 없는 거요? 명색 재벌이라는 사람이 아이스케키 장수까지 서슴지 않아 중소 빙과업자들을 도산시키는 행위도 기업윤리로 보아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거늘….&#8221;<BR><BR>내 사무실에 들어와 앉자마자 나는 이병철에게 쏘아부쳤다. <BR><BR>&#8220;죄송합니다.&#8221; <BR><BR>&#8220;한번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했으면 사나이의 약속을 지켜야 할 것 아니요.&#8221; <BR><BR>&#8220;그럼 저는 무얼 먹고 삽니까?&#8221; <BR><BR>&#8220;이것 보아요. 재벌 이병철 회장이 그까짓 비료공장 하나 쯤으로 망해버릴 만큼 기반이 어수룩하단 말이오? 그러기에 정부에서는 완전헌납을 마다하고 주식의 반을 국가에 헌납하는 것으로 이를 해결하려는 아량을 보이지 않았소. 사카린 밀수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것 아니오?&#8221; <BR><BR>&#8220;저도 사실은 박대통령 각하에게 정치자금을 ×억 원이나 바쳤는데 이럴 수 있습니까? 억울합니다.&#8221; <BR><BR>&#8220;×억 원을?…… 그게 억울하면 대통령 각하에게 가서 따지시오. 나는 다만 법에 의해 수사를 재개하여, 한국비료공장 건설에 얽힌 전모를 밝힐 수밖에 없소이다.&#8221; <BR><BR>&#8220;그것만은 참아주십시오. 주식의 반을 국가에 바치겠습니다.&#8221; <BR><BR>&#8220;정말이오?&#8221; <BR><BR>&#8220;진심입니다. 결심했습니다.&#8221; <BR><BR>&#8220;그럼 좋소. 내일 곧 장기영 부총리에게 가서 절차를 밟으시오. 국가에 바치는 것은 어떤 특정개인에게 정치자금을 헌금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시오. 귀하가 밀수와 매점을 통해 국민의 호주머니로부터 긁어모은 돈을 다시 국민의 손에 돌려준다고 생각하시오.&#8221; <BR><BR>&#8220;네, 네. 잘 알겠습니다.&#8221; <BR><BR>&#8220;그리고 이건 개인적 부탁이오. 이사장이 버는 것을 내가 배 아파서 하는 말이 아니오. 돈을 벌더라도 정당하게 버시오. 말하자면 기업윤리를 좀 지키라는 충고요. 재벌이면 재벌답게 굵직한 기간산업을 하도록 하시오.&#8221;<BR><BR>&#8220;…….&#8221; <BR><BR>다음날 그는 한국비료공장 주식의 반을 국가에 헌납하는 절차를 밟았다. 이병철 회장으로서는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이 시비를 끝으로 장기영이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직에서 해임된 것도 우연의 일치는 아니었다. 이 시비로 엉뚱한 사람도 피해를 보았다. 서울 문리대생과 법대생이 밀수규탄 데모를 벌이다가 처벌을 받았는데, 이에 반발한 학생들이 총장 유기천의 사임을 요구하게 되어 결국 유기천은 총장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8221;≫<BR><BR>한비의 국가 헌납은 이렇게 이뤄졌다. 삼성이 정보부의 내사를 받고 있을때 그 내부에서도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회장으로서는 정보부의 내사보다 자체 내의 반란이 더 가슴아팠을 것이다.삼성의 시카린 밀수사건은 계속해서 유명한 인물을 만들어냈다. 국무위원석에 똥물을 뿌린 김두한 의원도 비록 의원직을 사임했지만, 역사 속에 남는 인물(?)이 되었다. <BR><BR>박정희씨를 끝까지 규탄한 장준하씨는 사카린 사건을 추궁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을 &#8216;밀수왕초&#8217;라고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재벌과 함께 밀수를 했다고 폭로했다. 박대통령은 밀수왕초로 규정한 장준하씨는 결국 명예훼손으로 옥살이를 해야만 했다. 나에게 따귀를 맞은 이맹희씨는 그후 나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BR><BR>그러나 한비를 빼앗긴 이병철씨는 나를 향해 일본말로 &#8220;고쓰이 오도꼬(교활한 사나이)&#8221;라고 칭할 정도였다. 세계 최대 비료공장 한비를 빼앗긴 이회장은 다음과 같이 소감과 견해를 말하고 있다.<BR><BR>≪&#8221;한비의 나의 소유주(전체의 51%)를 모두 정부에 기부하는 절차를 밟았다.소유주의 51%를 채우기 위해서, 동방생명과 마찬가지로 보험사업의 장래를 계획하여 매입하였던 동양화재보험의 내 소유주와 현재는 한진빌딩이 서 있는 서울 중심부의 일등대지 등을 방매까지 하여 소요자금을 마련했던 것이다.<BR><BR>그러나 한가지 틀림없는 보람과 기쁨이 있었다. 국가가 시급하게 필요로 하는 세계 최대의 비료공장을 내 손을 완성시켰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또한 역경 속에서도 용하게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흔들리는 마음을 가누어 시종 정심정념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에 자기위안을 했던 것이다.&#8221;≫<BR><BR>비료공장을 지어놓고 국가에 빼앗긴 이회장은 빼앗겼다는 분한 마음으로 실의에 잠기지 않고 오히려 노련한 경영인답게 공장 건축의 실적을 선전하고 활용했다. 첫번째 선전이 일본 동경의 제국호텔에서 가진 대대적인 축하 리셉션이었다.<BR><BR>≪&#8221;준공식을 마치고 동경의 제국호텔에서 성대한 축연을 열었다. 한비 건설에 협력해준 일본 재계 인사들에게 진정으로 사의를 표하기 위해서였다.한비건설에는 일본측 계약당사자인 미쓰이(三井)물산을 필두로 하여 IHI·신호제강 등 일본의 유력 기계 메이커 1백 60개사가 참여하였으며, 여기에다 하청업체까지 합치면 능히 4백개사는 넘었다.<BR><BR>이처럼 많은 기업을 동원하여 총 18만 톤이나 되는 기계·장치류를 질서정연하게 제작 조립해가는 작업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당시 일본으로서도 종전 후 처음 다루는 큰 프로젝트라고 한다.그것을 미쓰이물산과 우리가 서로 협동하여 마침내 결실을 보았다. 하물며 당초 계약공기 40개월을 18개월로 단축시켰던 것이다. <BR><BR>파티에는 일본 관동지방의 재계 정상급은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는데, 5∼6백명이나 되는 내객들은 &#8216;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참으로 놀랍다&#8217;고 한결같이 치하해주었다.이나야마, 미즈가미, 안도, 야스니시씨 등 이번 프로젝트에 지도적 역할을 해준 재계의 정상급 20명은 이튿날 따로 신바사의 신성요정에서 대접하고 사의를 표명하였다.&#8221;≫<BR><BR>한비사건은 삼성그룹에 쓰디쓴 시련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의 결론처럼 한국의 농촌발전에 꼭 필요한 커다란 비료공장 하나를 완공해 낸 업적을 남겼다.밀수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비난의 대상이 되고, 공장의 가동으로 외화를 절약하는데 기여했다는 점으로 보면 국가에 공훈을 남겼다고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BR><BR>한비사건이 한장 진행될 때 삼성 내부에서는 반란이 일어났다. 이회장은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8220;한비사건은 파란많던 나의 생애에서도 더할나위 없는 쓰디쓴 체험이 아닐 수 없었다.이러한 비탄의 와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전적으로 신임했던 한 간부사원이 이 사건 때문에 삼성이 파산하는 줄만 알았던지 나를 배반했다. 인장을 맡긴 것을 기회로 삼성 재산의 3분의 1을 횡령했던 것이다. 추궁했더니 반환했지만 어이없는 일이었다. 또 다른 한 간부사원은 삼성을 만드는데 반은 자기 노력이 있었다고 하면서 삼성 재산의 절반을 요구하는 웃지못할 일까지 있었다.&#8221;<BR><BR>삼성의 최대 강점은 인적재원 <BR><BR>삼성이 정치바람의 열풍에 시달리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생존해온 비결은 인재가 많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회장은 사람을 불러쓰는 용인술에 능란한 기업인이다. <BR><BR>&#8220;한국 내에서 삼성이 가진 인적 재원을 다른 기업이 추종할 수 없을 것이다&#8221;는 말은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제당업·반도체업·언론문화사업·전자산업·세일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업종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한국 최대의 인적 재일의 그룹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의심나면 채용을 안하고, 일단 채용하면 믿어주는 이회장의 용인술이 삼성을 지켜왔다고 분석할 수 있다.<BR><BR>이미 고인이 된 이회장은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BR><BR>≪&#8221;사업은 자금과 계획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첫째 사람이 있어야 한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나 누구든 아무일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보다는 건강하고 정직 성실한 인격의 소유자를 택했다.또 역량이 있어야 하고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갑자기 얻을 수 없는 것이며 꾸준한 인재 양성을 통해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삼성은 지금까지 인재양성에 중점을 두어 왔고, 앞으로 삼성이 존재하는 한 이 노력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8221;≫<BR><BR>모든 인간은 흘러가고 언젠가는 역사만 남는다. 내 자신이 삼성에 끼친 죄과도 많았음을 이 기회에 시인하면서, 용서를 빈다. 끝으로 한마디 더 한다면, &#8216; 그러나, 이병철 회장은 한국 현대사에 남을 거인 중의 한 사람&#8217;이라는 솔직한 고백이다. <BR><BR>* 브레이크뉴스 서울경기 <A class=con_link href="http://kiss.breaknews.com/" target=_blank _cssquery_UID="11"><U><FONT color=#0000ff>http://kiss.breaknews.com</FONT></U></A> 문일석&nbsp;<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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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업감시] 이병철 100년, 다시 돌아본 &#8216;사카린 밀수사건&#8217;</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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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3 Jul 2010 21:48:06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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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병철 100년, 다시 돌아본 &#8216;사카린 밀수사건&#8217;출처 : 민중의소리 기사입력 : 2010-02-13 16:11:27 최종업데이트 : 2010-02-13 16:19:52 http://www.vop.co.kr/A00000282441.html 조태근 기자 taegun@vop.co.kr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 장은 29살인 1938년 자본금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www.vop.co.kr/2010/02/13/A00000282441.html">이병철 100년, 다시 돌아본 &#8216;사카린 밀수사건&#8217;</A><BR><BR>출처 : 민중의소리 기사입력 : 2010-02-13 16:11:27 최종업데이트 : 2010-02-13 16:19:52 <BR><A href="http://www.vop.co.kr/A00000282441.html">http://www.vop.co.kr/A00000282441.html</A><BR><BR><br />
<DT>조태근 기자 <A href="mailto:taegun@vop.co.kr">taegun@vop.co.kr</A> <BR><BR>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 장은 29살인 1938년 자본금 3만원으로 대구 서문시장에 삼성상회를 열었다. 이후 1948년 대구를 떠나 삼성상회를 삼성물산공사(현 삼성물산)로 바꾸고 본격적인 무역업을 시작해, 불과 1년여 만에 무역업계 1위로 키웠다. 한국전쟁으로 사업기반을 잃었지만, 1951년 대구에 두고온 양조장 사업 수익을 바탕으로 부산에서 재기에 성공했다.<BR><BR>50~60년대에는 제일제당(1953년)과 제일모직(1954년)을 잇따라 설립하며 제조업에 뛰어들었고, 57~59년 사이에는 안국화재(현 삼성화재)와 한일·상업·조흥은행 등을 잇따라 인수해 금융업에 손을 댔다. <BR><BR>1961년 박정희 군사정권 출범은 이 전 회장에게 또다른 기회였다. <BR><BR>1961년 5월 16일, 당시 국내 최고 부자였던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일본 동경 제국호텔에서 한국에 쿠데타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이어 국가재건최고회의는 &#8216;부정축재자 1호&#8217;로 지목된 이 회장의 귀국을 종용했다. 국내에 들어오면 곧바로 구속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8216;부정축재자&#8217;로 지목된 다른 기업주 11명은 이미 구속돼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옥중에서 &#8216;부정축재자 1호는 동경에 있는데 우리들 조무래기만 체포하는 것은 불공평하다&#8217;고 말할 정도였다. <BR><BR>귀국한 다음날인 6월 27일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을 만난 이 회장은 &#8220;기업인들에게는 아무 죄도 없다. 정식적인 세율로 세금을 납부하면 기업들은 모두 도산하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처벌되면 어느 누구도 기업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이것은 자유경제원칙에도 위배된다&#8221;고 말했다. <BR><BR>&#8216;부정축재자 척결&#8217;을 공약으로 내걸긴 했지만 당장 경제 문제도 신경써야 했던 군부쿠데타 세력에게는 일리 있는 말로 들렸을까. 다음날 권력은 구속됐던 &#8216;부정축재&#8217; 기업주들을 모두 석방했다. 또 삼성은 &#8216;부정축재처리법&#8217;에 따라 전체 &#8216;부정축재&#8217; 기업주들에 대한 추징금 378억 8백만환 중 27%인 103억 4백만환을 내도록 돼 있었지만, 권력은 법을 고쳐 이 회장의 제안대로 공장을 지어 주식을 헌납하도록 했다. <BR><BR>&#8216;부정축재자 1호&#8217;는 감옥행을 면했고, 박정희와 이병철은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됐다. <BR><BR>그런데 이 사건은 66년 9월에 터진 삼성 소유 한국비료주식회사의 사카린 원료 밀수사건에 비하면 구멍가게 좀도둑 수준이었다. <BR><BR>이병철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정부보증 민간차관으로 비료공장 기계를 일본 미쓰이물산에서 수입하면서 리베이트로 100만 달러(당시 돈으로 2천억원)를 받았다. 이 자금으로 43kg짜리 포대 2300부대를 밀수한 삼성은 이를 국내에 팔아 정치자금과 공장건설 자금을 마련할 심산이었다. 당시 밀수는 4배가 남는 장사였다. <BR><BR>여당 국회의원의 언론제보로 삼성이 밀수품을 팔아 거액을 챙기고 있다는 게 사실이 폭로됐다. 이를 두고 &#8216;밀수 자체가 박정희 정권과 삼성의 밀약이었는데 정권이 뒤통수를 쳤다&#8217;는 주장(장남 이맹희)에서부터 &#8220;이병철의 삼성 재벌의 계획적인 밀수&#8221;(김형욱)라는 비난, &#8220;현장담당 사원의 부주의로 발생&#8221;(이병철)한 것이라는 해명까지 나왔다. <BR><BR>어쨌든 이병철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요구대로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했고, 사건은 마무리됐다. 권위주의 시대 권력과 재벌은 서로를 필요로 했기 때문일까, &#8220;파란많던 생애에서도 더할나위 없는 쓰디쓴 체험&#8221;을 했다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8216;밀수범&#8217;은 감옥에 가지 않았다. <BR><BR>이후 이 전 회장은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고 언론사 소유 지분도 내다판다고 약속했으나, 70년대 후반 경영에 복귀했고 <중앙일보>를 창간 했으며 1983년에는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BR><BR><조태근 기자 taegun@vop.co.kr><BR><BR>=============================<BR><BR><br />
<DIV class=post_title><br />
<H2 class=entry-title title=#><A title="3분 폭리사건과 밀가루 대통령의 탄생" href="http://tesada.egloos.com/2974398" name=2974398><FONT color=#000000>3분 폭리사건과 밀가루 대통령의 탄생</FONT></A> <SPAN class=post_title_category><A href="http://tesada.egloos.com/category/1960%EB%85%84%EB%8C%80%20%EC%97%AD%EC%82%AC"><FONT color=#999999 size=2>1960년대 역사</FONT></A></SPAN> </H2></DIV><br />
<UL class=post_info><br />
<LI class=post_info_author><SPAN class=by><FONT face=Verdana size=1>by</FONT></SPAN> 콜트레인<br />
<LI class=post_info_date><ABBR class=published title="2010/07/11 20:51"><FONT face=Verdana size=1>2010/07/11 20:51</ABBR> </FONT><br />
<LI class=post_info_link><A href="http://tesada.egloos.com/2974398"><FONT face=Verdana color=#0000ff size=1>tesada.egloos.com/2974398</FONT></A><FONT face=Verdana size=1> </FONT></LI><BR><BR><STRONG>3분 폭리 사건<BR><BR></STRONG>원래 특혜엔 부정부패가 들끊기 마련이다. 64년 1월 15일 야당 원내교섭단체인 삼민회(민주당, 국민의 당, 자민당 등이 어울려 구성한 국회교섭단체)소속의 국회의원 유창열이 이른바 &#8217;3분 폭리 사건&#8217;을 폭로하였다. 이는 밀가루 설탕 시멘트 등 이른바 3분 산업과 관련된 기업들이 매점매석으로 가격을 조작하고 세금 포탈을 통해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을 묵인해주는 댓가로 공화당이 거액의 정치 자금을 제공받았다는 내용이었다.&#8221;1)<BR><BR>이 사건엔 삼성그룹의 제일제당이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에 세간의 관심은 삼성에 집중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 다른 신문들이 주저하고 있을 때 >경향신문> 64년&nbsp;2웛 1일자가 특정 보도하였는데, 1면 머리기사 제목은 <폭리의혹 점차 확대/특위구성 반대 위해 일부 위원 매수설 떠돌아>였다. 이에 대해 <경향신문 50년사>는 이렇게 말한다.<BR><BR>&#8220;당시 야당 의원들의 폭로내용이 하도 어마어마해 활자화를 망설이는&nbsp;사내 간부가 있었지만, 진실을 밝히는 것이 사명이라며 데스크(정치부장)인 김경래가 단안을 내렸다. 아니나 다를까, 신문이 나가자 정가와 재계가 발칵 뒤집혔다. 한 부 5원의 신문이 불티나게 팔렸으며, 문제의 삼성재벌은 이 날자 본지를 수십만 부 사들이는 바람에 <경향신문>가판은 창간 이래 최대 부수가 팔렸다는 후문이다.&#8221;2)<BR><BR><경향신문>은 이어 <삼분 폭리 규명될 것인가/대표적인 매판성 소비품 장사 민족자본 조성에 역행/K의원 모 재벌 돈 보따리 풀어 앞잡이>라는 제목이 붙은 특집을 내보냈다. 삼성은 며칠 후 <경향신문>을 명예훼손과 신용훼손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하였다. 1주일 뒤 <경향신문>은 이병철을 포함한 삼성간부 12명을 맞고소하였다. 이 고소 사건은 70년 초에 가서야 삼성이 소를 취하하면서 마무리되었다.3)<BR><BR><STRONG>밀가루 대통령의 탄생<BR></STRONG><BR>&#8217;3분 폭리&#8217; 사건은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지만, 훗날 박정권이 이 사건의 반대급부로 3천 800만 달러를 받았다는 폭로도 나왔다.4) 그런 이유와 더불어 군사정권도 &#8216;밀가루 비리&#8217;의 주범이었기 때문에 진상을 밝히긴 어려웠을 것이다.<BR><BR>63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박정희는 장기영으로 하여금 일본 미쯔이물산을 통해 소맥 10만톤, 640만 달러 분을 연불 조건으로 극비리에 수입케 하였다. 호주산까지 합쳐 21만 5천 톤이 들어왔다. 소맥 수입으로 곡가는 안정되었지고 판매 대금은 선거 자금으로 활용되었다. 장기영이 이 교섭을 성사시킨 실력을 인정받아 나중에 경제부총리를 맡게 된다.5)(본인추가 장기영은 한국일보 사장출신이다. 그 결과 한국일보는 판매고에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정권에 협력했다는 이유였다.)<BR><BR>장기영은 1934년 선린상업학교를 나와 그해 한국은행 전신인 조선은행에 입사해 1952년 한은 부총재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청 장년의 세월을 은행가로 보낸 인물이었다. 장기영을 경제부총리로 천거한 사람은 김종필이었는데, 김종필은 장기영의 추진력과 더불어 정치자금 조성 능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BR><BR>그때 들어온 밀가루는 전량 판매된 것이 아니라 일부는 업자들에게 흘러 들어가 나중에 &#8217;3분 폭리&#8217; 중 밀가루 부문 사건을 일으키는 데에 기여하였고, 또 일부는 수재민 구호라는 이름으로 유권자에게 공짜로 제공되었다. 그래서 대선 기간 중 때 아닌 &#8216;밀가루 잔치판&#8217;이 벌어졌고, 박정희는 &#8216;밀가루 대통령&#8217;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6)<BR><BR>김일영은 63년 10/15일 대선 결과 분석에 있어서, &#8220;캐나다와 호주에서 들여온 21만 5천여 톤의 밀가루가 선거 직전 주로 태풍 &#8216;셜리&#8217;의 피해를 입은 남부지방에 집중적으로 살포되었다는 점도 이 지역 표의 동향과 관련해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사항으로 여겨진다&#8221;고 말한다.7)(본인추가 태풍 셜리는 10963년&nbsp;6월 18-22일에 있었습니다. 밀가루가 풀린 시기는 선거 직전 또는 선거 기간입니다. 63년 대선은 10월 15일에 치루어졌습니다.)<BR><BR><BR>출처<BR><BR>1)임영태 <대한민국 50년사 1:건국에서 제3공화국까지>(들녁 1998, 386쪽)<BR><BR>2)허용범 <한국언론 100대 특종>(나남 2000, 94~95쪽에서 재인용)<BR><BR>3)허용범 <한국언론 100대 특종>(나남 2000, 94~95쪽)<BR><BR>4)김일영 <1960년대의 정치지형 변화: 수출지향형 지배연합과 발전국가의 형성>&nbsp;; 한국 정신문화연구소 편 >1960년대의 정치사회변동>(백당서당 1999, 308쪽)<BR><BR>5)김일영 <1960년대의 정치지형 변화: 수출지향형 지배연합과 발전국가의 형성> ; 한국 정신문화연구소 편 >1960년대의 정치사회변동>(백당서당 1999, 309쪽) ; 김흥기 편 <영욕의 한국경제:비사와 경제기획원 33년>(매일경제신문사 1999, 127쪽) ; 김영호 <한국언론의 사회사 상>(지식산업사 2004, 384쪽)<BR><BR>6)김일영 위의 책 309쪽 ;&nbsp;김경재 <혁명과 우상:김형욱 회고록 2>(전예원 1991, 59쪽)<BR><BR>7)김일영 위의 책 312쪽<BR></UL></D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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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업감시] 사카린 밀수 사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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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3 Jul 2010 21:44:54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건강정책]]></category>
		<category><![CDATA[기업감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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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박정희]]></category>
		<category><![CDATA[사카린 밀수사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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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삼성정밀화학]]></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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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사카린 밀수 사건 위키백과http://ko.wikipedia.org/wiki/%EC%82%AC%EC%B9%B4%EB%A6%B0_%EB%B0%80%EC%88%98_%EC%82%AC%EA%B1%B4 사카린 밀수 사건은 1966년 삼성의 계열사였던 한국비료(現 삼성정밀화학)가 사카린을 밀수하려다 발각된 사건이다. 개요 [편집] 1966년 5월 24일 삼성이 경남 울산시에 공장을 짓고 있던 한국비료가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H1 class=firstHeading id=firstHeading>사카린 밀수 사건</H1><br />
<DIV id=bodyContent><br />
<H3 id=siteSub>위키백과<BR><A href="http://ko.wikipedia.org/wiki/%EC%82%AC%EC%B9%B4%EB%A6%B0_%EB%B0%80%EC%88%98_%EC%82%AC%EA%B1%B4">http://ko.wikipedia.org/wiki/%EC%82%AC%EC%B9%B4%EB%A6%B0_%EB%B0%80%EC%88%98_%EC%82%AC%EA%B1%B4</A><BR><BR><BR><br />
<P><B>사카린 밀수 사건</B>은 <A title=1966년 href="http://ko.wikipedia.org/wiki/1966%EB%85%84"><FONT color=#002bb8>1966년</FONT></A> <A class=mw-redirect title=삼성 href="http://ko.wikipedia.org/wiki/%EC%82%BC%EC%84%B1"><FONT color=#002bb8>삼성</FONT></A>의 계열사였던 <A class=new title="한국비료 (존재하지 않는 문서)" href="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le=%ED%95%9C%EA%B5%AD%EB%B9%84%EB%A3%8C&#038;action=edit&#038;redlink=1"><FONT color=#ba0000>한국비료</FONT></A>(現 <A class=new title="삼성정밀화학 (존재하지 않는 문서)" href="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82%BC%EC%84%B1%EC%A0%95%EB%B0%80%ED%99%94%ED%95%99&#038;action=edit&#038;redlink=1"><FONT color=#ba0000>삼성정밀화학</FONT></A>)가 <A title=사카린 href="http://ko.wikipedia.org/wiki/%EC%82%AC%EC%B9%B4%EB%A6%B0"><FONT color=#002bb8>사카린</FONT></A>을 밀수하려다 발각된 사건이다.</P><br />
<H2><SPAN class=mw-headline id=.EA.B0.9C.EC.9A.94>개요</SPAN> <SPAN class=editsection style="FONT-WEIGHT: normal; FONT-SIZE: small; FLOAT: none; MARGIN-LEFT: 0px; cssFloat: none">[<A title="부분 편집: 개요" href="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82%AC%EC%B9%B4%EB%A6%B0_%EB%B0%80%EC%88%98_%EC%82%AC%EA%B1%B4&#038;action=edit&#038;section=1"><FONT color=#002bb8>편집</FONT></A>]</SPAN></H2><br />
<P><A title=1966년 href="http://ko.wikipedia.org/wiki/1966%EB%85%84"><FONT color=#002bb8>1966년</FONT></A> <A title="5월 24일" href="http://ko.wikipedia.org/wiki/5%EC%9B%94_24%EC%9D%BC"><FONT color=#002bb8>5월 24일</FONT></A> 삼성이 <A title=울산광역시 href="http://ko.wikipedia.org/wiki/%EC%9A%B8%EC%82%B0%EA%B4%91%EC%97%AD%EC%8B%9C"><FONT color=#002bb8>경남 울산시</FONT></A>에 공장을 짓고 있던 한국비료가 <A title=사카린 href="http://ko.wikipedia.org/wiki/%EC%82%AC%EC%B9%B4%EB%A6%B0"><FONT color=#002bb8>사카린</FONT></A> 2259 포대(약 55t)를 건설자재로 꾸며 들여와 판매하려다 들통이 났다. 뒤늦게 이를 적발한 부산세관은 같은해 6월 1059 포대를 압수하고 벌금 2천여만 원을 부과하였다. 삼성은 한국비료 공장을 짓기 위해 일본 미쓰이 사로부터 <A title=정부 href="http://ko.wikipedia.org/wiki/%EC%A0%95%EB%B6%80"><FONT color=#002bb8>정부</FONT></A>의 지급보증 아래 <A title=차관 href="http://ko.wikipedia.org/wiki/%EC%B0%A8%EA%B4%80"><FONT color=#002bb8>상업차관</FONT></A> 4천여만달러까지 들여왔다.<BR>사카린 밀수를 현장지휘했다고 밝힌 <A class=new title="이맹희 (존재하지 않는 문서)" href="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9D%B4%EB%A7%B9%ED%9D%AC&#038;action=edit&#038;redlink=1"><FONT color=#ba0000>이맹희</FONT></A>씨가 1993년 발간한 《회상록 &#8211; 묻어둔 이야기》에서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은 <A title=박정희 href="http://ko.wikipedia.org/wiki/%EB%B0%95%EC%A0%95%ED%9D%AC"><FONT color=#002bb8>박정희</FONT></A> 대통령과 <A title=이병철 href="http://ko.wikipedia.org/wiki/%EC%9D%B4%EB%B3%91%EC%B2%A0"><FONT color=#002bb8>이병철</FONT></A> 회장의 공모 아래 정부기관들이 적극 감싸고 돈 엄청난 규모의 조직적인 밀수였다고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BR></P><br />
<TABLE style="BORDER-TOP-STYLE: none; BORDER-RIGHT-STYLE: none; BORDER-LEFT-STYLE: none; BORDER-COLLAPSE: collapse; BACKGROUND-COLOR: transparent; BORDER-BOTTOM-STYLE: none" align=center><br />
<TBODY><br />
<TR><br />
<TD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40px; COLOR: #b2b7f2; PADDING-TOP: 20px; FONT-FAMILY: serif; TEXT-ALIGN: left" vAlign=top width=20>“</TD><br />
<TD style="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vAlign=top><A title=1965년 href="http://ko.wikipedia.org/wiki/1965%EB%85%84"><FONT color=#002bb8>1965년</FONT></A> 말에 시작된 한국비료 건설과정에서 일본 미쓰이는 공장건설에 필요한 차관 4200만 달러를 기계류로 대신 공급하며 삼성에 리베이트로 100만 달러를 줬다. 아버지(<A title=이병철 href="http://ko.wikipedia.org/wiki/%EC%9D%B4%EB%B3%91%EC%B2%A0"><FONT color=#002bb8>이병철</FONT></A> 회장)는 이 사실을 박 대통령에게 알렸고 박 대통령은 “여러가지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그 돈을 쓰자”고 했다. 현찰 100만달러를 <A title=일본 href="http://ko.wikipedia.org/wiki/%EC%9D%BC%EB%B3%B8"><FONT color=#002bb8>일본</FONT></A>에서 가져오는 게 쉽지 않았다. 삼성은 공장 건설용 장비를, 청와대는 정치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돈을 부풀리기 위해 밀수를 하자는 쪽으로 합의했다. 밀수현장은 내(이맹희 씨)가 지휘했으며 박 정권은 은밀히 도와주기로 했다. 밀수를 하기로 결정하자 정부도 모르게 몇가지 욕심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이 참에 평소 들여오기 힘든 공작기계나 건설용 기계를 갖고 오자는 것이다. 당시 밀수 총액을 요즘으로 치면 2000억 원에 해당했다. 밀수한 주요 품목은 변기, <A title=냉장고 href="http://ko.wikipedia.org/wiki/%EB%83%89%EC%9E%A5%EA%B3%A0"><FONT color=#002bb8>냉장고</FONT></A>, <A title=에어컨 href="http://ko.wikipedia.org/wiki/%EC%97%90%EC%96%B4%EC%BB%A8"><FONT color=#002bb8>에어컨</FONT></A>, <A class=mw-redirect title=전화기 href="http://ko.wikipedia.org/wiki/%EC%A0%84%ED%99%94%EA%B8%B0"><FONT color=#002bb8>전화기</FONT></A>, 스테인레스 판과 사카린 원료 등이었다<SUP class=reference id=cite_ref-0><A href="http://ko.wikipedia.org/wiki/%EC%82%AC%EC%B9%B4%EB%A6%B0_%EB%B0%80%EC%88%98_%EC%82%AC%EA%B1%B4#cite_note-0"><FONT color=#5a3696>[1]</FONT></A></SUP>.</TD><br />
<TD style="FONT-WEIGHT: bold; FONT-SIZE: 40px; COLOR: #b2b7f2; PADDING-TOP: 20px; FONT-FAMILY: serif; TEXT-ALIGN: right" vAlign=bottom width=20>”</TD></TR></TBODY></TABLE><br />
<H2><SPAN class=mw-headline id=.EA.B0.99.EC.9D.B4_.EB.B3.B4.EA.B8.B0>같이 보기</SPAN> <SPAN class=editsection style="FONT-WEIGHT: normal; FONT-SIZE: small; FLOAT: none; MARGIN-LEFT: 0px; cssFloat: none">[<A title="부분 편집: 같이 보기" href="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82%AC%EC%B9%B4%EB%A6%B0_%EB%B0%80%EC%88%98_%EC%82%AC%EA%B1%B4&#038;action=edit&#038;section=2"><FONT color=#002bb8>편집</FONT></A>]</SPAN></H2><br />
<UL><br />
<LI><A class=mw-redirect title="삼성 특검" href="http://ko.wikipedia.org/wiki/%EC%82%BC%EC%84%B1_%ED%8A%B9%EA%B2%80"><FONT color=#002bb8>삼성 특검</FONT></A><br />
<LI><A title="이상호 엑스파일 사건" href="http://ko.wikipedia.org/wiki/%EC%9D%B4%EC%83%81%ED%98%B8_%EC%97%91%EC%8A%A4%ED%8C%8C%EC%9D%BC_%EC%82%AC%EA%B1%B4"><FONT color=#002bb8>이상호 엑스파일 사건</FONT></A><br />
<LI><A title="삼성 비자금 관련 폭로" href="http://ko.wikipedia.org/wiki/%EC%82%BC%EC%84%B1_%EB%B9%84%EC%9E%90%EA%B8%88_%EA%B4%80%EB%A0%A8_%ED%8F%AD%EB%A1%9C"><FONT color=#002bb8>삼성 비자금 관련 폭로</FONT></A><br />
<LI><A title="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배정 사건" href="http://ko.wikipedia.org/wiki/%EC%82%BC%EC%84%B1_%EC%97%90%EB%B2%84%EB%9E%9C%EB%93%9C_%EC%A0%84%ED%99%98%EC%82%AC%EC%B1%84_%EC%A0%80%EA%B0%80_%EB%B0%B0%EC%A0%95_%EC%82%AC%EA%B1%B4"><FONT color=#002bb8>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배정 사건</FONT></A><br />
<LI><A title="국회 오물투척사건" href="http://ko.wikipedia.org/wiki/%EA%B5%AD%ED%9A%8C_%EC%98%A4%EB%AC%BC%ED%88%AC%EC%B2%99%EC%82%AC%EA%B1%B4"><FONT color=#002bb8>국회 오물투척사건</FONT></A> </LI></UL><br />
<H2><SPAN class=mw-headline id=.EC.A3.BC.EC.84.9D>주석</SPAN> <SPAN class=editsection style="FONT-WEIGHT: normal; FONT-SIZE: small; FLOAT: none; MARGIN-LEFT: 0px; cssFloat: none">[<A title="부분 편집: 주석" href="http://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82%AC%EC%B9%B4%EB%A6%B0_%EB%B0%80%EC%88%98_%EC%82%AC%EA%B1%B4&#038;action=edit&#038;section=3"><FONT color=#002bb8>편집</FONT></A>]</SPAN></H2><br />
<OL class=references><br />
<LI id=cite_note-0><A href="http://ko.wikipedia.org/wiki/%EC%82%AC%EC%B9%B4%EB%A6%B0_%EB%B0%80%EC%88%98_%EC%82%AC%EA%B1%B4#cite_ref-0"><FONT color=#5a3696>↑</FONT></A> “<A class="external text" href="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1/005000000200104021902088.html" rel=nofollow><FONT color=#3366bb>(언론권력) 중앙일보 &#8216;삼성&#8217; 감싸기</FONT></A>.”, 《<A title=한겨레 href="http://ko.wikipedia.org/wiki/%ED%95%9C%EA%B2%A8%EB%A0%88"><FONT color=#002bb8>한겨레</FONT></A>》, 2001년 4월 2일 작성.</LI></OL></H3></D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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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업감시] Food for Peace(Public Law 480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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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3 Jul 2010 21:40:05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건강정책]]></category>
		<category><![CDATA[기업감시]]></category>
		<category><![CDATA[Food for Peace]]></category>
		<category><![CDATA[Public Law 480]]></category>
		<category><![CDATA[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category>
		<category><![CDATA[USD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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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Food for Peace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http://en.wikipedia.org/wiki/Food_for_PeacePublic Law 480 also known as Food for Peace (and commonly abbreviated PL 480) is a funding avenue by which US food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P>Food for Peace<BR><BR>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BR><A href="http://en.wikipedia.org/wiki/Food_for_Peace">http://en.wikipedia.org/wiki/Food_for_Peace<BR></A><BR>Public Law 480 also known as Food for Peace (and commonly abbreviated PL 480) is a funding avenue by which US food can be used for overseas aid.</P><br />
<P>It has four parts, titles 1, 2, 3 and 5. Title 1 is managed by the USDA (United States Department of Agriculture), while titles 2, 3 and 5 are managed by the 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P><br />
<P>The full name for Public Law 480 is the Agricultural Trade Development Assistance Act, signed into law on July 10, 1954, by President Dwight D. Eisenhower. In signing the legislation, Eisenhower stated that the legislation&#8217;s purpose was to &#8220;lay the basis for a permanent expansion of our exports of agricultural products with lasting benefits to ourselves and peoples of other lands.&#8221;[1]</P><br />
<P>In 1961, President John F. Kennedy renamed it as &#8220;Food for Peace,&#8221; stating, &#8220;Food is strength, and food is peace, and food is freedom, and food is a helping to people around the world whose good will and friendship we want.&#8221;[1]</P><br />
<P>This was reauthorised through the Federal Agriculture Improvement and Reform Act of 1996 (FAIR), commonly known as 1996 Farm Bill.</P><br />
<P>Contents<BR><BR>[hide]<BR>1 PL 480 / Food for Peace <BR>2 Title 1 <BR>3 Title 2 <BR>4 Title 3 <BR>5 Title 5 <BR>6 References <BR>7 External links <BR>&nbsp;</P><br />
<P>[edit] PL 480 / Food for Peace<BR>The purpose of PL 480 is to:</P><br />
<P>Combat world hunger and malnutrition <BR>Promote sustainable development including agriculture development <BR>Expand international trade <BR>Develop and expand export market for US agricultural commodities and products <BR>Foster private enterprise and democratic participation <BR>Profitably supply surplus US commodities to foreign countries <BR>PL 480 can be divided into 4 Titles: Each is administered by different US agencies.</P><br />
<P>Title 1, Trade and Development Assistance (Managed by USDA) <BR>Title 2, Emergency &#038; Development Assistance Program (Managed by USAID) <BR>Title 3, &#8220;Food for Development&#8221; (Managed by USAID) <BR>Title 5, &#8220;Farmer to Farmer&#8221; (Managed by USAID) <BR><BR>[edit] Title 1<BR>The main focus of title 1 is Trade and Development Assistance. It allows concessional sales of agricultural products to friendly developing nations, either by government to government (main means) or government to private entities (rare).</P><br />
<P>Surplus bulk commodities purchased from the US are monetized in the recipient&#8217;s country market. Income generated is to support stated objectives in the predetermined agreement between the US government and the recipient government.</P><br />
<P>Concessional terms are very favourable: it can be long-term credit up to thirty years, with no minimum repayment for ten years, grace period for payment of principle up to five years at low interest such as 2 &#8211; 4%.</P><br />
<P>Ths program is flexible and facilitates collaboration with international bodies such as the World Bank in support of development programs.</P><br />
<P>Priority is given to</P><br />
<P>Countries with little foreign exchange <BR>Countries with food security problems <BR>Programs concentrating on alleviating poverty <BR>Countries with agricultural development needs <BR>Recipients’ countries must also demonstrate potential to become commercial markets for US agricultural products.</P><br />
<P>[edit] Title 2<BR><BR>The main use of this program is for Emergency and Development Assistance Progams. Title 2 allows donation of US agricultural products to meet humanitarian food needs. Emergency and non emergency (development) food aid activities support broader USAID objectives and can be used for both direct feeding and monetisation programs.</P><br />
<P>Recipients can be any of the following, operating in conjunction with cooperative sponsors (CS):</P><br />
<P>PVO &#8211; Private voluntary organization <BR>NGO &#8211; Non-governmental organization <BR>IO &#8211; International organization such as WFP &#8211; World Food Programme <BR>For non-emergency aid Title 2 can be often seen to be in support of:</P><br />
<P>Development Food Aid (Non emergency) <BR>Health and Nutrition program <BR>Agriculture (Food for Work, Food for agriculture…). <BR>Educational program <BR>Humanitarian Relief &#8211; Vulnerable Population <BR>Micro-enterprise development <BR>Title 2 has a subsection that gives funding for strengthening of the management ability of the CS especially in the area of management improvement, such as administration and implementation improvement as well as monitoring and reviews.</P><br />
<P>Section 202 (e) &#8211; logistic, information system, research</P><br />
<P>International Strengthening Assist. (ISA) &#8211; Better accountability</P><br />
<P>[edit] Title 3<BR><BR>Also known as Food for Development. It is a government-to-government grant to the least developed countries, and aims at addressing food and nutrition problems, countries most in need of food to enhance long term food security. Programs with direct links to increased food production and consumption have priority.</P><br />
<P>It can be used by monetisation of donated commodities in the domestic market, but some may be kept as reserve. To support the program, the US government will pay for all charges involved. Programmes may include:</P><br />
<P>Privatisation of food market <BR>Attract poor children to school <BR>Address chronic food shortages <BR>Infrastructure development, such as roads <BR>[edit] Title 5<BR>Known as Farmer to Farmer, established in 1986, re-authorised by the 1996 Farm Bill Act. It is not a food aid programme, but a short term technical assistance by linking American volunteer farmers with farmers in developing countries, whereby the US farmer will spend time in the developing country working with the developing country farmers to improve food production, marketing and distribution.</P><br />
<P>This program was established aimed mainly at the NIS of the former Soviet Union, but also covers Asia, Africa, and Central and South America.</P><br />
<P>[edit] References<BR>^ a b The History of America&#8217;s Food Aid <BR><BR>[edit] External link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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