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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건강과 대안 &#187; 아프가니스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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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사일로 천막 날려 아프간 여성들 해방시켰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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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1 Sep 2011 10:54:07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반전운동]]></category>
		<category><![CDATA[아프가니스탄]]></category>
		<category><![CDATA[알 카에다]]></category>
		<category><![CDATA[이라크파병]]></category>
		<category><![CDATA[전쟁]]></category>
		<category><![CDATA[제국주의]]></category>
		<category><![CDATA[테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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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2001년 9월 11일 다음날 는 신문 1면에 &#8220;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다&#8221;라는 기사를 전면에 걸쳐 실었다. 미국인들에 대한 우의와 위로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9.11 당시 전세계인들의 심사는 가 표현한 것 보다는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 /></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2001년 9월 11일 다음날 <르몽드>는 신문 1면에 &#8220;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다&#8221;라는 기사를 전면에 걸쳐 실었다. 미국인들에 대한 우의와 위로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9.11 당시 전세계인들의 심사는 <르몽드>가 표현한 것 보다는 복잡했다. 물론 9.11 테러에 지지를 보낸 사람은 당연히 소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전적으로, 아무런 유보 없는 애도를 표할 수 있었던 사람들도 아마 소수였을 것이다.</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 /></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비록 중동의 어떤 축구경기장에서처럼 조의를 표하자는 방송에 관중들이 거꾸로 환호했다는 기사에서 볼 수 있는 반응은 아니었겠지만, &#8216;미국인들이 폭격을 당하기도 하네&#8217;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가지 않았을 사람들 또한 드물었을 것이다. 이미 지구상의 너무 많은 나라에 너무 많은 폭탄이 미국에 의해 떨어졌기 때문이다.</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 /></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그러나 미국 정부와 지배층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9.11을 통해 어떤 일도 허용되는 만능의 면죄부를 얻었다고 판단했고 또 미국 국민들이나 다른 나라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믿는 듯이 보였다. 그랬기에 9.11이 발생한지 한 달도 되기 전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한 국가가 테러에 관여되었다는 근거가 없고 설사 근거가 있어도 그 사실이 군사적 침공을 정당화해주지 못한다는 &#8216;상식&#8217;은 간단히 무시되었다.</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 /></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9.11 희생자를 앞세운 미국에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미국과 나토군은 &#8216;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맞서는 정의로운 전쟁&#8217;이라고 자신들의 침공을 규정했다. 그들은 &#8216;군사적 침략&#8217;을 테러에 대항하는 전쟁 즉 &#8216;대테러전쟁&#8217;이라고 불렀고 그 이름으로 국민소득이 150달러인 나라에 8만 달러짜리 토마호크 미사일을 쏟아 부었다.</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span style="LINE-HEIGHT: 20px" class="Apple-style-span"><br /></span></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9.11 이후의 전쟁에는 테러에 대항한다는 명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8216;인권과 여성 해방을 위한 전쟁&#8217;이기도 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는 &#8220;아프가니스탄에서 거둔 많은 군사적 성공 때문에 여성들은 더 이상 가정에 감금되지 않게&#8221;됐고 &#8220;음악을 듣고 자신의 딸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8221;으므로 &#8220;테러리즘에 맞선 투쟁은 여성의 권리와 존엄성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8221;고 설파했다. 미사일로 그들의 천막을 날려버림으로서 여성들을 가정의 감금에서 해방시킨다는 것은 조지 오웰도 놀랄만한 역설적 수사이지만 9.11이후 이러한 수사는 일상화되었다.</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 /></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img alt="afgan_pressian.JPG" src="files/attach/images/201/527/066/afgan_pressian.JPG" editor_component="image_link"></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 아프가니스탄의 여성과 어린이들, 전쟁의 최대 피해자들이다.</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 /></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이 &#8216;해방전쟁&#8217;은 곧바로 이라크 침공으로 이어졌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으며 사담 후세인이 9.11의 배후라는, 아무도 믿지 않는 주장이 군사적 침략의 명분이 되었다. 전세계 수천만 명의 반대시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광범위한 반전 운동에 의해 유럽이 분열했고 유엔의 전쟁 지지가 뒷받침되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의 지배층에게 9.11은 미리부터 계획된 석유와 패권을 위한 중동 전쟁의 절호의 기회였을 뿐이다.</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 /></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이라크를 아무리 뒤져도 대량살상무기가 나오지 않았다든지, 심지어 이라크 침공이 9.11 이전에 계획되었다는 객관적 증거가 나와도 문제가 되지 못했다. 그 와중에 딕 체니 당시 부통령이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핼리버튼이 이라크 &#8216;재건사업&#8217;을 통해 얼마를 벌어들였다거나 미국의 석유회사들이 이라크의 석유채굴권을 나누어가졌다거나 하는 것은 &#8216;비애국자들&#8217;의 주장으로 취급됐다.</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 /></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미국의 &#8216;애국법&#8217;에 의해 도청은 자유를 위한 것이 되었고, 물고문(워터보딩)은 인권을 지키기 위한 심문기술이 되었다. 이라크의 유아식 공장이었던 아부 그라이브는 이라크인을 발가벗기고 개를 풀어 모욕하고 성폭행을 하는 장소가 되었고 관타나모는 전세계인들 누구라도 테러용의자라는 이름으로 재판없이 가두고 물고문을 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이 와중에 부시 대통령이 매우 우연히 동생 제프 부시가 주지사로 있던 플로리다에서 흑인들을 제외하는 원천적인 부정선거를 통해서 재선에 성공했다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어떤 제국에서 황제가 선거로 뽑힌단 말인가?</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 /></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8216;제국&#8217;이 발가벗은 권력을 휘두르자 전세계에서 민족적·인종적 탄압과 전쟁이 이제는 부끄럼도 없이 정당화되었다. 러시아의 체첸 침공은 테러와의 전쟁으로 다시 명명되었다. 푸틴이 권좌에 오르기 위한 피의 발판이 되었던, 체첸인 20만 명 학살에 대한 서방의 &#8216;말로만&#8217; 비판조차도 러시아가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사라졌다. 중국은 티베트에서 &#8216;목탁&#8217;과 &#8216;돌맹이&#8217;로 무장한 &#8216;테러리스트&#8217;를 군대를 동원해 살해하고도 테러와의 전쟁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 /></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인도네시아 정부가 아체에서, 스리랑카 정부가 타밀족을 학살해도 모두 테러와의 전쟁이었을 뿐이다. 중동에서 테러와의 전쟁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터키가 쿠르드인들에게 무슨 짓을 하든 중요하지 않았다. 더욱이 중동의 가장 중요한 버팀목인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든, 또 옆 나라 레바논에서 정부가 바뀌었다고 군대가 국경을 넘는다한들 그게 무슨 중요한 일이었겠는가. &#8220;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8221;이라는 빅브라더의 구호가 실현되었다.</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 /></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8216;테러와의 전쟁&#8217; 10년은 테러를 전혀 근절시키지 못했고 세계는 평화와 거리가 더욱 멀어졌다. 세계는 과거보다 훨씬 불안정해졌고 테러는 더 빈발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히잡이 금지되고 유럽의 극우정당이 여러 나라에서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고 있다. 노르웨이에서 극우정당이 20% 가까이 득표를 했고 그 극우파에 의해 테러가 일어났다.</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 /></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한국도 이제 중동을 넘어 아프리카 해안에까지 군을 파병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 결과 한국인들조차 파병국의 일원으로 해외에서 납치를 당하고 목숨을 잃게 되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호언과는 달리 파키스탄으로 더욱 확대되고 있고 이라크의 미군은 말로만 철수했을 뿐 영구 주둔으로 귀착되고 있다.</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 /></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심지어 미 중앙정보국(CIA)도 스스로 &#8216;알카에다&#8217;라 부르는 세력이 중동을 넘어 아프리카 사하라는 물론 소말리아까지 팽창했다고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테러와의 전쟁은 실패했다. 그러나 과연 미군이 무인정찰기로 폭격을 퍼붓는 파키스탄의 북부지역이 정말 알카에다 점령지역이고, 소말리아의 이슬람법정연맹이 알카에다인가? 이들은 그 지역 민중의 지지를 받는 무슬림 정치세력들일 뿐이다. 미국이 쫓는 알카에다의 상당수는 미 랜드연구소가 이야기하듯이 &#8220;조직과 자금동원력을 가진 사회운동단계로 진화&#8221;한 세력일 뿐이며 미국 정부가 알카에다로 부르는 그 무엇은 태반이 허상일 뿐이다.</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 /></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8216;테러와의 전쟁&#8217;은 또 민중의 생명과 건강에 해악을 끼쳤다. 전쟁과 폭력은 전염병과 함께 2대 사망원인이며 &#8216;테러와의 전쟁&#8217;도 예외가 아니었다. 최근 위키리크스 폭로에 의해 밝혀진 바, 이라크 전쟁 사망자는 미군 집계로만 2010년 1월까지 10만명이 넘으며 이중 이라크 민간인 사망이 2/3인 6만6000명에 달한다.</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 /></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권위있는 보건학적 연구들에 의하면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전쟁으로 인한 위생조건 악화와 전염병, 영양부족 등으로 최소 수 십만 명이 넘는다. 미군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만 6000명이 사망했고 4만명 이상이 팔 다리를 잃는 중상을 입었다. 제대군인의 19.1%가 정신적 질환에 시달린다.</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 /></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테러와의 전쟁은 미국 사회에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매카시즘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 또 전쟁으로 인한 군비지출은 미국의 대규모 재정적자를 극히 심화시켰고 이것은 현재 미국 경제위기의 중요한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영국의 언론인 타리크 알리의 표현에 의하면 미국은 &#8216;저질&#8217;이 되었다.</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 /></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극적으로 &#8216;테러와의 전쟁&#8217;의 실패를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은 &#8216;알카에다&#8217;나 &#8216;테러&#8217;의 지속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아랍 혁명이다. 튀니지에서 시작한 중동 혁명은 이집트와 예멘을 거쳐 시리아와 리비아, 바레인, 요르단 등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중동의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는 미국의 군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랍의 민주주의는 아랍 민중 스스로가 이룩한다는 것을 아랍 혁명이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 이 혁명은 미국이 강력하게 지지하던 아랍 정부의 철옹성을 민중 자신의 힘으로 무너뜨린 것이다.</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 /></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이들은 이슬람 극단주의도 친미 정부도 선택하지 않았다. 이들은 스스로의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있다. 이 아랍 혁명에서 테러와의 전쟁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는 것이 가장 상징적일 것이다. 이집트 정부나 리비아의 카다피, 예멘의 살레가 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민중들에게 뒤집어씌웠던 것이 &#8216;알카에다의 위협&#8217;이었다.</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br /></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테러 근절과 인도주의적 개입을 내세운 대테러전쟁 10년은 인종주의와 테러의 위험과 한층 더 전쟁의 위험이 커진 세계를 남겼을 뿐이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우리가 지금 역설적으로 보고 있는 희망은 이 세계의 지배자들에 의한 전쟁이 아니라 아랍의 민주화에서 보이듯이 민중들의 혁명과 반란에 있다.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새로운 역사적 진실이다.</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 face="Gulim"><br /></font></div>
<div><span style="LINE-HEIGHT: 23px; COLOR: rgb(51,51,51)" class="Apple-style-span"><a style="PADDING-BOTTOM: 0px; MARGIN: 0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0px; COLOR: rgb(51,51,51); TEXT-DECORATION: underline; PADDING-TOP: 0px" h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10914235055&#038;section=05" target="_blank"><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 face="Gulim">* 반전평화연대 릴레이기고 <1> &#8220;미국, 지옥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8221;</font></a></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 23px; COLOR: rgb(51,51,51)" class="Apple-style-span"><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 face="Gulim"><br /></font></span></div>
<div><span style="LINE-HEIGHT: 23px; COLOR: rgb(51,51,51)" class="Apple-style-span"><font class="Apple-style-span" size="2" face="Gulim">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건강과대안 부대표)</font></span></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color="#333333" size="2" face="Gulim"><span style="LINE-HEIGHT: 23px" class="Apple-style-span"><br /></span></font></div>
<div><font class="Apple-style-span" color="#333333" size="2" face="Gulim"><span style="LINE-HEIGHT: 23px" class="Apple-style-span">(이 글은 프레시안 2011년 9월 20일 칼럼으로 실린 글입니다.)<br /></span></font><span style="LINE-HEIGHT: 23px; FONT-FAMILY: 돋움, Dotum, AppleGothic, sans-serif; COLOR: rgb(51,51,51); FONT-SIZE: 14px" class="Apple-style-span"></p>
<div style="PADDING-BOTTOM: 0px; MARGIN: 10px 0px 0px; PADDING-LEFT: 0px; PADDING-RIGHT: 0px; PADDING-TOP: 0px">
<div style="PADDING-BOTTOM: 0px; MARGIN: 0px; PADDING-LEFT: 0px; WIDTH: 120px; PADDING-RIGHT: 0px; FLOAT: left; PADDING-TOP: 0px"></div>
</div>
<p></span></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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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이들의 십자군 전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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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0 Nov 2009 16:07:21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아프가니스탄]]></category>
		<category><![CDATA[전쟁]]></category>
		<category><![CDATA[파병]]></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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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십자군 전쟁이 패배로 이어지자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는 새로운 십자군 전쟁을 호소했다. 이에 호응한 것은 기사들이 아니라 어린이들이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3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자원을 했다. 주로 가난한 농민들의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P>십자군 전쟁이 패배로 이어지자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는 새로운 십자군 전쟁을 호소했다. 이에 호응한 것은 기사들이 아니라 어린이들이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3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자원을 했다. 주로 가난한 농민들의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기는커녕 남쪽으로 가는 도중 병들어 죽고 굶어 죽었다. 겨우 살아남은 아이들이 제노바에 도착하자 그곳의 선량한 시민들이 이들을 양자로 삼거나 음식과 돈을 주어 고향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BR><BR>예루살렘으로 항해를 떠난 극소수 아이들도 절반은 익사했고 나머지는 아프리카에 도착했으나 노예로 팔려 나갔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전말이다. 당시의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는 이들이 예루살렘 재점령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감격에 떨며 “우리가 자고 있을 때 아이들은 깨어 있도다!” 하고 말했다고 전해진다.<BR><BR>이것은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이라고 불리우는 1212년의 일이다. 아이들이 주요 구성원이었다는 소년 소녀들의 십자군 이야기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성전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켜 5차 십자군 전쟁이 일어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BR><BR>그러나 1212년의 십자군만이 아이들로 구성된 군대였던가?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이라는 소설을 쓴 거트 보네거트의 말을 굳이 빌지 않더라도 현대의 전쟁이 모두 “젖비린내 나는 애들”이 병사로 나선 전쟁 아니었던가? 보네거트가 이 소설을 쓴 계기가 된 미군의 드레스덴 학살(이틀 동안의 폭격으로 최소 2만 5천 명 이상이 사망했다)이 일어났던 제2차세계대전 참전병사들의 평균 나이는 23세였다.<BR><BR>베트남전에 징집된 미군 병사들의 평균 나이는 22세였고 실제 전투에 참전한 병사들의 나이는 18세였다. 반전운동으로 징집병력이 모자라자 미국 정부는 징집자격에 미달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10만 명 프로젝트(Project 100,000)”를 운영해 30만 명을 징집했다.<BR><BR>이 중 80퍼센트가 흑인이었고 초등학교 6학년 미만의 읽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다른 군인들보다 더 많이 실전에 투입됐고 두 배 이상 사망했다. 살아 돌아온 이들에게 돌아온 혜택은 “불명예제대”였고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은 노숙자가 됐고 40퍼센트가 심각한 정신장애를 겪었다고 보고된다. 아이들의 전쟁일 뿐만 아니라 가난한 아이들의 전쟁이었던 것이다.<BR><BR>외상후스트레스장애<BR><BR>베트남전쟁으로 30만 명 이상이 다쳤고 이 중 반수 이상이 팔다리가 잘렸다. 2만 명 이상의 참전 군인들이 자살했고 참전 군인의 15퍼센트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고통받았다.<BR><BR>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한국 군인들도 다르지 않다. 대부분이 농촌 출신 어린 나이의 병사 들이었고 32만 명이 참전해 5천 명이 사망했고 1만 명이 부상했다. 이들의 고통에 대한 통계는 거의 없지만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고엽제 피해자만해도 7만 7천 명에 이른다. 참전 군인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다. 또 고엽제 피해는 2세까지 이어지므로 베트남 참전 군인 2세대의 문제는 언제 어떻게 드러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철군 이후 평균연령에 턱없이 못 미쳐 사망한 사람이 1만여 명에 이르고 참전 경험과 직간접으로 관련됐을 것이라는 점은 짐작되지만 정부의 조사는 없었다. 또 미국 수준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만 일어났다 치더라도 5만여 명 이상이 같은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 예상된다.<BR><BR>이 모든 일은 걸프전에서도 이라크에서도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반복됐다. 가난한 어린 병사들의 전쟁이자 전쟁에 나가 죽은 것은 바로 그 어린 병사들이었다. 침공국의 정부들은 세계 평화를 위한 테러와의 전쟁, 국익을 위한 희생을 말하지만 전쟁이 가져온 결과는 이것이었다. 과거 십자군을 모집하면서 교황이 내걸었던 성전이라는 허황된 주장과 지금의 이라크ㆍ아프가니스탄 침공국의 명분이 무엇이 다른가?<BR><BR>한국 정부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프가니스탄 재파병을 결정하면서 국익을 위해서는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의 젊은 병사들이 새로운 십자군이 돼 할 일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아프가니스탄의 어린이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일이다. 중세의 교황이 미국 대통령이 되고, 종교적 성전의 의무가 “인도주의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의 의무”가 됐다는 것 외에 1천년의 역사를 통해 바뀐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 더는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을 계속하지는 말자.</P><br />
<P>레프트21 11월 19일자 / 우석균(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건강과대안 부대표)</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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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반전] &#8220;한국, 올해 美의 9대 무기수출국&#822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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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07 Nov 2009 19:21:27 +0000</pubDate>
		<dc:creator>건강과대안</dc:creator>
				<category><![CDATA[반전·평화·민주주의]]></category>
		<category><![CDATA[9대 무기 수출국]]></category>
		<category><![CDATA[국방안보협력국(DSCA)]]></category>
		<category><![CDATA[미국 무기수출]]></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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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8220;한국, 올해 美의 9대 무기수출국&#8221; 출처 : 연합뉴스 2009/11/07 14:58&#160;송고(워싱턴 로이터=연합뉴스) 한국이 올해 미국의 9대 무기 수출국이었던 것으로 집계됐다.&#160;&#160; 6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DSCA)의 해외무기수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8220;한국, 올해 美의 9대 무기수출국&#8221;<美국방부><br />
<SCRIPT language=javascript>var url = document.URL;var pos = url.indexOf(&#8220;AKR&#8221;);var nid = url.substr(pos,20);var pos2 = url.indexOf(&#8220;audio=&#8221;);var nid2 = url.substr(pos2+6,1);if (nid2 == &#8216;Y&#8217;){document.write(&#8220;<a href=_javascript:audio_play('" + nid + "');>&#8220;);document.write(&#8220; <img src=http://img.yonhapnews.co.kr/basic/svc/06_images/090814_te_top_ic_05.gif border=0 alt=오디오듣기></a>&#8220;);}</SCRIPT><br />
 <BR><BR>출처 : 연합뉴스 <SPAN class=date>2009/11/07 14:58&nbsp;송고</SPAN><BR><!--// 기사내용 --><BR>(워싱턴 로이터=연합뉴스) 한국이 올해 미국의 9대 무기 수출국이었던 것으로 집계됐다.<BR><BR>&nbsp;&nbsp; 6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DSCA)의 해외무기수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2009 회계연도(2008년10월~2009년9월)에 한국에 7억1천660억달러 어치의 무기를 수출한 것으로 나타났다.<BR><BR>&nbsp;&nbsp; 이는 올해 미국의 무기 수출 금액을 국가별로 배열했을 때 9위에 해당하는 규모다.<BR><BR>아랍에미리트가 79억달러로 미국의 최대 무기 수출국이었고 아프가니스탄(54억달러), 사우디아라비아(33억달러), 대만(32억달러), 이집트(21억달러), 이라크(16억달러) 등이 뒤따랐다.<BR><BR>&nbsp;&nbsp; 한편 올해 미국의 무기 수출금액은 381억달러로 지난해의 364억달러 대비 4.7% 증가, 연간 최고치를 경신했다.<BR><BR>&nbsp;&nbsp; 이는 최저치인 1998 회계연도와 비교할 때 465% 급증한 수치다.<BR><BR>&nbsp;&nbsp; 2010년 수출금액은 약 379억달러로 올해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BR><BR>&nbsp;&nbsp; <A href="mailto:speed@yna.co.kr"><FONT face=돋움 color=#404040>speed@yna.co.kr</FONT></A><BR><BR>========================<BR><BR>국방안보협력국(DSCA) : The Defense Security Cooperation Agency<BR><A href="http://www.dsca.mil/">http://www.dsca.mil/</A><BR><BR><br />
<H2 class=date-header>Thursday, October 22, 2009</H2><br />
<DIV class="post hentry uncustomized-post-template"><A name=7412576582412188275></A><br />
<H3 class="post-title entry-title"><A href="http://dscadirectorblog.blogspot.com/2009/10/record-high-foreign-military-sales.html">Record High Foreign Military Sales</A> </H3><br />
<DIV class=post-header-line-1></DIV><br />
<DIV class="post-body entry-content">출처 : <A href="http://dscadirectorblog.blogspot.com/2009/10/record-high-foreign-military-sales.html">http://dscadirectorblog.blogspot.com/2009/10/record-high-foreign-military-sales.html</A><BR><BR>In the realm of Security Cooperation, we often struggle to capture metrics that illustrate trends and outcomes. However, one of our standard metrics has always been the level of Foreign Military Sales.<BR><BR>With Fiscal Year 2009 figures tallied, and looking back at our projected total sales of $40 billion, we can take pride in the fact we achieved a new record of $37.9 billion in sales. To put that in historical perspective, that is a 465% growth from a low point of $8.1 billion in FY 1998 and slightly over our previous record figure of $36.4 billion in FY 08.<BR><BR>These figures are indicative of the Security Cooperation community’s level of professionalism and drive to strengthen our partners by meeting their needs, which strengthens our national security.<BR><BR>While we may continue to struggle with capturing metrics, it is clear we have captured the professionalism and drive of the Security Cooperation community, leading us to project $38.4 billion in Foreign Military Sales for FY 10 and causing us to look forward to another record year together.<br />
<DIV style="CLEAR: both"></DIV></DIV><br />
<DIV class=post-footer><br />
<DIV class="post-footer-line post-footer-line-1"><SPAN class="post-author vcard">Posted by <SPAN class=fn>Director, DSCA Blog</SPAN> </SPAN><SPAN class=post-timestamp>at <A class=timestamp-link title="permanent link" href="http://dscadirectorblog.blogspot.com/2009/10/record-high-foreign-military-sales.html" rel=bookmark><ABBR class=published title=2009-10-22T16:34:00-04:00><FONT color=#336699>4:34 PM</ABBR></FONT></A> <BR><BR>=============================<BR><BR><A class="yschttl spt" href="http://www.census.gov/compendia/statab/2008/tables/08s0492.pdf" orighref="http://rds.yahoo.com/_ylt=A0oGkiPMSPVKyBoBQHpXNyoA;_ylu=X3oDMTE0dTU3OXZsBHNlYwNzcgRwb3MDMTUEY29sbwNzazEEdnRpZANINDQ4XzEwNA--/SIG=12ip7a54j/EXP=1257675340/**http%3a//www.census.gov/compendia/statab/2008/tables/08s0492.pdf"><FONT color=#551a8b size=4>Statistical Abstract of the United <WBR>States: 2008</FONT></A><BR><A href="http://www.census.gov/compendia/statab/2008/tables/08s0492.pdf">http://www.census.gov/compendia/statab/2008/tables/08s0492.pdf<BR></A><BR><A class="yschttl spt" href="http://www.census.gov/compendia/statab/tables/09s0488.pdf" orighref="http://rds.yahoo.com/_ylt=A0oGkiPMSPVKyBoBQnpXNyoA;_ylu=X3oDMTE0dG1sajJjBHNlYwNzcgRwb3MDMTYEY29sbwNzazEEdnRpZANINDQ4XzEwNA--/SIG=12dg772gi/EXP=1257675340/**http%3a//www.census.gov/compendia/statab/tables/09s0488.pdf"><FONT color=#551a8b size=4>Statistical Abstract of the United <WBR>States: 2009</FONT></A><BR><A href="http://www.census.gov/compendia/statab/tables/09s0488.pdf">http://www.census.gov/compendia/statab/tables/09s0488.pdf</A></SPAN></DIV></DIV></D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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