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19. 조지 소로스 ; 오지랖

 

19. 조지 소로스 ; 오지랖






절대권력자 ; 조지 소로스


본부 ; 뉴욕


설립 ; 1969년 퀀텀 펀드 설립




주요 수치들


* 50억 달러 ; 전 세계적으로 소로스가 “열린 사회”를 촉진하기 위해 기부한 금액.


* 50 ; 민주주의를 육성하기 위해 그가 세운 재단이 있는 국가 수.








                                      스냅샷




조지소로스는 개입하기를 좋아한다. 소로스가 개입하면 그 영향력은 엄청나다. 맨하탄에 본부를 둔 지금까지 가장 성공한 투자회사를 세운 금융수완가인 소로스는 환투기를 시작으로 전 세계 투기장마다 개입하였다. 1992년 영국 파운드화에 대한 투기는 퀀텀 펀드에 20억 달러의 차익을 남겨주었고 그에게는 “영국은행 파산자”라는 이름을 얻게 해줬다. 몇몇 사람들은 그의 타이 바트화에 대한 도박이 1997년 아시아 금융시장 위기를 몰고 왔다고 보고 있다.




 많은 분석가들은 영국 파운드와나 아시아 금융시장의 평가절하에 대해 소로스를 비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단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성공적으로 예견했고 합법적으로 도박을 했을 뿐이다.” 그들은 투기를 통해 그 지역의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더라도 그가 그에 대해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 한다. 이런 금융위기 상황에서 그가 관여하는 성취한 결과에 대해 소로스는 룰에 따라 그는 행동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자기 같은 사람들이 금융상의 취약성에 기반한 이득을 얻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좀 더 강화된 국제적 금융 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소로스는 단순한 금융계의 기회주의자 이상으로 여겨진다. 그는 국제 문제에 개입하는 백만장자 박애주의자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독재자나 선전자, 이데올로기들을 혐오하는 소로스는 공산주의자 정권을 무너트리기 위해서 1980년대 소련 반체제인사들에게 수백만 달러를 기부하였다. 또한 동구권 몰락 후 민주주의를 증진시키기 위해 교육에서부터 마을 전기공사에 이르는 각종 프로젝트 펀드에 수십억 달러를 기부했다.




“그는 그 자신의 외교정책을 갖고 활동하는 유일한 개인 시민으로 묘사되고 있다.”


                    - 스티브 인스킵, 미국공영방송의 <모닝 에디션>에서, 2005. 5. 9 -




 매년 4억5천만 달러를 지구가 좀 더 좋아지도록 추진하는데 기부하고 있는 조지 소로스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기부자 중에 한 명이다. 몇몇 사람들은 총수입에서의 비율로 본다면 그가 가장 큰 규모의 기부자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 기부자(American Benefactor)>의 편집자에 의해 앤드류 카네기나 죤 D. 록펠러와 같은 “1890년대의 위대한 박애주의자에 필적할 만한 유일한 미국인”이라고 인정받고 있는 그는 대체로 매년 포드재단보다 더 많은 돈을 기부하고 있다.






——————————————————————–


                                  배경




 1930년 부다페스트에서 유대계 헝가리인으로 태어난 조지 소로스의 원래 이름은 조지 슈와르츠였다. 에스페란토에 관심이 많던 그의 아버지가 성을 소로스로 바꿨는데 거기에는 또한 정치적 이유도 있었다. 소로스는 에스페란토어로 “치솟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치들이 헝가리로 들어왔을 때 소로스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헝가리의 인정 많은 한 집에 피신시켰다. 계속 피신을 다니면서 소로스가족은 2차대전과 호로코스트 속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이 헝가리에 들어와서 전후의 민주주의를 밀어버렸다. 영국으로 떠난 소로스는 런던경제대학에서 공부를 하였으나 그가 꿈을 펼치기 시작한 것은 미국으로 옮겨간 후이다. 퀀텀 펀드를 시작하면서 그는 외국환을 조작하여 재빨리 이득을 취하는 방법이나 헤지펀드로 외환의 등락에 따라 베팅하는 방법 등 국제 금융 공략에 능숙한 재주를 보여주었다. 동유럽에서 대서양에 걸쳐 일어나는 일들을 예의주시하면서 그는 폴란드의 연대자유노조(Solidarity)나 체코슬로바키아 바츨라프 하벨의 77헌장(Chapter 77)을 포함한 저항그룹에 재정적 뒷받침을 해왔다. 소련이 붕괴하던 1991년 당시 그는 열린사회연구소를 세워 “열린사회(자유시장이 있고 토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민주주의사회)”를 촉진하기 위해 매년 수십억 달러를 기부하였다. 또한 그는 그루지아나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에 걸쳐 전제정치와 싸우거나 그들을 붕괴시키려는 운동에 기부를 하고 있다.


——————————————————————–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독재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5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면서 소로스는 그의 안방에서 전체주의와 싸우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소로스는 지금 완전히 다른 환경인 미국정치세계에 개입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백악관에 진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최근 몇 년 만에 미국이 어떻게 변해갔는지에 대해 화가 났고 이를 미국이 반성하도록 촉구하려는 것이었다. 9/11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로스는 미국정부가 극단주의자들에게 넘어 가 우리들의 권리를 창 박으로 집어 던지고 자유로운 이 나라를 공포의 나라로 바꾸고 있음을 경고하기 위한 정치연설 일주에 돌입했다. 그러나 그는 연설이나 조언 그의 시간보다 더 많은 것을 내놓았다. 그는 2004년 선거에서 조지 부시를 낙선시키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내놓았다.




 “부시 지배하의 미국은 전 세계에 대한 위험이다. 그래서 나는 내 가족이 살고 있는 이 땅에 내 돈을 쏟아 부으려는 것이다.”


 - 2003년 11월 부시패배 운동에 1500만 달러를 기부한 후 조지 소로스의 연설 중에서-




 소로스는 이것은 “내가 참여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운동”이며 “내 삶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운동이라고 말하면서 부시를 패배시키기 위해 27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클로즈업




 “우리 편이냐 아니면 테러리스트 편이냐?” 이 한마디가 소로스를 미국 땅에서 정치적 동물로 변하게 만들었다. 2001년 9월 조지 부시대통령의 이 단호한 말들은 소로스의 신경을 엄청나게 자극하였다. 가디언과의 대담에서 그는 “이 말은 나에게 독일에서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고 말했다. “나치나 소비에트 하에서의 나의 경험으로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법무장관 죤 애쉬크로포트가 애국법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공산주의자들이 매일 신문 제목의 머리기사나 매일 TV에 나와 떠드는 판에 박힌 선전을 보는 것 같았다.




 2003년부터 소로스는 수준 이하의 군사력에 의지하려는 네오콘 정치기계들에게 조정당하고 있다고 생각한 조지부시의 재선을 막으려는 대규모 반대 켐페인을 시작했다. 그들은 전 세계에 걸쳐 미국의 패권을 주장하고 이 과정에서 군사비 지출을 더 늘이려고 정권을 잡으려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소로스는 부시행정부가 “우리 모든 도시 위에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마술을 부리며 “모든 다른 의견을 반애국주의라고 하면서 금지”시키는 등 “9/11의 공포를 얼마나 빈번히 악용하고” 있는지를 비판하면서 “공포정치”에 미국민들이 굴복하지 말 것을 호소하는 전면 광고를 게재하였다. 소로스는 9/11 공포에 대해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조장되어 이라크 침공과 같은 그들이 그전부터 주장해오던 정책에 이용해 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 전쟁을 미국이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지도 못하고 사담과 알카에다의 연관성도 찾지 못하고 심지어 지금 무정부 상태에 처한 이라크에 민주주의도 세우지 못하고, 세계 모든 나라로부터 비난을 들으며 “우리의 안전과 미군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재난으로 표현했다.




“우리는 거짓 주장에 속아 전쟁하러 이라크로 갔다. 사담 후세인과 알카에다는 연계가 없었다. 대량살상무기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분통이 터지는 사실은 우리가 이라크인들의 이익을 위해 갔다는 것이 그들이 마지막으로 주장하는 변명이라는 것이다.”


                                 - 조지 소로스의 뉴욕 연설 중에서, 2004년 4월 3일 -




 그의 반부시 태도에 대한 역풍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폭스의 빌 오렐리는 소로스를 “좌익의 얼가니”라거나 “십자군 무신론자”라고 불렀다. 우익 전문가들은 그를 “백만장자 사회주의자”라거나 “정당에 헌금하는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조롱했고, GOPUSA의 과격 공화당원들은 그를 “악마”라고 불렀다. 하원의장 데니스 하스터트는 폭스 TV에 나가 소로스에 대해 마약 카르텔에 그가 연루되었다는 너무 나간 중상모략을 했다. 소로스는 그를 법정으로 끌고 갈 수도 있었지만 사과를 요구하는 선에서 가볍게 한방 쥐어박는 것으로 끝냈다.






——————————————————————-소로스는 부시일가와 직접적인 거래도 있었다. 1986년에 소로스의 일부 지분이 잇던 석유회사 하켄은 조지 부시가 운영하고 있던 운영이 부실한 석유회사 스펙트럼7을 사들였는데, 부시는 하켄이 도산하기 전 잠시 동안 그곳의 임원으로 일을 했었다. 소로스는 또한 사모투자펀드 칼라일그룹에 투자했었는데 아버지 조지 부시도 그 그룹에 투자했었고 컨설턴트로 일하기도 했었다.


——————————————————————-






 결국 소로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America Coming Together나 미국진보센터, 무으브온(Moveon.org) 등의 조직에 대한 소로스의 막대한 기부에도 불구하고, 이 박애주의자의 열정에 넘치는 기고나 연설에도 불구하고, 조지 부시는 2004년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숨겨진 이야기  




 공화당과 더 많은 싸움을 하면서, 이제 소로스는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의원들은 안락사나 마리화나의 의학적 사용, 슬럼가에서의 주사기 교환 프로그램 등의 행동들이 모두 반미국적인 것이라는 분위기를 은근히 내비치면서 소로스가 여기에 연관되어 있다고 큰소리로 떠들고 있다. 극단주의자들은 프랑스에서 내부자거래로 소로스가 유죄 판결을 받자 지금 그를 과격하고 흉악한 범죄자로 지칭하며 비난하고 있다. 




——————————————————————–


                                  사법적 타격




 소로스가 여전히 금융 조작에서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2002년 그는 프랑스법정에서 내부자거래를 했다는 이유로 200만 달러의 벌금을 선고했고 소로스는 이 판결에 대해 즉각 항소하였다. 소로스는 1988년 프랑스은행의 경영권 인수에 관여하였냐는 질문에 대해 그런 제안이 있었지만 거절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 은행의 주식을 샀다. 프랑스에서 같은 사업을 하는 다른 사람이 경영권을 인수하였는데 그 돈들이 다 소로스 측에서 들어온 것이다.


—————————————————————————————————————————————-


소로스의 아주 논쟁의 여지가 많은 제안 중의 하나 ; 그는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더 많은 규제를 원하고 있다.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세계은행에 더 많은 힘을 주어야 한다고 소로스는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견해는 지금으로서는 받아들여질 것 같지 않다. 소로스의 사상적인 적중에 한명인 네오콘 폴 울포이츠가 이 기구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




 소로스의 부시재선 패배전략은 실패했지만 소로스가 패배한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뒷마당에서 잠자고 있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미국인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나치와 소비에트 치하에서도 살아난 소로스는 계속 미국시민들에게 제 일어나 미국의 잘못에 대해 비판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