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기업감시] 김용철이 <삼성을 생각한다>를 쓴 까닭


“‘이기는 게 정의’?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화제의 책] 김용철이 <삼성을 생각한다>를 쓴 까닭


출처 : 프레시안 기사입력 2010-01-29 오후 6:51:02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23164036&section=02

2007년 10월 29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기자회견으로 시작한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김 변호사의 양심선언은 지난해 6월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발행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 지난해 8월 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발행 사건에 대한 파기환송심의 유죄 판결, 그리고 지난해 말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 등을 거치며 표면적으로는 끝났다. 김 변호사가 50년 인생을 걸고 결행한 ‘이건희 부자 비리 고발’의 허무한 결말이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당당하게 그룹 순환출자의 핵심고리인 삼성생명 대주주 지위를 얻었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당시 상무)은 그룹 경영권 승계를 방해했던 장애물이 제거됐다. 검찰과 법원, 그리고 언론의 전폭적인 협조 속에 이뤄진 일이다.

양심고백 이후 ‘제대로 사건 수임도 하지 못하는’ 변호사이자 빵집 관리자로 살아온 김 변호사가 그동안의 과정과 소회를 담은 책을 펴냈다. 그가 약 7년여 동안 삼성에서 일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황제식 경영’의 문제점, 자신이 직접 수행하기까지 했던 불법 로비의 전말, 이건희 일가의 귀족적인 삶의 모습 등을 낱낱이 기록한 <삼성을 생각한다>를 29일 출간한 것.

엽기적인 ‘삼성 경영’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씀, 사회평론 펴냄. ⓒ프레시안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1부 ‘불의한 양심에도 진실은 있다’에는 김 변호사가 양심고백을 하며 겪은 갖가지 에피소드와 삼성 특검의 전말이 소개됐다.

김 변호사는 삼성그룹 퇴사 후 양심고백을 준비하는 동안 매일같이 삼성이 보낸 사람에 감시당하던 일부터 그를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그를 비난한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 양심선언 후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들의 행동, 특검 수사의 불합리함 등 기존에 나온 기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일들을 낱낱이 공개했다.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킬 내용은 2부 ‘그들만의 세상’에 기록돼 있다. 김 변호사가 삼성에 입사할 당시부터 퇴사할 때까지 그가 보고, 듣고, 실행하고, 느낀 삼성그룹의 경영방식이 고스란히 수록됐다. 언론의 찬사를 집중적으로 받는 ‘총수 경영’이 실제로 어떤 폐단을 가졌는지, 이건희 전 회장의 독단적인 결정이 회사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혔는지, 비리로 얼룩진 이건희 일가를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가 글로벌 기업으로 뻗어나갈 삼성그룹 조직원들에게 어떤 부작용을 가져오는지 등이 세세한 에피소드를 근거로 소개된다.

특히 그는 삼성 경영 실무의 모든 것을 책임졌던 이학수 당시 그룹 부회장과 김인주 당시 사장과의 대화를 복기해 이들의 불법적 경영 행태를 고발한다. 김 변호사의 눈에 비친 그들은 이건희 일가의 이익이 곧 회사의 이익이며, 나아가 국가의 이익이라 믿는 사람들이었다. 책에는 김인주 전 사장의 일화 등 눈에 띄는 부분이 많다.

이처럼 총수 일가 보필이 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구조조정본부)의 최우선 업무가 되다보니 실제 그룹의 미래를 열어가야 할 엔지니어, 전문경영인 등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오직 그룹의 검은 돈을 관리하는 이들만이 가장 높은 보수와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조치이기도 했다. 내막을 아는 이들이 이탈해서 김 변호사와 같은 행동을 취하는 것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황제식 경영이 과연 글로벌 삼성의 성장에 도움이 됐을까. 김 변호사는 “아니오”라고 말한다. 모든 결정을 총수와 구조조정본부 소수 임원이 하는 구조이다보니 계열사 사장들은 ‘얼굴 마담‘이나 다름없었다. 다음 에피소드는 황제식 경영이 끼친 폐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언젠가 삼성 석유화학 계열사 사장이 나를 찾은 적이 있다. 어음을 청구할지, 말지를 묻기 위해서였다. 어이가 없었다. “사업하는 사람이 돈을 못 받았으면, 당연히 청구해야지. 무슨 소리냐”라고 했다. 알고 보니 새한그룹에서 받은 어음이었던 것이다. 새한은 이건희 일가와 친족 재벌인데, 당시 경영이 어려웠다. 나를 찾아온 사장은 이건희 가족의 눈치를 보느라 어음 청구를 망설였던 것이다. …(중략)… 계열사 사장을 임명할 때, 해당 사업에 대한 전문성은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그래서였다. 신라호텔 사장을 마친 뒤, 바로 석유화학 사장에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다. 호텔에서 평생 일했던 자가 석유화학 산업에 대해 얼마나 알겠는가. 사장은 구조본의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심부름꾼에 불과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식에서 벗어난 삼성식 경영은 이밖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도청과 관련된 에피소드, 무노조 경영을 사수하기 위해 행하는 일처리, 구조조정본부 팀장회의에 올라오는 황당한 안건 등.

대표적인 사례가 이건희 일가의 명품 취향 때문에 무리하게 1000억 원에 인수했다 100만 원에 처분한 독일의 명품 카메라 업체 롤라이(rollei) 인수 실패다. 이 손해를 모두 계열사가 졌음은 물론이다. 명품에 대한 이건희 일가의 유별난 관심이 경영실패로 이어진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그간 삼성 직원들이 일궈낸 성공신화에 가려져있었을 뿐이다.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이 책에는 일반 독자는 접하기 힘들 이건희 일가의 일상생활도 일부 소개돼 있다. 책에는 이건희 전 회장의 생일잔치 광경이 묘사돼 있다.

김 변호사가 이건희 일가와 가진 대화를 통해 그들의 삶이 얼마나 일반인의 그것과 괴리되어 있는가도 유추 가능하다. 그들이 어떤 옷을 입는지, 그들의 현금 개념은 어떤지, 가족관계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지 등도 설명돼 있다.

삼성이 서울 도곡동에 지은 국내 최고가 아파트 타워팰리스 역시 스스로를 귀족처럼 인식하는 삼성 고위층의 태도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김 변호사는 지적한다. 2002년 10월 첫 입주자를 받을 당시 이 전 회장은 입주자 자격 심사를 지시했다. 평범한 사람은 들이지 말라는 얘기다. 이 아파트에 방문한 손님은 주인과 한 집에서 묵지도 못한다. 손님을 위한 게스트룸이 따로 있다. 외부인이 들어가려면 신분증을 보여줘야 한다. 국가시설도 아닌데 말이다.

삼성 노동자와 소비자들의 돈으로 만들어진 비자금의 또 다른 용처도 있다. 바로 이런 황제식 경영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되는 ‘뇌물’이다. ‘떡값’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각계에 뿌려진 이 돈은 이건희 부자가 무죄 판결을 받을 때, 비자금을 조성할 때, 삼성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데 큰 힘을 발휘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많은 사례 중 김 변호사가 직접 맡았던 에피소드 하나를 공개한다.

“대법관에게 150만 원짜리 굴비 선물세트를 보낸 일도 있다. 당시 이학수는 내가 직접 전달하라고 했다. 그게 예의라는 게다. 그러나 나는 운전기사를 대신 보냈다. 속으로는 ‘대법관이 설마 삼성이 보낸 굴비를 받겠느냐’라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기사에게 들으니, 굴비 잘 먹겠다고 감사 인사를 하면서 받았다고 한다.”

이 사례는 약과다. 김 변호사는 김인주 전 사장이 골프장에 동행한 검찰에게 300만 원이 든 돈봉투를 건네는 것을 보았다고 책에서 밝힌다. 법무팀에서 김 변호사가 행한 주요 업무는 비자금 전달과 각종 소송의 뒤처리였다. 이들 업무의 최종 목표는 역시나 이건희 일가 보위였다.

이렇게 검은 돈을 주고받은 한국 사회 고위직은 모두 일종의 ‘패밀리‘처럼 엮여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돈을 받지 않거나 양심에 따라 소신껏 소송을 진행해 삼성에 ‘찍힌’ 검사들 일부는 불합리한 인사조치를 받으며 검찰을 떠나야 했다.

김용철이 이 책을 쓴 까닭

3부 ‘삼성과 한국이 함께 사는 길’은 김 변호사의 검사 재직 시절 일과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개인적 생각이 담겨있다. 군대에서 겪은 일을 통해, 검사시절 맡았던 각종 수사를 통해 그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특히 양심선언 이후 늘상 듣게 된 ‘전라디언’ ‘좌빨’ ‘빨갱이’ 등의 비난을 지적하며 “오히려 재벌이 좌빨”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한국 사회를 좀먹고, 안보위협마저 가하는 고위층의 도덕적 해이가 한국 사회에 더 문제라는 얘기다.

특히 김 변호사는 주류사회에 접근하기 위해 한국인들이 집착하는 인맥 우선주의, 접대 문화 등을 꼬집는다. 그는 이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대신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주목한다. 그리고 해결의 실마리 역시 재벌의 투명성 제고로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김 변호사가 지적한 한국 사회의 문제들은 지난 2년, 아니 수십년 간 개선되지 않고 이어져왔다. 사실상 한국의 권력구도 정점에 위치한 삼성을 상대로 김 변호사는 어쩌면 패배가 예정된 싸움을 시작한 건지도 모른다. 그는 왜 이처럼 험난한 길을 선택했으며, 이 문제적인 책을 썼을까. 글의 말미에 김 변호사가 쓴 글을 인용한다. 그는 천상 검사다.

“…내 생각은 다르다. 정의가 패배했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의가 이긴다”는 말이 늘 성립하는 게 아니라고 해서, 정의가 패배하도록 방치하는 게 옳은 일이 될 수는 없다. 나는 삼성 재판을 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썼다.”




/이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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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만 제 구실을 하면, 큰 문제는 없다”


[인터뷰] <삼성을 생각한다> 출간한 김용철 변호사


출처 : 프레시안 기사입력 2010-01-29 오후 6:51:07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29142802&section=03

김용철 변호사가 책을 냈다. 검찰과 삼성 구조조정본부에서 일하며 보고듣고 겪은 일을 정리한 책이다.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에서 김 변호사는 그간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내용을 소개했다. 또 지난 2007년 양심고백 당시 단편적으로만 알렸던 내용들을 자세히 풀어 설명한 부분도 있다.

삼성 비리를 수사했던 조준웅 특별검사를 만나 나눈 이야기, 아주 가까이서 지켜본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일가의 모습, 삼성 임원들이 검사들에게 돈 봉투를 건네는 장면에 대한 생생한 묘사,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 재판을 앞두고 삼성 구조본이 시나리오에 맞춰 조직적으로 증언 조작을 하는 장면 등은 지난해 말 특별사면을 받은 이건희 전 회장, 그리고 삼성에게서 돈을 받았던 정·관·법조계·언론계 관계자들을 다시 긴장시킬 것으로 보인다.









▲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구조본 법무팀장). 그는 책 출간 직전 <프레시안>과 만나 그간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프레시안(김봉규)


“실명 거론된 이들을 모욕하려는 의도는 없다”

책이 서점에 배포되기 하루 전인 28일,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김 변호사와 만났다. 책이 나오기까지 워낙 다양한 우여곡절을 겪은 탓인지, 이날 김 변호사는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소회를 묻는 질문에 김 변호사는 “이 책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책을 내다보니, 불가피하게 실명을 거론한 분들이 있다. 그분들을 모욕하려는 뜻은 전혀 없었다. 우리 사회의 부패 구조를 지적하고, 이를 고치자는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어쩔 수 없이 실명을 거론했다.”

책을 내는 과정에서 김 변호사가 가장 고민한 것도 삼성 비리에 연루된 이들의 실명을 과연 공개해야하는지 여부였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비리 연루자의 가족들이 겪을 피해 때문이다.

예컨대 이 책의 2부에 포함된 “1999년 삼성 부도 위기”라는 장에 있는 “연예인 윤락 사건과 삼성 구조본”이라는 절에 있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이 부분은 양심선언 직후,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짧게 언급했던 사건을 자세히 설명한 내용인데 김 변호사는 당시 사건에 연루된 삼성 임원들의 실명을 밝히지 않기로 했다. 대신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검사의 이름만 적었다. 이 부분에 대해 설명하며 김 변호사는 “사건에 연루된 임원들의 가족들이 당시 사건에 대해 알아서는 안 된다. 아무런 죄가 없는 가족들이 상처를 입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말을 거듭했다.

“책에 이름 없다고, 비리 면죄부 주면 안된다”

실명 언급을 가급적 줄이려한 이유는 또 있다. 김 변호사가 알고 있는 것은 삼성 비리 전체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따라서 김 변호사가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이들 가운데도 삼성 비리 연루자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 단지 김 변호사의 책에 이름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이들이 면죄부를 받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것.

예컨대 검사 출신인 그는 삼성이 법원과 검찰을 상대로 벌인 로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그가 검찰을 상대로 한 불법로비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다고 해서, 행정부나 언론 등 다른 영역에서는 불법 로비가 없었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자칫 하면, 이른바 ‘떡값검사’ 명단 공개가 비리를 저질렀으면서도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2007년 양심선언 당시, 삼성으로부터 검은 돈을 받은 공직자 명단을 최소한만 공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번에 낸 책에서 어쩔 수 없이 이름이 거론된 사람들도 있다. 이들이 여러 형태로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내 가족에게 피해가 가는 일만큼은 없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 변호사의 가족은 양심선언 이후 쏟아진 온갖 흑색선전으로 큰 고초를 겪었다. 이번 책 출간이 당시의 끔찍했던 경험을 반복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삼성에서 100억 원 받아놓고 왜 ‘배신’했느냐’는 물음에 답한다”







▲ 김용철 변호사. ⓒ프레시안(김봉규)
2007년 양심선언 직후 불거진 루머에 대해서는 이번 책에서 대부분 해명했다. 대표적인 게 “삼성에서 근무하는 동안 100억 원을 받았다”라는 주장이다. 양심선언 직후, 삼성 측이 배포한 장문의 반박자료에 담긴 내용이다. 당시 반박자료에는 김 변호사의 사생활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이런 내용이 알려진 뒤, 김 변호사를 손가락질하는 이들이 많았다. 삼성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받았으면서, 왜 ‘배신’했느냐는 논리다.

이번 책에서 김 변호사는 이런 논리에 대해 차근차근 반박했다. 양심선언을 통해 삼성 비리를 드러낸 것은 이건희 전 회장 일가의 잘못을 공개한 것일 뿐이며, 삼성 그룹에 해를 끼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길게 보면, 기업의 투명성을 높여서 삼성과 한국 경제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라는 것. 따라서 ‘배신’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오히려 배신을 한 쪽은 삼성이다.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찾아낸 검사를 뽑아 비자금 소굴에 배치했으니 말이다. 또, 김 변호사는 삼성 입사 당시 “법률 업무를 맡지 않겠다. 경영 업무를 배우고 싶다”라고 밝혔고, 이에 대해 약속을 받은 상태였다고 밝혔다. 변호사 노릇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삼성 측이 변호사 노릇을 억지로 맡겼으니, 약속을 깬 쪽은 오히려 삼성이라는 주장이다.

당시 삼성 측이 내놓은 반박자료에서 사실관계가 잘못된 부분도 바로잡았다. 삼성에서 일하며 받은 돈이 100억 원이 아니라고 했다. 이번 책에서 그는 삼성에서 받은 급여 명세서기초로 이런 내용을 자세히 설명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삼성에서 큰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00억 원에는 훨씬 못 미친다.

“손가락만 보지 말고, ‘문제의 본질’을 봐달라”

온갖 흑색선전으로 인해 김 변호사가 입은 상처는 여전히 커보였다. 이번 책에서 충분한 해명과 반박을 담으려 했지만, 어떤 독자들이 보기에는 부족해보일 수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김 변호사는 “개인적인 면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 갖지 말아 달라”는 말을 거듭했다. “달을 가리키는데, 왜 손가락만 보느냐”는 말도 자주 했다. 서점 배포를 앞두고, 인쇄가 진행되는 내내 김 변호사가 걱정한 것도 이 대목이었다. “이번 책으로 흑색선전에 대한 해명은 할 만큼 했다. 그러니 이제는 제발 문제의 본질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게다. 그가 말하고 싶어 하는 ‘문제의 본질’은 뭘까.

바로 ‘부패’다. 온갖 인맥으로 끈끈하게 얽혀 있는 탓에 다들 그 심각성에 대해 둔감해져 있는 부패구조다. 그의 말은 이렇다.

“부패에 너무 둔감해져 있는 세태가 안타까웠다. 책을 낸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렇다. 삼성에서 내가 겪은 일들은 이런 부패 구조의 아주 작은 단면에 불과하다. 내가 공개한 내용이 부패 구조의 전체라는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다만 이번 책 출간이 전체 부패 구조에 대한 각성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금 제대로 내고, 자식을 군대 보내야 ‘진짜 보수’”

김 변호사는 이른바 ‘보수 세력’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그의 양심선언은 결국 법을 제대로 지키자는 취지였는데,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이 오히려 비난하고 나섰다는 게다. “세상에 법을 무시하자는 보수 세력도 있느냐”는 한탄이다. 이 책에서도 그는 “납세와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보수란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보수 세력은 기존 체제를 유지하자는 쪽인데, 세금을 내지 않고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면서 체제를 유지하는 게 가능하겠느냐는 지적이다.

이건희 전 회장은 세금을 탈루했을 뿐 아니라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보수 세력이 먼저 이 전 회장을 비판하고 나서야 마땅한데 현실은 달랐다.

“나도 어쩌면 보수 세력일 수 있다. 사회에서 누린 게 많으니 말이다. 내가 이야기 한 것도 주로 보수적인 가치였다. 법을 지키자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그런데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이 나를 비난하고 나섰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우리 사회에 제대로 된 보수 세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단지 부패 세력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조금 덜 부패한 세력이 이들과 맞서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부패 세력은 상대적으로 덜 부패한 세력에게 종종 ‘좌익, 빨갱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운다. 우스운 일이다. 둘 사이의 차이는 그저 부패한 정도 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만약 통일이 되면, 부패 세력이 어떤 빌미로 덜 부패한 세력을 공격할지 궁금하다.”

“이건희 사면, 왜 주범만 풀어주고 종범은 빠뜨리나”







▲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씀, 사회평론 펴냄. ⓒ프레시안
부패에 둔감한 세태는 현 정부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이건희 전 삼성 회장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불과 4개월 만에 특별사면 했다. 돈이 많으면, 법원의 확정 판결도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니 죄를 짓더라도 돈만 벌면 된다는 풍조가 생겨날 밖에.

이 전 회장에 대한 사면 조치는 책 출간 작업이 대부분 마무리된 시점에 이뤄졌다. 그에게 이 전 회장 사면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법원 판결을 무효로 만드는 일은 인간이 아니라 신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신의 은사‘라는 말이다. 이런 특별한 일이 이 전 회장 단 한 명을 위해 이뤄졌다. 체육대회 유치 로비에 나서라는 명목으로 말이다. 나라꼴이 우스워졌다. 다만 덧붙이고 싶은 말은, 기왕 은사를 베풀려면 다 풀어줄 것이지 왜 종범(從犯)은 빠뜨렸느냐는 것이다. 주범(主犯)인 이건희만 풀어줬으니, 지시에 따라 움직인 종범들이 억울해 할 것 같다.”

기자와 만날 때면 김 변호사는 작가 이병주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 “(과거사가)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내가 한 이야기는 역사도, 신화도 아니고 야사에만 남게 됐다”고 덧붙이곤 했다. 이번 책도 그래서 정사가 아닌 야사의 기록이라고 했다. 조준웅 특검이 삼성 비리 의혹의 몸통에 대해서는 사실상 덮어주다시피 했고, 그나마 기소된 내용도 대부분 무죄 판결이 나왔으며, 일부 유죄가 확정된 것도 대통령이 나서서 사면했으니 말이다.

“거악과 한몸이 된 검찰, 거악에 맞서려면 검찰과 싸우란 말인가”

오랫동안 검사로 지냈던 그는 모든 일이 법과 제도를 통해 풀려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가 직접 겪은 일들이 법과 제도에 따른 공적 절차를 거치는 동안 깡그리 무시됐다. 그의 심경을 들었다.

“검찰만 제 구실을 하면, 큰 문제는 없다. 법을 어긴 자들에게 적절한 처벌이 이뤄지는 것은 법과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다. 그러나 한국 검찰은 그렇지 않다. ‘살아있는 권력’, 또는 재벌처럼 ‘죽지 않을 권력’에 대해서는 그저 눈치만 볼 뿐이다.

이와 비교되는 게 일본 검찰이다. 그들이라고 해서 마냥 깨끗하기만 할까. 그들이 유난히 한국 검사들보다 똑똑하고 유능할까. 그렇지 않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중요한 역사적 고비에서 일본 검찰은 ‘거악’과 맞서는 모습을 보였고, 한국 검찰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차이가 선진국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고 본다.

이대로 가면, 법에 따른 공적 수사 절차를 아무도 믿지 않는 상태가 될 수 있다. 한마디로 후진국이 된다는 이야기다. 한국 검찰이 ‘거악’과 싸우기는커녕 ‘거악’과 결탁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거악’에 맞서려는 이들은, 결과적으로 검찰과 싸우게 된다. 검찰과 ‘거악’이 한 몸이 된 상태니 말이다. 이게 정상일까. 그렇지 않다. 정의를 좇는 이들이 국가기구를 적으로 돌리는 상황은 혁명 시기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일이 법과 질서에 따라 풀려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고, 이런 상황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책이 나오는 이 시점까지도 마음이 답답하기만 하다.”








/성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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