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논평] 누구를 위한 산재보험 50년인가?

[논평] 누구를 위한 산재보험 50년인가?

- 일하는 모든 이들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고, ‘기업살인법’을 제정하라.

 

올해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험인 산재보험이 도입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1일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 50주년 기념행사를 열고, 산재보험이 “산재근로자의 안정적인 치료와 생계보장을 통한 실질적인 보호와, 사업주의 위험 분산을 통한 고도의 경제성장을 뒷받침”했다고 자축했다. 하지만 그동안 산재보험이 산재 노동자의 치료, 재활, 사회복귀에 어느 정도 기여를 했고, 안전한 작업장 환경을 만드는데 어떤 구실을 했는지, 과연 누구를 위한 산재보험이었는지 우리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산업재해 사망률이 1위이다. 10만명 당 사망자 수가 OECD 평균의 세 배에 가깝고,2위 그룹인 칠레, 멕시코, 터키보다도 두 배 가량 높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1,929명이고 노동 과정에서 다친 노동자는 9만 명을 넘는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마저도 표면적인 통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최근 5년간 정부가 적발한 산재은폐 건수만 9,013건에 달한다. 특히 소외된 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일수록 산재보상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된다. 2013년 말 기준 화물운송 노동자, 학습지 노동자, 텔레마케터 등 특수고용 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률은 9.83%에 불과했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산업재해를 당하더라도 제대로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는 산재보상을 받고나서 해고되는 사례도 허다하고, 미등록자 이주노동자인 경우 산재 발생 시 치료냐 강제추방이냐 선택의 기로에 놓이기도 한다.

또한 재해 발생 정도에 따라 산재보험 요율을 최대 50%까지 감면·인상할 수 있도록 하는 ‘개별실적요율제’는 기업들이 산재사고를 은폐하도록 부추기는 역할을 해왔다. 그 결과 최근 5년간 25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현대제철 당진공장은 2012년 보험료가 전년에 견줘 27억4900만원이 할인되는 혜택을 받았고, 2014년 3월 현재 73명의 직업병 사망자가 발생한 삼성전자는 ‘무재해 사업장’으로 지정되어 20개월간 약 300억 원의 산재보험료를 감면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게다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산업재해 신청 불승인율은 2008년 56.8%, 2009년 60.7%, 2010년 64.2%로 매년 높아지고 있다. 까다로운 산재 신청 절차로 인해 애초에 산재보상을 포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 행정소송 등을 통해 노동자가 승소해도 공단은 항소를 남발하거나(2012년 기준 항소율 72.8%), 패소해도 내부규정 등을 이유로 시간을 끌어 노동자와 그 가족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요컨대 산업재해 건수는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기업은 은폐하기 급급하고, 산재보험 집행업무를 맡은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인정 기준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산재보험이 노동자들의 복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산재 상황에서 기업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주기위한 수단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는 동안 근로복지공단은 최근 5년 간 5조 원의 흑자를 냈다. 여기에는 마땅히 사업주가 100% 부담해야할 산재보험이 아니라 사업주와 노동자가 50%씩 부담하는 건강보험으로 처리하여 생긴 부당 이익도 포함된다. 근로복지공단은 기업들의 산재보험료는 감면해주면 서 그 부담을 오히려 국민들에게 떠넘긴 것이다.

지난 1일 고용형태공시제에 따라 공개된 기업별 정보를 보면,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많은 사업장에서 산업재해 사고가 빈발했다. 이는 업무의 위험도가 높아 안전의 문제가 제기되는 작업장일수록 그 위험을 ‘외주화’하는 경향이 높다는 뜻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안전과 규제완화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이 높아졌지만, 노동에서의 안전과 규제는 자본의 이윤논리 앞에서 끊임없이 희생되어왔다는 것이 산재보험 50주년 오늘의 현실이다.

이는 기업이 안전에 대한 투자를 덜하거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해 인건비를 줄임으로써 생기는 이익이 산재발생에 따른 책임보다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주장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 이 땅에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 적용을 해야하고, 그 기준을 대폭 낮춰야 한다. 그리고 기업이 주의의무를 위반하여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기업에 살인죄에 해당하는 강력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업살인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것이 노동자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산재보험이 앞으로 가야할 새로운 50년의 방향이다.<끝>

2014년 7월 3일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