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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평등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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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이 답이다》리처드 윌킨슨, 케이트 피킷, 이후, 2012.

계급이 사라져야 평등해진다

현 시기 한국 민중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겨 주는 문제는 사회양극화, 다시 말해 불평등이다. 아직도 우파와 보수주의 경제학자들은 ‘낙수 효과’ 운운하며 성장 중심 사회경제 정책의 중요성을 강변하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를 경험한 한국 민중에게 이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번역 출판된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킷의 《평등이 답이다》는 현재 우리에게 닥친 문제가 무엇이며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보여 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이 책의 장점은 명확하다. 좌파라면 누구나 직감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설득력 있는 증거로 드러낸다는 점, 그리고 이것을 대중적으로 알기 쉽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윌킨슨과 피킷은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해 평등한 사회일수록 건강 문제나 사회 문제가 더 적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증거들은 매우 광범위하다. 

평등한 사회일수록 사회구성원 상호 간에 신뢰가 높아진다. 불평등한 국가일수록 정신질환자가 많고, 약물을 더 자주 복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회가 평등할수록 오래 살고, 유아사망률이 낮다. 소득 불평등이 작을수록 비만율이 더 낮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15세 학생들의 수학, 읽기 점수가 낮고, 고등학교 자퇴율이 높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10대 출산율이 높다. 불평등한 국가일수록 살인은 더 자주 발생한다. 불평등한 국가일수록 학교 폭력도 더 자주 발생한다. 불평등한 사회는 감옥도 더 많고 죄인을 더 오래 가둔다. 또, 더 많은 사람들이 수감된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회 이동성 혹은 계층 이동성도 낮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노동시간도 더 길다. 평등한 사회일수록 투표율도 높다.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 문제의 목록은 끝날 줄을 모른다.

저자의 주장 중 특기할 만한 것은 이러한 불평등의 영향이 저소득층에게만 미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불평등은 인구 대다수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이런 측면에서 저자들은 사회를 평등하게 만드는 전략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보편적 이득을 준다고 주장한다.

또 최근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 지구온난화 문제도 평등이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탄소 배출을 줄이는 정책이 대중의 지지를 받으려면 그 정책이 공정하게 적용돼야 하는데 평등한 사회가 그러한 정책을 펴기 쉽다. 둘째, 평등한 사회일수록 대중이 소비주의에 포획될 가능성이 적다.

저자들은 이런 데이터에 근거해 사회를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 정책임을 주장한다. 그런데 이는 몇몇 개별적인 건강 프로그램이나 복지 프로그램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얘기한다. 정치적 의지에 따라 기획된, 일관된 정책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치적 의지

그러나 이 책은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있다. 

먼저 건강불평등 이론 측면에서 건강 불평등이 발생하는 이유로 ‘사회심리적 요인’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건강불평등이 발생하는 이유는 사회관계와 상호 신뢰가 깨지고, 스트레스가 증가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소득 불평등은 계급 차이에 의해 발생하고, 이로 인한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조건이 건강을 파괴한다.

한편, 저자는 인간 사회가 더 평등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근거로, 인간의 평등에 대한 ‘본능’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저자가 ‘좌파 다윈주의’ 혹은 ‘좌파 사회생물학’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 생물학적으로 어느 정도 결정돼 있다는 사회생물학 이론의 좌파적 판본이고, ‘기계론적 환원주의’의 한 변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자는 불평등의 기저에 존재하는 근본 모순인 생산수단의 사유화 문제와 착취 문제에 눈을 감고 있다. 불평등이 문제고 그러니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하지만, 불평등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역사적이고 정치경제학적인 분석이 부족하다. 그러니 그에 따른 해결책도 시장과 자본주의를 용인한 상태에서 다양한 재분배 정책과 임금 정책, 생산 관계에서의 민주주의, 경제 민주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성장’만을 도돌이표처럼 외쳐대는 우파들에 대항하기 위해, 그리고 불평등으로 인한 다양한 사회 문제가 일련의 정책 패키지 프로그램으로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책 전문가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좌파들이 적극적으로 인용해야 할 실증적 증거들의 보고임에 틀림없다.

이상윤(건강과대안 책임연구원) / 레프트21 4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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