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인의료정보의 상업화 추진 중단해야

개인의료정보의 상업화 추진 중단해야

개인의료정보의 상업적 사용에 대한 논란이 본격화 됐다. 지난 8월 31일 문재인 대통령이 개인정보를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도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다. 산업자원부는 39개 대형병원에 있는 환자정보를 이용해 전국민에 해당하는 5천만 명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고, 과기정통부는 ‘마이데이터’ 사업을 더 확장해 건강보험공단의 국민 건강검진 기록을 민간기업이 제작한 모바일 앱으로 바로 전송받도록 하는 방식을 추진 중이다.

이에 질세라 재벌병원과 대기업들도 정부 발표에 발맞춰  ‘의료데이터’ 기업 설립을 잇따라 발표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카카오인베스트먼트, 현대중공업지주와 의료데이터 합작회사인 ‘아산카카오메디컬데이터’를 설립해 새로운 의료정보 시장을 선점해 나가겠다고 했고, 네이버는 분당서울대병원, 대웅제약 등과 함께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이 모든 사업들은 현행법 체계에서는 불법이거나 위법 논란이 있는 것들이다.

박근혜 정부 시기 ‘4차 산업혁명’이 규제완화와 민영화 정책에 상당한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레토릭으로 사용되었다면, 문재인정부의 ‘4차 산업혁명’은 그 목표를 단일화해 개인정보 규제완화와 상업화 요구를 달고 ‘혁신성장’ 으로 진화한 셈이다.

자본 입장에서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저성장의 일상화’를 돌파하는 열쇠가 될 거라고 주창된 4차 산업혁명의 실질적 내용은 차지하더라도, 4차 산업혁명이 보건의료 기술을 통해 부흥될 거라 예견된 것은 문제다. 4차 산업혁명이 지향하는 ‘고 위험, 고 부가가치’ 산업들은 공공서비스 영역이자 한 사회의 사회보장제도에 해당하는 보건의료와 양립하기 어려운 가치이기 때문이다.

보건의료 분야에서 개인질병정보와 진료기록 등을 포함한 개인건강정보에 대한 보호조치들은 의료 공공성을 지키는 보루가 되어 왔다. 공공의료가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속하는 한국 의료가 그나마 공공성을 버티고 있는 것은 국민건강보험제도와 당연지정제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간보험회사들이 공보험을 대체할 만큼 시장 확대를 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료정보에 대한 접근권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었다. 개인의료정보의 민간 공유는 의료민영화로 가는 길목을 여는 일이 될 것이다.

개인의 의료정보는 정보주체의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개인정보로 개인정보보호법상 ‘민감정보’ 에 해당한다. 개인의 의료정보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숨기고 싶은 사생활의 영역이다. 개인이 숨기고 싶은 질병정보가 유출되어 사회적으로 공개될 때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이 짊어져야 하며 어떤 사회적 보상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개인질병을 이용한 사회적 낙인과 배제는 고용상의 불이익, 집단적 왕따, 사회적 평판 등으로 이어져 한 개인에게는 회복되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다.

개인의료정보 규제완화 정책은 의료시스템 전반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문제다. 개인의료정보 보안에 대한 신뢰 붕괴는 환자와 의료인간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 치료 과정에서 환자와 의료인 간 솔직한 정보 교환은 효과적 의료를 위해 필수적이다. 환자는 자신의 정보가 진료 외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기반으로 의료인에게 자신의 많은 정보를 털어 놓는다. 그런데 이러한 내밀한 정보가 쉽게 유출될 수 있고 상업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의사- 환자 간 신뢰 관계가 무너지고 치료를 위한 정직한 정보를 제공하기 어려울 수 있다.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의료시스템 전반을 위협하는 개인의료정보 규제완화는 결국 의료시스템의 총체적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개인의료정보는 사실상 식별 위험이 더 크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고, 개인의 진료정보, 약물사용 자료, 건강검진 자료 등이 대규모로 집적돼 있고, 건강보험 적용 및 이용을 위한 행정적 목적을 이유로 의료 정보 외에도 개인의 소득, 주소, 직장 등 방대한 양의 개인정보가 집적돼 있다. 개인의료정보의 경우 아무리 가명화된 채로 사용된다 해도 이런 정보와 결합되면 개인을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위험성이 높다. 따라서 공익적 목적으로 제한된 연구라 할지라도 그 정보의 수집과 가공, 처리 과정에 매우 엄격한 규제와 법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시민사회는 박근혜 정부 시기 개인정보보호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며 내 놓은 ‘개인정보 비식별조치 가이드라인’을 청산해야 할 적폐 중 하나라고 지적해 왔다. 그러나 적폐 청산은커녕 개인정보보호법을 박근혜식으로 바꾸는 법안이 11월 정부 법안으로 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라고 한다. 연내 통과를 목표로 말이다. 이런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 방식에는 오로지 개인정보를 활용해 기업의 돈벌이를 활성화해 주면 된다는 발상이 전제돼 있다. 그러나 위험은 사회화하고 그 부가가치는 기업이 독점하는 방식은 그것을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르던 혁신성장이라 부르던 그냥 민주주의와 공공의 보호조치를 파괴하는 신자유주의다.

정부는 결국 중단된 영국의 케어닷데이터(care.data.NHS) 의료정보 공유사업의 교훈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의 동의 절차를 무시하고 기업들에게 개인의료정보를 제공하고자 했던 영국 보수당 정부의 시도는 큰 사회적 혼란과 대규모 반대에 직면해 결국 2016년 공식 중단됐다. 이 사건은 정부가 국민의 개인의료정보를 ‘빅 데이터는 곧 빅 비즈니스’ 라는 경제성장 논리로 접근하면 안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국 보수당 정권을 뒤흔들 정도로 타격을 준 케어닷데이터 사태가 문재인 정부에게만 예외 일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개인정보를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상 정보주체는 ‘개인정보의 처리에 관한 동의 여부, 동의 범위 등을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 가 있다.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개인의료정보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명백한 침해 행위다. 우리는 지금,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혁신경제가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제약하고 침해해도 되는 사회적 가치인지를 되물어야 한다.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원 변혜진

 

 

 

 

* 건치신문 10월 31일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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