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제주 영리병원, 또 하나의 ‘박근혜 적폐’

문재인 정부, 지금이 ‘의료 영리화 반대’ 공약 실행할 적기다

우회 진출

영리병원 반대 운동이 다시 운동의 핵심 과제로 등장했다. 지난 1월 초 노동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은 엄동설한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영리병원을 철회를 요구하며 정부종합청사 앞 기자회견을 가졌다. 박근혜 정부 시기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추진되던 제주 녹지국제병원이 도지사 허가만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지금까지 단 한곳도 설립되지 않은 영리병원이 아이러니하게도 의료 민영화 반대를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눈앞에 다가왔다.

지난해 11월 24일 제주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건심의위)는 제주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위한 공식적인 첫 번째 심의를 벌였다. 이 심의과정에서 녹지국제병원의 국내 사업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중국 자본에 의해 100퍼센트 투자 설립되는 ‘외국인 영리병원’이라고 주장해 왔던 것과 다르게 병원 운영이 국내 비영리의료법인에 의해 운영될 예정이라는 혐의가 드러난 것이다.

그동안 시민사회단체는 박근혜 정부가 승인한 병원 운영에 대한 사업계획서 공개를 요구해 왔지만 ‘영업비밀’ 이라는 이유로 자료 회신 일체를 거부당했다. 정권 교체 후 국회를 통해서도 사업계획서 전체를 회신 받을 수 없었고 가장 중요한 사업자가 누구인지가 누락된 사업계획서만을 얻어 볼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제주 심의위가 열리던 날, 제주 의료민영화저지 운동본부는 100% 중국자본으로 설립된다는 녹지국제병원의 ‘총괄대표’가 현재 국내 비영리의료법인인 미래의료재단의 이사이자 리드림 의료메디컬센터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수정 원장이라는 점을 눈여겨 보았다. 시민사회단체는 미래의료재단 등의 홈페이지와 각종 자료를 찾아본 결과 녹지국제병원의 인터리어 수주 업체와 미래의료재단의 인테리어 수주 업체가 동일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미래의료재단 대표인 이행우 씨가 대표로 있는 보다메디(주) 부사장이 제주도 영리병원이 자신들의 병원으로 설립된다는 외부 강연을 하고 다닌 정보 등도 찾아냈다. 이미 한 차례 국내 성형외과 의사들의 우회 투자가 문제가 되었던 BCC 상하이서울리거병원에 이어 두 번째 국내 의료법인이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안종범 수첩’에 메모로 남아 있는 ‘제주도 외국인 영리법인, 국내 자본 이동’이라는 2015년 5월 25일 ‘VIP 지시사항’이 무얼 의미했는지가 더욱 분명해졌다. 박근혜 정부가 ‘외국인 영리병원’일 뿐이라고 일축하며 강행하던 제주 녹지국제병원은 국내 의료법인이 우회적으로 영리병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준 것이다. 박근혜 정부와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녹지국제병원의 국내 운영자를 밝히라는 시민사회단체의 지속적 요구에도 끝내 사업신청 계획서를 공개하지 않는 등 국내 운영자가 드러나지 않게 하려던 이유는 이 때문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관련된 리드림 의료그룹은 다단계판매업으로 업종 허가를 받은 ㈜헬씨라이프를 중심으로 의료법인 미래의료재단, 플로로놀제약, (주)SNC씨놀, ㈜보타메디, ㈜보타메디홍콩, ㈜비너젠, ㈜씨놀홍삼 등을 가지고 있다고 자사 홈피를 통해 홍보하고 있는 그룹으로, ‘씨놀’이 파킨슨, 치매, 중풍, 당뇨, 세포 노화에 치료 효과가 있다고 선전한다. 이 기업들은 씨놀의 주요 성분인 “항산화 물질 ‘해조 폴리페놀’은 2008년에 미국 FDA NDI 승인을, 2012년에 FDA 임상허가를 취득”했다고 공식적으로 홈페이지에 광고하고 있다. 그러나 FDA의 NDI는 ‘새로운 식품성분’에 대한 신고일 뿐 승인절차가 없으며, 이 신고를 했다고 FDA 로고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또 이 해조폴리페놀의 성분은 치약 성분으로 신고만 되었을 뿐이다. “UCLA, USC 등과의 임상시험을 허가받았다”고도 선전하고 있으나 국외 연구기관과의 임상실험은 허가받았다는 기업 측의 선전만 제시될 뿐 USC와 UCLA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았으며, 2012년 허가받았다는 임상시험의 결과는 밝혀지지도 않았다. 즉 녹지국제병원의 운영자는 안전성과 효능이 검증되지도 않은 씨놀판매 다단계회사로서 미래의료재단을 통해 다단계사업 가입자에게 건강검진의 혜택을 주고(의료법상 환자 유인으로 불법), 과장 및 허위광고를 통해 씨놀함유 영양제, 건강음료, 치약, 비누 등을 판매하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항의 행동

시민사회단체는 제주 영리병원의 실질적 운영권이 여전히 국내 의료법인에게 허가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시민사회단체는 녹지국제병원의 코디네이터들로 소개된 이들이 미래의료재단, 리드림(강남)성형외과에서 실습 인증 사진을 오렸던 자료들도 공개했다. 헬씨라이프 부회장 김성수는 특강을 통해 “제주에 녹지병원이 9월에 오픈, 녹지병원의 운영권을 미래의료재단이 갖게 되었다, 대한민국 최초 영리병원이 설립된다. 이 병원의 운영권을 이행우 박사님께서(미래의료재단 대표)갖게 된 것이다”라고 설명해 놓은 자료들을 공개했다.

시민사회단체는 국내 의료법인의 우회적 진출이 명백한 제주 영리병원 사업계획서 승인은 ‘제주특별자치도 보건의료 특례 등 조례 외국인 의료기관 개설 요건’을 위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주특별법에 의한 제주도 내 외국인 의료기관의 개설허가는 ‘제주특별자치도설치및국제자유도시조성을위한특별법’(이하 ‘제주도특별자치도법’) 307조와 그에 따른 ‘제주특별자치도 보건의료 특례 등에 관한 조례’(이하 ‘조례’)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제주 영리병원의 경우 그 개설 허가 심사의 원칙이 조례를 따르도록 특별법에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제15조(의료기관 개설허가 심사의 원칙) 도지사는 제주특별법 제307조에 따른 의료기관(이하 “의료기관”이라 한다)의 인력운영계획, 자금조달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다음 각 호의 사항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심사하여야 한다.
1. 의료기관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여부
2. 내국인 또는 국내법인이 우회투자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국내법인 또는 국내 의료기관이 관여하게 되어 국내 영리법인 허용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여부

관련 조례에 따르면 설립되는 영리병원은 인력운영계획, 자금조달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여부와 내국인 또는 국내 의료기관이 관여하게 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여부를 심사하게 돼 있다.

이러한 조항은 제주특별자치도법에 대한 많은 사회적 저항이 있었던 당시 국내 의료제도의 상업화나 영리화에 미치는 영향은 없도록 한다는 단서로 합의된 조항이기에, 매우 중요한 법적 근거에 해당한다. 이미 박근혜 정부 시기, 문제가 되어 사업계획서가 취소된 BK 성형외과의 우회 투자도 특별법에 따른 의료기관 설립 조례에 근거한 것이었다.

시민사회단체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전 정진엽 장관이 승인한 사업계획서 전체에 대한 재 검토가 필요하며, 조례를 위반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서는 취소처리가 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제주 영리병원의 경우 사업계획서의 타당성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검토 후 승인하는 절차로 돼 있지만, 타당성 심사의 근거가 되어야 할 조례를 위반해기에 정진엽 전 장관이 내린 승인은 그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비영리 의료법인에 의한 국내 ‘외국인’ 영리병원 운영이 합법화되면, 의료법인들이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 등에 우회적 영리병원을 설립할 때 이를 막을 수 있는 법제도가 무너지고 만다. 이 때문에 제주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사업 승인과 허가 조치는 외국인 영리병원의 예외적 허용이 아니라 국내영리병원의 우회적 설립의 물꼬를 트는 신호탄이 될 우려가 크다. 이번 제주 녹지국제병원 개원이 승인되면, 이는 인천, 대구, 부산 등 국내 8곳의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의 영리병원에 대한 국내 의료법인의 운영 허가의 법적 토대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미 병원협회가 제주도 녹지국제병원 사업 승인 과정에 대해 주장하고 있듯이 국내병원 역차별이라는 주장을 통해 전국적 영리병원 허가로 이어질 우려도 크다.

정치적 타이밍

국내 의료법인의 우회 진출 문제가 제기되자, 지난 1월 초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녹지국제병원 개원 허가를 중앙정부와 상의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여론의 압박과 헬스케어타운의 분양 사기 문제 등 지방선거가 앞두고, 도민 10명 중 7명이 반대하는 정책을 강행하는 것에 대한 정치적 부담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시민사회단체는 양대 노총과 진보정당 등과 함께 같은 달 9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가 제주 영리병원 불허 요구에 응답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은 “제주 영리병원은 그 첫발부터 도민의 의사와는 무관하고 민심을 거스르며 추진된 잘못된 정책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의 핵심적 의료적폐인 영리병원 정책을 폐기시키고, 국내 의료법인이 운영에 개입돼 있는 것으로 드러난 제주 녹지국제병원은 불허하라”고 요구했다.

사실상 이 모든 상황이 이미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제주 영리병원 도입은 그 추진 목적이 그러하듯이 싼얼병원으로 시작해 국내 성형외과 의사들의 법망을 피한 우회 투자까지, 애초부터 불법적이고 돈벌이를 위한 각종 투기가 개입될 수 밖에 없는 조건에서 시작됐다. 최근 노동 시민사회단체가 의혹을 제기한 미래의료재단 및 보타메디(주)까지 증권 찌라시들에서 제주 녹지국제병원이 악용되고 있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결과 결과다. 부동산으로 떼돈을 번 중국 부동산 재벌인 녹지그룹이 병원 운영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결국 부동산으로 돈을 벌겠다는 녹지그룹과 제대로 된 국가 보험제도가 없어 의료영리화와 상업화가 급속도도 진척되고 있는 중국의 의료붐을 이용한 국내 의료 브로커들의 합작 작품이 제주 녹지국제병원의 실체며 그것이 영리병원의 본질이다.

영리병원은 그 설립 자체가 의료의 본령과 본질에 어긋나 있다. 영리병원은 그 목적이 아픈 이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이용해 더 많은 수익을 내는 것이 목적인 병원이다.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제기한 내용대로 영리병원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문재인 정부에게 있다면, 그 방법은 많다. 우선 시민사회단체가 의혹을 제기하고 있으며, 제주도에서조차 MOU 체결을 한 바 있다고 인정한, 국내 의료진과 의료법인들이 우회적 진출 내용이 없는지 제대로 심사하고 이를 공개해야 한다. 박근혜 정권 시절 정진엽 전 장관이 승인해 준 제주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사업계획서는 그 내용 조차 아직 제대로 공개되고 있지 않다. 박능후 장관은 정진엽 전 장관이 승인해 준 제주 국제녹지병원에 대한 사업계획서 모두를 공개하고 어떤 법과 기준으로 승인했는지 밝혀야 한다.

지방자치법 제166조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에 관하여 조언 또는 권고하거나 지도할 수 있으며,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영리병원을 반대한다는 문재인 정부는 지방차지단체의 자치사무에 관한 감사 등의 권한을 활용하여 국내 의료법인과 관련된 의료인이나 임원이 제주도 소재 영리병원의 운영과 관련된 것에 대하여 지도 감독권을 행사 할 수 있으며, 조례에 규정된 외국 영리병원 허가에 대한 불허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이미 병원건물이 설립된 것이 문제라면 이를 비영리병원으로 전환시키거나 정부에서 매입하여 제주도와 도민의 건강을 위한 공공병원으로 만들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은 문재인 정부 하에서 국내 첫 영리병원이 개원하다는 제목의 기사를 만나길 원치 않을 것이다. 슬프고도 아름다웠던 1987의 민중항쟁의 역사가 끝내 승리로 귀결되지 못했던 것처럼, 그리고 그 결과 1991년 5월 수 많은 이들이 목숨이 사라져야 했던 것처럼, 역사는 낡은 적폐 청산 없이 나아갈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의료 적폐의 큰 몸통이 지금 제주에서 꿈틀거리고 기지개를 펴려 하고 있다. 이를 끊어내는 것, 이를 단호하게 잘라내는 것이 의료 적폐 청산의 핵심 과제다. ‘의료 영리화 반대’를 공약으로 내 걸고 당선된 문재인 정부가 그 공약을 실행할 가장 중요한 정치적 타이밍을 마침내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변혜진(건강과대안 상임 연구위원/보건의료단체연합 협동사무국장) / 의료와사회 2017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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