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처녀막이 아니라 질 주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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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컵이 8월 중 국내에 출시될 예정이다. 이에 대한 사전 조사 작업으로 여성환경연대에서 생리컵 사용자의 사용 경험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지난달 ‘월경문화 집담회’에서 발표했다. 생리컵 사용 경험자 중 80% 이상이 타인에게 추천할 의향이 있다고 할 정도로 만족도가 높았다(<시사IN> 제516호 ‘생리컵이 열어준 멋진 신세계’ 기사 참조). 하지만 “생리컵 사용 사실을 몇 살 터울의 언니에게는 말해도, 엄마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주변 어르신들 보면 ‘처녀막’에 대한 환상도 있고 질 안에 뭔가를 삽입하는 것 자체에 대한 터부가 너무 강하다” 같은 증언이 이어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개최한 생리컵 관련 전문가 자문회의에서도 주된 화두는 사용설명서에 ‘처녀막’ 파열의 우려가 있으니 청소년의 사용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문구를 넣느냐 마느냐였다.


‘처녀막 신화’를 거두어야 하는 이유

흔히 처녀막이라 불리는 질 주름은 질 입구를 일부 가리고 있는 굉장히 유연하고 탄력적인 조직이다. ‘처녀막’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처럼 질을 막고 있지도, 뭔가에 뚫려서 터지는 것도 아니다(그렇다면 생리혈이 어떻게 배출되겠는가). 모든 이의 얼굴 생김이 다른 것처럼 외음과 질 주름도 다 다르게 생겼는데 질기거나 부드럽거나, 처음부터 질 주름의 흔적만 있거나 아주 작은 구멍만 있거나, 아예 질 입구를 폐쇄한 경우도 있다. 자전거를 타거나 손가락을 삽입하다가 늘어날 수도 있다. 성기 삽입 이후에도 찢어지지 않을 수 있고, 찢어졌다가 다시 아물 수도 있다. 첫 경험에 출혈이 있는 여성은 50%도 안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처녀막 신화’와 관련된 안타까운 일화가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지원한 소아성폭력 사건 중 수회에 걸쳐 손가락과 성기 삽입 성폭력을 당한 아동이 있었다. 담당 의사가 외부를 관찰한 진단만으로 ‘처녀막이 남아 있기 때문에 성폭력의 증거가 없다’라고 의견서를 냈다. 이에 상담소에서 각종 논문과 자료를 제출하여 ‘소아청소년의 경우에는 질 주름이 약하고 탄력성이 있어서 손상에도 다시 아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판결에서 인정되었으며, 이 내용은 현재 성폭력 전담 의료기관 가이드라인에도 기재되어 있다.

첫 삽입 섹스에 대한 기억이 신화를 사실로 만들어버린다. 아플 것이라는 긴장에 충분히 윤활되지 않고, 힘 조절에 서투르고, 해부학적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경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처녀막이 ‘터져’ 피가 나오고, 처녀성을 주고받고, 쾌락을 위해서는 고통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신화를 이제 버릴 때가 되었다. ‘반드시 첫날밤에 터지게 해드린다’는 처녀막 재생술 광고를 읽다 보면 이걸 원하는 것이 여성인 건지, 여성혐오를 내재한 사회의 처녀성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한 건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처녀막의 존재 유무로 내 가치를 평가하려 든다면 그 사람을 차단하고 비웃으면 그만이지만, 모든 여성이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다음 세대의 성교육이 중요하다. 질 주름을 뜻하는 의학용어 ‘하이멘(hymen)’은 ‘막’을 뜻하는 그리스어 ‘humen’에서 왔다고 한다. 우리라면 고대 그리스인보다는 나은 해부학과 성교육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여성들이여, 처녀성 상실에 대한 실체 없는 두려움으로 탐폰이나 생리컵 사용을 저어하고 있다면 여성 건강 서적 <우리 몸 우리 자신>(또하나의문화, 2005)이나 탐폰과 생리컵 후기를 공유하는 여성들의 블로그와 유튜브 영상을 찾아 보자. 산부인과 검진이 처녀성을 앗아간다거나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두려움도 내려놓자. 작은 사이즈의 질경이나 질 초음파는 엄지손가락 굵기이기 때문에 충분히 몸을 이완시키고 윤활제의 도움을 받으면 검사가 가능하다. 소아청소년이 질염이나 외음 질환, 이물질, 외상 등으로 산부인과 진료를 받는 경우에도 필요하다면 면봉과 이경 등으로 내진을 한다.

 

윤정원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연구위원, 산부인과전문의)

* 이 칼럼은 시사IN  519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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