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안아키와 과잉진료, 비과학의 양극단

최근 ‘안아키’라는 자연치유를 주장하는 사이트가 논란이다. 현대 의학이 과잉진료를 일삼는다고 생각하고, 극단적인 자연치유를 주장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안아키의 반대는 과잉진료가 아니다. 그 둘은 같은 카테고리에 있다. 바로 ‘비과학’이라는 카테고리이다. 과학적 합의에서 벗어나는 것은 안아키도 과잉진료도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물론 과학이 백 퍼센트 진리를 담보해주진 않는다. 과학의 발전사에서 수많은 오류가 있었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뉴턴, 아인슈타인까지 오류가 없었던 과학자가 있었던가. 그렇지만 토머스 쿤의 <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보듯이 그동안의 오류들 덕에 패러다임의 교체가 일어나고 발전이 이루어졌다. 과학이 진리를 담보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진리의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노력을 한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의학도 과학적 방법론에 기반해 논의되어야 한다. 안아키 운영자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일반인들에게 여러 치료법을 시도했다. 수많은 성공 사례가 있으니 그것은 과학이며 참이라는 태도이다. 하지만 그가 행한 치료법은 방법론적으로 신뢰할 만한 검증을 거쳤다고 보기 힘들다. 물론, 의료인이 ‘사례 연구’를 통해 얻은 결론을 토대로 어떤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중을 대상으로 그 주장을 사실인 것처럼 얘기해선 안 된다. 그 주장은 다른 의료인과 전문가들 앞에서 먼저 얘기되어야 하고, 과학적 방법으로 충분히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검증 결과를 토대로 다른 의료인들과 합의를 이루어내야 하는 것이다. 안아키 운영자는 하나의 선택지를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선택지는 과학적 합의가 이루어진 다른 선택지와 무게가 다르다.

안아키가 극단적인 자연주의를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떤 이유에서 ‘자연에서 온 것은 모두 좋은 것’이라는 맹신을 갖게 된 것일까. ‘자연이 항상 옳다’라고 믿는다면 자연선택 되지 못한 개체의 탈락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공동체가 그런 모습은 아니지 않을까.

또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안아키 사태로 ‘자연주의’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약이나 검사, 수술이 다 나쁜 것이 아닌 것처럼, 자연주의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평소 건강한 아이가 단순 감기에 걸렸을 때 약을 쓰지 않는다거나, 체내 유익균을 질병 치료나 예방에 이용하는 것은 이미 과학적 합의가 이루어진 자연주의 방법이라 하겠다. 이것을 근거 중심 자연주의라 할 수 있다.

근거 중심 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과잉진료가 생길 수도 있고 안아키와 같은 극단적인 자연주의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근거 중심 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일까. 첫째 이유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아직도 크다는 것이다. 지금의 의료소비자들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면역학, 미생물학, 해부학 등 인체와 생명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 정보를 통합하지 못하고, 그래서 더 불안하다. 그러한 불안 때문에 좀더 많은 검사, 좀더 강한 치료법을 찾거나 닥터 쇼핑을 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과 의료소비자들의 불안을 줄이려는 의료인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마찬가지다. 나는 채 3분도 안 되는 진료 환경을 핑계로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거나 불안감에 공감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평소 신뢰를 가지고 상담할 수 있는 의료인이 있었다면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안타까운 마음도 생긴다. 비판만 하기는 쉽다. 그러나 미래에 비슷한 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재발 방지를 위한 의료 환경 개선 노력도 해야 할 것이다. 환자와 의료인이 서로 신뢰하고 양질의 정보를 주고받으며, 닥터 쇼핑 없이 꾸준히 치료해 나갈 수 있는 그런 의료 환경으로 말이다.

박지영
< 엄마의사 야옹선생의 초록처방전> 저자, ‘건강과 대안’ 웹툰담당 가정의학과 전문의
한겨레신문 왜냐면 2017년 6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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