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줄기세포 거품으로 누가 이익을 보고 있는가

줄기세포 거품으로 누가 이익을 보고 있는가?

생의학 연구 분야에서 한때 가장 논쟁 적인 주제 중 하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활용에 관한 것이었다. 1998년 미국의 톰슨 연구팀이 인간배아줄기세포를 만든 후 배아줄기세포는 재생의학 분야에서 ‘마법의 치료제’, ‘성배’로 부상했다. 실험 과정에서 파괴되는 인간 배아의 도덕적 지위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난치병 치료를 위한 획기적 기술이면서 엄청난 시장을 창출 할 수 있다는 기대 아래 임상 적용 가능성이나 사회적 쟁점들은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특히 2004년 체세포 복제를 통해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황우석 박사팀의 발표는 줄기세포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동시에 줄기세포를 둘러싼 거품이 형성되고 사회적 관심이 커지자 이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기업들이 등장했다. 국내에서는 일부 기업들이 검증되지 않은 성체 줄기세포를 수천만원 이상의 비용을 받고 시술해 논란이 되었고, 일부 국가에서는 줄기세포 시술 관광이 새로운 산업으로 부상했다. 성체줄기세포는 배아 줄기세포에 비해 윤리적 문제는 적지만 충분히 검증 되지 않은 치료제의 임상시험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황우석 사태 이후 배아줄기세포 연구에서의 기술적 진전과 우리나라 줄기세포 정책 변화를 간략히 살펴본다.

 

재생의학과 배아줄기세포

재생의학 분야에서 줄기세포연구가 주목 받았던 이유는 줄기세포가 파킨슨병, 척수손상, 뇌졸중, 심장질환, 당뇨병 등의 치료에 이용되는 대체 세포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난치병 치료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큰 의학적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줄기세포의 출처와 임상 활용 가능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지속되어 왔다.

배아줄기세포는 복제나 인공수정 시술 후 남은 잔여배아에서 얻을 수 있고 성체줄기세포는 제대혈이나 성체의 각 조직 등에서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분화 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줄기세포는 주로 수정란에서 분화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기 배아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논쟁의 대상이 된 것이다. 잔여배아를 이용할 경우 불임시술에 대한 규제, 잔여배아 관리의 문제가 중요하게 제기되는데 연구를 위해 필요 이상의 잔여배아를 만들 가능성 있다. 복제의 경우 다량의 난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공급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되어 왔다. 잔여배아나 복제를 이용하는 것 모두 실험과정에서 인간 배아가 파괴되는데 가톨릭이나 일부에게는 그 자체로 허용하기 힘든 연구이다.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 출처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배아줄기세포 그 중에서도 체세포 복제를 통해 얻은 배아줄기세포가 집중 조명을 받았다.

2005년 겨울 황우석 박사의 논문들이 조작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배아복제 논쟁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이 사건은 체세포 복제의 실현 가능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동물복제 경험이 있던 연구팀이 인간 난자를 2200개 이상을 사용했음에도 단 하나의 복제 줄기세포도 만들지 못한 것이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인간배아복제 연구는 크게 위축 되었다. 그러다 9년이 지난 2013년 5월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학 슈크라트 미탈리포프(Shoukhrat Mitalipov)박사 연구팀이 체세포 복제로 4개의 줄기세포를 만들었다. 국내 언론들은 우리가 하지 못한 일을 미국에서 해냈다며 연일 분석 기사를 쏟아내며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국제 과학계의 평가는 국내 언론의 흥분이나 아쉬움과는 사뭇 달랐다. 황우석 사건 이후 전 세계적으로 난자가 다량으로 필요한 배아복제 시도가 거의 없었고, 배아줄기세포의 임상 적용에 대한 한계들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2012년 복제를 통하지 않고도 배아줄기세포와 유사한 세포를 얻을 수 있는 기술인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를 확립한 일본의 야마나카 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기도 했다. 유도만능줄기세포가 대세인 지금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네이처(Nature)에 실린 어느 과학자의 발언은 전체 줄기세포 연구에서 배아복제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잘 보여준다.

복제 줄기세포에 대한 임상적 기대가 컸던 1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우선 배아복제를 위해서는 다량의 난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기술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미국 연구팀은 23~31살 여성 9명이 제공한 난자 126개를 사용했는데 이들에게 1인당 3000-7000 달러를 지불했다. 복제 성공의 또 다른 우려는 이번 실험이 인간개체복제의 실현 가능성을 더욱 높여 주었다는 것이다. 복제 줄기세포 확립에서 가장 어려운 단계가 배반포에서 줄기세포주를 확립하는 것인데,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배반포를 얻었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배반포 전후의 배아를 착상시키면 복제 인간을 만들 수 있다. 사실 복제를 통한 배반포 확보는 2001년부터 현재까지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이러한 우려를 의식해 미탈리포프 박사는 개체복제는 불가능하다며 차후에 그 증거를 밝히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복제나 유도만능줄기세포를 통해 배아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 기술적 조건은 마련됐지만 임상 활용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세계최초로 인간배아줄기포를 이용해 임상시험을 진행하던 미국의 제론 사는 2011년 임상을 중단해 줄기세포 학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후 일부 기업들이 임상시험을 진행하거나 준비하고 있지만 실제 치료에 사용될 수 있을지는 상당 시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기초 연구를 진행하면 할수록 배아줄기세포들이 가진 복잡한 특징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완전한 만능성도 없었으며 면역적, 유전적, 후성 유전학적 불규칙성들이 지속적으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배아줄기세포의 상업적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도 있었다. 2011년 10월 유럽사법재판소는 인간배아줄기세포의 파괴를 수반하는 어떤 생산 공정과 제품도 특허를 받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황우석 사태 이후의 정책 변화

2013년 미국 연구팀의 복제 성공 이후 국내 언론과 일부 이해당사자는 황우석 사태 이후 규제가 강화되어 경쟁력 있는 기술이 사장되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연구 부정행위로 인해 일시적인 신뢰 하락은 있었지만 줄기세포 육성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었고 관련 규제는 더욱 완화 되었다. 우리나라는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는 물론이고 잔여배아 줄기세포, 성체 줄기세포 연구를 공식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에 속한다. 즉 일정한 조건과 절차만 갖추면 모든 종류의 줄기세포 연구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 참고로 세계최초로 복제에 성공한 미탈리포프 박사는 당시 연방자금을 배아파괴 실험에 쓸 수 없다는 미국의 규정 때문에 실험실을 따로 운영하기도 했다.

황우석 사건이 채 정리되기도 전인 2006년 5월 정부는 범부처적인 사업인 <줄기세포연구종합추진계획>을 수립해 현재까지 추진하고 있다. 줄기세포연구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생명윤리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각종 인프라를 구축해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줄기세포 분화 메커니즘 규명 등의 기초연구와 체계적인 임상연구를 위한 임상시험 데이터베이스 구축, 줄기세포은행 설립 지원체제 구축, 생명윤리 교육 강화 등 연구 기반을 다질 수 있는 분야를 집중 지원하고 있다. 그해 가을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표결을 통해 체세포 배아 복제 연구를 계속 허용하기로 결정해 정부의 육성정책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복제 연구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난자 수급에 관한 내용도 정비했다. 불임 시술 후 남은 난자와 냉동보관 중인 난자를 연구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난자 제공에 대한 실비 보상 규정도 마련했다. 당시 일부 심의위원들은 황우석 사건, 난자수급, 배아파괴, 개체복제 가능성 등을 들어 동물 복제 연구를 충분히 진행한 후 허용 할 것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개정된 생명윤리법과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승인 아래 보건복지부는 2009년 4월 당시 차병원 정형민 박사가 신청한 체세포 복제 연구를 승인했다. 이 연구는 원래 3년 동안 체세포 복제를 통해 얻은 줄기세포로 치료제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로 1500개의 난자를 사용하겠다고 신청했으나 심의를 거치면서 최종적으로는 난자 800개를 사용하여 복제된 배아 줄기세포 1개를 만드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 연구팀은 복제를 위해 냉동보관 500개, 비정상 난자로 폐기될 것 100개, 체외 수정 후 남은 난자 200개 총 800개를 사용하였다. 황우석 박사 2200여개, 정형민 박사 800개의 난자 사용은 공식적 연구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할 수 있다.

 

규제 완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거품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4년 전후부터 최근까지 국내에서는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성체 줄기세포 치료가 성행하고 있다. 성체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에 배해 윤리적 문제도 적고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고 있지만 아직 임상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성체줄기세포 임상 논란은 2004년 4월 당시의 식약청이 세포치료제 실태조사를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식약청은 승인 없이 치료제를 판매한 4개의 업체를 고발했는데 모든 업체들이 동물실험을 하지도 않았고, 오염 관리 대책도 없었으며 심지어는 투여량조차 제대로 기록하지 않은 기업도 있었다. 그런데 당시 사건으로 규제가 강화 될 것 이라는 예상과 달리 식약청은 오히려 규제를 더욱 완화했다. 환자의 선택권 확대, 연구 활성화 명목으로 응급임상과 연구자임상에 대한 규정을 대폭 수정했다. 즉 안정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IRB만 거치면 환자에게 시술 할 수 있게 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당시 규제완화는 황우석 박사의 임상시험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2년 동안 응급임상 건수가 31건에서 118건으로 대폭 증가했고 검증되지 않는 시술을 받은 환자의 피해가 보고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4년 불법시술로 피해를 본 환자와 가족들은 히스토스템과 제주한라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였고 2010년 대법원 판결로 피해의 일부를 배상받기도 했다.

2010년에는 RNL 바이오의 줄기세포 시술이 논란이 되었다. RNL 바이오는 규제를 피해 일본이나 중국으로 줄기세포(?)를 몰래 가져간 후 현지 병원에서 한국 환자를 시술하는 형태로 사업을 진행했다. 국내에서는 유인 알선 행위가 불법이지만 이들 나라에서는 가능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두 명의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업체 측은 시술 병원이나 환자의 건강상태 문제라며 책임을 회피 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RNL바이오는 2007년부터 2010까지 약 8000여명의 환자에게서 1인당 1000-3000천만원을 받고 줄기세포 시술을 진행했다. 이 회사는 2013년 상장 폐지되었으나 시술 받은 환자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후 정부는 더욱 체계적으로 임상시험과 상업화를 지원하게 된다. 2011년 식약처는 바이오 의약품 시장 진입을 활성화하기 위해 자가 유래 세포 치료제의 허가 기준을 대폭 완화했고 2012년에는 줄기세포치료제의 허가를 기존의 의약품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규제 완화로 인해 2011년 ‘세계최초’로 줄기세포 치료제의 시판을 시작으로 작년까지 4개의 치료제를 시판 허가 했다. 임상시험도 세계 2위 수준인데 현재까지 38건의 임상시험이 승인받았다. 하지만 이들 줄기세포 치료제들은 규제 완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해외서는 팔 수 없는 국내용 제품들이다. 100여명도 안 되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후 시판된 제품이 국제무대에서 인정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현재까지 미국의 FDA는 단 한건의 줄기세포 치료제도 허가하지 않았다.

과학사에 남을 만한 대형 사건을 겪었음에도 우리나라 줄기세포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과거에는 유명무실 했던 IRB의 운영, 동의서 획득과 같은 절차적인 측면에서만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황우석 사건은 단순한 연구 부정행위 문제가 아니었다. 과학기술 활동을 경제성장의 도구로만 파악하는 편협한 정책의 실패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정부는 생명공학의 개념도 모호했던 1980년대 초반부터 강력한 육성정책을 펼쳐 왔는데 이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윤리, 안전, 절차 등의 다양한 쟁점들은 경제 성장의 장애물로 인식되어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었다. 최근의 규제 완화 흐름도 이러한 기조를 그대로 이어 받은 것이다. 과거에는 정부가 주로 연구 활동을 지원했다면 이제는 임상시험이 포함된 업체의 상업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전략이 과연 적절하고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성급한 임상의 위험성과 그로 인한 줄기세포 연구의 신뢰 하락은 기업과학자가 아닌 학계 소속 연구자들이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게다가 문제는 이러한 정책결정이 공익적 관점이 아닌 철저히 기업 중심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민사회의 무관심과 사회적 논의의 부재 속에서 우리나라 줄기세포연구의 미래는 일부 기업들에 의해 좌우될 판이다.

 

 

<참고문헌>

김병수 (2014) ,<한국 생명공학 논쟁>, 알렙

김병수 (2014) <<황우석 사태 이후의 배아줄기세포 연구>>, <사회과학연구> 26권 2호. pp.235-251, 국민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강양구 김병수 한재각(2006) <침묵과 열광:황우석 사태 7년의 기록>, 후마니타스

 

* 김병수 (건강과대안 연구위원, 시민과학센터 부소장)

건강과대안은 2015년 11-12월 호 <의료와사회> 에 실렸던 김병수 연구위원의 글을 온라인에 재 게재합니다. 황우석 사태 이후 국내 줄기세포 치료 연구를 둘러싼 문제를 정리하고 있는 이 글은, 최근 ‘제 2의 줄기세포 게이트’ 로 비화하고 있는 권력층과 부유층의 줄기세포 시술 사태를 목도하고 있는 즈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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