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보건복지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건강보험 개인 의료/질병 정보 유출 행위는 국민의 사생활 보호 권리 침해다

-환자와 보건의료인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건강보험 빅데이타 산업계 제공을 중단하라-

보건복지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9월부터 ‘(가칭)건강보험 빅데이터 활용 협의체’를 출범하고, 데이터 분석‧처리가 가능한 빅데이터 분석센터 총 16개소를 본격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는 건강보험 빅데이터 활용이라는 명목으로 국민의 개인 의료/질병 정보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본격화한 것이다. 정부가 건강보험 개인 의료/질병 정보를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그 결과 2015년 12월부터 ‘국가중점개방 데이터 공개’라는 명목으로 국민 개인의 진료내역, 약품처방, 건강검진 내역을 공개해 누구나 일정한 절차만 거치면 다운받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2016년 7월까지 794명이 이 자료를 다운받아 사용했다. 향후 협의체의 활동이 본격화되면 이러한 개인 의료/질병 정보의 탈법적 활용이 보다 본격화될 수 있다는 점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러한 정부의 건강보험 개인 의료/질병 정보 제공 행위는 현행 법 위반 소지가 있다. 현행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르면 개인의 의료/질병 정보와 같은 ‘민감 정보’는 개인에게 별도의 동의를 얻거나 다른 법률에 명시적 근거가 없으면 목적 외 사용이나 제3자 제공이 금지돼 있다. 그런데 정부와 공단, 심평원은 환자들이 병원에 가서 진료 받은 정보를 환자 개개인에게 어떠한 동의도 받지 않고 제3자에게, 그것도 영리기업이나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하려는 개인에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명백한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행위이다. 정부가 기업의 이익을 위해 현행법까지 어겨가며 국민의 소중하고 민감한 의료/질병 정보를 내어 주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현재 제공되고 있는 정보가 건강보험 사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수집‧취득한 정보를 ‘비식별 처리’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정보 보호법상 개인 정보가 아니고 그러기에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개인정보 보호법을 제멋대로 해석한 것일 뿐 법 취지에 어긋난다. 현행 개인정보 보호법상 “개인정보”란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서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을 통하여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해당 정보만으로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하여 알아볼 수 있는 것을 포함한다)를 말한다.”고 정의돼 있다. 단서 조항에 명시되어 있는 바, 해당 정보만으로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하여 알아볼 수 있는 정보는 개인정보 보호법상 개인정보이고 당연히 개인정보 보호법의 법 적용 대상이다. 현재 제공되고 있는 정보는 개인별로 ‘코호트’도 구축할 수 있는 형태의 데이터이므로, 당연히 개인 데이터이다. 주민등록번호, 나이, 이름 등을 기술적으로 알아볼 수 없게 처리했다고 하여도 이러한 개인 데이터는 여러 가지 다른 자료를 조합하면 얼마든지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재조합할 수 있다. SNS에 공개된 몇 가지 자료만으로도 개인의 ‘신상털이’가 쉽게 가능한 사회에서 정부의 기술적인 ‘비식별 조치’가 안전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억지다.

한국은 의료/질병 정보 보호 측면에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나라이다. 한국처럼 국민 모두에게 주민등록번호라는 고유식별정보가 존재하고, 대량의 데이터 유출 사고로 인해 개인 정보 데이터를 어떠한 형태로든 쉽게 얻을 수 있는 사회에서 건강보험 데이터의 공개는 매우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한국은 전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개인의 진료정보, 약물사용 자료, 건강검진 자료 등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대규모로 집적되어 있는 나라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는 건강보험 적용 및 이용을 위한 행정적 목적으로 이러한 의료/건강 정보 외에도 개인의 소득, 주소, 직장 등 방대한 양의 개인정보가 집적되어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공개된 건강보험 데이터와 다른 개인정보 데이터를 융합, 재가공하여 얼마든지 개인 의료/질병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

개인의 의료/질병 정보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숨기고 싶은 사생활의 영역이다. 민감정보 중에 민감정보인 것이다. 이러한 민감정보가 공개된 건강보험 데이터와 다른 데이터와의 조합으로 손쉽게 공개된다면 그 피해는 심각하고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민간보험회사가 다른 자료와 건강보험 데이터를 융합하여 재가공하여 특정 개인의 질병력을 알게 된다면 특정 개인의 보험 가업을 거부하거나 보험료를 올려 받을 근거로 악용될 수 있다. 성매개 감염병 치료에 대한 정보, 정신질환 치료에 대한 정보, 여성의 임신, 낙태 경험 등에 대한 정보가 재가공되어 공개됨으로써 가족이나 직장 동료 등에게 알려지면, 그로 인한 개인의 피해는 막대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의료/질병 정보일수록 사회적 낙인이나 배제 효과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정보 노출로 개인이 고용상의 불이익이나 집단적 왕따, 사회적 평판의 저하를 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최악의 경우 이러한 정보가 이러한 정보 취득을 이유로 협박 등을 행하는 범죄 혹은 사기에 이용될 수도 있다.

환자의 동의 없이 건강보험공단이나 심평원에 의해 제공된 정보로 상업적 이득을 취하는 업체나 개인이 많아질 것이라는 점도 문제다. 이는 개인에게 권리가 있는 의료/질병 정보를 개인의 동의 없이 활용한다는 점에서 강탈이고 도둑질이다.

개인 질병/건강 정보 보안에 대한 신뢰 붕괴는 의료 시스템 전반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큰 사회 문제다. 진료 과정에서 환자와 의사간 솔직한 정보 교환은 효과적 의료를 위한 기본 전제다. 환자는 내가 내밀한 얘기를 해도 이 정보가 노출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의사에게 많은 정보를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러한 정보가 건강보험공단으로 이전되었다가 건강보험공단이 민간보험회사나 개인에게조차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의사-환자간의 신뢰 관계가 무너지고 진료실 안에서 진실한 정보를 얻기 힘들어질 수 있다. 이는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의료 시스템의 총체적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환자와 보건의료인이 진료 과정에서 수집된 환자의 의료/질병 정보를 건강보험공단 및 심평원에 제공한 이유는 단지 건강보험 행정을 위한 것이다. 이 목적만을 위해서 환자의 개인 정보를 활용하고 정보 보안과 프라이버시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전제가 깔려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건강보험공단과 심평원은 지난 시기 환자 정보 보안과 프라이버시 보호와 관련하여 신뢰나 믿음을 주지 못했다. 조직 내부에서 환자 정보 유출 사고나 범죄가 빈발했다. 외부 해킹으로부터 안전한지 여부도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국민들은 건강보험공단이나 심평원이 자신의 의료/질병 정보를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단과 심평원이 나서서 환자 개인 정보를 기업과 개인에게 내주겠다고 하니, 이는 공보험인 국민건강보험 행정에 대한 총체적 신뢰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

보건의료기본법 제13조에 따라 “모든 국민은 보건의료와 관련하여 자신의 신체상·건강상의 비밀과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할” 권리가 있다. 의료인은 의료법 제19조에 의해 환자 정보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현행법을 넘어 환자 비밀 보호 의무는 전세계 의료인의 가장 기본적인 직업윤리이다. 이에 우리 보건의료인들은 환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의료인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환자의 동의 없이 건강보험 데이터를 제3자에게 제공하는 정부와 공단, 심평원의 행위를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막을 것이다. 행정부 가이드라인에 대한 가처분 소송을 포함한 행정소송 등 법적인 조치를 강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개인정보 보호법상 보장된 국민의 권리인 “개인정보의 처리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 ‘개인정보의 처리 정지, 정정·삭제 및 파기를 요구할 권리’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정부의 탈법 행위에 맞서자는 국민 행동도 호소할 예정이다. 공단과 심평원이 개인 및 기업에게 제공하고 있는 건강보험 데이터에 내 의료/질병 정보가 포함되어 있는지 알려달라고 요청하는 동시에, 내 의료/질병 정보는 공개되는 건강보험 빅데이터 자료에서 삭제해달라고 요청하는 옵트아웃(OPT OUT)캠페인 등 광범위한 국민 행동을 기획하여 실천할 것이다.

2016. 9. 8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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