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담배갑 상단 흡연 경고 그림 부착 의무화 방안은 원안대로 규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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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개혁위원들은 ‘국민 살해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것인가?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던 담뱃갑 상단 흡연 경고 그림 부착 의무화 방안이 규제개혁위원회(이하 규개위)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규개위는 지난 4월 22일 관련 방안을 심의해 올해 12월23일부터 담뱃갑에 부착될 경고그림을 담뱃갑의 상단에 배치하지 못하도록 결정하고 이 조항을 철회할 것을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규개위는 경고 그림을 상단에 표기하도록 강제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이는 핑계일 뿐이다. 국민 건강을 외면한 이번 규개위의 불합리한 결정은 규개위원들이 제대로 된 ‘규제’를 외면할 수 없는 담배기업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국민 건강보다 담배업계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규개위 결정은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담배의 건강 위해성과 관련된 경고 그림 배치의 기업 자율 결정을 철회할 것을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담배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건강 유해 물질이기에 세계보건기구는 담배규제기본협약(FCTC)를 만들었고, 한국도 2005년에 이를 비준했다. 이 협약에 비준하면 해당 국가 정부는 담배규제기본협약에 맞게 국내법을 수정, 보완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협약 제11조 1항에는 담배제품의 포장 및 라벨에 대한 규제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이에 따르면 담배갑에 포함될 경고문구 및 그림과 관련하여 ‘넓은 면적, 명시성, 가시성 및 판독성’을 충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 담배를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잘 보이는 곳에, 쉽게 위험성을 인식하도록 눈에 띄게 경고 문구 및 그림을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고문구란 그 위험성을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므로 이는 당연한 지침이다. 또한 원칙적으로는 담배의 주요 표시면들의 50% 이상의 크기 요건을 충족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2014년 4월 유럽의회와 유럽연합정상회의는 담배규제지침을 채택하여 담배갑 앞면과 뒷면의 65% 이상에 경고문구 혹은 경고그림을 그 상단에 넣을 것을 각국에서 법제화할 것을 의무화 하였다. 이처럼 경고문구 및 그림을 상단에 넣도록 의무화 한 것은 그 만큼 상단표시가 세계보건기구 담배규제기본협약에서 말하는 ‘넓은 면적과 명시성 및 가시성 및 판독성’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표시면의 30%에 정도밖에 안 되는 경고 그림을 표시하면서 위치마저 눈에 보이는 상단이 아닌 방식으로 기업 자율에 맡긴다면 그 어떤 조항도 충족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담배가 유해물질임을 자각할 수 있도록 한 담배갑 상단 흡연 경고문구 및 그림 배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우리는 2014년에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결정했던 경고 그림 규제가 규개위에서 ‘불필요한 규제’ 로 변화된 것에는 그에 따른 이유가 있다고 판단한다. 규개위는 관련 정책 심의 시에 담배업계 관계자를 불러 의견을 들었다. 담배제조회사가 모인 단체인 한국담배협회와 한국담배판매인회 중앙회 대표가 심의과정에 참여한 것이다. 혹자는 이해관계 당사자의 의견을 듣는 게 무슨 문제냐고 되물을 수 있다. 하지만 담배 규제 정책 입안 및 결정시 담배업계를 참여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은 국제사회가 강제하는 철칙에 가깝다. 이는 앞서 언급한 담배규제기본협약 제5조 3항에 명시되어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담배업계의 로비로 인해 정부가 국민 건강에 해로운 불합리한 결정을 하게 되는 어이없는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국제 사회의 약속인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규개위는 이러한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했다. 뿐만 아니라 규개위원들의 이해상충의 문제도 있다. 담배소송에서 필립모리스를 변호하고 있는 로펌과 관련된 위원이나 담배기업 사장에 공모한 경력이 있는 위원도 규개위원에 포함돼 있다. 이는 규개위의 이번 결정이 그 절차적 정당성마저 결여되어 있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결정 과정이 국제사회에 알려진다면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비난과 조롱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규개위가 규제 완화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민 건강과 안전과 관련된 필수적 사회 규제 도입의 장애물로 기능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그 정도가 심하다. 누가 보더라도 합리적인 이유 없이 기업 이익을 위해 국민 건강을 내팽겨쳤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재심을 요청했고, 규개위는 오는 5월 13일 경 관련 사안을 재심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규개위의 불합리한 결정에 대해 국민 건강을 대변하는 단호한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담배가격 인상으로 세수를 늘릴 때는 국민 건강을 제 1순위로 떠들던 보건복지부가 정작 실효성 있는 담배 규제 방안은 내팽개쳤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재심에서 그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러한 후안무치한 결정을 내린 규개위원 한 명 한 명은 국민 살해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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