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수저계급론, 해법은 ‘노동조합’에 있다

작년 한 해 금수저, 흙수저 등 이른 바 ‘수저 계급론’이 한국사회를 강타했다. 경제적 부와 사회적 자본을 가지지 못한 계층의 청소년과 청년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체념과 냉소의 표현이다. 이와 같은 담론이 유행한 것은 실제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펴낸 2015년 보고서 ‘소득분배 변화와 정책과제: 소득집중도와 소득이동성 분석을 중심으로’에 의하면, 계층 이동 없이 저소득층에만 머물고 있는 비중이 2008~2009년 전체 계층의 18.4%에서 2011~2012년 20.3%로 늘어났다. 빈곤이 고착화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오호영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이 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청년층 취업난의 원인과 정책과제’ 보고서에 의하면, 저소득층 가구의 자녀들은 상위권 대학 진학 비중이 고소득층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이에 따라 높은 임금을 받는 일자리에 취직할 가능성도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고소득층 가구 자녀의 1~10위권 대학 진학 비율은 저소득층 가구 자녀에 견줘 8.6배나 높았다. ‘개천에서 용이 나기는커녕 이무기로 살아남기도 힘들다’는 표현이 빈 말이 아니다.

계층 이동 사다리가 끊긴 사회는 희망이 없다. 불평등은 심화되고 활력은 사라진다.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 신뢰와 기대가 무너져 사회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게 된다. 한국 사회의 끊어진 계층 이동 사다리를 복원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이 문제의 현상만 볼 뿐 문제의 근본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서는 애써 눈감고 있다. 오히려 현상을 호도하여 기업과 부자들에 유리한 정책을 시행하려 한다. 정부와 여당이 연일 강조하고 있는 ‘청년고용’ 문제는 계층 이동 사다리 단절과 사회 불평등 심화의 한 단면이다.

중장년 세대가 청년 세대의 밥그릇을 빼앗기 때문도 아니고, 조직된 노동자가 미조직된 노동자를 희생양으로 삼았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미국에서 사회 계층 이동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을 분석한 연구들에 의하면, 소득 불평등, 사회자본, 분리 현상, 싱글 맘 비율, 고등학교 졸업률 등이 사회계층 이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불평등이 심하거나, 소득뿐 아니라 사회자본의 불평등이 심하거나, 계층 간 지역적, 사회적 분리 현상이 심하거나, 싱글 맘에게서 자라는 아이들이 많거나, 고등학교를 중도에 그만두는 아이들이 많으면 계층 이동 사다리가 끊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역시 미국에서 이루어진 한 연구에 따르면, 노동조합의 조직률도 사회 계층 이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 연구에 따르면,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은 지역에서는 저소득층 아이들이 중간 계층으로 상승할 확률이 높았고,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은 지역에서는 저소득층뿐 아니라 중간 계층 아이들도 계층 상승의 확률이 높았다. 이러한 양상은 노동조합 조합원인 부모를 가진 아이들에게 더 두드러졌다.

하나의 연구만으로 노동조합이 사회 계층 이동에 미치는 영향을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노동조합이 사회 계층 이동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다른 연구들에 의해서도 충분히 유추될 수 있다.

세계자본의 호위무사라고 할 수 있는 국제통화기금(IMF)조차도 2015년 자체 발간한 전문위원 보고서를 통해, 현 시기 불평등 증가와 최상층 계층 소득의 폭발적 증가는 최저임금 제도의 침식과 노동조합 조직률의 하락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국제통화기금 소속 연구자가 유럽 나라들의 지표를 가지고 분석한 결과, 최저임금 제도가 제 기능을 못하면 사회 불평등이 증가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감소하면 최상층 계층의 소득이 증가하고 사회의 재분배 시스템이 더 불평등해졌다. 금융 규제를 완화하거나 최상층 계층에 대한 한계 세율을 낮추면 사회가 더 불평등해졌다.

이들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결론은 단순하다. 계층 이동 사다리를 복원시키기 위해서는 소득 불평등과 사회자본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최저임금 제도를 강화해야 하고, 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여야 하며, 금융 규제를 강화해야 하고, 최상층 계층에 대한 한계세율을 높여야 한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애써 이러한 근거와 데이터를 무시하고, 노동자 해고를 더 쉽게 하는, 비정규직을 더 늘리는, 그로 인해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는 노동개악을 추진하고 있다. 청년고용 문제와 사회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 방안을 해결책이라고 우기며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아니더라도 계층 이동 단절 문제와 사회 불평등 문제에 공감하면서도 이 문제 해결에 노동조합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실증적 데이터를 애써 무시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사회 노동조합은 이미 기득권화되어 있어 그러한 역할을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한 분들은 한국의 노동조합이 비민주적이고 관료화되어 있다는 말도 꼭 덧붙인다.

그러나 그러한 분들에게 되묻고 싶다. 한국의 노동조합이 한국의 다른 조직보다 그렇게 더 이기적이고, 비민주적이며, 관료적이라는 근거는 있는 것이냐고. 한국의 노동조합이 한국의 대표적 전문가 조직인 대한의사협회나 대한치과의사협회와 견줘 그리 더 문제가 되는가. 한국의 노동조합이 지성의 산실이라고 하는 한국의 교수 집단들보다 그리 더 문제가 되는가. 한국의 노동조합이 입만 열면 ‘민주, 민주’ 하는 정치 집단들보다 그리 더 문제가 되는가.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한국의 노동조합이 한국의 다른 이해집단 혹은 정치집단에 견줘 그리 더 문제가 되는 수준은 아니라는 게 개인적 의견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다는 게 솔직한 필자의 심정이기도 하다.

노동조합은 그래도 최소한의 민주적 장치와 지도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작동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조합이 다른 나라 노동조합에 견줘 더 이기적이고 비민주적이며 관료적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계층 이동 사다리 복원과 사회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강화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의 역할을 시야에 두지 않는 사회 불평등 문제 해법은 반쪽짜리다.

이러한 주장에 흔쾌히 동의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분들은 자신이 색안경을 끼고 노동조합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다른 집단에 견줘 더 엄격한 도덕성과 기준으로 노동조합을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이상윤(건강과대안 책임연구위원) /건치신문 2016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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