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평가

민간 의료기관 공공성 강화 정책인가, 의료 민영화 정책인가?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전부개정법률안이 지난 201112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어 201221일 공포되었다. 사안의 중요성에 견줘 다소 조용히 통과되었으나, 이 법률은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정의와 대상을 획기적으로 전환하였다는 점에서 향후 법률 통과에 따른 제도 및 정책 변화에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새로 공포된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은 공공보건의료 체계를 소유 중심에서 기능 중심으로 개편하고, 공공보건의료 수행기관을 민간까지 확대하며, 필수 보건의료서비스 강화를 위한 의료취약지 및 공공전문진료센터 지정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공공보건의료등에 관한 정의와 관련해서는,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정의를 국공립 설립 및 소유의 관점에서 기능관점으로 재정의하였다. 그리고 공공보건의료 수행기관을 정의하여 민간의료기관이라 하더라도 법률이 정하는 공공보건의료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의료취약지개념도 도입하였다. 주기적으로 국민의 의료 이용 실태 및 의료자원의 분포 등을 평가하고 의료서비스의 공급이 현저하게 부족한 지역을 의료취약지로 지정고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시도지사는 의료취약지에 있는 의료기관을 의료취약지 거점의료기관으로 지정하여 지원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공공전문진료센터개념도 도입하였다. 수익성이 낮아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전문진료 분야나 지역별 공급의 차이가 커서 국가의 지원필요성이 있는 전문진료 분야 등에 대하여 공공전문진료센터를 지정지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외에도 공공보건의료 지원센터 및 지원단의 설립 근거 마련 등 그간 공공보건의료 체계와 관련된 사항을 전환, 보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의료취약지 사업, 공공전문진료센터 사업, 공공보건의료 지원센터 및 지원단 등은 그간 법령 없이 정부 예산사업으로 수행하던 것에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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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2010. 5. 12일자.


현재의 공공보건의료기관의 수와 재정으로는 증가하는 공공보건의료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민간의료기관 등 이미 존재하는 보건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공공보건의료를 강화하려 한다는 점에서 이 법률은 일면의 긍정성을 가지고 있다.


신종 플루와 같이 공중의 건강에 위해가 되는 감염성질환이 창궐하거나, 국가적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현재의 공공의료기관 수와 능력으로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은 우리 모두 체험을 통해 알고 있다. 신종 플루가 창궐하던 지난 2009, 우리는 정부 당국의 정책에 따라 움직여주는 공공의료기관이 태부족인 상황에서, 정부가 민간의료기관을 어르고 윽박질러 감염 관리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 정부는 재정적인 인센티브를 통해 민간의료기관이 정부 정책에 동참하도록 할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상당한 재정 지출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는 고스란히 민간의료기관을 살찌우는데 쓰여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잘만 활용한다면 소위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지렛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이 법의 긍정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심히 우려되는 지점이 있어, 향후 제도 수립 및 집행 과정을 면밀히 감시하고 이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


가장 큰 우려 지점은 정부가 향후 공공보건의료기관 확충에 대한 전망을 포기하고, 이를 위한 알리바이로 이 법을 활용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는 민간위주의 의료공급체계와 국가주도의 재정관리 체계를 특징으로 한다. 의료기관의 공급 측면에서 2010년 말 기준으로 공공의료기관은 전체 의료기관의 6.1%, 병상 수는 전체의 9.5%에 불과하여, 민간이 의료시설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급한 정책은 공공의료기관을 확대하는 것이다. 효과적인 의료 정책 추진의 관점에서도, 적절한 의료비 지출 통제의 관점에서도 공공의료기관 확충의 과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청사진 없이, 민간의료기관을 활용하여 공공보건의료 사업을 펼치겠다고 하면, 당연히 이를 정부의 꼼수로 여길 이들이 없을 수 없다.


더 이상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하지 않고, 민간의료기관에 공공보건의료사업을 떠맡겨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면 오히려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일각의 우려처럼, 이 법안을 빌미로 그나마 있던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오히려 민간의료기관에 대한 지원은 늘려 공공의료기관을 고사시키려 한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이와 같은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이는 명백한 민영화 정책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의료기관 민영화 정책은 단순히 공공의료기관을 민간에 팔아치워 버리는 것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공공의료기관의 운영을 민간에 위탁하거나, 민간의료기관과 계약하여 특정 공공보건의료 서비스를 공급하게 하거나, 민간의료기관에 다양한 형태의 보조금을 주어 공공보건의료사업을 하게 하거나, 바우처 형태로 민간의료기관이 공공보건의료 서비스를 공급하게 한다면, 이 모든 것이 다 민영화 정책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현재의 공공의료기관 사업과 재정을 줄여 이를 민간의료기관에 넘기려 한다면, 이는 명백히 광의의 의료 민영화 정책이 된다. 이러한 상황이 연출된다면 결과는 뻔하다. 정작 공공보건의료사업 본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채 국민의 세금으로 민간의료기관의 배만 불리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공공의료기관 확충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하면서, 그 중간 단계로 이 법을 활용하여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 반대가 된다면 이 법은 희대의 의료 민영화추진법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전제되어야 할 것은 민간의료기관에 대해 이루어지는 재정적, 행정적 지원이 민간의료기관의 이윤 창출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적절한 감시, 감독, 평가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뀐 법 제17조에서는 공공보건의료 수행기관의 준수사항을 규정하고 있긴 하다. 지역 주민의 참여를 통한 사업계획 수립, 공익성에 기반한 성실한 사업 운영, 투명한 재정 운용과 회계 공개를 그 원칙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이 실제에서 작동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관리와 감독이 필요하다.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각종 전문질환센터에 대한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지원이 정작 공공보건의료사업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민간의료기관의 주요 수입원으로 전락하였다는 비판이 있다. 현재 정부 예산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권역별 전문질환센터, 권역별 심뇌혈관질환센터, 권역별 재활병원 등이 과연 수익 사업 위주의 진료를 탈피하여, 양질의 공공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논란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전문적이고 치밀한 사업 계획 평가, 과정 평가, 결과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특히 이러한 사업이 병원 경영진의 일방적 추진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구조, 지역사회, 시민사회, 관련 노동조합의 개입과 감시를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구조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개정 법률은 너무 많은 사항을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법 집행에 있어 정부의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될 여지가 너무 많다. 의료취약지 거점의료기관 지정의 기준, 방법 및 절차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도록 하였는데, 의료취약지 거점의료기관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유형, 무형의 재정적, 행정적 지원을 받게 되는 만큼, 이에 대한 최소한의 지정 기준을 법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일각의 주장처럼 최소한 개인병원이 아닌 비영리법인 의료기관만이 의료취약지 거점의료기관 지정의 자격을 갖도록 법에 명시될 필요가 있다.


공공보건의료사업의 시행결과 평가 역시 평가의 세부 기준, 방법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도록 하였는데, 이 평가 결과는 매우 중요한 사항이니만큼 법에 그 기준 등이 명시될 필요가 있다.


특히 문제의 소지가 많은 조항은 제16의료기관과의 업무 협력 및 협약 체결과 관련된 조항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공공보건의료와 관련한 사업 수행 및 기술 지원 등에 관한 업무를 추진할 때 의료기관과 협력할 수 있고, 보건복지부장관 또는 시·도지사 및 시장·군수·구청장은 공공보건의료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필요하면 의료기관과 인력 및 기술 등의 지원에 관한 협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업무 협력 및 협약 체결의 내용이 너무 포괄적이고 구체적이지 않다. 이 조항에 의거하면 지방자치단체의 공공보건의료사업을 통째로 민간의료기관에 위탁하여 운영할 여지가 있다. 더구나 협력과 협약이 가능한 민간의료기관의 자격조건에 대한 구체 규정이 없어 자격 조건이 되지 않는 민간의료기관에 국민의 혈세를 낭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규정도 구체적으로 법에 명시될 필요가 있다.


개정된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은 그간 법적 규정이 없었던 정부 예산 사업 영역에 법적 근거를 부여하고, 공공의료기관이 태부족인 한국적 현실에서 필수불가결한 공공보건의료사업을 벌여나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의 의지와 개입 여부에 따라, 영리만 추구하고 부실하기까지 한 민간의료기관에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게 만들 법이 될 수도 있고, 더 나쁜 경우 공공의료기관을 고사시키고 의료 민영화를 촉진할 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시민사회 진영과 노동조합은 이 법의 시행령, 시행규칙정 과정에 개입해야 하고, 향후 법 제정에 따른 정책 추진과 사업 집행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감시가 필요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향후 정부가 공공보건의료사업을 민간의료기관에만 맡겨 수행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공공의료기관 확충에 대한 요구와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상윤(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정책위원/건강과대안 책임연구원)


*이 글은 복지동향 2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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