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종 인플루엔자, 유독 멕시코에서 창궐하는 이유

신종 인플루엔자 유행이 잦아드는 듯하더니 다시 감염 발생 소식이 들리고 있다. 지난 4월말부터 멕시코를 중심으로 발생한 ‘돼지 독감’으로 불린 이 질병은 전 세계로 확산됐고 지금도 감염인을 낳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지난 5월17일까지 39개국에서 8480명의 감염인이 발생했다. 한국에도 지금까지 3명의 감염인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감염인 발생이 한풀 꺾이고 있지만 세계 보건당국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신종’ 바이러스의 유행


이번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돼지 독감, 조류 독감, 인간 독감 바이러스 유전자가 혼합된 ‘신종’ 바이러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보통 독감 바이러스는 해당 종을 넘어 전염되지 않는다. 그런데 간혹 유전자 변형이 일어나 조류나 돼지 독감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감염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사람에게 감염된 동물 독감 바이러스가 인간 사이에 감염되면 사건이 커지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감염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감염의 결과도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상황을 종합하면, 이번 바이러스의 감염력과 치사율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 보건 당국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적절한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조류 독감의 유행이 확인되면서,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 초창기에는 아시아 몇몇 나라의 문제로 치부되었으나 대륙 간 전염의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전 세계적인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인식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세계보건기구이다. 세계보건기구는 2005년부터 조류 독감 등 동물 기원 독감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세계보건기구는 이러한 독감 바이러스가 빈부격차, 남반구와 북반구,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모든 이들에게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몇몇 전문가들은 1918년 독감 유행보다 더욱 위험한, 전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재앙이 올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바이러스 확산과 국가 안보 이데올로기 유포


이러한 주장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바이러스에 대한 과다하고 조작된 공포는 거대 국제 기구, 초국적 제약회사, 정부 등이 예산을 마련하고 국민을 관리하기 위해 개발해낸 과다광고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소위 ‘음모론’이다. 이러한 주장은 과학기술, 국제기구, 제약회사 등에 대한 불신이 강한 제3세계 국민 및 생태주의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음모론은 과학적 설득력이 약하지만 그러한 음모론이 나온 배경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모든 종류의 음모론은 주류 집단이 이야기하는 것 이면에 숨은 진실의 한 조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동물 기원 독감 바이러스 문제도 마찬가지다.


국제기구 및 미국 등 선진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이러한 음모론이 번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 바이러스에 대한 위험은 국제기구와 선진국 정부가 앞장서 유포하고 있는데, 이는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미국 정부는 이러한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대응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있어 인권 운동 그룹의 신경을 건드린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바이러스의 유행이 국가 안전에 크나큰 위협이 될 수 있고, 생물학적 테러의 도구가 될 수도 있으므로, 유사시에는 엄격한 이주 제한, 이동과 여행의 제한, 국경지대 방어, 강력한 감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위험에 대한 강조 및 공포 조장 전략은 국가 안보라는 허구의 가치를 위해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정책을 정당화하는 것이라는 의심을 살 만하다. 특히 미국 정부는 ‘국가 안보’라는 이데올로기를 위해 ‘테러의 위험’을 과장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 이것도 그러한 정책의 일환이라는 의심을 사는 것이다.


감염인이 아닌 제약회사를 위한 치료제


다른 한편으로는, 감염이 발생할 때 선진국 정부가 대개 교역이나 이동을 제한하기 때문에 제3세계 국가 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가할 수 있어 불만이 생긴다. 이러한 바이러스 유행은 일반적으로 제3세계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바이러스 유행과 함께 ‘봉쇄’가 시작되면, 해당 국가 경제는 치명적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럴 경우 제3세계 국민들은 별로 심각하지도 않은 문제를 가지고 선진국이 오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선진국 정부가 말로는 ‘전 세계의 위험’이므로 공동 대처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국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책의 일환으로 백신 및 치료제 확보가 강조됨에 따라 불만과 의심은 더욱 커진다. 세계보건기구는 각국에 충분한 양의 치료제를 확보하라고 권고하지만 정작 제3세계 국가는 비싼 약가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말 그렇게 ‘전 세계 인류를 위협하는 문제’라면 유행하고 있는 지역에 무상으로 혹은 싼 값으로 약을 공급해 더 이상 유행이 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윤리적이다. 그러나 제약회사도 국제기구도 그러한 정책은 펴지 않는다. 이 역시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적 행태다. 게다가 바이러스 유행이 생길 때마다 해당 제약기업은 약품 판매와 주가 상승으로 엄청난 부를 챙기는 현실이다.


음모론이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과 별개로 독감 바이러스의 위험은 실존한다. 문제의 ‘크기와 심각성’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지만 문제의 ‘존재’ 자체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법이 현재와 같은 구도에서 이루어진다면 그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기 힘들다. 오히려 음모론만 키울 수도 있다. 현재의 방식은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진단하지 못하고 있고, 그에 따라 해법도 근본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를 유행시키는 사회경제적 요인을 봐야


독감 바이러스는 늘 인류와 더불어 존재해 왔다. 그리고 독감 바이러스는 늘 신종 바이러스를 만든다. 그러므로 신종 바이러스의 발생 자체를 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근 문제되고 있는 독감 바이러스는 종간(種間) 감염을 일으키는 신종 바이러스라는 데 문제가 있다. 동물 독감 바이러스와 인간 독감 바이러스가 복잡하게 혼합되면서 그 위험성이 더 커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독감 바이러스 위험의 원인을 기업화된 축산업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기업화된 축산업은 좁은 공간에 많은 동물을 키워 감염의 위험성을 높이고, 배설물을 사료로 쓰는 등 질병 발생에 취약한 조건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기업화된 축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지 않는 한, 유행을 예방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번에 유행하고 있는 신종 인플루엔자도 미국의 대표적 축산기업인 ‘스미스필드’사의 돼지 사육장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 주장을 과학적으로 확인하기는 쉽지 않지만, 최근 축산기업의 행태가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과 유행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늘 존재하는 바이러스의 위험을 더욱 크게 만드는 요인 중 사회경제적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대부분의 독감은 발생하더라도 조기에 발견해서 적절히 대처하면 대규모 확산을 예방할 수 있다. 그런데 사회경제적 취약지역에서 독감이 발생하면, 발견도 대처도 제대로 못하게 되어 문제가 커지게 된다. 의료 시스템이 불완전한 나라에서 환자를 조기 발견하기란 힘든 일이고, 환자를 확인하더라도 비싼 약을 사지 못해 제 때에 투여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치료되지 못해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때문이다. 이번 신종 인플루엔자가 멕시코에서 대유행한 이유는 나프타(NAFTA) 이후 붕괴된 멕시코의 의료 시스템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은 그래서 이번 인플루엔자를 ‘나프타 독감’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제 인식과 해결 노력에 있어 과학에 대한 맹신은 경계해야 할 요소이다. 신종 인플루엔자의 확산 자체가 과학의 불확실성을 웅변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우리는 신종 인플루엔자 확산을 통해 과학의 불확실성에 대해 깨달아야 하고, 우리가 안전 대책을 충분히 세우고 있는 것처럼 과장해서는 안 된다. 신종 인플루엔자로 인한 위험이 얼마나 커질 것인지, 향후 또다시 이보다 더 큰 위험이 도래할 것인지 등에 대해 ‘확실히’ 예측할 수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과학기술에 의한 안전을 맹신할 때 자연은 인간의 예측을 넘는다. 우리가 막아야 할 것은 자연 자체가 아니라 인간으로 인한 문제들이다.


이윤추구보다는 근본적 해결이 필요


신종 인플루엔자 문제는 단순히 생물학적 바이러스의 위험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바이러스의 위험을 더욱 극단적으로 만드는 것은 축산기업, 제약기업, 그리고 그러한 기업에 친화적인 선진국 정부와 국제기구 등의 권력 관계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의 해결 방식이 오히려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거대 축산기업이나 제약기업에 게 도움이 되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그런 측면에서 백신과 약품에 의존하는 방식보다는 적절한 감시 체계, 신속한 대응 체계 등 하부 구조를 마련하는데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그리고 백신과 약품은 강제실시나 복제품 생산 등을 통해 저렴하게 공급되어야 하고, 이를 국가가 관할하여 이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위험에 대한 과다한 공포로 그 효과조차 입증되지 않은 예방 및 관리 대책을 마련하면서 개인의 권리를 제약하거나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자본의 탐욕에 족쇄를 채우고 국제사회 및 일국적 차원에서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는 권력 관계를 바꾸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상윤(건강과대안 상임연구원) / 5월20일자 인권오름 및 5월21일자 프레시안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