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촛불 다시 부를 ‘30개월 쇠고기’ 선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현대판 ‘떡 할머니와 호랑이’ 이야기라 할 만하다. 미국 정부는 호랑이처럼 “할멈, 할멈,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며 끊임없이 선물을 요구했다. 노무현 정부는 에프티에이 협상 시작도 전에 쇠고기, 스크린쿼터, 자동차, 의약품이라는 네 가지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4월 첫 방미 순방에 맞춰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개방에 합의해 한-미 정상회담의 선물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할머니의 바구니에 담긴 떡이 모두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호랑이의 게걸스러운 식탐은 멈추지 않았듯이, 미국의 탐욕스러운 선물 요구도 끝이 없다. 최근 미국 상원과 하원에서 한-미 에프티에이 비준안을 처리하기 위한 통과세로 쇠고기와 자동차를 추가적인 선물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촛불시위의 성과로 수입이 잠정적으로 중단된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를 수입하라는 것이다. 미 정부와 의회는 국제수역사무국 기준을 따르지 않으면 한-미 에프티에이 비준이 불가능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특히 한-미 에프티에이 상원 통과의 열쇠를 쥔 맥스 보커스 재무위원장은 지역구인 몬태나주가 주로 30개월 이상의 나이 든 소를 많이 도축하고 있기 때문에 더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반면 일본, 중국, 대만, 홍콩 등의 동아시아 나라들은 국제수역사무국 기준을 전혀 따르지 않고 있다. 대만과 홍콩은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만을 수입하고 있으며, 모든 연령에서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을 제거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완전히 금지하고 있으며, 일본은 여전히 20개월 미만으로 수입 조건을 제한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올해 초 미국육류수출협회와 미국축산육우협회는 일본과 수출 조건 협상에서 일단 20개월 미만이라는 제한 조건을 30개월 미만으로라도 완화해 달라고 미 농무부에 요청했다. 미국 축산업계는 세계무역기구 제소나 무역보복을 요청하지 않았을뿐더러 국제수역사무국 기준이라는 자신들의 원칙에서도 후퇴했다.

그러나 한국엔 이런 관용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 미국이 요구할 30개월 이상 쇠고기 선물의 명분은 지난 14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주례연설을 통해 발표한 다우너 소 도축 금지와 4월 말부터 시행하기로 했다가 최근 다시 연기된 ‘강화된 사료규제 조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이 방안은 쇠고기와 한-미 에프티에이는 별개라는 언어의 마술까지 부릴 수 있는 묘수로 제시될 것이다.

이런 조처에도 미국의 검역체계는 여전히 광우병을 차단하기에는 심각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 미국은 도축장에서 정상 소라는 판정을 받으면 광우병 검사를 하지 않으며, 자연 폐사 소에 대한 광우병 검사도 충분하지 않다. 또한 강화된 사료 조처가 시행되더라도 30개월 미만의 모든 광우병 위험물질과 30개월 이상의 눈·머리뼈·등뼈·등배신경절 등의 광우병 위험물질은 사료 원료로 사용될 수 있다.

문제는 30개월 이상 쇠고기까지 선물로 주고 나면 우리의 떡 바구니엔 남아 있는 떡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국과 에프티에이 체결을 앞두고 있는 광우병 발생국 캐나다와 유럽연합산 쇠고기의 수입을 막을 명분도 없게 된다. 옛 동화 속 호랑이는 떡을 다 빼앗아 먹은 뒤 할머니의 팔과 다리와 몸통을 차례차례 먹어 치우고는 집에서 할머니를 기다리는 오누이까지 잡아먹으려고 덤볐다. 현대판 동화에서 할머니와 오누이가 모두 살 수 있는 묘안을 찾으려면 민주공화국의 주인들이 다시 촛불을 밝혀 열공을 해야 할 것 같다.

한겨레신문 4월 1일
박상표(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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