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환자는 진료받고 설명받을 권리가 있다

며칠 전 국가인권위에서 주최한 ‘의료기관 이용자 권리 보호 실태 및 개선방안’ 에 대한 토론회에 참석했다. 인권위가 매년 시행하는 인권상황 실태 조사 중 ‘환자권리’에 대한 연구 결과 보고회 자리였다.

보고에 따르면 ‘환자가 진료를 요구했을 때, 의료인은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48.4%로 가장 많았다. ‘진료받을 권리’를 자기 권리로 알지 못하는 의료 이용자가 반이나 된다는 것이다. 권리임에도 권리로 인식하지 못하는 순위 두번째는 ‘설명받을 권리’였다. ‘환자는 병명, 병의 진전 예측, 진료계획, 치료와 수술 내용, 약의 이름과 작용 및 부작용, 필요한 비용 등에 대해 납득될 때까지 설명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의료법 등에 명시된 권리를, 환자들은 권리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자세한 설명보다 더 많은 환자 보느라 바쁜 구조


하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병원협회와 의사협회가 의료 이용자의 권리보장을 곧 의료공급자에 대한 통제나 의사들의 권리를 빼앗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병협은 환자의 권리를 높이기 위한 여러 제도적 장치들로 제안된 병원평가제도의 확대 및 공개, 개인질병정보 보호 및 이용에 대한 법제도 정비, 환자당 의료인력수를 늘리기 위한 건강보험의 확대, 병상허가제 도입과 영리병원 허용반대, 의사의 책임을 높이기 위한 주치의제도 등의 법적 제도적 장치에 대해 빠짐없이 반대했다. 또한 문제는 병원 경영난이고 환자의 권리를 지금보다 더 존중하면 병원이 문을 닫아야 한다는 식의 태도로 일관했다. 의협 또한 의사가 환자보다 사회적 약자라는 등, 장시간의 노동으로 인해 환자들에게 설명할 시간조차 없다는 등의 변명만 늘어놓았다.

환자권리에 대해 조사하고자 의료기관 이용자들에게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첫째는 진료비가 너무 비싸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제발 설명을 좀 해달라는 것이다. 사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봐도 이 두 가지만 해결돼도 바랄 게 없다는 답변이 돌아올 것이다.

이 두 가지 불만은 한국 보건의료 시스템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절반을 겨우 넘는다는 것, 90% 이상이 민간병원에 전적으로 맡겨져 있는 의료공급시스템, 의료 인력의 지역적·병원별 편차가 너무 심하다는 것 등이다. 더욱이 현행 시스템은 진료의 질과 상관없이 환자를 많이 보면 볼수록 돈을 더 버는 의료비지불체계(행위별수가제) 때문에 의료인들이 환자에게 설명이나 진료를 제대로 하기보다는 더 많이 환자를 보는 데 집중하게 돼 있다.

중소병원들의 도산을 이야기하면서 병원협회는 ‘경영난’을 운운하지만 그 경영난은 병원들의 과잉경쟁으로 생겨났다. 또 그 부담은 병원이 지는 것이 아니라 ‘과잉진료’로 환자에게, 그리고 인건비 축소를 위한 ‘구조조정’ 으로 의료인력에게 전가되고 있다. 따라서 의료기관 이용자들의 ‘진료받을 권리’와 ‘설명받을 권리’는 병원의 이윤과 대립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병원의 이윤논리·무한경쟁 통제해야


의사협회가 환자들의 권리가 자신들의 권리와 대립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환자들의 권리가 의사들의 권리와 모순되어서는 안된다. 의사들이 선의의 대리자’ 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환자가 아니라 병원의 이윤논리를 앞장세워서는 안된다.

환자 권리의 기본은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다. 당장 코앞으로 닥쳐온 경제위기와 대규모 실업의 시기에 아프면 병원에 가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는 누가 보장해야 할까?

이용자 권리 보장을 위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고 의료민영화를 막아야 할 주체는 또한 누구인가? 결국 정부가 나서서 병원자본의 이윤논리와 무계획적 무한경쟁을 통제해야 한다.


변혜진(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국장,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연구위원)
내일신문 2009-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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