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민영보험 살리려다 건보 체계 무너진다

가입자 진료비 지원에만 치중
공공 보장성 확대 관심 사라져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73%가 민영보험에 가입해 있다. 한 해 민영보험료만 10조원이 넘는다. 건강보험만으로는 의료비 해결이 되지 않으니 많은 사람들이 민영보험에 가입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민영보험은 공적 규제를 거의 받지 않는다. 우선 보험료 대비 지급률이 낮다. 민영보험 천국인 미국도 단체형 의료보험 지급률은 75%로 하한선이 정해져 있다. 실제 지급률은 80%가 넘는다. 유럽은 80~85%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급률에 대한 규제가 아예 없다. 지급률도 60% 정도다. 보험료를 100만원 내면 평균 60만원만 돌려준다는 이야기다.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상품이 표준화돼 있지 않은 점도 문제다.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 아일랜드 등에서는 아예 정해진 몇 가지 유형의 민영보험만 팔 수 있거나 정부가 정한 필수항목은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의료보험 표준화가 안 된 것은 물론 각 보험상품에 대한 비교조차 소비자들에게 알려주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피해야 할 보험상품으로 정한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이 아무런 규제 없이 나오고 있다. 가입자가 내야 하는 진료비 전부를 지급해 준다는 이 보험은 언뜻 듣기에는 좋은 것 같다. 하지만 그 폐해는 막대하다. 이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은 공공보험인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대해 관심이 없어진다. 따라서 이 민영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의 의료 이용 양극화는 더욱 커진다. 게다가 실손형 보험은 미국처럼 의료공급 체계를 바꿔 건강보험을 붕괴시킬 수 있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는 금융 관련법의 개정을 통해 친자본적 금융규제 완화를 시도하고 있다. 보험업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만 봐도 지금까지의 파생 금융상품이나 부동산 투자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금융 당국의 허가 없이도 보험상품을 팔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더욱이 경제위기로 보험회사들의 부실이 우려되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도 현 정부는 보험회사의 무분별한 금융·부동산 투기를 더 조장하겠다고 하고 소비자들에게 아무 상품이나 팔아 보험회사의 손해를 메우겠다고 하고 있다. 지금이 보험회사들에 대한 ‘소원수리’ 법이나 통과시킬 때인가? 우리의 건강 보장이나 노후 보장은 기업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몫이다. 지금 정부가 구제해야 할 것은 금융회사들이 아니라 국민이다.


한겨레신문 1월 7일/우석균(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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