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원격진료의 허상과 실체 – 개원의가 상상하는 원격진료의 미래

*건강과대안으로 한 회원의 기고문이 왔습니다. 정부가 선전하는 원격진료의 효과가 아닌, 직접 동네에서 환자를 돌보는 개원의가 예측한 원격의료의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다가올 원격의료의 미래를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일독을 권합니다.

서점에 갈 필요 없이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고, 학원에 가지 않아도 인터넷강의를 들을 수 있고, 친구와 만나는 대신 SNS로 대화를 나누듯, 병원에 가지 않고도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면 무척 편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즘 사회적 이슈가 된 원격진료를 생각할 때 흔히 떠올리는 모습입니다. 바빠서 병원에 갈 시간이 없다면 전화로 증상을 얘기하고, 의사는 전자처방전을 환자가 원하는 약국으로 전송하고, 퇴근길에 약국에 들려 약을 탑니다.

그러나 위의 일화는 원격진료의 상징적인 예로 들기에는 부적합합니다. 지금도 직장인이나 학생들처럼 낮 시간에 병원을 이용하기 어려운 환자들은 전화로 처방전을 요구하는 경우가 흔히 있는 일이며, 대부분 동네의원은 주민들과 오랜 기간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에, 그런 경우 약을 처방해드리게 됩니다. 인근 약국에 처방전을 맡겨달라는 부탁을 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혈압약이나 당뇨약을 장기간 복약하던 환자가 타 지역에 출장 나왔는데 약이 떨어졌다며 처방전을 해당지역 약국으로 보내달라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해당약국에 전화로 양해를 구하고, 처방전을 팩스로 넣어드리고, 처방전 원본을 우편으로 보내 드려야하는 3중의 조치가 필요하지만, 이 또한 당장 드실 약이 없다하니 거절하기 어렵습니다.

약국도 마찬가지일겁니다. 환자가 약을 착불택배나 퀵서비스로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생면부지라면 모를까 단골손님이라면 편의를 봐드릴 수밖에 없겠지요. 이건 주민과 친근할 수밖에 없는 동네의원과 동네약국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현상이며, 당연히 이런 것을 허용하는 것을 원격진료라고 부르리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상상하기로는, 원격진료가 허용되고 현실화된다면 당장은 중증질환보다는 고혈압, 당뇨 같은 만성질환이나 감기나 배탈 같은 경증 급성질환이 타겟이 될 테고, 이러한 질환을 앓는 환자들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사이버의원이 등장할 것 같습니다. 사이버의원에는 책상과 컴퓨터, 그리고 전산요원만 있으면 됩니다. 사무실의 전산요원이 환자의 설문화 된 증상, 전산화 된 측정치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의사에게 넘기고, 해당 의사는 시험문제 풀듯이 20-30초에 한건씩 답안을 내놓을 겁니다. 재진의 경우라면 더욱 빨라지겠지요. 숙련된다면 하루에 수천 건 이상도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의사가 사무실을 지킬 필요도 없습니다. 상급병원에서 환자를 보다가 또는 자택에서, 여행지에서, 해외연수 중에도 짬짬이 인터넷에 접속해서 데이터를 처리하면 되겠지요. 그러한 사이버 진료 안에 환자와 의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데이터의 입출력만이 존재하겠지요. 부작용이나 의료사고도 통계상의 수치로만 인식될 겁니다. 그 결과물은 비용효과적인 측면에서 분석될 테고요.

원격진료가 동네의원을 고사시키지 못하도록 대형병원이 아닌 의원급에만 허용한다고 하지만, 아마도 의료자본의 입장에서 유명하고 인기 있는 전문의의 이름을 타이틀 롤로 삼은 의원급 의료기관을 세우는 일이 어렵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낮에는 대형병원에서 진료하고 저녁에는 데이터를 처리하겠지요. 대형병원의 이름을 딴 네트워크화 된 사이버의원을 설립할 수도 있겠네요. 환자들은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입력하고 삼성 사이버크리닉에서 약국으로 보내준 전자처방전으로 약을 구입하는 편리를 누리는 대신, 이러한 사이버 의료서비스의 의료비를 보장해주는 사보험에 가입해야겠지요. 이 정도라면 시내 전역에 무료배송서비스를 해주는 인터넷약국의 등장도 시간문제일 겁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발생하는 시장의 법칙이 작동할 테니까요.

사이버의원들은 사이버라는 특성상 접근성은 문제될게 없으니 브랜드가치에 의해 선호도가 갈리게 될 것입니다. 인터넷서점의 등장이후 사라져간 동네 서점들처럼, 만성질환자와 경증 급성질환자를 빼앗긴 지역의원들은 상당수가 고사될 수밖에 없으며, 남은 의원들은 비급여 진료에 의존 하던가, 어쩔 수 없이 보험사와 연계된 대형브랜드의 사이버네트워크에 편입되어, 갑의 위치에 있는 보험사에서 요구하는 일률적인 매뉴얼대로 처방하게 될 것입니다.

1차 의료기관 수의 감소는 1차 의료 인프라의 붕괴로 이어지고, 사보험의 활성화로 인한 국민건강보험의 위축과 더불어 공공의료시스템의 붕괴로 귀결될 것입니다. 뒤늦게 문제점이 노출되어 원래대로 돌리고 싶다 해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번 무너진 인프라를 재구축하기도 어렵거니와, 정부에겐 이미 투자를 마친 자본의 거센 저항을 이겨낼 힘도 의지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송관욱(건강과대안 회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전충남지회) /오마이뉴스 3월 25일자 칼럼

1개의 댓글

  1. 야옹선생

    피드백 주셧던 내용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사이버의원은 병,의원 M&A와 시너지를 일으켜 동네의원을 고사시키고 껍데기만 남은 삼성의원,아산의원 등으로 바뀌겠네요. 의협에서는 6개월간의 시범사업이 반대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하던데, 과연 어떻게 될지 너무 걱정되네요. 이미 삼성,SK,LG등 기업체들은 자본을 대거 쏟아붓고 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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